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는 어떤 문자 체계일까?

[위대한]

이두는 어떤 문자 체계일까?

한사군 시대에 우리 나라에 유입된 한자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자는 그 당시 말은 있되 고유한 문자가 없던 우리에게 문자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매체였다. 한자를 통해 비로소 역사를 기록했고 보다 손쉽게 문화를 전파하고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자를 빌려 문자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한자로 좀더 쉽게 우리말을 적을 수 있을까 하는 열망을 가졌다. 그 열망이 이루어 낸 독창적인 표기 체계의 전통이 삼국 시대를 거쳐 훈민정음이 반포된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오랫동안 우리 조상들의 문자생활의 한 부분을 엮어 왔다.

그런데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다면 어떤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두의 흔적을 보여주는 비문들에서 이두의 발생, 그리고 발전의 여정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南山新城作節¹⁾ 남산신성을 지을 때
如法以作後三年崩破者 만약 법으로 지은 뒤 3년에 붕파하면
罪敎事爲 죄 주실 일로 삼아
聞敎令誓事之 들으시게 하여 맹세시킬 일이니라

초기의 이두 표기로 남아 있는 것으로는 고구려의 광개토왕릉비, 평양성의 돌, 백제의 개로왕이 왜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칼에 새겨진 글, 그리고 위에 보이는 신라의 남산신성비가 있다. 한문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남산신성비가 우리 어순의 한문 문장으로 쓰여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비문에는 이뿐만 아니라 문장 성분들을 연결하는 토를 한자로 표기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여기에 쓰인 이(以)는 '-으로'를 나타내고, 죄교사(罪敎事)와 문교령(聞敎令)의 교(敎)는 '-게 하다'의 사역을 나타낸다.

이러한 이두토가 들어간 표기법은 이전의 임신서기석에서 본 서기체 표기보다는 발전된 단계이다. 임신서기석도 한자를 빌려 우리 어순의 문장을 표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우리말의 토를 표기하는 발전된 문법 의식은 보이지 않았다. 임신서기석의 표기법이 차자 표기의 맹아 상태라면 그 다음 단계는 바로 남산신성비문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우리말 토를 표기하려는 단계이다. 그 다음 단계는 어떻게 될까? 우리말의 다양한 토를 어떻게든지 표현하여 좀더 완벽한 문장 표기를 하려 하였고 접속사나 문장의 어미까지도 표기하는 수준까지 발달하였다.

亡妣官肖理夫人 年六十六 古人成之 東海欣支邊 散之²⁾
돌아가신 어머님 官肖理夫人은 66세에 고인이 이루어졌다(돌아가셨다).
東海 欣支(지명)의 바닷가에 (뼈를) 뿌렸다.

貞元二十年甲申 三月二十三日 當寺鍾成內之 古户山郡仁近大
內末紫草里 施賜乎古鍾金二百八十廷 當寺古鍾金二百二十廷
此以本爲內 十方旦越勤爲 成內在之 願旨是者 法界有情皆弗
道中 到內去 誓內 時寺聞賜主信寅人軍³⁾

앞의 비문에서 진하게 표시된 부분이 이두 표기를 하였다고 추정하는 부분이다. 초기의 이두 자료에는 말의 토씨나 어미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의미적 요소들만 우리말 순으로 배열한 데 비하여, 후대의 자료에는 말과 말을 이어주는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요소들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고 또한 가능한 개념어들도 한자의 뜻을 빌어 표기하고 있다. 이 두 자료를 비교해 보면 이두는 점차 우리말의 전면적인 표기를 할 수 있도록 한자를 차용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할 것이다. 그 방법이란 무엇일까? 때로는 한자의 음을 빌리고 때로는 한자의 뜻을 빌리는 정교한 방법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이두 표기법이 만들어져 운용법이 정제되기에 이르자, 이를 가장 반긴 사람은 서리나 아전처럼 주로 중류층의 행정직에 있는 관리들과 승려들이었다. 그들은 행정 문서, 노비 문서, 전답 문서 등과 같은 공문서나 탑비, 종명 기록을 위해 문자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던 계층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한문에 능통해서 이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이보다는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이두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점차 커졌다. 이두(更讀)를 이찰(吏札)이라 부른 것은 관리나 승려들이 주된 향유 계층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이 같은 이두 표기법이 최고로 발달한 형태는 향찰에 나타나 있다. 향찰은 전면적인 우리말 표기를 시도한 것으로서 향가라는 노래에 주로 쓰였다. 향찰을 만나면 우리는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화려한 전성기와 운명의 쇠락을 다음 장에서 보기로 한다.

각주

1. 1 경주 남산신성비 비문의 내용 (591) 초기 이두 표기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두토 이(以)와 교(敎)의 쓰임새를 알 수 있다.
2. 2 초기 이두 경주시 내동면 신계리 감산사에서 발견된 미륵보살의 광배(光背)에 새겨진 조성비, 신라 성덕왕 18년 중아손(重阿飡) 김지성(金志誠)이 돌아가신 부모를 위하여 이 보살상을 조성하게 된 경위와 발원문을 적고 있다. 종결형 어미에 '지(之)'를 사용하고 있다.
3. 3 후기 이두 강원도 영양군 서면 미천리 선림종지에서 발견된 종의 안쪽에 새겨진 비문으로 신라 애장왕 5년(804)에 쓰여진 것. 토를 다양하게 표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以 : -로, 中 : 긔, 是者 : -인, 內之 : -다, 內在之 : -겨다, 賜平 : 온, 爲 : , 內去 : -거, 賜 : ) 개념어를 훈독 표기한 것(成 : 일-, 施 : 베풀-, 金 : 쇠, 此 : 이-, 本 : 밑, 爲 : 삼-, 到 : 나를-, 誓 : 벼기-, 時 : 때, 聞 : 듣-)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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