고난주간 묵상자료 활용 가이드: 이 묵상자료는 2021년 3월 22일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4월 4일 부활주일까지 14일간 묵상하는 것으로 구성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관한 자료를 먼저 제시하여 참고하도록 하였고, 자료 I: 서두자료와 고난주간 전의 묵상(3/22-3/27), 자료 II: 고난주간 묵상 1(3/28-3/31) 과 자료 III: 고난주간 묵상 2(4/1-4/4)에는 부활주일 묵상(4/4)을 포함해서 3부로 구성했다. 고난주간 전의 묵상은 고난주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하였고, 고난주간과 부활주일 묵상 내용은 사건이 일어난 요일에 맞추었다. 그래서 고난주간 제3일 화요일은 예수님 강화, 논쟁, 예언, 교훈과 사건 등 16건(성전강화 8; 감람산 강화 8)이나 되어 상당히 길고 고난주간 제5일 목요일 묵상자료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과 다락방 강화가 있어서 역시 그 분량이 많다, 반면 제4일 수요일 묵상 내용은 짧다. 매일 예수님 행적의 양이 달라서 어떤 요일에는 내용 중 선택해서 묵상하고, 어떤 요일은 대용할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따라서 매일 제시된 묵상 가이드를 참조하여 묵상하기 바란다. 묵상에는 어떤 원리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묵상하는 사람에 따라서 주시는 바 은혜대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구원역사를 음미해 가기 바란다. 예수님 구원 사역과 나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면 좋겠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 원고의 필자 김 정 권은 대한예수교 장로회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 대구대학교 명예교수이다. * 이 원고에서 사용한 년도는 예수님 공생애 시작을 27 AD로 한 연도이다.
고난주간 묵상 제5일 (2021년 4월 1일 목요일) 오늘의 찬송: 232장(통일 282장; 유월절 때가 이르러)
[오늘 예수님 행적 지도] 예수님 이동경로:① 베다니 ⟶ ⑤ 최후의 유월절 만찬장 ⟶ ⑥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 ⟶ ⑦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과 가야바의 집에서 심문 [고난주간 제5일(목) 예수님 행적 개요]
[고난주간 제5일(목) 예수님 행적 개요 1: 마지막 만찬과 잡히심] [고난주간 제5일(목) 예수님 행적 개요 2: 마지막 만찬 중 다락방 강화] [고난주간 제5일(목) 예수님 행적 개요 3: 마지막 만찬 중 다락방 기도]
[오늘의 묵상(默想) 가이드] 오늘 묵상자료는 양이 많다. 목요일 예수님 행적은 마지막만찬, 만찬중의 다락방 강화와 기도, 감람산에서 잡히시고 심문 받으시는 일 등으로 항목 21∼25 이다. 다락방 강화와 기도는 항목 21의 하위 항목이 된다. 다락방 강화 8개는 고난주간 묵상자료 21번 하위번호로 (21-1)∼(21-8)로 하였고 다락방 기도는 (21-9)∼(21-11)로 하였다.
오늘 묵상은 항목 21∼25의 5항목과 감람산 강화와 기도 중에 1개 항목을 선택하여 년차로 묵상해 나가면 좋겠다. [고난주간 제5일(목) 예수님 행적 1: 마지막 만찬과 잡히심] [고난주간 제5일(목) 예수님 행적 개요 1: 마지막 만찬과 잡히심] (21)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성 경: 마26:17-19; 막14:12-16; 눅22:7-13; 요13:1-17:26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성만찬의 제정과 제자들의 확신과 변화 촉구 [요의(要義)] 예수님이 제자들과 성만찬을 가지신 날은 무교절 첫 날이다.(마26:17; 막14:12; 눅22:7). 만찬 장소는 4복음서마다 기술하는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물동이를 이고 가는 사람의 집(막14:13-16; 눅22:10-13)이고 마태복음에서는 성안 아무에게의 집(마26:18, 19) 이라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같은 집이다. 마가의 다락방으로 추측한다.
마태와 마가는 이 날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으나 누가와 요한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누가는 고난 받으시기 전에 예수님이 유월절 잡수시기를 원하셨다고 기록한다(눅22:15). 그리고 떡을 떼시고 포도잔도 나누시어 당신의 몸과 피를 기념하게 하시었다.(눅22:17-20) 예수님은 성 만찬을 제정하시어 후세대가 이를 지키게 하시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예루살렘성 안에서 지킨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큰 명절이다. 다음 이 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의 강화와 기도이다.
유대인들의 유월절 만찬은 엄격한 절차와 무교병(마짜)과 포도주를 사용한다. 순서는 포도주 4잔을 1째-4째 잔까지 즉 전식, 과거기억, 현재축복, 미래를 향한 축복으로 이어진다. 만찬 중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성만찬 포도주 첫잔을 드신 후일 것이다(요13:5-11) 오늘도 고난주간 목요일에 세족식을 거행하는 교회들이 있다. 마지막 만찬에서도 누가 높으냐의 논쟁이 제자들 사이에 있었다. 예수님은 낮아지는 자가 높은 자라고 가르치셨다. 진정으로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셋째 잔을 들기 전 무교병(마짜)을 먹은 유다가 만찬장을 떠나 대제사장에게로 갔다고 가정한다. 그 뒤에 구원의 잔(셋째 잔)을 들며 예수님은 자신의 피라고 하셨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새 계명을 주시었다.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자신을 팔자를 예언(마26:20-25; 막14:17-26; 눅22:14-30; 요13:21-30)하셨고, 또 베드로가 3번 예수님을 부인 할 것도 예언(마26:31-35; 막14:27-31; 눅22:31-38; 요13:36-38)하신다. 제자들은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시고 변화될 제자들이 해야 할 일들을 확실히 하셨다.
유월절 만찬은 우리에게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단순한 만찬이 아니라 성찬의 제정과 제자의 발을 씻기시는 낮아지심(요13:1-20)과 성만찬 중에 새 계명 즉 “서로 사랑하라”를 명하신일과 계속해서 다락방 강화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제자의 길을 일러 주셨다. 즉 첫째, 아버지께로 갈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만을 통한다(요14:1-14)는 메시지와 둘째,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요14;15-31), 셋째, 포도나무와 가지에 관한 강화(요15:1-17), 넷째, 증오에 대한 경고(요15:18-16:4), 다섯째, 성령에 관한 강화(요16:5-15), 여섯째, 예수님 이름으로 주신다는 강화(요16:16-33) 등을 하신 후에 기도 즉 첫째,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 둘째, 제자들을 위한 기도 그리고 셋째, 장래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요17:1-26)를 하심으로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시는 시간이었다. [묵상(默想)] 1. 성만찬의 제정과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2. 구약의 유월절 만찬과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만찬은 무엇이 다를까? 3.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4. 다락방 강화를 통하여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어떤 변화를 기다려야 할까?
(22) 기도: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성 경: 마26:36-46; 막14:32-42; 눅22:39-46; 요18:1 장소: 예루살렘 성 밖 기드론 골자기 건너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의 피땀 흘리시는 기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구하는 기도 [요의(要義)] 겟세마네에서 3번 기도하셨다. 유월절 만찬을 마친 예수님은 제자들과 감람산으로 찬미하며 올라가신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도 깨어있으라고 이르시나 제자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한다.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님은 피의 기도를 드리며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시기를 간구한다. 공관복음에서 이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복음서 별로 조금씩 특색이 다르다.
