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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제9편 - 중궁사에서 만난 반가사유상
법륭사(호류지)의 보물을 전시하는 대보장전에서 가장 먼저 만나 작품은 우리 교과서에서 보던
금당의 불화입니다. 이 불화를 고구려 담징이 그린 것으로 우리는 배웠고, 그것을 한반도에서 일본에
문명을 전해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배웠는데, 사실은 담징 작품이 아닐 가능성이 높답니다.
고구려의 승려이자 화가인 담징(579-631)이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서 채색과 종이, 먹,
연자방아 등의 제작방법을 전한 것으로 알려지는데요.
법륭사는 큰 화재로 전소되어 710년에 재건되었기에 당시에 설사 그렸다고 해도 후대에 다시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전문가도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완벽하게 다시 그린 모사본이랍니다.
진품은 훼손 우려로 수장고에... ^^;;
법륭사(호류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국보와 보물에 해다아는 중요문화재가 무려 2,300점을
보유한 사찰입니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작품들을 전시한 곳이 대보장전입니다.
그야말로 아스카 불교문화의 꽃이라고 할만한 법륭사의 수천개 넘는 보물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별도의 방을 마련해서 모셔진 분이 바로 이 백제관음입니다.
이정도면 백제관음이 갖는 일본 문화사의 위치가 조금은 가늠이 되실까요?
측면관이 특히 아름답다고 하셔서 촬영불가임을 무릅쓰고, 일본인들 없을 때 찰칵 했습니다. ^^
제가 2010년에 구매한 원문으로 된 '일본 나라 걷기여행'책을 보면 대보장전을 아예
'백제관음당'으로 표기하고 있더라고요.
※사실 발도행 간사이 걷기여행의 시작은 제가 걷기여행출판사를 2009년부터 준비하고
운영하면서 참고하려고 구매한 일본 교토 나라의 다양한 걷기여행 서적들이 근간이 되었답니다.
그러다가 유홍준 선생님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을 내면서 구체화 되었지요.
그 책에 재미난 걷기코스들이 꽤 많아요. 2차 여행 때부터는 그 코스들도 가보려구요. ^^
209cm이지만 날렵함 때문인지 정말 더 커보입니다.
일본의 문사 치고 백제관음에 헌사를 바치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얼마전 어느 학자는 이 백제관음상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약탈해 간 문화재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요.
그 이유는 이 관음상이 본래 법륭사에 봉안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찰에는 각각의 기록이 있어
어떤 불상과 자재들을 보유하고 있는지 기록을 하는데, 갑자기 1698년에 법륭사 불상을 기록한 문서에
이 백제관음상이 '허공장보살 - 백제국으로부터 내도하다'라고 적혀 있다는 겁니다.
이 기록 때문에 허공장보살이라고 하였으나, 이 보살상의 보관이 1911년 법당 토벽에서 발견되었는데,
보관에 화불이 있어 관음보살로 정정하여 '백제관음'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관음보살의 도상을 규정하는 형식중에 가장 확실한 것이 머리에 쓰는 보관 중앙의 화불(작은 부처님)이랍니다.
참으로 일본의 불교미술을 대표할만한 명작입니다.
대보장전을 나와 몽전이 있는 동원가람으로 가는 길의 휴게소입니다.
작은 도기잔에 오차를 무료로 마실 수 있어서 쉬어가기 좋습니다.
이 큰 절에 이런 휴게소는 정말 오아시스 같았어요.
법륭사의 아름다움은 이런 황토흙벽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탑두사원(큰 절에 붙어서 소속된 작은 사찰)들이 법륭사와 함께 만들어내는 질감이 참 좋습니다.
담 위로 삐쭉 솟은 소나무들이 안쪽 정원을 궁금하게 하네요.
담에는 입장이 가능한 탑두사원 정원들도 한걸음 더 들어가서 보러다녀야겠어요.
동원가람 가는 길. 왼쪽에 회원님들이 무슨 사진 찍고 계시는 것 보이시지요? ^^
바로 요장면인데요. 참 그림 같아요. 컬러 배치도 좋구요. 다른 분들 작품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
동쪽에 자리한 동원가람 입구입니다.
사찰 안에서도 곳곳에서 단체입장권을 내고 함께 모여들어가야 해서 늦은 분들이 열심히 뛰고 계십니다.
