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금배엄마와 대롱 대롱 성경책
지금부터 47여년전이다 경기도 용인은 내 어머니 의 고향이다. 아무튼 우리 큰 외삼춘은 내 아버지가 그 당시 쓸모 있었다고 생각이 들으셨나 봐요 우리식구을 내 어머니의 친정쪽으로 온갖 감언 이설과 작전을 동원하셔서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를 오라고 엄마를 꼬셨댓나 나 어쨌대나 우리 어머니는 당신의 친정으로 같지요. 돈귀신에게 홀려서 지금 생각하면 큰 외삼춘은 내아버지의 재산을 많이노리신것 같아요 나중에알고 보니
친정 어머니는 엄청난 금액을 큰 외삼춘에게 다 드리고 개뿔 아 !글쎄 십원도 못받았다나 어쩨다나 빵당할 시추에이션 이지요 이런 전장 울 엄마 웃겨 허차 허차 여사님 이 여사님 ! 울아버지 몰래 간댕이가 오대양 육대주보다 더 큰 울엄마 아버지 허락도 없이 글써 자기혼자 단독인심 썼대나 어쨌대나 그래서 큰 외삼촌집안과 우리아버지 사이가 그저 그래요. 그금액은 그때 당시굉장히 큰 금액 이었대요. 우리 아버지 고향집에 커다란 과수원 팔은돈이랑 모은돈 이랑 어쩌구 저쩌구 해서 그당시 에 천안에서 수원 왔다 같다 하는 직행버스 5대 살돈이래요 지금돈으로 싯가 한15억 넘는 돈 가까이 되는 돈을내 어머니는 아버지 허락도 없이 큰외삼춘이 3일많 쓰고통장에 넣어 준다하니깐 엄마는 자기 혈육이 그러니 안줄수도없이 빌려주셨나봐요
울 아버지 허락도 없이 이 바보 엄마 요즘 아이들 말로 빵당 시추에이션 이죠 완전 서프라이즈 에요. 미쳐 미쳐 그것이 내 아버지와 엄마 외삼촌의 기나긴 갈등의 길이 시작이 되었어요. 참 외삼촌의 직업은 그당시 용인 경향신문 지국장 이래요 그러면서 직행버스 3대 가지고 운수사업과 목욕탕 여관 다방 그리고 택시도 3ㅡ4대 있었던 것 같아요 버스는 행선지가 노선이요 천안 수원 직행버스래요. 택시는 용인시내 에서 왔다 같다리 하는 것이 엇나봐요 부자라고 그러더라구요 뻥인지 진짜인지 진짜에요 그 시절그정도면 아싸라비아 콜롬비아라구요 (최고)래요 요즘아이들이 쓰는 말이래요. 나원참 재미있어서 나도 몇번 요즘아이들 글을 삽입했어요 이 문단에다 그냥 흉보지말고 읽으세요 어짜피 저는 아마추어 비리비리 빌비리 귀요미로 봐주세요.어려워요 문장의 장르를 이어간다는것은 특히 띄어쓰기 맞춤법 등이 젤 어려워요 모국어 인데도요 ,
앞전에 이글은 꼭 넣고싶어요. 그래서 두집안이 서로 으릉 으릉 하는것도 아니고 군대생활 군의관 이셨던 내 아버지 재산 거의이렇게 저렇게 다 갈가 잡수시고 오늘 줄께 며칠 있다 줄께 하고 이래 저래 세월을 보내시더니 홀라당 그냥 다.... 암튼 저의 친정 동네 이름은 용인 마평동 이에요 . 저희 친정 동네 이름이에요.금배네는 우리동네 전라도 광주에서 아이들 셋 데리고 부부가 이사를 오셨어요 나이가 중년조금 넘어선 부부 였어요 아이들 이름이 아들이 영배 황배 금배 다 실명이에요 금배네 엄마 아빠 고향은 전남 광주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분의 전라도 사투리는 정말 재미 있었어요. 경기도 표준말에 비교하면 두분 부 부 말씀하시는것이 정말 재미 있었어요. 그분들은 내 나이 이십대 후반 이었으니까요 두분 부 부 의 나이가 한 사십살 약간 넘으신거 같았어요. 아저씨 아줌마는 살아 보시겠다고 고향인 광주에서 삼남매를 데리고 우리동네로 오신거같아요. 우리동네 옆에는 넓은 공터가 있어요. 그 공터 옆엔 고물상이 있었는데 금배 아버지는 부지런 하셨어요. 금배위로
오빠가 둘이 있었어요. 금배는 그집의 귀한 하나뿐이 없는 딸이죠. 남자애들 나이는 큰애가 열두세살 둘째 아들이 한 열살 뭐 그정도이고 금배는 여덟아홉살 이었어요. 다섯 식구의 아버지인 금배 아버지는 리어카를 끌고 고물장사를 하셨어요. 정말 열심히 사셨어요. 그런데 어느날 고물 리어카를 끌은지 삼사년이 지나서 드디어 고물상 전주인에게 인수를 받아서 고물상 사장님이 되었어요. 축하드려야지요 오늘날 남들이 말하는 CEO 사장님이 되셨어요. 즉, 밑에 고물 걷어오시는 아
