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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자살을 해야 세상이 바뀔까? 유난히 가슴 아픈 사건이 금년에는 왜 이리 많은가? 2월 26일 송파구 석촌동 반지하방에서 생을 마감한 '세 모녀자살사건'은 우리에게 큰 반향과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빈곤층이 겪고 있는 참상을 더 이상 사회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서 정부는 복지3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와 맞춤형 복지를 통해 사각지대를 줄여 민생을 돌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지만 세 모녀의 비극적인 죽음이 우리사회에 던진 파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소위 ‘세모녀법(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지금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뇌리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고 뜨겁게 닳아 올랐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우리사회의 특성은 타인의 비참한 죽음에 그다지 슬프거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도 우리가 무관심과 방관하고 있는 사이 세 모녀와 비슷한 상황의 빈곤층이 삶을 포기하는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엊그제 10월31일, 60대 독거노인이 세 들어 살던 집이 팔려 더 이상 그 집에서 살 수 없게 되자 공과금(전기·수도요금)과 장례비가 담긴 봉투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봉투 겉에는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라는 글을 적어 놓았다. 어제(11월3일)는 인천에서 일가족 세 명이 연탄을 피워놓고 삶을 마감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경찰은 엄마와 딸이 먼저 목숨을 끊고 뒤늦게 부인과 딸을 발견한 아빠마저 바로 옆에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발표했다. 아직 12살 밖에 안 된 딸은 "그동안 아빠 말을 안 들어 죄송하다. 밥 잘 챙기고 건강 유의하시라. 나는 엄마하고 있는 게 더 좋다.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에 슬프지 않다"라는 유서를 남겼는데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슬픔에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생활수급자는 모두 135만 명이다. 최악의 빈곤층이면서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대략 40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법이 너무 허술하기 짝이 없다.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양의무자 제도다. 현행법은 본인의 소득이 없어도 부모와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중 한 사람이라도 소득이 최저생계비((2014년 기준 163만820원)의 130%를 넘으면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가장 문제는 실제 소득이 없어도 만18세 이상 64세 이하의 나이에 해당되면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한 사람당 약60만 원 정도 소득이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 본인과 가족이 모두 돈을 못 벌어 굶어 죽어도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송파 세모녀도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다. 세모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일부 언론은 세모녀가 기초수급신청을 했더라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신청을 안 했는지 안타깝다고 보도했으니 몰라도 정말 너무 모른다. 현행법 상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될 수 없는 조건으로 세 모녀의 근로능력을 따지면 180만원의 추정소득이 있기 때문이다. 또 현행법은 큰딸이 당뇨나 고혈압을 앓고 있지만 근로 무능력자로 인정해줄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한다. 세 모녀의 충격적인 죽음 이후 정부는 부랴부랴 빈곤층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3월 한 달 동안 일제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자체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2명이 무려 3만 명에 달하는 빈곤층의 실태를 파악 하려면 사회복지사 한명이 휴일 없이 하루에 500명의 빈곤계층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현 정권과 보수세력은 줄기차게 '복지 무임승차론' 논리를 펴면서 '복지=공짜'라는 인식을 널리 퍼트렸고 복지제도가 곧 나라를 거덜 낼 것처럼 인식을 심어 주었다. '복지는 공짜', '공짜는 나쁜 것'이라는 등식으로 보편적 복지라는 시대적 당위성마저 뒤 흔들었고 복지는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권리인 것을 ‘공짜심리’로 격하시켰다. 대한민국 현실은 법으로나 사회구조상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양산시킬 수 밖에 없는 최적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생각할 수록 무섭고 끔찍하기만 하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파지 줍는 노인이 부유층으로 분류될 날이 올 수도 있다. 국가의 재분배 정책만으로 복지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조세정책에서부터 노동정책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야만 한다. 세 모녀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과연 우리사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달라진 것도 없고 달라질 기미도 없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가족단위 자살이 있어야 변화가 올 것인가? 복지는 계층의 문제도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니다, 더 이상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결국 복지에 대한 인식 전환이 없는 한 사람들의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퍼온 글- 기차는 8시에 떠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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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올해는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되는 한 해인듯 싶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부자들이 알겠습니까? 권력을 가진자들이 알겠습니까?
그저 대책을 세우는 척하는 것으로 또 끝이 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