일정이 좀더 여유롭지 못해 죄송... ^^;;
(질서라면 로보트 같이 지키는 일본 단체관람객들에게는 이 시스템이 맞아도 우리한테는 좀 힘들어요.
그래도 한국사람들이 워낙 많이 가니 조금의 유도리는 있더라고요. ^^;;)
법륭사(호류지) 동원가람의 중심건물인 몽전입니다.
쇼토쿠태자가 사망한 후 이카루가궁 자리에 태자의 초상과 사리를 모신 별원으로 건립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몽전 감실에는 쇼토쿠 태자를 모델로 만들었다는 구세관음상이 보안되어 있는데,
비불이라 볼 수는 없다고 합니다. 매우 아름답다고 하는데, 저도 책의 사진으로만 보았네요.
동원가람의 회랑.
그야말로 촘촘한 직선의 일본미가 느껴지네요.
그런데 한국적 아름다움까지 배어 있는 듯 느껴져요.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의 동질감 같은...
동원가람을 나와서 다시 또 별도의 고액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중궁사로 향합니다.
중궁사(주구지)는 쇼토쿠 태자가 세운 7대 사찰 중에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라고 합니다.
중궁사에는 고구려인과 가아계 도래인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쇼토쿠 태자의 부인이 수를 놓았다는
천과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 누가 봐도 우리나라의 반가사유상과 똑같이 닮은 목조반가사유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사진을 못찍에 하여 밖에 나와 도판의 사진으로 남깁니다. 우리나라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거의 형제 같죠?
중궁사 본당에서 목조반가사유상을 친견하고 나옵니다.
꽤 많은 일본인들이 법당에 앉아서 설명을 듣고 있어서 오래 있진 못했네요.
이제 다시 버스주차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걷는 내내 그 느낌이 참 좋았던 호류지입니다.
왠지 법륭사 보다는 호류지라는 명칭이 더 와닿는 것 같아요.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운 탓이려나?
통역 봉사를 해주신 도라님께서 앞장 서십니다.
걷는 내내 정갈한 황토흙벽의 질감을 느껴봅니다.
언제 다시 볼까나, 호류지 오중탑.
무얼 두고 오셨나요? 혹시 마음?
호류지 남대문 앞. 주차장이 가깝습니다.
호류지 입구 진입로, 양쪽의 곰솔들이 반겨주는 멋진 길입니다.
호류지의 입구 남대문에 다시 한번 눈길주고 다음 만남을 기약합니다.
산큐라고 하는 스시 우동 체인점의 법륭사점에서 점심식사를 하러 왔습니다. ^^
스시정식을 주문했었는데요. 튀김 몇조각과 초밥 여섯 점이 우선 나오고요.
시원한 국물의 우동으로 마무리합니다.
일본에 가면 이런 스타일의 체인점들이 가격 대비 퀄리티가 좋아서 가끔 이용합니다.
나라의 중심, 나라시로 이동중입니다. 차 밖으로 사슴들이 보이는 걸 보니 나라시에 들어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번째 만난 세계유산 - 흥복사(고후쿠지)
나라시에서는 후지와라 가문의 보리사인 흥복사(고후쿠지)부터 나라공원(사슴공원),
동대사(도다이지)를 모두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답니다.
아스카에서 나라의 헤이조코로 천도 한 것은 710년 일로 교토 정도 크기(동서 4.3km 남북 4.7km)로
도시가 구획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곳은 그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경복궁 넓이의 3배에 달하는
궁궐터인 헤오조궁의 궁터에 현대적으로 복원해 놓은 궁궐들과 일본 특유의 왕릉인 전방후원이
있는 정도입니다. 다음 답사 때 가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흥복사와 나라공원, 동대사는 이 헤이조코에서 동쪽으로 2km 떨어진
산자락에 지어진 사찰들로 19세기 중반의 메이지유신으로 인한 폐불훼석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찰 땅이 몰수되거나 불상이 불에 타는 등 내홍을 겪었지만 지금 이정도라도 남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메이지유신 때 일본에서 두번째로 높은 저 흥복사 오층탑이 25엔에 팔려서 저곳에
사용된 쇠붙이를 얻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려 했다고 합니다.