저씨들이 열명도 넘었다. 열 다섯명 정도 되었던거 같아요. 아무튼 고물상 아저씨들이 늘었다 줄었다 하더라구요. 고물 줏어오는 아저씨들이 그런데 그 아저씨들이 무식해서 고물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고물 리어카 끌고 다니는 아저씨들 중에는 많이 배운 엘리트들도 더러 60~70% 있더라구요. 오늘날엔 노숙자 분들이 나이에 관계없이 많으시지만 그때엔 노숙자 라는 단어도 없었을뿐 노숙자들이 없었어요. 드물었죠. 즉, 고물리어카라도 끌었어요. 정말 금배 아버지가 고물리어카를 끌고 다니실땐 부부싸움을 않하시고 금배 엄마하고 금술이 좋으셨어요. 오순도순 정말이에요. 금배 어머니는 고물상 옆에서 살으시면서 고물을 줏어오시는 아저씨들 밥을 해주셨어요. 일종의 밥 장사도 같이 해요. 싸게주지요. 밥을. 그 아저씨들도 밥은 먹고 살아야지요. 어찌 되었던 먹어야 살지요. 금배네는 어렵게 살땐 금배엄마 아빠 부 부
금술이 너무 좋았어요. 앞전에 제가 말했잖아요. 서로 이해하시고 돕고 물묻은 바가지에 참깨 달라붙은거 같이 정말 그렇게 금술이 좋았어요. 사랑하시던 분들이 고물상의 운영이 잘되어 돈좀 모아 살만하니 매일 부부싸움을 하시더라구요. 금배 아버지의 목소리는 목소리가 컸어요 부부싸움이 나면 아줌마도 만만치 않으셨어요. 굉장해요. 전라남도 사투리로 싸우는데 서로 욕을 막 하시지요. 집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면서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아무튼 동네가 시끄럽게 서로 헐뜯고 욕을 하고 부 부 지간에 싸우시 더라구요. 그래서 아가씨인 저는 시집가면 내 결혼 생활에서 남편하고 싸우지 말고 살아야지 하고 다짐을 했는데 저도 시집을 와서 결혼생활 하면서 남편하고 엄청이나 싸우게 되더라구요. 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어찌 되었던 금배네로 갈게요. 그러던 어느날. 금배 아버지 어머니가 부 부 싸움을 하시는데 금배 아버지가 금배 엄마에게 막 욕을 하고 헐뜯고 그래도 이상하게 금배 엄마가 금배 아버지에게 "그랬어요? 저랬어요? 제가 당신에게 뭐 잘못했나요? 여보 그만해서요 제가 잘못했어요" 하시는 것이었어요. 전 그 집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금배 어머니가 금배 아버지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었어요,아니 이게 무슨 말이요? 아니 이게 무슨일인가? 뭐 잘못 되었나? 하고 길거리에서 금배네집 쪽을 귀를 종긋 세우고 담으로 엿들었지요 그런데. 다시 금배 아버지 목소리가 커지면서 그릇깨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금배 어머니가 " 여보 들어가세요. 제가 잘못 했어요 당신 말씀이 맞아요" 하시는 것이었어요. 한 참 날뛰던 금배 아버지는 조용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금배 엄마가 금배 아버지가 던진 그릇을 정리하시면서 "주여! 하나님 모자라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러시는 것이었어요 저는 깜짝 놀라서 "아!~~~~~! 그랬었구나! 금배 어머니가 교회 나가시는 구나 신앙생활에 입문 하신거구나 그래서 그렇게 금배아버지에게 조선시대 여인처럼 순종하고 몰입을 하고 죽여주십쇼 하고 그러셨구나 그렇게
악하고 거친 남자 같았던 금배 어머니께셔서 이야~ 정말 하나님의 자녀는 틀리는 구나, 하고 난 집에 부지런히 발길을 집쪽 으로 향해서 친정엄마에게 " 엄마! 금배 엄마 교회 나가시나봐요" 그랬더니 엄마는 "금배엄마는 교회 나가신지 한달 다되가는데 아주 열심이다, 친정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는거였어요. 저는 너무 놀라 왔어요. 금배 어머니의 언어 생활 행동 다 너무 고전적으로 겸손해지신 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되어서 때문에 그런것이라는 것이 놀라왔어요. 옆집 아줌마
