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터 람스
▲ 브라운 계산기 ET 33(왼쪽)과 이에 영감 받아 만들어진 아이폰 계산기 어플. /조선일보 DB
올해는 독일의 생활 가전 회사 브라운 창립 100주년입니다. 브라운은 면도기뿐 아니라 오디오·주방용품으로 큰 명성을 얻었어요. 제품의 기능을 바로 알 수 있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야말로 브라운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1955년 브라운에 입사해 1997년 은퇴할 때까지 40여년간 브라운의 디자인을 총괄한 전설적인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가 있습니다.
1932년생 람스는 대학에서 건축과 인테리어를 전공하고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 1955년 브라운에 입사합니다. 그의 운명을 바꾼 첫 제품은 한스 구겔로트와 함께 디자인한 오디오 '포노슈퍼 SK4'입니다. 당시 오디오는 비싼 물건이라 무거운 나무에 화려한 장식을 하는 게 보편적이었어요. 람스는 장식을 과감히 제거하고 오디오 뚜껑에 투명한 합성수지인 플렉시글라스를 사용했어요. 이를 두고 경쟁 회사는 '백설공주의 관'이라며 폄하했지만, 사람들은 혁신적인 디자인에 열광했지요. 이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영구 소장품이 됐고, 이후 40년간 지속된 브라운다운 디자인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이후 람스가 직접 디자인한 제품들은 수많은 사람이 수집할 정도로 값비싼 소장품이 됐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왜 이렇게 인정받는 걸까요?
람스의 지휘 아래 브라운에서 출시한 제품에는 '심플한 디자인'이라는 명확한 특징이 있어요. 람스는 제품은 예술품이 아니라 인간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하고 제품 기능에 맞춰 최대한 단순하게 디자인하려 노력했어요. 자연히 제품의 선과 형태는 기하학적 모습으로 정리됐죠. 이를 '미니멀리즘 디자인'이라고 불러요. 람스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아이폰으로 유명한 IT 회사 애플에도 큰 영향을 줬습니다. 미니멀리즘으로 유명한 애플의 디자인을 총괄한 조너선 아이브는 공개적으로 람스의 디자인을 존경한다고 밝히고 이에 영감받은 제품을 내놓았죠. 실제 아이폰 속 계산기와 1977년 브라운이 출시한 포켓 계산기 'ET 33'은 흡사하게 생겼어요.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자칫 차갑다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람스 디자인은 그렇지 않았어요. 우아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단순함과 여유로움이 공존합니다. 요란한 장식이 없어 볼수록 끌리는 매력을 갖고 있죠. 흰색과 회색을 주로 사용하고 디테일을 강조했기 때문이에요. 사용자 눈에 띄어야 하는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색을 써서 직관적으로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한 것도 람스 디자인의 특징이에요.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색을 마구잡이로 쓰던 다른 회사와는 확연히 달랐지요. 그의 일대기는 2018년 다큐멘터리 영화 '람스'로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람스의 존재감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전종현 디자인 건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