그때 지역 주민들이 그 불이 어디로 튈지 아느냐고 펄펄 뛰는 바람에 간신히 본존되었고,
20세기 초에 대대적인 수리를 하여 지금에 이른다고 하네요.
흥복사(고후쿠지)는 나라시대의 많은 사찰 중에서도 손꼽는 '남도7사'에 하납니다.
남도7사 그외에도 동대사, 서대사, 대안사, 원흥사, 약사사, 법륭사를 듭니다.
흥복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오중탑입니다.
그런데 법륭사(호류지)를 다녀온 탓인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너무 관람객들이 많아 번잡해서인지
일행들은 큰 감흥을 받지는 못하시는 듯 하더라고요.
어쩌면 1,300년의 역사의 호류지(법륭사) 오중탑과 상대적으로 두번의 화재로 1426년에 재건되어
580년된 건축물이 보이는 고격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흥복사는 669년 후지와라노 가마타리가 그의 아내인 가가미노 오키미의 병환 회복을 기원하며
세운 절을 기원으로 합니다.
본래 지금의 교토자리에 672년에 지었다가 710년에 나라 헤이조코로 천도하며 이쪽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후지와라씨가 워낙에 권세를 잡고 정권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이 400년이나 되었던 덕에
흥복사(고후쿠지)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어떤면에서 후지와라씨는 황실의 권력 이상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죠.
흥복사는 에도시대인 1717년 큰 불이 나서 절의 절반이 불탔다고 합니다. 이때 절 서쪽이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하네요. 창건 당시는 1탑 3금당 방식이었다는데, 이때 금당 2개는 모두 불타 소실되고,
지금은 중금당만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사실 흥복사 답사의 꽃은 흥복사의 보물을 전시한 국보관에 있는데요.
동대사 입장시간이 오후 4시까지여서 무척 아쉽지만 금당 내부만 둘러보고 동대사로 향했습니다.
참고로 흥복사 국보관에는 국보와 중요문와재만 80점이 넘는다는데요.
이곳에서는 일본 불상의 진수들을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왼쪽 귀가 떨어져 나간
청동불두는 그 정점에 있다고 하네요.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T.T
저 길 건너편이 사슴공원이라고도 불리는 나라공원입니다.
동서 4km, 남북 2km의 굉장히 넓은 면적에 조성된 이 나라공원도 예전에는 동대사의 절땅이던 것을
메이지유신 때 몰수하여 지금처럼 공원화 한 것이라고 하네요. 우리가 가볼 동대사의 위용이 기대됩니다.
나라공원을 둘러 동대사로 향해봅니다.
나라공원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사슴은 1,300마리 정도 된다고 하니 참 대단합니다.
나라시의 상징이고, 마스코트도 모두 사슴을 상징으로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나라시에서는 상대적으로 반려견은 자리를 못잡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라공원의 경계가 철책으로 둘러 있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밖까지도 이 사슴들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사실 보기에는 좋지만 이렇게 도시에 1천마리가 넘는 사슴을 자유롭게 놓는 것이 여러가지로 부작용이
대단할텐데 말이지요.
실제 곳곳에 사슴에 주의하라는 문구들이 사람에게 또 차량들에게 경고를 던지고 있답니다.
스타일리쉬한 어느 일본 여성분이 사슴을 담고 있는 모습을 다시 담아봅니다.
SLR카메라에 단렌즈를 쓰는 것을 보니 꽤나 사진에 관심이 많은 분인가봅니다. ^^
다음에 단출하게 가게되면 저 인력거 체험도 해보면 좋겠어요.
인력거꾼들의 표정이 정말 밝아보였어요.
동대사. 그 입구부터 인파가 정말 대단했죠.
뭐라도 좀 먹고 싶었지만 일단 동대사 대불전 입장이 우선이라... ^^;;
여섯번째 만난 세계유산 - 동대사
동대사는 화엄사상에 심취한 쇼무천황의 743년 11월 5일 칙령에 따라 이 어마어마한 불사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동대사 남대문에는 대화엄사로 편액이 붙어 있답니다.
화엄경에서 주불로 등장하는 비로자나부처님을 본당에 모시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찰의 수문장역할을 하는 금강역사상이 동대사 남대문 좌우에 자리합니다.
한분은 입을 열고 있고, 다른 한분은 입을 닫고 있지요.
