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코로나로 무덤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지만
주님의 백성들에게,
정확한 주님의 때에,
저희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두려움과 낙심에 젖은 연약한 마음을
기쁨이 넘치는 굳건한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심을 믿습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오늘, 학개서를 통해 나의 주님을 더 잘 알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15.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본문 주해)
1~4절 : 바벨론 포로에서 1차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2년이 지난 후 성전의 기초를 쌓고 크게 기뻐한다.(BC 536년)
그러나 유다의 회복을 두려워한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웃 나라의 방해로 성전 건축은 중단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건축이 방해 받게 되자, 성전 건축보다 자신들의 생계를 위한 삶 - 농사 짓고 집 짓고-에 집중하고 만다. 그러다가 16년의 세월 흘러버린 것이다.
이에 다리오왕 제2년(BC 520년)에 예루살렘에 있는 학개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면서 16년 동안 이어져 가지 못하고 있는 성전 건축 사업에 대해서 유다를 책망하게 된다.
5~11절 : 4절의 ‘판벽한 집’은 지붕을 얹어놓고 벽을 막고 아주 그럴듯하게 지은 집을 말한다. ‘성전은 이렇게 황폐한 상태인데 너희는 아주 그럴싸하게 집을 짓고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집 짓고 농사 지으며 열심히 살았으나 16년이 지나도 뜻대로 되지 않는 유다 백성의 곤고한 삶의 이유를 알기 위하여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5절),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7절) 말씀하신다.
학개 선지자의 말의 요지는 ‘너희가 상황이 안 좋아서 성전 건축을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먹고 살 끼니도 없는데 어떻게 성전을 짓느냐고 생각하고 있지?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오히려 너희가 성전을 먼저 안 지었기 때문에 너희 일이 잘 안 되는 것(6, 9~11절)이다.’ 라는 것이다.
8절은 하나님께서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그들에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처럼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다가 집을 지으라고 하시지 않는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짓는다면 하나님이 그 성전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영광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신다.
12~15절 : 이에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은 자들이 학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다.
그러자 학개가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라고 화답하며 용기를 북돋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성전을 다시 짓게 된다.
(나의 묵상)
구약의 성전 즉 모든 건물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가 삼일 만에 지은 성전으로 대체되고 완성되었다.
이제 건물로서의 성전 개념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므로 건물 성전으로서의 교회는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장소 즉 ‘예배당’의 개념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학개 선지자가 ‘성전 건축을 우선 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이야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자들이라 이 우선순위가 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우선순위가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는 바로 영생의 삶을 누리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영생의 교제를 하지 않은 자가 바로 성전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는 자이다.
왜 그렇게 내버려 둘까?
그것은 그 마음이 이 땅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다음이고, 먼저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먹고 살만 하면 또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 하나님은 또 뒤로 미뤄진다.
그들은 이 땅에서 자기 인생을 얻기 위해 분주한 이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해도 그들은 만족할 수가 없다.
왜냐 하면 헛된 것만 찾기 때문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 꾸짖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6절)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9절)
“내가.....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11절)
그렇다면 하나님과 교제를 우선으로 하면 이 땅에서 뭐든지 잘 되게 해 주실까?
혹시 어리석은 자가 이 땅에서 뭐든지 받고 싶은 동기로 주님께 나아갔을지라도 그 교제를 통해 성령께서 진리를 가르쳐 주신다.
그 어리석은 자가 바로 나였다.
처음 말씀 앞으로 나아갈 때 혹시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뭐 좋은 것 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내가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것만을 자꾸만 말씀하셨다.
마치 주님이 왕이 되어 등극하실 때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자리를 꿈꾸던 제자들에게 자꾸만 ‘십자가’ 이야기를 하시는 것처럼......
주님과의 교제가 지속되면서 복음을 알아가는 기쁨이 충만하여지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삶이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이란 것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니 그 동안 내가 구하고 원했던 것이 얼마나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나를 알게 된 것이다.
주님과의 교제는 세상의 형통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평강을 누리게 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신 그 평강을 누리게 하신다.
8절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하신다.
날마다 말씀의 산에 올라 말씀을 취함으로,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내 안에 거주하실 수 있도록 성전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우리 교회 동네가 재개발지역이 되어, 언제 지어질지는 모르지만, 다시 새 예배당 건물을 짓게 된다.
너무도 낡은 60년이 넘은 우리 교회 건물을 보면 늘 마음이 짠하다.
나도 깨끗하고 아름답고 실용적인 새 예배당이 지어져서 그곳에서 예배드리고 또 성도들의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는 ‘성전 건축’이라 하지 않고, 그냥 ‘새 예배당 짓기’라 했으면 좋겠다.
‘성전 건축’은 우리 영지인들에게, 또 믿음을 가진 주의 백성들에게 먼저 이루어져야 할 주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이다.
성전을 황폐하게 버려두지 말라고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용기를 내어 주님과의 영생의 교제로 성전을 세워나가려는 자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시는 이 음성이 다 들려지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날마다 정결하고 빛나는 성전을 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의 교제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스스로가 잘 하는 것인 양 착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모든 것이 주님께서 하게 하신 것이며
앞으로도 성령께서 하게 하실 것임을 믿으며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