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요.”
출근인사를 하며 분주히 집을 나서는 남편과 새벽잠이 덜 깬 아이들을 배웅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커튼을 열어 덩그러니 혼자 남은 거실에 겨울 햇살을 함뿍 들여놓는다. 이사를 온 지 7년이나 되었는데 요즘 들어 집이 마음에 드는 까닭은 동향으로 자리한 덕에 만나는 이 찬란한 아침 햇살 때문이다.
아침에 떠오르는 그 발그레한 얼굴을 마주하는 풍경은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명품 중에 명품이다. 차츰차츰 창안으로 들어온 노란 햇살이 연둣빛 장미 허브에 내려앉아 빈 집을 향기로 가득 채운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화분을 잘 관리한다. 가끔 자신은 꽃 키우기에 전혀 재주가 없다고 푸념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화분에 물주는 게 문제이다. 화초는 너무 넘치거나 너무 무심하면 한두 달 새 뿌리가 썩거나 말라죽게 된다.
화초들은 그리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먼저 화분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햇빛을 좋아하는 아이에겐 양지바른 곳에 두고, 그늘을 좋아하는 아이에겐 빛이 안 들어오는 곳에 둔다. 그리고 그저 일주일에 물 한 번 듬뿍 주면 된다. 물론 물을 싫어하는 아이에겐 두 주일 또는 한 달에 한 번씩 준다. 그 모든 것이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먼저 아이들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 출근을 하는 날, 사무실 정리를 하면서 특별할 건 없지만 쓰던 걸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인사이동 때 받은 화분들도 나눠주면서 잘 기르라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잘 키워 줄까 하는 의문으로 걱정이 들었다. 이제 막 꽃대를 올리고 있는 난초에 꽃이 피는 걸 못 보게 되는 것도 못내 아쉬웠다. 그중에 하나는 집에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여린 허브 잎들을 쓰다듬으면 손끝에 진한 향기가 오래도록 남는 상큼한 장미허브이다.
석 달 전 아침, 출근하고 보니 책상 위에 화분이 하나 놓여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 궁금했지만 보낸 사람을 알 수가 없었다. 화분을 어쩌지 못해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물을 주며 잘 관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시인 한 분을 우연히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다음 역에서 내리는 시인은 문득 장미허브는 잘 있냐고 물어왔다.
“아, 시인님이 보낸 거였군요? 어머나, 어떡해요. 감사 인사도 못 드렸네요.”
무안한 마음으로 뒤늦은 인사를 했다. 메모가 없어서 궁금했었는데 그제야 알게 된 거다. 누가 보냈는지 메모가 없어서 인사를 못했다고 사과를 했다.
“그날 일찍 출근했던 직원에게 이름을 말했는데, 잊었는가 보네.”
시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소의 호탕한 웃음을 던지며 헤어졌었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화분이라서 집에 가져가서 키우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사이즈가 커서 집에 가져가는 것도 걱정이었고, 화분에 욕심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평소 화분에 관심을 보이던 직원에게 주었다. 마침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간 직원이라 그 집에 가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리 집엔 이미 길러야 할 식물들이 많았고, 장미허브는 번식력이 왕성해서 좁은 아파트라는 공간이 답답해서 안 어울릴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장미허브를 기른 적이 있었는데 청소를 하다가 화분이 넘어지는 바람에 여린 줄기들이 꺾어져 못쓰게 된 적이 있었다.
2,3주가 지난 어느 일요일, 사무실에 남은 파일과 서류를 정리하려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 그리 아끼던 장미허브는 잎들이 누렇게 뜨고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화분을 들어보니 마치 왜 이제 왔느냐며 나를 원망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벼웠다. 화분이 옆에서 말라가는 줄도 모르고 누구 하나 물 한 방울 주지 않았구나. 생명에 대한 마음이 이리도 모질다면 내가 집으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데려온 장미허브에게 물을 듬뿍 주고는 제일 햇살이 잘 드는 자리에 앉혀 주었다. 장미허브는 며칠 사이 안정을 되찾고 새잎들이 돋아나고 있다. 손끝으로 향기를 맡으며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번 더 잎을 쓰다듬는다.