첫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은 유사하다. 3번 기도하셨고 11제자들을 앉아 있으라 하시고 그중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시고 더 나아가서 깨어있으라 이르시고 예수님은 좀 더 떨어져 있는 곳에서 기도하셨다. 기도의 요지는 “이 잔이 지나가기를 구하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이다. 인성을 입으신 주님으로서는 깊은 번민에 빠지셨다. 제자들은 졸음을 못 이기고 자고 있었다. 3번째 기도를 마치시고 이제는 자고 쉬라하시면서 도당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 하셨다(마26:36-46; 막14:32-42). 둘째, 누가복음은 좀 더 다른 측면에서 기술하고 있다. 습관에 따라 감람산에서 기도 하셨음을 밝히고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 이르시고 예수님은 좀 더 떨어져 있는 곳에서 기도하셨다. 기도의 요지는 “이 잔을 내게서 옮기 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 하셨다. 누가복음은 이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임하여 도왔다고 기술하며 예수님이 흘린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기술하여 처절한 기도이었음을 밝힌다.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힐책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이르신다(눅22:39-46). 셋째, 요한복음에서는 이 단락에 관한 기록은 예수님이 감람산으로 가신 일만 기록하고 있다. [묵상(默想)] 1. 인성을 입으신 예수님으로서 죽음이란 어떤 의미를 갖을까? 2.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야하는 사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23) 대제사장과 장로가 보낸 도당에게 잡히신 예수님 성 경: 마26:47-56; 막14:43-50; 눅22:47-53; 요18:2-12 장소: 예루살렘 성 밖 기드론 골자기 건너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과 가롯 유다기 이끄는 도당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 잡히신 일 [요의(要義)] 예수님 잡히시다.: 예수님이 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도당(徒黨)에게 잡히신다. 이날은 목요일이 끝나가는 시점이다. 잡히시고 금요일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예수님 수난의 날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만민 구원역사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인간에 의한 것들이 아니다. 복음서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그때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때 상황을 복음서를 통해서 재구성해 보면 예수님이 기도하신 장소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장소는 예수님이 자주 제자들과 기도하시든 장소였기 때문에 가롯 유다도 알고 있는 장소 이다(요18:2). 유다가 인도하여 온 무리는 대제사장의 종과 성전 경비대원들이다(마26:47; 막14:43; 요18:3). 이들은 무기를 들고 왔다.
둘째, 유다가 예수님에게 입맞춤 하는 것을 신호로 예수님을 잡는 것으로 군호를 삼았다. 그 때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처서 떨어 뜨리(마26:51, 52; 요18:10, 11)나 예수님은 치유하여 주셨다. 그리고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다.
셋째, 예수님은 도당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다(요18:4). 나사렛 예수라 함으로 “내가 그다”라고 하시니 그들이 땅에 엎드러졌다(요18:6).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고 하셨다(요18:9). 그리고 제자들은 다 도망하였다(마26:52; 막14:50) [묵상(默想)] 1. 오늘도 예수님을 잡으려는 무리는 없을까? 2. 나의 삶은 위기상황에서 어떠할까?
(24) 심문: 안나스의 집과 가야바의 집 성 경: 마26:57-68; 막14:53-65; 눅22:63-65; 요18:13-24 장소: 예루살렘 성내 가야바의 집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밤) 등장인물: 예수님과 유대 종교지도자들 중요 메시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찾고자 함 [요의(要義)]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포박되신 예수님은 먼저 안나스의 집에 잡혀 가셨다. 이 기사는 요한복음에서만 다루는데 아나스와 관계된 복음서 내용에서 군대와 대제사장 하속들에게 포박되어 끌려가셨음을 알 수 있고 안나스는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며, 대제사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여기서 힐문(詰問)을 받으시고 가야바의 집으로 이송되신다. 여기서 베드로의 첫 번째 예수님 부인이 있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 죽일 증거를 찾는다. 예수님이 잡히셔서 가야바의 집에 서시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찾았다. 거짓 증인을 만들려 하였으나 여의치 못했고,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3일 동안에 지을 수 있다.” 이 말씀으로 책(責)잡으려 하나 예수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이는 이사야로 이미 예언된 것이다(사53:7). 그 후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요 재림으로 오시는 것을 너희가 볼 것임을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신성 모독으로 고발하게 된다.
안나스의 집에서 가야바의 집으로 이송된 예수님은 그들 종교지도자들의 적대적 힐문을 받으신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것을 이미 정해 놓고 그 구실을 찾아서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복음서에 나타난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내용은 유사하다. 대제사장 집에 모인 자들은 대제사장, 장로들, 서기관으로 되어있다. 주로 산헤드린 회원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당시 유대의 기득권 세력이었고, 재판권을 가진 자들이다.
둘째, 대제사장을 위시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합리적 근거를 찾고자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다룬다.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묻는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26:63),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막14:61)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26:64),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14:62)는 답을 들은 대제사장은 이것이 바로 죽일 증거라고 하였다.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더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셋째, 무뢰배들이 예수님을 치며 조롱하는 일이 있었다(마26:67, 68; 막14:65). 이들이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누가 때렸는지 맞추라는 모욕을 하였다. 예수님은 모욕을 당하셨다.
[묵상(默想)] 1. 대제사장의 집에서 힐문은 예수님에게서 무슨 혐의를 찾으려는 것이었나 2. 예수님은 이들의 힐문에 대해 대응하신 것도 있고 안하신 것도 있다. 예수님이 적극적으로 응대하신 내용은 어떤 점에 초점이 있었을까? (25) 부인: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베드로 성 경: 마26:69-75; 막14:66-72; 눅22:54-62; 요18:15-18, 25-27
장소: 예루살렘 성내 아나스의 집과 가야바의 집 바깥뜰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밤∼금요일 새벽) 등장인물: 베드로와 가야바의 하속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와 회개 [요의(要義)] 공관복음은 베드로의 3번의 부인이 연속적으로 이루어 진 것 같이 계속된 질문에 “아니라” 한 것이나 요한의 진술을 보면 좀 시간 간격이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 부인은 안나스의 집에서였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부인은 가야바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베드로는 극구 아니라 부인한다. 얼마 전의 칼을 들어 말고의 귀를 벤 용기와 예수님을 죽는데 까지 따라가겠다고 한 맹서는 어디로 갔을까?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런 마음을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요한복음은 베드로가 첫 번째 부인하는 것(요18:15-18)과 두 번째와 세 번째 부인(요18:25-27)하는 그 사이(요18:19-24)에 안나스의 집에서 예수님이 심문 당하시는 내용을 삽입한다. 이는 베드로의 부인이 시간적으로 좀 간격이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세 번째 부인하고 나니 곧 닭이 울었다고 기술한다. 이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돌아다 보셨다(눅22:61)고 하니 베드로가 있었던 곳은 예수님과 눈을 맞출 수 있는 정도로 떨어져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심히 통곡했다고 한다.
베드로는 제자 중에 제일 먼저 신앙고백도 했고 베드로라는 이름도 받았고, 천국열쇄도 받은 말 그대로 수제자이다. 공관복음은 닭이 세 번째 울 때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는 회개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아마 베드로는 꾀나 큰 충격을 받고 깊은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양육하시는 과정으로 이런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훗날 순교를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묵상(默想)] 1.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 할 때 심리상태를 생각해보자. 2. 수제자로서 선생님을 부인한 자괴감은 어떠했을까? 3.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은 어떤 것들일까?
[고난주간 제5일(목) 예수님 행적 2: 마지막 만찬 중 다락방 강화] [고난주간 제5일(목) 예수님 행적 개요 2: 마지막 만찬 중 다락방 강화] * 위 개요 1의 21번 중 요한복음 13장-16장의 내용이 다락방 강화이고 이 개요는 21번 하위 항목들이다. 다락방강화는 요한복음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이 마지막 강화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점에서는 그 의미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이 말씀이 교회를 세우는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요한복음 13장에서 16장에 걸친 4장에서 “다락방 강화”를 다루고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의 기도”를 다루고 있다.
