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 잉글랜드월드컵에서 4년 전 챔피언 브라질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브라질 당국은 감독과 선수 집에 서둘러 경찰을 배치했지만 폭도의 습격을 막지 못했다. 분노한 팬들은 대표팀이 돌아오는 공항에 단두대를 갖고 나갔다. 북한에 진 이탈리아도 일찌감치 짐을 쌌다. 한밤중 몰래 귀국했지만 공항에서 썩은 토마토와 달걀 세례를 받았다. 이탈리아는 1974 서독월드컵 때도 리그에서 떨어져 경찰 300명이 공항에서 성난 군중을 막았다.
▶1994 미국월드컵에서 우승 후보 콜롬비아가 리그도 통과하지 못하자 마약 조직이 "돌아오면 죽이겠다"고 을러댔다. 감독은 에콰도르로 도망갔고 선수들도 귀국을 망설였다. 자책골을 넣은 에스코바르만 돌아갔다가 총을 맞고 숨졌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일찍 탈락한 축구 강국 대표팀의 귀국 풍경은 평온하다. 검정 운동복 차림의 스페인 선수들은 취재진을 지나쳐 말없이 공항을 빠져나갔다.
▶포르투갈 수퍼스타 호날두는 공항 택시 승강장에서 줄을 서 기다리다 혼자 타고 떠났다. 이탈리아와 영국 공항도 조용했다. 정작 가장 요란한 곳이 일본 나리타였다. 폴리스라인이 무너질 듯 몰려든 1000여 팬이 "고맙습니다" "수고했습니다"를 외쳤다. 출국 때 700명보다 많은 환영 인파 앞을 선수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지나갔다. 일본 인터넷에선 '우승이라도 했느냐'는 자조가 많다.
▶그제 새벽 인천공항에 내린 우리 대표팀엔 엿사탕이 날아들었다. 100여 팬이 박수를 보내는 한쪽에서 '너 땜에 졌어'라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플래카드를 펼쳤다. '근조(謹弔), 한국 축구는 죽었다.' 이 풍경을 두고 '시원하다'와 '너무했다'가 엇갈린다. 2008 베이징올림픽 축구 16강에서 탈락하자 '축구장에 물 채워라. 태환이 수영하게'라고 했던 네티즌 야유가 생각난다. 축구인들이 뜨끔했을 그 풍자와 해학에 비하면 '엿'은 거친 게 사실이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0대5로 지자 차범근 감독이 해임됐다. 귀국한 그를 공항 경찰 200명이 보호했다. 사령탑 잃고 벨기에전에 나선 선수들 눈빛이 달랐다. 이임생은 머리 붕대가 피에 젖은 채 뛰었다. 선수들은 억척스럽게 따라붙어 1대1을 만들었다. 대표팀은 1무2패를 안고 돌아온 공항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멕시코전에서 골을 넣고 곧바로 퇴장당한 하석주도 죄인처럼 왔다가 깜짝 놀랐다. 한약 지으러 간 경동시장에서 사인해달라는 사람들에 에워싸였다. 그제야 용서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다를까. 투혼(鬪魂)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