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겨 먹은 자체도 그러하거니와 타고나 자란 환경(부모님이 모두 전쟁통의 월남 피난민이셨다.)을 봐서라도 나는 별 특징 없는 범생 부류의 작은 아이였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언감생심, 농땡이를 치며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었고 '노는' 아이들과 어울려 날탕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짓은 더더욱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서울 북쪽 변방의 기지촌에서 우물 안 개구리의 어린 시절을 보내며 고등학교까지 그럭저럭 모범생으로 지내다 덜컥 재수를 하게 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원인이라면 원인이었고 문제라면 문제였다. 고3 중요한 1년을 '롯데'에 빠져 집중력을 잃고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한 결과였다.
재수 초기 몇 개월 동안 입시책을 되잡지 못하고 방 안에서 뒹굴며 지내는 동안 주워 얻어 지니고 있던 낡아빠진 '전축'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싸구려 LP '빽판' 몇 장을 바늘이 닳아 없어져라 듣고 또 들었다. 게 중에서도 단연 애지중지했던 앨범은 팝 역사 상 가장 위대한 포크 듀오로 꼽히는 사이먼&가펑클(Simon&Garfunkel)의 것. 누가 사이먼이고 누가 가펑클인지 구분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들의 기가 막힌 음악 세계를 엿보았다. 어린 소년의 감성에는 가펑클의 미성이 더 귀에 끌렸던지라 그가 사이먼인 줄 알았을 정도로 팝에 대한 지식도 얄팍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이후 반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들어도 어느 곡 하나 주옥같지 아니하겠느냐만, 당시 그중에서도 유독 귀에 꽂혔던 노래는 <April come she will>이었다. 마침 계절(봄)이 계절이었던 만큼, 나 말고 베르테르가 달리 또 누가 있었겠냐 싶었던 때였던 만큼. 곡이 발표된 해는 1966년이고 수록된 앨범은 2집 <Sound of Silence>다. 폴 사이먼이 가펑클과 잠시 헤어져 영국에 머물며 음악 작업을 하던 시기(1964~1965년), 영국인 여자 친구 캐시 채티(Cathy Chitty)가 불러주던 영국 전래 자장가(lullaby)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세상에 나온 지는 60년이 된 셈이다.
April come she will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
폴 사이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랑의 감정을 계절(4월 봄에서 9월 가을까지)의 변화에 비유하며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는데, 심쿵하기로는 어디 소년에게만 국한된 얘기겠는가. 육십을 훌쩍 넘어 중반도 넘어가는 장년의 이 나이에 다시 들어도 사랑의 아스라함을 느낄 수 있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https://youtu.be/ITXBjDTXS90?si=OPU6WVFFEw_Iklgv
<April come she will>, 노래 아트 가펑클/작사, 작곡 폴 사이먼. 감성 뿜뿜인 노래는 역시 가펑클의 몫이다.
북반구의 4월은 그러한 때이다. 몸과 마음이 에이는 긴긴 겨울을 지나 볕 따뜻한 봄이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만물이 튀어 올라(spring) 물오른 생명력이 세상을 채우는 그러한 시기. 따라서 슬픔이나 좌절, 상념보다는 기쁨과 희망, 희열이 뿜뿜대는 일이 더 많기 마련이다. 유튜브나 멜론(Melon), 스포티파이 등 음악 플랫폼에서 4월(봄)을 제목으로 하는 노래를 찾으면 수천 곡의 동서양 작품이 끝도 없이 올라오는데 후자를 노래하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예컨대, 국내의 경우 원래의 곡명이 '벚꽃 연금'으로 오인될 정도로 해마다 이 맘 때면 자기가 만든 노래 <벚꽃 엔딩>의 멜로디로 전국 8도, 아니 9도를 채우고도 남는 장범준이 있다. 그에게는 봄을 주제나 소재로 한 노래가 유독 많은데 봄의 전령사라 해도 무방하겠다. 사람 자체의 이미지도 봄같이 따뜻하다.