다락방 강화(講話)의 의의(意義) 고난주간 목요일 예수님과 제자들은 마지막 만찬을 갖는다. 유월절 만찬이지만 예수님이 잡히시는 날, 제자들에게 고별 강화를 하시는 시간이고 앞으로 이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고 구원사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제자훈련의 시간이라 하겠다. 제자들에게 유언의 의미를 갖는 강화를 하셨다.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고난주간 목요일 예수님과 제자들은 마지막 만찬을 갖는다. 유월절 만찬이지만 예수님이 잡히시는 날, 제자들에게 고별 강화를 하시는 시간이고 앞으로 이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고 구원사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제자훈련의 시간이라 하겠다. 제자들에게 유언의 의미를 갖는 강화를 하셨다.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다락방 강화에서 예수님은 삼위(三位)의 하나님을 설명하셨고 성령을 설명하심으로 신학적 진리를 제자들에게 강화하셨다. 주님을 따르는 길을 가르치셨고, 제자의 길을 가르치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을 알려 주셨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멍에를 메고 배워야한다(마11:29). 아주 쉬운 방법이다.
다락방 강화는 제자의 길을 가르치신 것이다. 제자는 그 선생인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다락방 강화는 신학적 진리를 강화하신 것뿐만이 아니라 예수님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본질적인 말씀을 주신 것이다. 아마 요한복음 13장에서 16장까지 내용은 제자들이 살아가야할 길이며 성도가 성화되어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개요에서 볼 수 있는바와 같이 강화내용은 크게 8가지로 볼 수 있다. 13장에서 마지막 만찬의 준비와 만찬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요13:1-11)과 “서로 섬기라”(요13:12-17)는 강화를 하셨고 가롯 유다의 배반 예언과 그의 배반(요13:18-30)을 요한은 다루고 나서 만찬의 후반에 접어들면서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요13:31-35)는 강화내용을 다룬다. 그리고 만찬이 계속되는 동안 14장∼16장에서 6개의 강화를 더 하셨다.
요한복음 14장에서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강화셨고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강화하셨다. 15장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강화를 통해서 생명,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강화를 하셨다. 그리고 세상의 핍박과 그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신다. 16장에서 성령에 대한 강화와 그리스도의 승리로 우리들은 주님만을 통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강화하셨다. (21-1) 다락방 강화(講話) 1. 서로 섬기라 성 경: 요13:12-17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섬기는 자의 본을 보이심으로 제자들로 섬기는 길을 가르치신다. [요의(要義)]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도록 하라는 것이 주님의 강화 내용이다. 선생과 주가 되어서 제자의 발을 씻기신 것은 산 교육이셨다.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서로 섬긴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가장 좋은 길이다. 이 만찬은 이제 십자가를 앞에 둔 선생님의 절박한 심정으로 제자들에게 강화하시는 자리이다. 그러나 아직 제자들은 메시아 관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만찬장에 이르러서도 제자들 사이에는 누가 높으냐의 논쟁이 있었고 섬긴다는 생각은 종이나 낮은 자들의 길이라 생각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의 길은 섬기는 길이요 낮아져서 종이 되는 길이었다. 이것이 가장 높아지는 길이라고 하셨다. 제자의 길이며 성화된 사람의 삶이 아닐까!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하나님과 동등 되려하지 않으시고 인간으로 낮아져서 이 세상에 섬기는 분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의 품성을 온유와 겸손이라 하셨다. 섬기는 사람의 품성이 겸손이겠지,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겸손 할 수 있을까? 사랑으로 성화된 사람, 자기완성을 이루어 자신만만한 사람, 성품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겠지, 이런 사람은 섬기는 것이 몸에 젖어있어서 자연스럽게 섬기게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성화된 삶을 살 뿐 아니라 인류에 이런 삶을 살아가도록 복음을 전하라는 강화이시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은 사람의 진정한 행복이시다. 참 행복이 어디서 올까? 사랑으로 성화된 삶이다. 그 속에 섬김이 있고 나눔이 있고 내가 낮아지는 원리가 있을 것이다.
[묵상(默想)] 1. 나는 삶에서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2. 왜 섬기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일까? (21-2) 다락방 강화(講話) 2.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성 경: 요13:31-35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율법의 완성으로 사랑의 길을 가르치신다. [요의(要義)] 가롯 유다가 제사장에게 간 뒤 예수님은 죽으심과 부활을 은유하시는 말씀을 하시고 다정하게 제자들을 부르신다. 영어 성경에는 my children(요13:33)이라고 번역했는데 그 뜻이 부합하다. 그리고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랑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면 예수님의 제자인 줄을 알 것이다. Christian이란 말이 안디옥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란 바로 그 냄새가 나는 사람들, 그 맛이 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를 믿는 것은 사랑으로 표출(레19:18)되며 이는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갈5:6).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사랑은 공허(空虛)하고 사랑으로 역사 할 수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고전13:2). 그래서 성화는 사랑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이는 믿음에서 나온 사랑을 말한다. 믿음은 우리 신앙생활의 기반(infra)이고 사랑은 그 기능(function)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을 강화하셨다. 예수님의 강화는 요13:34에서 “서로 사랑하라 !!!”이다. 이 명령은 반드시 이루어야하는 명령이고 다락방 강화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이다. 사랑에 대한 강화를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는 목적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강화에서 다시 한 번 더 확장(擴張)해서 강화하신다. 사랑 안에서 우리가 주님과 일체가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하나가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제자의 품성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제자훈련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다. 사랑은 다락방 강화의 중심 덕목이 될 것이다.
[묵상(默想)] 1. 제자의 품성으로 왜 사랑이 으뜸이 되는가를 생각해보자. 2. 성화된 사람의 품성으로서 사랑은 어떤 것일까?
(21-3) 다락방 강화(講話) 3.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곧 예수 그리스도 성 경: 요14:1-14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의 통로이며 믿는 자에게는 능력과 영광이 있음 [요의(要義)]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통로이심을 증언하셨다. 이 항목은 두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이 구원의 통로이심을 말씀하시고 다음 그렇게 구원을 얻은 사람들의 삶 즉 능력이 있고 빛나고 거룩한 삶을 설명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하신 통로임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다(요14:6). 주검을 앞두고 계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직 그 가는 길을 모르고 있고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그 자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식후에 제자들에게 강화하셨다. 요14:11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이 일체이심을 다시 설명하신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일을 보아도 알 수 있음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락방 강화는 훗날을 위한 사랑의 강화라 할 것이다.
두 번째 단락(요14:12-14)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하시는 능력을 주실 것이요 그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여 빛날 것을 말씀하셔서 믿는 자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설명하신다. 훗날 제자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생명의 복음을 전할 것이고 이에 의해 세계에 복음이 전파될 것이니 그 영광이 어떠하겠는가!
다락방 강화는 제자훈련을 하시는 것이다. 이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제자들에 의해 초대교회가 형성되고 세계열방을 향한 구원의 사역이 이루어진다. 다락방 강화는 아마 그 선교사역의 일꾼들을 기르시는 강화일 것이다. [묵상(默想)] 1. 나는 생명의 길을 확실히 알고 있는가? 2.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빛나는가? (21-4) 다락방 강화(講話) 4.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야속 성 경: 요14:15-31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보혜사 성령(para,klhton)을 보내 주실 것을 설명 [요의(要義)] 불안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para,klhton,,helper, counselor, the Holy Spirit)을 설명하신다. 이 강화는 세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하겠다. 요14:15-19에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요14:20-24에서 보혜사 성령이 사랑으로 임재하심을, 요14:25-31에서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가 깨달음을 얻게 됨을 설명하신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어 제자들과 항상 함께 있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이는 영(靈)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일이나 제자들은 알고 함께 거하게 된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살아나시어 하늘로 올라가시지만 보혜사 성령은 항상 우리와 같이 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로써 보혜사 성령의 존재를 설명하셨고 성도들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하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음을 강화하셨다.
