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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기계는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VR(virtual Reality)와 같은 개념인데 로버트 노직은
이 경험기계와 현실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선택지를 받을 경우 대다수가 현실을 택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이론이다. 이는 '쾌락주의'를 무너뜨리는 근거로서 많이들 이용된다. 사람이 쾌락만을 추구하는 존재라면 당연히 경험기계 속 삶을 선택해야할 텐데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노직이 경험기계를 반박하는 근거로서
1) 경험과 행위 자체는 구분해야 한다.
2) 경험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사람이라
고 정의할 수 없다.
3) 경험기계 속 세계는 완벽히 정제된 세계에 불과하기에,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1) 본문
내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의 경험 이외에 중요한
것이 뭐가 있는가 하는 물음도 상당한 퍼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면 어떤 경험이든 줄 수 있는 경
험 기계가 있다고 해보자. 최고의 신경심리학자들
이 내 뇌를 자극해서 내가 위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거나 친구를 사귀고 있다 거나 또는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느끼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 동안 내내 나는 두뇌에 전극
을 꽂고 탱크 안에 떠 있다. 내 일생의 경험을 미
리 프로그래밍해서 이 기계안에 들어가서 일생을
보낼 것인가? 물론 내가 탱크 안에 있는 동안에는
나는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기계에 들어가겠는가? 우리의 삶이 내적으로 어
떻게 느껴지는가 말고 우리에게 중요한 다른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의 경험 이외에 우리에
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어떤 것들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지 그저 그것을 하는 경험을 갖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어떤 경험들의 경우에, 우리가 그것들을 하는 경험, 또는 그것들을 해냈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갖고 싶어하는 이유는 오직 우리가 그 행동들을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기계에 들어가지 않는 두번째 이유는 우리가
어떤 식이고, 싶어한다는 것, 어떤 종류의 사람 이
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탱크 안에 떠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부정형의 덩어리일 뿐이
다. 오랫동안 탱크 안에 있던 사람에게는 그가 어
떤 종류의 사람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있
을 수 없다. 그는 용감한가, 친절한가, 똑똑한가,
재치 있는가, 사랑하는가? 말하기 어렵다는 정도
가 아니라 그는 그 어떤 사람일 수도 없다는 말이
다. 기계에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자살이다. 이 기
계에 매혹된 어떤 이들은 우리의 경험에 반영되는
것 이외에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존
재인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것이 놀라
운 것이어야 하는가? 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만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셋째로, 경험 기계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를 인조의 현실,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것보다 더 심오할 수도 없고 더 중요할 수도 없는 세계에 우리를 한정시킨다.
더 깊은 어떤 실재와의 어떤 실제의 만남도 있을
수 없다. 비록 그런 경험은 시뮬레이트될 수 있겠
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만남의 가능
성, 더 심오한 의미를 간파할 여지를 남겨두고 싶
어한다. 경험 기계를 상상해보고,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우리에게 경험 이외에 중요한 어떤 것이 있
다는 것을 알게 된다. (Robert Nozick,
Anarchy, State and Utopia)
2) 정리
만약 세상에 이러한 경험기계와 같은 기계가 실
제로 존재한다면, 과연 경험기계 속 세상이 더 낫
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관하여 노직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는 결과주의적 도덕관을 비
판하면서 단지 감각적 쾌락 내지는 그러한 쾌락의
경험만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
한다.
그는 다음의 3가지 이유를 바탕으로 결과주의적 윤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 첫 번째 반론 : “하기”를 원하는 것과, “경험”을
원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 우리가 어떤 행위를 의욕할 때, 우리는 어떤 것
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지, 그것을 경험하길 원하
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이 의미
가 있는 것이고, 그 행동을 통해 얻게 되는 경험은
부차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서, 번지 점프를 한다고 했을 번지
점프 행위 자체를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번지
점프로 얻게 되는 고양감이라던가, 성취감 자체
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경험
세계 속 나의 모든 행위는 “do”가 될 수 없다는 것
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험세계 속 행위는 모두 뇌
에 대한 일정한 자극일 뿐, 실제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 두 번째 논증 : 우리는 어떤 식이고, 어떤 종류
의 사람이길 원한다.
1. 탱크 안에 있는 사람은 그냥 뇌만 존재하는 무
언가이다. 그것은 결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애초에 사람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2. 그의 주장 : 애초에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자극을 수용하고 그 쾌감을 얻기만 하는 동물에 불
과한 것인가? 그것을 진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
는가? 인간 존재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배제하고,
단지 어떤 경험만을 채우는 것만이 바람직한 삶이
라고 볼 수 있는가?
: 인간 존재는 결코 외부 세계의 자극과 쾌락만을
쫓는 존재자가 아니라는 소리이다. 세계 내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정의내리며 살아가는 존재
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 세번째 반론: 경험기계는 어디까지나 컴퓨터
가 구현한 세계이기 때문에 컴퓨터가 구현하지 못
하는 세계 는 결코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 현실 세계에서 만약 ‘리만 가설'이 풀리지 못했다
면, 가상 세계에서도 리만 가설이 풀린 세계를 구
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단지 리만 가설을 풀었을
때의 기분 정도만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가상 세계에서 리만가설을 푸는 것 또한 불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어디까지나 현실
을 모방한, 컴퓨터 그래픽에 한정된 세계이다. 기
본적으로 컴퓨터 그래픽에 갇힌 세계이기 때문에
100% 현실과 동일할 수 없다. 따라서 아직 인간
이 밝히지 못한 우주의 신비라던가, 질서 역시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것들에 대한 탐구는 무의
미하다. 그저 인간이 경험했었던 것들만 끊임없
이 되풀이되는 세계인 것이다.
Q. 여러분은 경험기계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 들어
갈 것인가요?
경험기계 속은 내가 기계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
을 자각할 수는 없지만, 내가 원하는대로 이뤄
지는 세계입니다. 약간 퍼트넘의 '통속의 뇌' 이
미지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단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고, 외부세계
로부터 완전 차단됩니다. 경험세계 속에서 가족
들과 함께,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아마도 바깥 세상에서는 친구들
과 가족이 애타게 찾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