반면, 계절적 요인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특히 우리에겐 4월 전후로 역사적 사건이나 비극적 참사도 있다. 제주 4.3 사태, 4.19 혁명이 그렇고 세월호 참사(2014. 4.16)와 천안함 비극(2010. 3.26), 강원도 고성 산불 대화재(2019.4.4~4.6), 그리고 다행히 진화는 하였다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올해의 영남 산간 지방 대화재. 며칠 후엔 지난 4개월 동안 5천만 공동체를 뒤흔들어 놓았던 정치적 사고에 대한 평결도 기다리고 있다. 우리로서는 4월을 마냥 희망과 기쁨의 계절로만 노래할 수 없는 이유다.
국내 아트팝(ArtPop)의 효시인 김효근(이화여대 교수, 경영학자)은 타계한 자신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노래 하나를 만들었다. 후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내 영혼 바람되어>가 바로 그것.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번안하여 소개한 <천 개의 바람 되어(A thousand Winds)>와 같은 듯 다른 듯한 노래인데 오리진 원곡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개인적으로는 김효근의 것을 더 좋아하고, 노래도 박은태의 그것을 더 찾아 듣는다. 김효근 교수가 갖고 있는 개인적 스토리와 박은태의 감성을 더 좋아해서다.(다른 소셜미디어 판에서도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김효근은 게다가 나와는 동갑내기다.
https://youtu.be/ZKoEUWaxCw0?si=m8aSON7nit_nMfHJ
<내 영혼 바람되어>, 박은태 노래, 김효근 번역/작곡.
4월 첫날이 흐른다.
바깥바람은 세고 다소 차가웠지만 햇살은 따뜻했다. 운 좋게 구한 남동향의 볕 좋은 집은 오늘 같이 맑은 날이면 오전은 물론 오후에도 내내 밝은 기운을 유지한다. 빨래를 걸어 놓으면 바삭바삭하게 빨리도 잘 마른다. 고맙고 다행스럽지 아니한가.
우리 부부는 이번 4월에 결혼 34주년을 맞는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그 좋은 꽃피는 4월에, 연로하신 부모님이 병환 중인 상태에서 우여곡절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후 태평양 건너 이역만리(이억만 리가 아니다.) 대여섯 개 타국에서 오랫동안 '외화벌이'로 견마지로(?)를 다하는 동안 부부는 만나고 헤어짐을 다반사로 여겼다. 그 와중에 두 딸을 이국에서 얻었다. 첫 째는 이태 전 결혼, 짝지와 함께 미국 북서쪽 끝자락 도시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둘째는 이 달 중순, 즉 다음 주말에 역시 미국 애리조나에서 속세의 혼례를 치른다. 천주쟁이 식 혼배는 지난 연말에 이미 치른 바 있다. 대단할 것없는 가족이 4월에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는 셈이다.
매년 그 날짜가 바뀌는 부정기 축일인 그리스도교의 부활절(Easter, The day of Resurrection)은 춘분(3.21일)이 지나 첫 번째 보름달이 뜬 날 이후 첫 일요일이다. 그레고리력 중심(로마가톨릭, 개신교)의 날짜 계산법이 복잡하여 일반인들이 직접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특정 연도에는 3월에 갖게 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4월에 부활절을 맞는다. 올해 2025년의 경우는 4.20(일)이다. 공교롭게도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여러모로 가족사에 기록할 일이 많다. 잦은 가족(사) 운운이 과도한 가족주의의 발로 아니냐고? 그저 평범한 일상을 하늘에 감사드리고자 할 뿐이다.
억지로 의미를 욱여넣자면 우리 부부는 이날, 애리조나 모뉴먼트 벨리 흙먼지 자욱한 길 위에서 멋지게 부활을 노래할 것이다. 마눌은 이날만큼은 오. 애순이 결코 부럽지 않을 것인즉, 4월은 지난하지만 그만큼 평안할지니.
https://youtu.be/mbNI0CTebBI?si=q2I6UjOye0cDaJCf
<역마차(Stagecoach)>, 모뉴먼트 벨리를 주요 배경으로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을 정당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주연 존 웨인/감독 존 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