이는 '아'와 '훔'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도 범어의 시작이 '아'이고 끝이 '훔'이이기에
알파와 오메가처럼 시작과 끝을 상징합니다.
일본 신사 앞에 있는 코마이누(고려견)도 마찬가지로 입을 벌리고, 닫고 두마리가 자리하지요.
이분은 아금강역사라고 하여 나라연금강이라고 불립니다. 본래 중국에서는 훔금강역사 한분만 모셨는데,
문을 지키는데 한분만 있는 것이 어색하여 '대일경'에 의거하여 나라연금강이 추가되었다고 하네요.
나라연금강은 본래 힌두교의 비슈누신을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불교의 여러 보살과 상징체계 중
많은 부분이 힌두교의 것을 흡수한 것이랍니다.
훔금강역사입니다. 밀적금강이라고 불리지요.
코끼리 100만마리의 힘을 갖고 있다고 전해지는 불교의 수호신입니다.
온갖 비밀스런 사적의 내용을 알고 5백 야차신을 거느리면서 불법을 지킨다고 하지요.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후기 10편에서 동대사의 진수를 맛보시겠습니다. ^^
첫댓글 저도 언젠간 참여해보고 싶지만 우선 후기에 편승합니다.감사합니다
네. 후기로라도 즐거운 여행 되셨으면 좋겠습니당... ^^
법륭사는 내부도 아름다웠지만...법륭사 주위의 고즈넉함이 특히나 좋아서..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일행을 놓치고 말았어요~~
덕분에 3조는 조장만 오면 다온다는 일화를 남겼지요~
사진으로 다시봐도 참 좋읍니다~!
1300년... 1300년...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그 세월을 어찌 건너 우리 앞에 섰을까요.
그저 경이로움에 감동할 뿐입니다. 피뢰침 덕분에 이 위대한 유산이 오래오래 유지될 수 있다니 벤자민 플랜클린에게 감사의 뽀뽀라도 해줘야겠어요. ^^
ㅋㅋㅋㅋㅋ
오우, 벤자민~~~ 쌩큐쏘머치!!
법륭사는 느낌오는 절집이었는데
사람도 많고 바삐 다니느라 아쉬웠네요.
회랑의 나무 창살은 신의 한수 ㅎ
우리나라의 반가사유상이 워낙 표정이 일품이라 그에는 조금 못미치는거 같았어요 ㅎ
동대사의 대불이 유명하다고 책에서 보긴 했지만
그 어마어마한 크기라니...
그런데 전 느낌이 오지 않더라구요...
대불은 크기에서 오는 압도감은 있었지만, 사람들에 치어서인지 큰 느낌은 없었지요. 오히려 이월당이 신의 한수였어요. 그쵸? ^^
ㅎㅎㅎㅎ맞아요!!
학교다닐때
호류지라고 외워서인지
그게 더 익숙하더라니
저만 그런 건
아니었군요
ㅋㅋㅋ
이걸 주입식교육의 잔재라 해야하나?? 장점이라 해야하나??? ㅎㅎㅎ
사실 호류지라고 하는 게 저는 맞다고 봐요. 그들의 문화유산이잖아요. ^^
뭣이 더 중헌지는 잘 모르겠고요. ㅎㅎ
호류지의 남대문.... 시원하고 미끈하게 뻗은 담장도
굳굳굳!!! ㅎㅎㅎ
중문의 인왕상도 참 멋지다는데, 공사중이라서 아쉬웠어요. 일본은 공사하면 기본 5년이라는데 언제 끝나나 몰라요. ^^;;
호류지 금당 ..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교과서 ㅎㅎ
그래서 함부로
국정교과서 같은거 만들면 안돼요!!!..ㅎㅎ
공연..
그네타는 그네가 생각나서..ㅎㅎ
시간이 아까운 법륭사
구석구석 느낄 시간없이 달리기 바빴어두
우리..괜찮아요~~ㅎㅎ
발견이님이 이렇게
자세하게 풀어서
공부시켜 주시니~~ㅎㅎ
감사합니다~~~~~
정말 달리면 안되는 안되는 그런 곳인데, 뛰게 만들어서 죄송해유....
사부작 사부작 느린 한걸음 한걸음으로 음미하며 걸어도 모자란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