두 번째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일체(一體)이시고, 예수님과 우리 성도가 하나이심을 설명하신다. 하나 됨은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이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이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여기 두 개의 세계(world)가 있다. 하나는 주님의 세계(cosmos)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을 모른 자들의 세계(chaos)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왕국은 전연 다르다는 것이다. 다락방 강화에서 세계(world)라는 단어가 40번 나온다. 주님은 두 개의 세계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것이다.
셋째로 보혜사 성령을 통한 깨달음을 설명하신다.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 우리로 알게 하시는 이는 보혜사 성령이시다. 진리는 듣고 알아야하고 알아서 깨달아야한다. 깨달음이 있어야 변화가 있게 된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제자가 될 수 있고 사랑 안에 거(居) 하게 된다.
[묵상(默想)] 1. 주님과 하나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되는가? 2. 주님의 계명을 생각해 보자. 3. 나에게도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는가? (21-5) 다락방 강화(講話) 5. 포도나무와 가지에 관한 강화 성 경: 요15:1-17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과 성도 그리고 교회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심 [요의(要義)] 이 강화는 마지막 만찬 후에 다락방에서 이루어진 강화이다. 요14:31에서 여기를 떠나자고 하셔서 이 때 다락방을 떠났다고 생각 할 수 있으나 떠나신 것이 아니고 강화는 계속되어 16장까지 강화하시고 17장에서 기도하시고 감람산으로 가셨다.
강화 4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일체이며 예수님과 제자들이 일체 이심을 강화하셨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랑이 있을 때 일체가 됨을 밝히셨다. 요한복음 15장은 앞의 두 장 즉 13장과 14장에 근거하여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강화를 하신 것이다. 제자훈련에 대들보 같은 강화라 해야겠다.
강화 5는 이스라엘의 가장 많은 과수이기도하고 메시아를 상징하기도 하는 포도나무 강화이시다. 이 강화로 예수님과 그 제자가 일체임을 다시 설명하신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의 관계를 유기체의 관계로 설명하신다. 또한 우리와 주님의 관계도 유기적임을 설명하신 것이다. 강화 5는 요15:1-5에서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그 제자들은 가지로 관계를 설정하신다.
요15:6-8에서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의 실상을 설명하시고 요15:9-15에서 사랑 안에 거하라는 강화는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음으로 그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강화하신다. 요15:16, 17에서 구원은 일방적 주님이 택하셨음을 설명하신다. 이는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음으로 생명이 있다는 증거이며 즉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묵상(默想)] 1. 나무와 가지가 연결되어 있을 때 유기적 관계를 갖게 된다. 나는 주님과 연결되어 유기적 관계 즉 하나가되어 있는가? 2. 유기적 관계는 영적으로는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주님과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3. 나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나를 선택해서 구원하심을 받아드리는가? (21-6) 다락방 강화(講話) 6. 세상의 증오에 대한 경고 성 경: 요15:18-16:4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진리로 인해 받을 핍박과 무지한 핍박 가해자들 [요의(要義)] 다락방 강화에서 두 개의 세계(world)가 거론된다. 즉 두 개의 가치관의 충돌이 있게 된다. 주님의 나라(cosmos)와 믿음이 없는 세상(chaos)이 충돌하는데 이는 창조 전의 세상과 창조후의 세상을 견주어 비교 할 수 있다. 주님의 나라는 빛과 성령의 충만함과 질서와 조화의 나라이지만 세상의 왕국은 흑암과 공허와 무질서의 나라이다.
흑암에 거하는 자들은 빛을 싫어한다. 빛에 대항하게 된다.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된다. 주의 제자들이 핍박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것 없다. 두 개의 세계는 항상 충돌하고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빛에 대항했었다.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것이며 형식적 율법에 얽매어 있던 사람들에게는 받아드리기 어려운 새로운 가치가 되었을 것이다. 장로의 전승을 수 없이 만들어서 사람들의 삶을 얽매게 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 혼란스럽고 공허한 그리고 흑암의 세계에서 사람들에게 빛을 주시고 자유를 주심으로 해방시키셨다. 이런 새로운 가치는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이 빛의 세계를 핍박하는 이유를 진리의 세계를 몰라서라고 설명하신다. 그들은 불상한 사람들이다. 성도는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할 책임이 있다. 두 개의 가치관은 서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진리의 세계관을 이 세상 사람들도 받아드리도록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이들을 긍휼히 여겨야한다, 불쌍한 사람들이니까, [묵상(默想)] 1. 박해를 당 할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2.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가 취할 자세를 생각해 보자! (21-7) 다락방 강화(講話) 7. 보혜사 성령에 관한 강화 성 경: 요16:5-15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 대신으로 오심, 우리로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분 [요의(要義)]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다락방 강화 4에서 먼저 말씀하셨다(요14:15-19). 다락방 강화 4에서는 보혜사 성령의 약속과 보혜사 성령으로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진리를 가르치셨다. 그리고 강화 5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어서 유기체의 속성을 다시 설명하시면서 그 근거가 사랑임을 설명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다락방 강화 4와 5가 연계되어있음을 알 수 있고 이는 다시 사랑방 강화 7과 연계됨을 알 수 있다. 다락방 강화 7에서 다루는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 대신으로 오시는 분(요16:5-7)이며 보혜사 성령의 역할(요16:8-11)과 그가 우리를 인도해 주심(요16:12-15)을 설명 하셨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분으로 이로써 삼위일체 신앙이 정립된다. 그리고 진리의 영이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실 것이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며 생명으로 인도 할 것이다.
[묵상(默想)] 1. 예수님 대신에 보내주실 보혜사 성령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2. 보혜사 성령은 우리가 무엇을 깨닫게 하실까? 3.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인도해 주실 진리는 무엇일까?
(21-8) 다락방 강화(講話) 8. 그리스도의 승리와 성도의 기쁨 성 경: 요16:16-33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오셨고 하나님께 돌아가시며 이는 제자들에게 더 큰 기쁨을 주시기 위하신 것이다. [요의(要義)] 예수님의 다락방 강화 8은 승리하신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제자들의 영원한 기쁨을 설명하시며 하나님께 구할 것은 모두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요16:16-33의 내용은 1. 부활에서 오는 영원한 기쁨(요16:16-22) 2.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라(요16:23, 24) 3.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믿음(요16:25-28) 4. 말씀을 믿게 된 제자들(요16:29-32) 5.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요16:33) 으로 나눌 수 있으나 예수님의 돌아가심은 또 다른 전환 즉 영원히 성도들과 같이하실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함께하신다는 메시지를 주신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음을 알게 하신 일이며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영원한 기쁨이 우리와 같이하심을 이르신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심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뜻으로 보아야겠다. 예수님이 떠나심으로 오히려 성도들은 큰 기쁨 안에 살게 된다.
이로써 하나님에게 구할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하셨고, 이 메시지를 통해서 구원을 위시한 우리의 모든 일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완전히 믿는다는 뜻이 될 것이고 아무 의심도 없는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강화에서는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요16:25-28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설적으로 예수님이 아버지께로부터 오셨고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신다고 강화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진리를 믿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때 제자들은 어렴풋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뒤 그들은 선생님을 버리고 모두 도망간다.
