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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십결] 11장 격돌(激突) ..2
흡사 여자처럼 자그마한 체격에 예쁘장한 얼굴과 어린아이처럼 유쾌한
웃음을 머금은 동안(童顔)의 청년!
- 철병(鐵兵) 영호충(英狐忠)!
그러했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지금껏 왕우진을 뒤쫓고 있었던 대 친군도위부의
즙포사자 영호충이 아닌가?
한데 대체 그가 어떻게 여기에.....!?
손에는 아무렇게나 한 자루의 박도(朴刀)를 뽑아쥐고 있었다.
"네가 이삼랑을.....?"
하지만 미처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바없는 사내들은 즉시 전신이 쩍쩍
갈라져 나갈것 같은 끔찍무비한 살기를쏟아내며 영호충을 에워쌌다.
"대체 네놈은 또 누구냐!"
하나 영호충은 아랑곳없이 여전히 그 특유의 앳된 웃음을 띄우고 장난
치듯 한 손으로 박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응, 난 영호충이라 해."
도저히 지금 막 사람을 동강낸 인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조차 않는 태
도,
"영호충.....?"
하지만 이러한 그의 태도에 사내들은 더더욱 바싹 긴장했다.
기실 이미 밝힌바에 의하면 이들의 정체란 바로 한결같이 지난 백루의
치고 간다는 자객들! 한데 이러한 그들이 아무리 장난스런 모습을보이고
있다고는 한들 영호충의 어떤 위인됨을 몰라볼리가 없는 것이다.
더더우기 벌써 이삼랑의 허리가 두 동강이 나는 꼴을 버젓이 목격한
다음에야.....!
따라서 그가 이만한 여유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 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이에 사내들은 눈만으로는 금시라도 영호충을 씹어먹을 듯 노려봤으나
감히 함부로 발작하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흐흐흐..... 그래! 어쨌건 좋다. 영호충! 한데 네놈이 이삼랑을 죽이고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까닭은?"
영호충은 여전히 빙글빙글 칼을 휘저으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응, 뭐 별건 아니지만 지나다보니 너희들이 웬지 큰일날 짓을 하려는
것 같아서. 사실 물고기도 아닌 사람을 그물로 잡아놓고 산채로 회를 치려
고 해서야 되겠어?"
"무어가 어째.....?"
순간 사내들의 눈에 핏발이 어렸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적(敵)인 것이다.
"놈! 꼴에 무슨 협객이라고.....!"
"죽여라! 삼랑의 원수다!"
"왁!"
그와함께 이십여 사내들은 부지불식간에 무서운 호통을 토하며 저마다
지닌 병기를 휘저으며 펄쩍 영호충을 향해 덮쳐들었다.
쾌검(快劍)!
그러자 날아드는 검들은 또한 자객의 그것답게 빠르고도 독날했다. 여느
무림인들처럼 그다지 큰 변화를 두고 있지는 않았으나 하나하나가 치명적
인 급소를 노리며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쏘아오기 시작한 것!
"터--!"
하지만 그에 반해 영호충의 몸놀림은 더더욱 기민했다.
분명 그들이 칼을 후려쳐 오기전 까지는 장난스런 태도만을 보였었던
그였으나, 일단 상대의 공격이 시작되자 대체 언제 그 자리에 서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 자그마한 몸이 벌써 천정께로 붙듯이 바싹 도약해 오른 것이
다.
더불어 흡사 무슨 시(詩)라도 읊듯한 외침이 터지며 그의 반격이 시작
된 것은 바로 그 직후!
"낙지매화(落地梅花)! 바람에 매화잎이 땅으로 떨어지고!"
피유우웃.....!
"ㅎ! 아니?"
하지만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났다.
일단 그가 한 번 칼을 휘젖기 시작하자 허공에는 말 그대로, 돌연 바람
에 꽃잎이 땅으로 떨어지듯 수백 송이의 매화꽃 모양의 새하얀 검기가 피
어나며 입추의 여지도 없이 덮쳐들었던 사내들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것이다.
"뭐..... 뭐냐! 애송이의 검기가 예상외로 더 위다!"
