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문/최지하
네, 발바닥의 길이가 달라졌어요
맞아요, 낯선 크기의 신발은 섬일지도 몰라요
사물함에 놓인 섬은 발견될 가망이 없는데, 발가락이 지느러미처럼 빛나요
온도를 지닌 것은 빛나는 거니까요, 그러니 발가락이 따뜻해진 아침엔 바흐의 첼로를 듣죠
아, 아니에요
이 명랑함은 착각이죠, 착각은 안도일까요
너라는 꿈에서 깨지 않을 것과 알고 있는 것 단 한 가지가 너라는 것에 대해
낭만적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어요, 부조리하죠
매일 물에 비친 알몸을 보며 나이 먹기를 기다려요, 소파는 차갑고 나의 어떤 동작에도 동화되지 않아요
눈에 물이 차올라요, 사랑이 끝난 후 목소리만 남은 기분이에요
어떤 감각을 기준으로 서술할까요, 심장이 뛰지 않으니 좀 더 예리하게
동의해요, 모든 왼쪽에 가까운 어휘들을 너보다 먼 나에게 옮기는 것
책임은 있죠, 그것이 과거의 일이라 해도 위태로운 감정들을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지 못한다면
- 월간 <시인동네> 2020년 5월호
■ 최지하 시인
- 충남 서천 출생
- 광운대 대학원 졸업
- 2014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등단
- 시집 <꼭 하고 싶은 거짓말>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