누군가 나의 명퇴 소식을 아쉬워하며, 이제 실컷 늦잠이라도 자라고 했었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 명퇴를 했다고 늦잠을 잔다거나 게으름을 피운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평생 게으름을 피워 늦잠을 자본 일이 없었고, 몸이 좀 피곤하다거나 해서 병가를 써본 일이 없었다. 모든 습관이 몸에 배어서 아직은 게으름이 낯설기만 하다.
아침 가족 카톡 방에서는 서로를 응원하며, 잘 다녀오란 인사들이 오간다. 제일 먼저 집을 나서는 남편의 카톡으로 오늘 날씨와 교통 상황들이 전해지고, 그 아래로 잘 다녀오라는 나의 답글과 아이들의 귀여운 이모티콘이 날아든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카톡 방은 퇴근시간 무렵까지 잠잠해진다.
오후가 되면 그동안 소원했던 직원들이 내 소식을 뒤늦게 듣고는 어쩐 일이냐며 물어오곤 한다. 그러면 나는 무심하게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그랬다고 답을 한다. 때론 변명처럼 장황하게 때론 무심하게 툭 이모티콘 하나로 답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런 내게 누군가는 대단한 용기라며 부러워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래도 아직 한창인데 안타까워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제 곧 답답하고 지루해질 거라며 걱정을 해주기도 한다.
명퇴를 결정하게 된 배경의 하나로 좋은 글을 쓰는데 매진하겠다는 마음이 가장 절실한 이유였다. 좋은 글을 쓰려면 더욱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의미 있는 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수필,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들은 어느 한순간에 써지지 않는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직 공식적으로 다가온 퇴직일은 한 달여 남았지만 마음속으로 참 많은 계획들이 세워졌다. 방안에 앉아있자니 여간 갑갑한 게 아니었다. 도서관에도 가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기도 하면서 바삐 몸을 움직였다. 그러한 일들이 너무 지나쳤는지, 두어 주일 지나자 몸에서 신호가 왔다.
졸업여행 삼아 친한 벗들과 함께 장가계를 다녀온 직후였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발등이 변신을 해 있었다. 아닌 밤중에 솟아나 붉게 부풀은 혹 하나가 나를 그악스럽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람’ 상황 판단을 할 새도 없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지속됐다. 웬만한 통증에도 약을 먹어본 일이 없었던 나는 이번엔 참을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약통을 뒤져 진통제를 한 알 먹었다. 그러나 진통제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택시를 타고 정형외과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결절종이라고 말했다. 관절액이 밖으로 나와서 주머니를 만드는 것인데 초기이니 수술은 필요 없고, 주삿바늘로 뽑아내면 된다고 했다. 별도리 없이 의사가 시키는 대로 침대에 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 간호사가 마취를 하고 의사가 발등의 혹에다 주삿바늘을 찔렀다. 그런데 말할 수 없는 통증이 나를 덮쳤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막내를 출산하는 기분이었다. 부끄러움도 잊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십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의사는 예상보다 오래도록 생긴 관절액이라서 짜내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붕대를 감고 절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며칠 치료하고 나니 증세가 호전되어 바깥출입이 가능해졌다.
가족들이 출근한 어느 날, 쓰레기를 버리고 현관을 들어서는데 우편함에 책 한 권이 꽂혀 있었다. 어느 시인께서 시집을 발간하고 보내주신 거였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꺼내들었다.
