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겨울이라 나의 언어는 빈약합니다
겨울이 되면 이 거리는 바람으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서둘러 얼굴을 감싸 쥔 채 거리를 떠났고
떠나지 못한 지난 계절의 부스러기가
알 수 없는 소문과
더 낡아버린 보도블록 사이 죽은 비둘기와
벌어진 틈을 찾지 못해 죽지 못한 비둘기들이
바람 속에서 닳고 있습니다 나는
이 헛된 거리의 웅덩이에 쪼그려 앉아
늙어가는 바람의 형식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어요 단지
왔다가 가 버렸고 다시 오지 않는 신념들에 대해
허우적거리는 자음과 모음에 대해
아직 새벽 여섯시가 되지 않아 잠들지 못하는
단어들의 불평에 대해
바람에 귀를 기울이지만 들리는 것은
오로지 바람뿐이라 나의 언어는 빈약합니다
잘못 놓인 보도블록처럼
내가 뒤돌아봤을 때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었다고 두고 온 침묵이 생각났다고 부풀어 오른 어둠이 등을 떠밀었다고 단지 혼잣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발끝에 걸린 보도블록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아주 사소한 실수로 잘못 놓인 사각형은 자신의 모서리 하나를 허공에 놓고 있었다 연속성을 잃은 어제와 오늘처럼 예측할 수 없는 다음이어서 오히려 간절한 기도였다 어쩌면 나는 갑작스런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멀어지지만 않는다면 돌아갈 수 있으리라 갈래의 길 앞에서 오랫동안 말라가던 그날은 순간과 순간 사이에서 뿌리내린 그림자였다 덩굴이었다 밧줄이었다 무엇이든 낚아채는 다짐이었다 그때의 내가 차라리 잘못 놓인 보도블록처럼 현현한 울음이었다면 설명되어지는 이전과 이후가 있었을까 내가 뒤돌아봤을 때 솟아난 기척은 너무 은밀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 밤
노크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면 어둠이었다
예의를 갖춘 이별이었다
누구도 다치지 않을 다정한 인사였고
정성 들인 깨끗한 믿음이었다
변명과 핑계를 만들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고작
한 문장에 담길 시간이었다
등의 곡선을 따라 감싸 안던
팔의 억양을 기억한다
부드럽고 따뜻해서 고마웠던 영원이었다
멀어지는 줄도 몰랐던 구원이었다
착각인 줄도 모르던 함께였다
노크 소리를 들었다
미워하고 싶지 않은 마음
문을 열지 않아도 멀리서 다가오는 기억을 알 수 있었다
고요였다
편지를 태우며
편지를 태운다 느릿하게
종이를 타고 들어가는 붉은 선
금지된 냄새가 났다
언젠가 어떻게든 그렇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제 몸을 끊으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종이의 어떤 부분은 불길한 동그라미였다
슬픔과 절망이 새겨졌던 장막은 견고했다
그 정도 하면 되지 않았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에게 그러한 질문은 무례하다
검붉다가 검다가 진회색이 되어가는 낡은 편지에서 툭 떨어진 것은
자꾸 맺히던 눈물이었다
창밖으로 저녁이 왔다
서녘의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며 하나의 해가 지고 있었다
산과 하늘과 바람과 새가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타오름이 있었다
오래 젖었던 마음을 창가에 건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낡아지지 않을 편지의 첫 문장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새벽이 온다
즐겁고 유쾌한 기분으로
막 가로등이 켜졌다
젖은 땅이 잠깐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끝나지 않는 겨울을 피해
각자의 손을 숨기며 바쁘게 움츠러들었다
덩어리로 뭉쳐진 안개가 가로등 주변을 에워쌌다
애매한 불빛이 평화로웠다
살아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오랜 점멸을 끝낸 횡단보도 초록불이 견고한 빨강이 될 때까지
뒤집은 마음이 바깥이 될 때까지
단단해질 때까지
멀어졌다
멀어질수록 자주 잊었다가 불쑥 찾아오는 어떤 마음
얻을 수 없었던 표정을 얻기 위해 저질렀던 불가능한 태도
계획된 수군거림에 부응하는 저 차가운 공기
눌어붙는 입김
어둠은 불리한 조건을 모르고
아침은 어림없고
다음은 즐겁고 유쾌한 기분으로
알지 못했다
《시인뉴스 포엠》
김조민 시인
2013년 서정시학 신인상
2019년 미래서정 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