도 놀라 시더라구요. 참. 금배 어머니의 인상 착의와 신체조건을 잠시 말해드릴게요, 금배 어머니는 키가 165 정도이고 인상은 양쪽볼에 광대뼈가 약간 예쁘게 나오셨고 마르셨고 쌍거풀이 있으시고 머리는 파마를 하시고 늘씬 하셔요 사십대 약간 후반쯤이 구요 인정도 많으셔서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인기는좋으셨어요. 그 시절에도 밥 못먹고 굶는 이들이 있었어요. 그러면 불러다 반찬은 변변치 않지만 밥도 나누어 잡수시고 그러셨어요 그러니 우리 동네에서 금배 엄마는 인기가 많으셨죠. 동네 아주머니들이 오면서 가면서 동네사람 들 동네 아줌마들은 금배네 집이 뚝방 옆방에서 오가는 아주머니들이 쉬어가고 수다 떨다 가시고 그러다가 교회 나가시는 동네 아주머니께서 교회 나오시라고 전도를 하시었나 봐요. 그런데 금배 어머니는 사람이 180도로 달라지셨더라구요 교회를 나가시더니. 얼마나 마음이 괴롭고 외롭고 슬프고 분하고 허탈하
실까요 금배 아버지 때문에 종교 때문에 그런 마음을 참아야 하시는 금배 어머니 금배 어머니 장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금배 아버지의 횡포는 날로 심해지셨습니다. 그 시절 그때는 저는 몰랐었지요. 그런데 저도 시집을 와서 결혼생활을 해보니 금배 어미니 께서는 정말 훌륭하시고 잘하십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금배어머니 그런데 금배 아버지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더 했습니다. 금배 어머님이 얼마나 참으시느냐고 고통 스럽겠습니까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는 아픔이 었겠습니까 그런 세월이 이런 저런 몇달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새벽인가 누가 가곡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 더라구요 우렁차게 남자의 목소리인데 가곡 곡명이 선구자 부터 냉면 , 동태 인지 황태 인지서 부터, 젊은 베르트레 의 슬픔 등등, 우리나라의 주옥같은 가곡을 굵은 바리톤으로 아주 멋있게 뽑아 올려 붙여 부르더라구요 와~ 정말 귀로 듣기가 좋더라구요 "이게
무슨 일이냐? " 친정엄마도 나도 몇몇 동네 사람도 개울 뚝방위 를 쳐다보니 삼십대 후반인 남자가 멋지게 뚝방위 를 걸어가면서 가곡을 아주 맛깔나게 이 초가을에 문턱에 서 서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힘차게 굵은 바리톤으로 멋들어 지게 우렁찬 목소리로 내뿜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어느날 갑자기 새벽에 그 남자는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그 남자가 센세이션을 일으켰지요. 아무튼 사람들은 웅성 웅성 누구냐고 가수 왔냐고 동네 사람들은 그 아저씨에게 포커스를 맞추어서 그 아저씨의 이야기가 이슈화 되었어요 누구냐구요. 난리들이에요. 동네 아줌마들은 말씀은 즉 금배네 고물상에 고물 리어카 끄는 아
저씨래요. 유명한 성악가 였대요 그런데 사랑하던 애인이 죽어서 그 여인을 못잊어서 방황하다 금배네 고물상에 온지 한 열흘 되었대요. 금배네 고물상에는 각 도 에 사시는 아저씨들이 흘러왔다. 고물 리어카를 끌고 이리 저리 부평초 처럼 흐느적 흐느적 일분의 몇번 치는 지도 모르는 엿가위 소리를 내면서 리어카 를 끌면서 정처 없이 이리 저리 떠돌다 해가 뉘엿 뉘엿 넘어가면 금배네 고물상에 들어온다. 그러다가 실증이 나면. 언제든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우리집은 고물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산다. 