이 강화 중 요16:29-32에서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이를 확인하시고 제자들이 다 도망 갈 것을 예언하시고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설명해 주신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며 다시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것은 세상권세를 이기신 일이며 우리 성도들에게 참 평안을 주시고 이 평안은 구원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제자들의 기뻐하는 삶을 이루신다는 강화이다. [묵상(默想)] 1.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가? 2. 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3. 그리스도의 승리와 구원에서 오는 평안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고난주간 제5일(목) 예수님 행적 3: 마지막 만찬 중 다락방 기도] [고난주간 제5일(목) 예수님 행적 개요 3: 마지막 만찬 중 다락방 기도] * 위 개요 1의 21번 중 요한복음 17장의 내용이 예수님 기도이고 이 개요는 21번의 하위 항목들이다. (21-9) 주님의 기도 1. 예수님, 성부와 자신의 영광을 위한 기도 성 경: 요17:1-5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하나님과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영화롭게 하시기를 구한다. [요의(要義)] 이 기도는 3단계로 구성된 기도 중 첫째 기도이고 이 단락에서는 성부 하나님과 자신의 영광을 위한 기도(요17:1-5)를 드린다. 전지전능하신 아버지의 영광은 그 아들을 통하여 나타난다. 아버지는 그 권세를 아들에게 주셔서 영화롭게 하셨다. 아들은 만민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심으로 아들과 아버지는 영화롭게 되신다.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은 만민을 구원하시는 권세를 예수님에게 주심으로 아들을 영화롭게 하셨고, 이로써 아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구한다. 그리고 나아가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예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성도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구원의 은총을 입고 성화된 삶을 살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냄으로 여호와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을 소생(蘇生)케 하심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서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아름답고 빛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한다.
[묵상(默想)] 1.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도록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2.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 왜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하셨을까?
(21-10) 주님의 기도 2. 제자들을 위한 기도 성 경: 요17:6-19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 떠나신 후의 제자들의 성공적 삶을 위한 기
[요의(要義)] 공관복음에서 다룬 겟세마네 피의기도(마26:36-46; 막14:32-42; 눅22:40-46)가 요한복음에서는 생략되어있다. 대신에 장엄한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전계 된다. 중보기도 3단계 중에서 둘째 단락의 내용은 제자들이 세상을 이기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간절히 구하는 기도(요17:6-19)이다. 제자들이 승리하는 거룩한 삶을 구하는 기도내용은 그들을 보전하시고, 하나 되기를, 아들의 기쁨이 그들 안에 충만하기를, 악에서 이기기를 구하시고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중보 기도하신다.
제자를 위한 주님의 기도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기를(요17:11), 제자들의 영적 연합을 구하시는 기도이다.
둘째, 주님의 기쁨이 제자들에게서도 충만히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것(요 17:13),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쁨이 세상 에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이다.
셋째,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한 기도(요17:15), 즉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넷째,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요17:17, 18) 등 이라고 할 수 있다.
[묵상(默想)] 1. 제자의 길은 하나님과 일체, 기쁨 충만, 악을 이기는 것, 거룩한 삶이라 한다면 우리의 매일의 삶을 이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 (21-11) 주님의 기도 3. 장래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성 경: 요17:20-26
장소: 예루살렘 성내 (마가?) 다락방 때: 30 A.D.(고난주간 목요일)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앞으로 믿을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영광을 알기를 위한 기도
[요의(要義)] 중보기도의 3단계는 제자들의 복음 전파로 자신을 믿게 될 성도들의 신령한 연합을 위한 기도(요17:20-26)이다. 모든 주를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요17:20)로서 이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들을 보낸 것을 믿도록(요17:21) 하고,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거룩한 성도가 서로 그 안에 거하기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요17:22-26)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두 하나 될 수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녹여 하나가 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세 번째 기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그 기도의 대상이 앞으로 예수를 믿을 모든 사람(요17:20)이다. 둘째, 성도들도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계시고 우리도 예수님 안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믿도록 하시는 기도(요17:22)인데 이는 성도들도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한 기도이다(요17:22).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모든 사람이 알게 하시기를 위한 기도이다(요17:23), 넷째,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한 것 같이 그 사랑이 성도 안에 있음을 알므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기를 구하는 기도이다(요17:24, 26).
[묵상(默想)] 1.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는가? 2.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나타낼까? 고난주간 묵상 제6일 (2021년 4월 2일 금요일) 오늘의 찬송: 150장(통일 135장; 갈보리산 위에)
[오늘 예수님 행적 지도] 예수님 이동경로:⑦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 ③ 예루살렘 성전 산해드린 공회 ⟶ ⑨ 빌라도(안토니오 요새?) ⟶ ⑩ 헤롯 안티파스 궁 ⟶ ⑪ 안토니오 요새 ⟶ ⑫ 골고다(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심) ⑪⟶⑫ 사이가 고난의 길(Via Dolorosa)
[오늘의 묵상(默想) 가이드] 오늘은 성 금요일이고 새벽부터 심문과 재판을 받으시고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이다. 묵상자료는 모두 7개 항목으로 구성되었고 묵상하는 분은 이 모두를 묵상하면 좋겠다. 고난주간 성 금요일 새벽에 (26) 산헤드린(공회)에 서신 예수님 성 경: 눅22:66-71
장소: 예루살렘 성전 때: 30 A.D.(고난주간 금요일 새벽) 등장인물: 예수님, 산헤드린 공회원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을 정죄하고 빌라도에게 넘겨 사형을 요구함 [요의(要義)]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헤롯 대왕이 죽은 후 나라를 삼등분하여 세 아들에게 나누어 통치하게 하였다. 헤롯 안티파스(4B.C.-39A.D.성경에서는 안디바로 기록됨)는 헤롯 대왕의 아들로 갈릴리 지역 왕이 되었고. 가나안 남쪽의 유대 지방(예루살렘. 이두메와 사마리아 포함) 왕은 헤롯의 아들인 헤롯 아켈라오(4B.C.-6A.D.)가 통치했었는데 실정이 많아 왕권을 빼앗기고 로마 직할 지역이 되어 로마 황제가 파견한 총독(당시는 빌라도)이 이곳을 다스리고 있었다. 갈릴리(갈릴리 바다 서쪽의 지역 훌레 분지 포함)와 베레아(펠라에서 아르논강까지, 사해와 요단강에서 왕의대로 근처까지)는 헤롯의 아들 안티파스(Antipas)에게 주었다.
