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인가? 바르게 살아가는 나의 행위 원리는 무엇일까? 나의 존재 가치는 어떤 것일까? 이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나의 욕구나 추구가 나의 인생 철학이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등산을 할 때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산을 올라야 하는가? 등산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등산의 가치와 목적은 무엇인가? 어떻게 산을 오르는 것이 가장 바르게 오르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찾고자 생각하는 나의 욕구와 추구가 나의 등산 철학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인생 철학에 무관심하고 등산 철학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인생을 잘못 산다고 하거나 등산을 잘못한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철학을 의식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간다. 다만 그렇다할지라도 그 사람들도 각각 그 시대의 철학의 영향 하에 행동을 규제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난 간혹 애완견이 주인 따라 등산하는 등산 풍경을 본다. 그 애완견은 혓바닥을 내밀고 헐떡이며 열심히 주인따라 정상을 오른 다음 하산하리라. 그리고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 깊은 잠에 잠기리라.
나도 등산 초기에 이 애완견처럼 등산을 했다. 휴일 온종일 등산 인파 속에 끼어서 앞 사람의 엉덩이만 보고 산꼭대기에 도달했고, 하산할 땐 등산로 바닥만 내려 보며 돌아왔다.
온 종일 산을 오르고 내려 왔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이러한 등산 행위라도 아예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조금은 낫다는 생각은 들었다.
2. 등산 동기
등산모를 쓰고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멘 화려한 등산복 차림이 꽤나 나를 유혹했다. 등산 행위가 신선해 보였다. 산 속에 다른 세계가 있어 보였다.
등산 행위는 나의 삶을 한 차원 높여 줄 것 같았다. 난 나이 58살인 1988년 5월 14일 난생 처음 관악산을 올랐다. 등산 17년째인 2005년 1월 1일 용하게도 등산 횟수 601번째로 북한산을 올랐다.
등산 처음 3년은 산에 미쳤다. 휴일은 내 날로 정하고 보다 높은 산으로 보다 빠르게 야생마처럼 뛰어 오르내렸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 다음 3년은 산에 대한 입맛이 생겼다. 산마다 개성과 특성이 있었다. 산의 개성에 나의 개성이 호기심으로 매료되어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소백산 등을 자주 찾아 올랐다. 그리고 서울 주변 명산을 찾아 일상 등산을 했다.
그 다음 3년은 산의 색채와 형상,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 소리가 들리고 산 냄새가 느껴졌다. 나의 느낌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산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다음 3년, 등산 10년째에 접어들면서 산이 보이고 숲과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 소리, 산 냄새에 발을 멈추었다. 산 식구들이 눈에 보였다. 산과 내가 하나 되어 산의 아름다움이 태어남을 깨닫기 시작했다. 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있어 백두산과 금강산은 내 등산 세계에서 가장 숭고한 감동을 주는 성산이었다.
그 다음 3년 등산 12년째 무렵부터 산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산의 마음을 읽으며 산 식구들과 산의 영혼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산은 육체과 영혼을 지닌 생명체이며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 나와 함께 하는 동반자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산에는 순수하고 소박하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인자한 질서가 있고, 그 이법(理法)은 사람이 살아가는 규범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산은 나와 공존해가는 존재이기에 산을 가족처럼 사랑하며 산이 병들면 나도 병든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사계절이 윤회하며 부활하는 산에서 삶과 죽음의 교훈을 배우기 시작했다. 산은 악을 멀리 하고 선을 가깝게 해주는 힘을 지닌 성지이다. 산을 오를 때는 성지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