그러니 금배네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다 안다. 나는 그날 그날이후로 그 남자의 노래소리 가 우리친정 집까지 심심치 않게 시도 때도 없이 들리었다. 가곡을 좋아하는 것 보다도 그 남자가 굵은 바리톤으로 노래를 부르면 괜히 가슴이 찡하고 그 남자의 노래가 기다려 지더라구요. 그 클래식 노래 속에는 그 남자의 슬픔이 서려 있는것 같았다. 그 남자는 금배네 집에 화근이 되었다. 금배 엄마는 그 남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면서 마음을 전하고 의지 할길 없으니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좀 만나서 매달리고 정신을 차려 본업인 당신의 세계로 돌아가라고 그런뜻에서 교회로
전도를 하시려고 했나봐요. 그런데 금배 아버지는 금배엄마와 그 남자를 의심을 하시기 시작했다. 금배엄마는 그 남자의 가지고 있는 예술성이 너무 아까워서 그러신것 같아요. 어느날 금배 엄마는 새벽기도를 그 남자와 같이 갔다 오셨대요. 그게 화근이 되셨어요. 금배 어머니 께서 새벽기도 같이 갔다오는 것을 금배 아버지에게 들켰어요. 그런데 몇시간 있다 보니까 금배네 길에서 교회 길 가는 쪽으로 성경책을 누가 한장 한장 찢어서 길위에 널어놓고 바람에 행여 날라갈까봐 그 찢어진
성경책위에 돌을 얹어 놓았더라구요. 참!. 그걸 쳐다보는 제 입장에선 어이가 없고 어떻게 저렇게 저 성경책을 한장 한장 찢어서 길거리에다 이어져 돌을 올려놓았을까?. 저것도 정성이여 할일 더럽게 없다. 어이도 없고 좀 뭐라고 할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웃기 더라구요. 세상에 태어나서 진짜 처음 보았어요. 금배네 집에서 교회 까지는요 대략 한 2키로 정도의 거리 였어요. 그날 싸움의 발단이 금배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일어 났어요 그랬다 금배 어머니는 그전 같이 금배 아버지에게 욕을 안하고 가만히 울고 계시더라구요. 하나님을 믿는 죄로다가 별에 별 욕을 다하고 때려도 종교의 힘이 이렇게 큰줄은 몰랐어요. 금배어머니께서 너무 불쌍 하시더라구요. 금배 아버지 말씀인즉,"이 죽일년아, 그 젊은 놈하고 몇번이나 같이 잤니? 이 화냥년아 이제는 교회를 가자고 꼬셔서 같이 자빠져 자고오니 이년아? 에이 더러운년아" 하시면서 살
림을 때려 부수고 금배 어머님의 머리채를 잡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시더라구요. 우리 친정엄마랑 저는 막 말리었어요. 그랬더니 금배아버지 왈 " 이 화낭년을 때려 죽여야 한다니까요! , 그러면서 우리친정 엄마보고 "아줌마도 이년 화냥질할때 도와주었어요?" 그러시더라구요. 우리 친정어머님은 “ 아저씨 정말 너무 하시네요. 그러면 죄받아요, 하시더라구요. 금배어머님 억울하시니까 더 서럽게 울고 계시더라구요 저는 속으로 정말 종교의 힘이 대단하구나 하며 금배 어머니의 속타고 애타고 억울한 마음이 얼른 이해가 가더라구요. 자식낳고 살고 사랑하는 남편이 안 알아주고 저렇게 의심을 하고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고물상의 아저씨들도 잔뜩 있는데 얼마나 창피하실까 저는 "금배 어머니 용기를 내세요 울지 마세요. 아저씨들도 다 알고계세요. 금배 아버지를 교회로 인도 하세요. , 그런말을 해 드렸더니 금배 어머니 께서는 더 서럽게 울으시더라구요. 서럽게 서럽게 오래 오래 울으시더라구요. 이튿날 아무일 없이 오후가 되었어요 금배네 앞을 지나가는데 금배네 처마끝 마루에, 금배네 고물상에, 금배네 화장실 앞에, 아! 하고 글쎄 긴 나이롱 끈에다 성경책 찢은것을 굴비 달아 메듯 대롱대롱 메달아 놓았더라구요 금배 아버지가요 참 기가 막히더라구요. 몇날 몇일 매달아 놓은 성경책은 우리동네에 화제였죠 성경책 매달아 놓은 끝에 돌을 메달아 놓았더라구요. 비 바람에 날라가지 말라구요. 어이가 없더라구요.