로마는 유대인에게 자치권을 주었다. 그 최고 기관이 산헤드린인데 이들에게는 사형시킬 권한이 없었다. 그래서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유죄로 정하고 빌라도의 사형언도를 요구 하게 된다.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기 때문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내었다. 산헤드린(Sanhedrin): 뜻은 “함께 앉다.” 바벨론 포로 시기 이후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再建)을 감독하고 이를 계획하던 "귀족회의" 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스몬 왕조 때 "산헤드린"이라 부르게 되었고 산헤드린은 유대 전 지역의 율법(律法)을 관장하는 유대 최고 자치 통치 기관(최고 재판소)역할을 해 왔다. 산헤드린 공회는 70명으로 구성되는데, 의장인 대제사장을 포함해서 71인으로 구성된다(민11:16). 구성원은 제사장, 원로와 율법학자들이다. 산헤드린은 율법을 준수하고 이에 따라서 재판을 하는 권한이 있었다. 그러나 사형만은 로마 총독이 하였다. 예수님이 산헤드린에 심문을 받게 된 것은 이런 이유였고 산헤드린공회는 곧 예수님 죽일 근거를 찾고자 했다. 산헤드린공회는 유대전쟁 후 70 A.D.에 해산되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집에서 이미 많은 공회원들이 모여서 예수님 죽일 모의와 그 증거를 찾으려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으로 사형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것을 공식화하기 위해서 산헤드린공회에 모여 확인하는 것이었으나 판결은 아니다. 다만 로마 총독에게 가기위한 절차이다. 이 단락에서 마태와 마가는 아주 간단히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겼다고 기술한다. 누가만 공회(산헤드린)의 심문을 기술한다. [묵상(默想)] 1. 산헤드린이란 기득권 세력에게 예수님은 어떤 존재였을까? 2. 권력 집단의 기독교 박해는 어떤 내면의 이유가 있을까? (27)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 성 경: 마27:11-14; 막15:2-5; 눅23:1-7; 요18:28-38 장소: 예루살렘 성전 북쪽의 안토니 군영(軍營) 때: 30 A.D.(고난주간 금요일 새벽) 등장인물: 예수님, 빌라도, 종교지도자들과 군중 중요 메시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거짓 죄에 대한 고발과 빌라도의 심문 [요의(要義)] 제사장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게 된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상황을 보면 헤롯 대왕이 죽은 후 나라를 3등분하여 3아들에게 나누어 통치하게 하였다. 그 중 유대지방을 다스린 헤롯 아켈라오(4 B.C.-6 A.D.)가 실정이 많아 왕권을 빼앗기고 로마직할지역이 되어 로마황제가 파견한 총독(빌라도)이 다스리고 있었다. 유대의 자치권은 인정되었지만 사형 선고 권만은 총독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게 되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였다. 네가 왕이냐? 에 대해 공관복음서의 내용은 예수님이 긍정하셨다고 기록한다. 요한복음에서는 부언(附言)이 있다. 왕이 맞는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있지 않다고 하셨다(요18:36). 빌라도 앞에서 분명하게 하신 것은 이 것 뿐이다. 빌라도와의 대화에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아주 분명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고발에 대해 변호하지 않으셨다. 이에 대해 빌라도는 놀랍게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암묵적으로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군중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요한복음 18장 28절에서 언급된 그들 즉 종교지도자들은 유월절을 먹으려고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기술한다. 여기 나오는 “유월절 잔치를 먹으려” 라고 한 것은 무교절 첫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중의 만찬 파스카(pa,sca)를 보편적으로 유월절 만찬이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날은 무교절 중 안식일 예비일이다. [묵상(默想)] 1. 총독 빌라도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2.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빌라도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28) 헤롯 안티파스(갈릴리 지역 유대 왕)앞에 서신 예수님 성 경: 눅23:8-12 장소: 예루살렘 안티파스 궁 때: 30 A.D.(고난주간 금요일 새벽) 등장인물: 예수님, 갈릴리지방 왕 안티파스, 종교지도자들과 군중 중요 메시지: 예수님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던 헤롯의 심문 [요의(要義)] 빌라도는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고 갈릴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셨다는 말을 듣고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냈다(눅23:7).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 지방의 왕이고 나사렛은 갈릴리 지방에 속해 있었다. 마침 헤롯 안티파스는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빌라도는 헤롯에게 보내 심문받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이 기사는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있다.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는 분봉 왕으로 세례 요한을 죽인 사람이다(막6:14-29; 마14:1-12; 눅9:7-9). 그러나 그는 예수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혹시 세례 요한의 환생이 아닌가?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에게 보내졌을 때 기뻐하고 무슨 이적이나 특이한 것을 보려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안하시니 재미가 없었겠지, 그래서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다시 헤롯에게로 보낸다. 그러나 눅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정치적으로 갈등이 있었는가 보다.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기술 하는 것을 보면 암묵적으로 뜻이 통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묵상(默想)] 1.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왜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냈을까?
(29) 빌라도 앞에 다시 서신 예수님 성 경: 마27:15-26; 막15:6-15; 눅23:13-25; 요18:39-19:16 장소: 예루살렘 안토니 군영(軍營) 때: 30 A.D.(고난주간 금요일 이른 아침) 등장인물: 예수님, 빌라도, 종교지도자들과 군중 중요 메시지: 죄 없는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빌라도 [요 의] 빌라도의 재판은 예루살렘 성전 북쪽의 안토니 군영(軍營)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총독이 예루살렘에 오면 주로 여기서 쉬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는 로마 병영이다. 고난주간 금요일 새벽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하였다.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상황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빌라도는 예수님을 판결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정의가 실현되어야할 법정인데 빌라도는 군중들 특히 대제사장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의 큰 목소리에 떨고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압력을 못 이겨서 그는 무죄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과 민란을 일으킨 중죄인 바나바를 석방하는 불의를 행하였다.
둘째,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임을 확신하고 석방하도록 노력을 했다고 기록한다. 확실히 무죄라는 생각을 했으면 행동을 했어야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나 이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일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빌라도가 악역(惡役)을 했다고 보아야한다.
셋째, 빌라도는 군중 앞에 물을 가져오게 하고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한다. 군중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재판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빌라도 자신이다. 손을 씻는다고 하여 면책(免責)이 되겠는가!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어떤 지위가 있고 어떤 일을 할 때가 있다. 결코 책임을 회피해서는 아니 된다. 결코 타자나 군중이 대신 책임지지 않는다. 그 직책을 맡은 사람의 책임이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사람은 빌라도이다. 지금은 예수님의 때이다. 십자가를 지실 때가 되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아주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넷째. 요한복음 19장 14절의 내용이 공관복음의 내용(마26:17-19; 막14:12-26; 눅22:7-23)과 상충되는 점이 있으나 이는 시간계산 기준 차이에서 생긴 것(아래 있는 요한복음 요의 참조)이고 “유월절의 준비일” 이란 유월절 중 안식일 준비일이라고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묵상(默想)] 1. 빌라도는 예수님이 의인임을 알면서도 왜 사형 판결을 내렸을까?
고난주간 성금요일 아침에 (30)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성 경: 마27:35-49; 막15:24-37; 눅23:33-45; 요19:18-30 장소: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 때: 30 A.D.(고난주간 금요일 낮) 등장인물: 예수님과 로마군인들,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를 위시한 여인들, 요한, 군중 중요 메시지: 십자가상에서 구원역사를 이루신 예수님 [요의(要義)]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상황을 살펴본다.
첫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은 예루살렘 성 요세프스 제2성벽 밖 골고다언덕이고 달리신 시간은 우리 태양력 시간으로 성 금요일 오전 9시에 달리셔서(막15:25)오후 3시까지(막15:34) 6시간이 된다. 하늘이 어두워진 시간은 12시 부터 오후 3시까지이다(마27:45; 막15:33).
둘째,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 써 붙였다(마27:37; 막15:26; 눅23:38). 이패의 기록은 히브리어(Hebrew), 로마어(Latin), 헬라어(Greek)으로 쓰였다.(요19:20)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고발한 한 죄목이지만 예수님은 진실로 유대인의 왕이시며 전 인류의 왕이시다. 왕이심을 만방에 알리는 팻말이라 해야겠다.
셋째, 십자가 밑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 살로매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있었다.(요19:25). 여기 요한도 있었다. 이들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애타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넷째,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좌우에 강도도 같이 달렸다. 누가는 그 중 한 사람은 예수님의 구원을 요청하여 그날 낙원에 이를 것을 허락받는다(눅23:40-43)고 기술한다. 이 기사는 누가만 기술한다. 다른 복음서들은 두 강도가 다 예수님을 정죄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다섯째, 예수님의 옷을 군인들이 나누고 속옷은 제비뽑아 나누었다(마27:35;요19:23; 시22:18). 이는 성경에 예언된 바이다.