몇 장을 넘겼을까.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났다. ‘아이고!’ 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다리를 주물렀다. 예전에도 새벽에 쥐가 나서 잠을 깨곤 했는데 낮에 쥐가 나는 건 처음이었다. 민간요법으로 알려진 발가락을 위로 잡아당기며 주물렀다. 그런데 통증이 완화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졌다. 이어서 뼈가 뒤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근육들이 팽창하는지 마구 부풀어 올랐다. 혼비백산한 채 뒤틀리는 다리를 주무르며 욕실로 기어갔다. 뜨거운 물을 틀어 샤워기로 다리에 뿌렸다. 한동안 고통은 지속되었고 온몸을 덮치는 통증은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아, 나한테 왜 그래.’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한참 동안 뜨거운 물로 마사지를 했더니 다행히도 조금씩 통증이 가라앉았다.
다음 날 병원에 가려다가 우선 약국에 들러 약사에게 왜 다리에 쥐가 자주 나느냐고 물었다. 약사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혈관은 동맥을 따라 우리 몸 곳곳으로 흐르고, 다시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되돌아온다. 혈액이 돌아오는데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면 쥐나 가고 통증이 나타난다. 나이를 먹으면 더 심해질 수 있으니 평소 30분 이상 걷거나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약사가 추천해준 약을 사고 돌아오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지만 그동안 게으름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살아왔다. 고층건물이 아니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올랐고, 시간 나는 대로 걷는 걸 즐겼는데 운동 부족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몸이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 백 년을 산들, 좋은 글을 쓴들, 내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무얼 하나. 화분 하나 관리하는 것도 넘치거나 모자라면 병이 들게 마련이다. 멀리 가려면 먼 곳을 바라봐야 한다. 눈앞에 것만 바라보고 조급하게 마음을 먹으면 오래 못 간다. 운동화 끈을 느슨하게 묶고 천천히 가자.
첫댓글 과유불급이고 중용입니다.
뭐든지 무리하거나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적절한 게 좋지요~
성격이 적절한 거랑 안 친해서 늘 문제입니다. ㅎㅎㅎ
다리를 좀 쉬어야겠네요.
퇴직을 했는데도 한동안은 출근 시간 맞춰 저절로 깨지더군요. 늦잠 자는 것도 길을 들여야 해요 ^^
좀 더 지나면 적응이 되겠지만,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중간이 어려워요.
화분 관절 명퇴. 그러셨군요. 이제부터 가고싶으면 가고 먹고싶으면 먹고 보고싶으면 보고 자고싶으면 자고 쓰고싶으면 쓰시기를 빌어요. 운동도 하시고요.
그러려고 그랬는데, 막상 또 그게 어렵네요. ㅎ
전 명퇴 후 특별한 이유 없이 어깨와 허리와 무릎과 발바닥이 번갈아 가며 아픈 바람에 계속 치료를 받았습니다. 일 년 가까이 그렇게 아픈 다음 다 좋아지더군요.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생활 패턴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곧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는다.
그런건가요? 참 별일이다 싶었습니다. 감기도 어지간해선 걸리지 않고 잘 지냈는데...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람이나 화초나 똑같나봐요.
넘쳐도 모자라도 안 되니까요.
덕분에 장미허브를 잘 모셔왔어요.
햇빛을 좋아하는 아이는 양지바른 곳에,
그늘을 좋아하는 아이는 빛이 안 들어오는 곳에...
물 좋아하는 아이에겐 많이 주고,
물 싫어하는 아이에겐 덜 주고...
그 아이들 참 행복하겠습니다.
그동안 그런 변화가 있으셨군요.
좋은 글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죠?
다음에 또 뵙고
좋은 말씀 들려주시길 청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몸의 시간이기도합니다.
그동안 마음의 시간으로 열심히 사셨잖아요.
이민와서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언제부턴가 몸의 신호가 오기시작하더군요.
근무 시간을 오후로 바꾸면서 확 달라졌어요.
몸이 일어나는 시간이 느슨해졌습니다.
아침형인간에서 저녁형 인간으로 바뀜도.
제 생활에 새로운 세상을 선사했습니다.
바쁘고 부지런함에서 약간은 여유롭게.
몸의 습관이 바뀐다는 것, 글쓰는 세상도
변화가 일었습니다. 고정에서 변동으로요.
아무튼 새롭게 주어진 생활에 또다른 여행
세상이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