그러자 당연히 자신들의 검이 영호충의 몸을 걸레처럼 꿰뚫으리라 믿고
덮쳐들었던 사내들은 이 난데없는 검기에 그만 혼비백산하여 다시 사방으
로 흩으지기에 이렀는데, 그 순간 영호충의 입에서 다시 짧은 싯귀절이 터
지며 매화꽃 같았던 검기가 한 순간 빗발치듯한 불꽃으로 변했다.
"유성추월(流星追月)! 밤하늘의 별똥은 달을 쫓는다!"
츄우우우ㅡㅡ!
"크아아아악.....!"
그러자 그 즉시 터지기 시작한 처절무비한 비명성과 함께 사방으로 뿌
려지는 저 섬뜩한 핏줄기들!
부지불식간에 변화를 일으킨 영호충의 검식이 그대로 물러서는 사내 서
넛의 목줄기를 산적(散炙)같이 꿰뚫어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고작 이제 시작에 불과했을 뿐,
"창을 열고 밖을 보니 뜨락에는 바람이 일고! 개창망외(開窓望外), 정
지풍류(庭地風流)!"
"가을밤의 흐르는 반딧불은 환각스럽기가 흡사 긴 무지개와 같구나! 추
야유영(秋夜流瑩), 환영장홍(幻影長虹)!"
"크아.....!"
영호충은 그 이후로도 계속, 차라리 아름다운 한 수 시를 읊는 듯한초
식명을 토하며 절도있게 박도를 휘둘러 무인지경으로 사내들을 휩쓸어갔고,
그때마다 그의 칼끝에서는 그야말로 뜨락에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듯, 가을
밤의 수 천 반딧불이 흐르듯 한 도도한 검기가 일어나며 여지없이 사내들
을 하나하나 꺼꾸러뜨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더우기 치는 것은 거의가 치명적인 요혈, 그다지 피조차도 튀지 않았
으며 몸놀림은 흡사 검무(劍舞)를 추는 듯해 눈부시기 까지 했다.
쩍!
"크흐.....!"
이에 사내들이 이 불가항력의 청년을 맞아 싸움을 시작해 모두 꺼꾸러
지기 까지 소요된 시간은 불과 반 식경,
"검귀(劍鬼)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어처구니조차 없는 놈이.....!"
"하지만..... 네놈도 흑보살도.....! 결코 무사히 산을 내려가진 못한다.....!
도처에는 이미 흑막 청사 등 많은 친구들이 몰려오고 있으므로.....!"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남은 사내가 쓰러져가며 남긴 말이었다.
"흠, 뭐 그런 걱정씩이나.....!"
하지만 영호충은 그들을 모조리 베어제낀 후에도 여전히 무슨 일이 있
기나 했었느냐는 듯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머금었다.
"더욱이 이 정도 솜씨로검귀라니 그 무슨 과찬을.....!"
이미 짐작치 못한바는 아니었지만 실로 끔찍한 청년.....!
탁! 이어 그는 박도를 다시 칼집속으로 꽂아넣으며 급기야 그물속의 왕
우진을 향했다.
"어떤가?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대체 어떻게 그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아직 확연치 않으나 결국
이 두 청년은 이렇게 뜻밖의 초대면을 하고 만것이었다.
실로 도저히 상상치도 못했을 정도의 싱거운 조우(遭遇)였으나, 어쨌건
필연(必緣)이라고 해야할지.....!
그와함께,
"아니, 누군진 모르지만..... 자네에겐 충분히 그런 소릴 들을 자격이 있
어. 실로 드물게 볼 정도로 놀라운 솜씨이더군."
왕우진이 얼음같은 눈으로 그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삼풍(三豊) 검(劍), 일견하기엔 무당(武當)의 제자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 정도의 검을 구사하는 것은 무당장문인이라도 힘들 정도일테니까."
"지나친 과찬이로군!"
영호충의 입가에 다시 그 특유의 유쾌한 웃음이 스쳤다.
그런 그를 보며 왕우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으응.....? 나타난 이유.....?"
그러자 영호충은 일순 얼떨떨한 기색이 되고 말았다.
기실 자신이 아니었으면 이삼랑의 칼에 벌써 두 토막이 났을런지도 모
를 그가 아닌가?
한데도 그는 고마와 하기는 커녕 오히려 나타난 이유를 묻고 있는 것이
니.....!
"핫하하..... 거 참, 그야 뭐 곤란한 입장에 처한 자넬 좀 도와줄까 해서
였지만.....!"