여섯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군인들, 종교지도자들, 행인들, 군중들이 조롱하고 비방한다.(시22:7)“성전을 3일 만에 짓겠다는 자여”,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한다. 무지한 악의 무리들이다.(마27:39-44; 막15:29-32; 눅23:35-37). 그러나 그들은 나타난 현상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일곱째,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은 모두 일곱 말씀이다.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보통 우리가 말하는 말씀은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 하나이다."(눅23:34), 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 이다."(요19:26), 4) "내가 목마르다. (요19:28; 시69:21), 5)“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6) “다 이루었도다.“(요19:30), 7)“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막15:34) 등이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좋겠다.
가상칠언(架上七言)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 하나이다." (눅23:34) 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 이다." (요19:26) 4. "내가 목마르다. (요19:28; 시69:21) 5.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46) 6. “다 이루었도다.“ (요19:30) 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6; 막15:34)
[묵상(默想)] 1. 십자가 사건과 나의 관계를 생각하자! 2. 구레네 사람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후의 교회 지도자가 되었다(행13:1). 준비되지 않은 사람도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 (31)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성 경: 마27:45-56; 막15:33-41; 눅23:44-49; 요19:28-37 장소: 골고다 언덕 때: 30 A.D.(고난주간 금요일 15시) 등장인물: 예수님, 로마군인 들, 여인들과 군중 중요 메시지: 예수님 십자가에서 구원 사역을 다 이루심 [요의(要義)]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 후반 6시(12시)부터 9시(15시)까지 그 지역이 모두 어두워졌다. 예수님이 운명 전에 하신 말씀은 “엘리 엘리 나마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막15:34),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내가 목마르다.”(요19:28; 시69:21)“, ”다 이루었다“(요19:30) 라고하시고 영혼이 떠나셨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순간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마27:51; 막15:38; 23:45). 지성소에는 속죄소가 있고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곳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심은 누구나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 할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이고, 대제사장이 가지고 들어가던 짐승의 피 대신에 예수님이 흘리신 피 값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제사장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인류를 사랑하시어 희생의 제물로 돌아가신 일이며 이를 통해서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하여 화목하게 하신 일이다.
요한은 돌아가신 후에 로마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요한의 관심은 예수님의 죽음이 구약의 예언 성취라는 데 초점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일은 “내가 목마르다.”(요19:28; 시69:21)“,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출12:46; 민9:12; 시34:20) 한 성경과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슥12:10) 한 성경을 이루었음을 기술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미 성경에서 예언된 바이며 만세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내용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운명과 더불어 하늘이 어두워지고 지진이 남을 보고 백부장 등 군인과 거기 있던 자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들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고백하게 되었다.
십자가 사건 현장에는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 등 여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묵상(默想)] 1.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나의 구원과 관련지어 의미를 되새겨 보자! 2.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휘장이 갈라진 사건과 나와 하나님과의 화해를 생각해 보자. 고난주간 성금요일 해 지기 전에 (32) 무덤에 안장되신 예수님 성경: 마27:57-61; 막15:42-47; 눅23:50-56; 요19:38-42 장소: 묘 원(墓 園) 때: 30 A.D.(고난주간 금요일 오후) 등장인물: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이 무덤에 안치되셨다. [요의(要義)] 예수님의 장래를 지낸 날은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시고 돌아가신 성 금요일, 유월절 날 오후 3시부터 해지기 전일 것이다. 이곳은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에 있는 아리마대 요셉의 묘이다.
예수님 장례를 주도한 사람은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이고 도운 사람은 니고데모이다.(마27:57-60; 요19:39). 요셉은 빌라도에게 시체 인도를 요구하여 허락을 받아 인도 받았고, 장례도 지냈다. 자기를 위해 준비해 둔 무덤에 예수님을 장례 지냈다. 요셉은 산헤드린공회원이었고 예수님의 제자였다. 예수님을 정죄하는 일에 반대도한 사람(눅23:51)이고 예수님 생전에 나타내어 믿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의 제자였다(마27:57-60; 막15:43-46; 눅23:50-54; 요19:38).
예수님 장례절차를 보면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와서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 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다(요19:39, 40).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동산에 빈 무덤 즉 요셉이 준비한 새 무덤에 예수님 시신을 안치하였다(요19:41). 이 자리에는 지금도 성묘교회(聖廟敎會)가 세워져 있다.
예수님의 장례를 치룬 상황을 관찰한 여인들이 있다.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이다(눅23:55). 마가는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하여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았다”(막15:47)고 기술한다. 이들은 장례가 끝나는 것을 보고 돌아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은 금요일이고 이 날 해지기 전까지가 유월절이다. 이날은 안식일 예비일이다. 따라서 장례절차는 해지기 전에 모두 마쳐야 했다. 예수님은 유월절날 돌아가시고 장례절차도 이날 다 마쳤다.
[묵상(默想)] 1. 숨어서 예수님을 따르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용기 있는 행동을 생각하자! 2. 예수님이 무덤에 계신다는 뜻은 무엇일까? 고난주간 묵상 제7일 (2021년 4월 3일 토요일) 오늘의 찬송: 160장(통일 150장; 무덤에 머물러)
[오늘 묵상(默想) 가이드] 오늘 묵상자료는 천자창조 제7일 안식과 연관 지워서 예수님이 무덤에서 안식 하신 일을 묵상하면 좋겠다. 묵상항목은 33과 34 두 항목이 된다. (33) 예수님의 안식과 무덤을 지킨 군인들 성 경: 마27:62-66 장소: 묘 원(墓 園) 때: 30 A.D.(고난주간 금요일∼일요일) 등장인물: 무덤지기 로마군인 들과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 중요 메시지: 시체 도난을 우려한 종교지도자들이 요청하여 로마 군인이 무덤을 지킴 [요의(要義)] 이 단락의 기사는 마태만 기록하고 있다. 혹시 있을 시체 도난사건을 예방하기 위하여 무덤에 큰 돌로 입구를 막고 로마 경비병이 무덤을 지켰다. 종교지도자들은 빌라도에게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라고 요청한다. 이유는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라고 한다. 시체 도난 사건이 있으면 그 뒤의 문제에 대한 종교지도자들의 변은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더 큰 혼란이 올 것을 염려한다는 것이다. 빌라도는 군병으로 힘써 지키라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빌라도에게 요구하여 무덤을 3일간 철저히 지키게 했다. 입구 돌을 인봉(印封)하고 군인들이 무덤을 지켰다. [묵상(默想)] 1. 안식일에 무덤에 계셨던 예수님을 생각하자! 2. 예수님의 안식과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어떤 점에서 맥을 같이 하는 것일까?
(34) 천지 창조: 일곱째 날; 안식 성 경: 창2:1-3
장소: 전 우주 때: 태 초 등장인물: 하나님 중요 메시지: 창조섭리와 안식 [요의(要義)] 하나님이 육일 간의 창조 역사를 마치시고 이렛날 안식을 취하셨다. 이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쉬시게 하셨다. 이것이 안식일의 제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인간을 위하여 제정하신 것이며 형식적으로 지키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무덤에서 안식을 창조섭리에 맞추어 생각해 보자, 첫째, 창2:1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와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다 이루신 일이 어찌 맥이 통하지 않겠는가? 창조 전 혼돈(混沌)과 공허(空虛)와, 흑암(黑暗)의 세계가 질서(秩序)와 충만(充滿)과 빛(光)으로 변했으니 하나님의 창조섭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맥을 같이 한다. 예수님은 빛으로 오셔서 흑암세계의 죄를 물리치셨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완전히 변화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들이 볼 수 있게 하셨으며, 질서를 세우셔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개선, 사람과 사람의 관계 개선,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 개선을 이루셨다.