성경책 매달아 놓은 끝에 열세살네살 먹은 사내아이 주먹만한 돌을 메달아 놓았더라구요.왜냐구요? 비바람에 날라가지 말라구요 어이가 없더라구요. 이리저리 돌을 매달아 놓았는데도 휘청~ 휘청 대롱~대롱 하는 것이었어요 .성경책 매달아 놓은 것이요 끝에 돌을 달아 놓았는데도 처다보고 웃지도 못하고도 어이도 없고 웃기는 것인지 이런 젠장 어이가 없더라구요. 참 기가 막히 더라구요 몇날 몇일 매달아 놓은 성경책은 우리동네 화제 였지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은 너무 너무 웃어 눈물을 흫히면서 웃었고 아주머니 말씀인즉 그 노래잘하고 잘생긴 남자는 금배 아버지한테 쫓겨났데요. 바로 그 남자가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바리톤 클래식 성악가인데 잠깐 그 남자의 가정 이야기를 할게요. 미스테리 인데 좀 풀리더라구요 그 남자의 아버지는 즉 국립대학교의 총장인데 동기간이 다 엘리트 이고 그 남자는 미국에서 성악공부 까지 한 클래식 엘리트 재원인데 사랑하는 애인이 죽었데요 그래서 잠깐 방황하는 중에 금배네 집까지 흘러 들어와서 고물 엿장사를 하면서 금배 엄마의 전도로 교회에 잠깐 나갔다가 금배 아버지의 생 땡깡에 눌려 금배 엄마와 스캔들이 되었데요. 그후 그남자는 떠나고
몇달이 지나, 금배 어머니는 교회에서 가족 찬송대회를 한다고 어쩌구 저쩌구 하시더라구요. 어머나 ! 그런데 금배 어머니는 장로교회 집사님이 되셨고 어느새 금배 아버지를 전도를 하셔 가지고 가족 찬송대회에서 일등을 했대요! 그후 금배 아버지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셨어요 우습죠? 금배어머니의 참을성있는 내조와 종교의 힘 덕분이지요. 전 시집을 왔고 친정은 금배네 옆집에서 살다가 이사를 왔지요 다른곳으로 저는 가끔 금배 어머니 소식을 물었더니 금배어머니는 60이 조금 넘으셔서 우울증으로 병원에 들락 날락 입원을 하시고 퇴원을 하시고 하다가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셨데요...
그때 금배어머니 나이는 60이 조금 넘으셨대요 안되셨어요 금배아버지도 금배 어머니 돌아가시고 얼마 못살으시고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 가셨대요 아무래도 금배 엄마를 너무 사랑하시고 계셨었나봐요 평소에라도 서로 사랑이 소중한 것을 금배 아버지는 모르고 살아가셨나봐요 누구처럼,.. 삼가 두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마 좋은 곳에 계실거에요. 아멘. 할렐루야 세상의 모든 신이시여 이단 삼단 신이여 ~!1.
부 부 싸랑인지 사랑인지 때문에 당신과 나는 서로 만났지 이 세상 태어나서 이십여년 지나서 이성에 눈을 뜨니 당신이 나에게 백마를 탄 왕자로 보이고 높은 성의 공주로 보이고 사랑 해주고 내가 원하면 무엇이던지 해줄것 같던 그대 오 ~ 그대 ! 서로 좋아 살아보니 그게 아니네 ! 인생은 연극이 안인데 나 원참 첫 인상이 ㅇ.1초 라고 그 초라는 것이 눈 한번도 깜짝 !하고 지나가는 순간! 그대 샛별이되어 내 가슴 으로 들어와서 나의 아바타가 되어 내곁 에서 쌕쌕 숨 을 쉬고있네 살다보면 서로가 소중한줄 모르고 몇백년 살 것 처럼 이 바보 초난감 수행 우리 서로 잘하자 여보님 ?
후기 ; 사실 부부 가 어찌 좋은 일만 일년 내내 있겠어요. 우리친정 아버저가 하시는 말씀 시집가면 좋은날은 2달이고 그후 부 부 니깐 사는겨
나는 아버지에게 거의 교육을 다 받었어요 어린시절에 저 엄마 있어요 지금 나이가 82세에요 아직도 정정 하시고 제가 2~3일에 한번씩 전화 하면 "엄마 경노당 에서 고스톱 치면 쓰리고 훠고 막고 들어가 엄마, 제가 그래요 우리 엄마 침해 걸릴까 봐서요.
참: 중요한것 빠트릴뻔 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금배네 부모님 두분 이지만 제가 글쓰면서 그분들의 자제분 들은 실명으로 글에 넣었어요 사실 그분 들이 고인 되어서 못 보신다고 그런것은 아닙니다. 휼륭하신 금배 어머님이 다시 살아 오신것 같아요 당신이 사랑하는 막내딸 이름을 이글에서 실명으로 넣으니깐 단란한 금배네 식구가 타이머신 타고 다시 부활한것 같아요. 사실 금배네 삼 남매는 지금도 경기도 용인 근처에서 똘똘 뭉쳐 잘살고 있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글은 13년전에 써놓았던 글입니다 이제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