둘째,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맥을 같이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돌아 가실 때 “다 이루었다.” 고 하셨다. 새로운 영의 세계를 창조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최초의 천지 창조는 우주적인 것이지만 예수님의 창조는 영적 세계의 창조이시다.
셋째, 하나님이 엿새 만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레째 되는 날 안식하셨다. 예수님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무덤에서 안식은 천지창조의 섭리에서 이해되면 좋겠다. [묵상(默想)] 1. 종려주일부터 예수님 돌아가신 금요일까지는 6일간이다. 제7일에 안식하셨으니 창조일정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안식일 쉼은 창조 섭리와 맥을 같이 한다. 예수님의 무덤에서 안식하심을 깊이 생각하며 묵상하자 !!! 부활주일 묵상 (2021년 4월 4일 일요일) 오늘의 찬송: 164장(통일 154장; 예수 부활했으니) [오늘의 묵상(默想) 가이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타나시어 그 제자들에게 보이신 일을 보면 첫째, 부활하신 예수님이 묘원(墓園)에서 여인들에게 보이심(마28:9, 10; 막16:9-11; 요20:11-18), 둘째, 무덤에 달려간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을 확인 했고(눅24:12; 요20:3-10), 셋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보이심(막16:12, 13; 눅24:13-35), 넷째, 예수님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내심(막16:14; 눅24:36-43; 요20:19-23), 다섯째, 의심하는 도마에게 보이심(요20:24-31), 여섯째, 갈릴리 바다(디베랴 바다)에서 7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용기를 주셨고(요21:1-14), 일곱째, 갈릴리 지시하신 산에서 11제자들에게 지상명령(마28:16-20; 막16:15-18)을 주셨고, 여덟째,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눅24:44-49; 행1:1-5)을 주셨는데 이 내용은 때와 장소가 모호하다.
오늘 묵상자료로 예수님 부활의 스펙터클(spectacle)과 나타내신 일 즉 첫째, 여인들에게 보이신 일과 일곱째, 갈릴리 지시하신 산에서 11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신 일 등 세 사건만 묵상해도 좋을 것이다. (1) 살아나신 예수님: 부활의 스펙터클 성 경: 마28:1-8; 막16:1-8; 눅24:1-11; 요20:1, 2 장소: 묘 원(墓 園) 때: 30 A.D. 고난주간 안식일이 끝난 다음 일요일, 초실절(무교절 중 안식일 다음날) 등장인물: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이모 살로메 중요 메시지: 예수님의 승리; 부활 [요의(要義)] 안식일 다음날 예수님은 예언하신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날은 유대력으로 초실절이다. 초실절은 유월절 후 안식일 다음날이다. 예수님은 초실절에 부활하셨다.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모든 믿는 자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다.
이날 상황은 복음서 마다 조금씩 상황설명이 다르다. 무덤의 상황, 대화 내용, 참여자 등에 차이가 있다. 복음서 저자가 구전으로 들은 이야기와 상황이해 등이 모두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 부활하신 사건이 중요한 것이다.
먼저 무덤의 상황을 보면 마가, 누가와 요한은 여인들이 도착했을 때 무덤막이 돌이 벌써 열려있었다고 하고(막16: 4; 눅24: 2; 16: 4), 마태는 “큰 지진이 나며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더라.” 라고 기술한다. 여기서 천사는 1인으로 기술된다. 마태만 지진에 의해 무덤의 돌막이가 열렸다고 진술한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출19:18; 시68:8)으로 돌문이 열렸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마28:2). 이 상황을 마태는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마28: 2-4) 이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갔을 때 만난 천사는 마태는 천사로(마28:5), 마가는 흰 옷을 입은 천사 즉 한 청년으로 기술한다(막16:5), 누가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으로 기술한다. 요한은 두 천사가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다고 기록한다(요20:12).
무덤에 도착한 여인들은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때 천사는 말 한다. 마태는 마28:6에서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마가는 막16:6에 청년이 이르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누가는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라고 기록했다. 요한은 이에 대한 언급은 없고 바로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알리러 간 것으로 기술한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이른 말은 예언하신대로 부활하였음과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갈릴리에서 뵐 것이라“ (마28:7; 막16:7). 이는 공관복음에만 기록한다.
안식일 후 첫날 새벽에 무덤에 처음 간 것은 4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알패오의 아내), 예수의 이모 살로메, 요안나와 그 외 여인들이며 그들이 빈 무덤을 보았고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무덤이 비었다고 알렸다. 마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마가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이모 살로메”, 누가는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그 외 여인들”로 기록한다. 여인들은 예수님 시체에 향을 넣기 위해서 일찍이 갔었던 것으로 보인다. [묵상(默想)] 1. 초실절에 부활하신 의미를 생각해보자! 2.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까? 3.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부활 예언대로 살아나심을 깊이 생각해 보자!
(2) 막달라 마리아(여인들)에게 보이신 예수님 성 경: 마28:9, 10; 막16:9-11; 요20:11-18 장소: 묘 원(墓 園) 때: 30 A.D. 초실절 등장인물: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 중요 메시지: 부활 후 여인들(특히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신 예수님 [요의(要義)] 부활하신 첫 새벽의 무덤을 방문한 사람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4복음서에서 조금씩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이 단락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기사는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만 기록하고 있다. 복음서 저자들의 보는 입장, 기록하는 입장에 따라서 달라졌을 것으로 본다. 이날 새벽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등이 무덤을 찾았고 천사가 예수님 부활하신 소식을 이들에게 전하였다. 이 단락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고 되었으나 마태복음에서는 이 기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려는 여인들(마28:9)에게 부활하신 예수가 나타나신 것으로 되어있다. 정황으로 보면 막달라 마리아 뿐 아니라 이들 여인에게 보이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 소식을 듣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하였다. 예수님 생전에 4번에 걸쳐 예언해 주셨는데 제대로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장면을 종합해 보아야겠다. 누가복음에서는 언급이 없고 마가와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 만 예수님을 본 것으로 기술하고(막16:9; 요20:15, 16) 마태는 “여자들”(마28:9) 이라 하여 여러 명이 이었음을 암시하고 복음서 저자들의 강조된 부분이 있다고 보여 진다.
예수님이 전하라 하신 말씀은 마태는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마가는 특정 메시지가 없었고, 요한은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전하라 하셨다. 요한은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시는 장면을 회화적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하여 진술한다. 여기 기술된 예수님이 전하라는 말씀은 모두 하셨을 것이다. 복음서 저자가 부분적으로 들은 이야기를 기술하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되었을 것으로 본다.
[묵상(默想)] 1.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에게 전하라는 메시지의 뜻은 무엇일까? 2.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왜 반신반의 했을까? (3)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예수님 성 경: 마28:16-20; 막16:15-18 장소: 갈릴리 예수님이 지시하신 산 때: 30 A.D. 부활 후 세상에 계실 때 등장인물: 예수님과 제자들 중요 메시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소명을 주심 [요의(要義)] 이 항목의 내용은 마태와 마가 두 사람이 다룬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 예수님이 지시하신 산에 모였는가 보다. 그러나 몇 번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 중에 아직도 부활의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오늘 제자들에게 명령하시는 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 이며 예수님의 명령 내용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다.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의 내용은 마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가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즉 복음 전파와 복음을 지켜 행하게 하라는 내용으로 압축 할 수 있다.
마가는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됨“을 기술하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내 쫓고, 새 방언을 말하고, 뱀을 집어 올릴 수 있고,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병자를 고치는 등의 표적이 나타날 것”이라 하셨다(막16:17, 18). [묵상(默想)] 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 즉 “복음을 전하고 지키는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을까? 2. 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부활의 확신이 없었을까? 3. 우리는 예수님의 이 지상명령을 어떤 의미로 받아야하는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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