이에 영호충은 그만 자신도 모르게 재미있다는 듯한 웃음을 짓고 말았
다.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묻고 보세나. 얼핏 듣자니 저들이 자넬 흑보살
이라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도와줄까 한다!
그러나 왕우진은 여전히 얼음알같은 시선으로 그를 주시했다.
"꽤나 재미있는 소릴 하는군. 한데 돕는것과 그게 또 무슨 상관이 있
나?"
"하하..... 물론이야! 사실 자네가 저 일개월 내 벌여놓은 사건들은 천하
를 진동시키고 있거던? 백루를 비롯한 심주삼패의 도박장을 휩쓸어놓은 일
등.....! 해서 칼을 잡은 무사라면 현재 누구나 흑보살이 어떤 사나이인지 궁
금해 하고 있을 뿐더러, 나역시 무척 진가(眞價)를 알고싶은 터이니까."
"그래서? 만약 진짜라면.....?"
히죽, 영호충은 다시 웃었다.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먼저 물어봐야지. 대체 무엇때문에 그렇게 곳곳
을 피로 적시고 다녔나?"
하지만 왕우진의 대답은 또한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심심해서 했네. 마냥 손이 근질거려서."
"심..... 심심해서.....?"
찰나 영호충은 한 번 더 파안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핫핫핫핫..... 거 참! 대답이 또 한 번 걸작이로구만! 무려 이백의 사람
을 살해한 자네가.....!"
사실 당연히 그럴수 밖에도 없는 것이, 본시 대개의 범죄자들이란 궁지
에 처하면 누구나저지런 죄에 대해 발뺌을 하려 들거나, 최소한 그것이 아
니라도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 그 행위를 정당화 시키려고 한다.
절대로 그런짓을 하지 않았노라.....!
또한, 이러이러한 사유로 만부득이해서 그렇게 했노라.....!
하지만 천만뜻밖에도 왕우진은 그러지 않았다.
심심해서 했다!
실로 이는 삼척동자가 들어도 웃을만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묘하게도..... 이 간단명료한 대답에 영호충은 그에게서 오히려 사
람냄새를 맡았다.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갖은 핑계를 둘러대는 여느 악당들은 물론, 일반
의 선량보다 더 강렬한 사람의 냄새.....! 이것이 바로 왕우진에 대한 영호충
의 첫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생각하거나,
왕우진은 더욱 싸늘해진 눈빛으로 영호충을 응시하며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했다.
"자, 그럼 피차간에 신경전은 피곤할 뿐이니 말장난은 이만 치우세. 자
넨 분명 나를 잡으러왔지?"
"내가 자네를.....!?"
흠칫, 순간 영호충은 적지않게 놀라 그를 응시했다.
실로 뜻밖의 말이 아닌가?
"그건 왜.....?"
하지만 왕우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사용하는 검에서 벌써 그걸 읽었어. 일렀듯 검식은 무당의 것, 하나
지켜본즉 자넨 무의식중에 관(官)의 십팔반무예를 함께 응용하고 있더군.
이는 오랫동안 관군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체득된 습관이
라 할 수 있는 것인데, 결국 자네는 무당의 검을 지닌 관포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영호충의 입가에 순간적으로 웃음이 가셨다.
"매섭군! 설마 이런 상태에서도 그런것을 읽고 있었나?"
"당연하지. 이 정도의 위기에 냉정해질 수 없다면 결코 제대로 된 무사
라 할 수 없으니까.....!"
차분히 계속 말을 이었다.
"다만 내가 알 수 없는것은 대체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느냐 하는 것 뿐
이야! 우연이었던 것인가?"
이에 영호충은 한 동안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백루와 인혈월 도박장의 참사를 확인한 만큼 분명 수월찮은 상대이리라
고는 예상은 했었으나 확실히 보통 사내가 아니었다.
꼼짝없이 그물에 사로잡힌 몸에, 더구나 자신이 관포인줄 알면서도 눈썹
하나 깜박않고 스스로를 밝힌 저 냉정한 태도하며.....!
이런 사내라면 어떤 말을 꾸며내더라도, 눈빛 하나만으로도 곧 그 진가
를 찾아내고 말것 같았다.
"흠, 어쩔수 없군. 그렇게 까지 말 한다면 슬슬 이실직고를 하는 수 밖
에."
이에 영호충은 일단 적당히 속을 밝히기로 했다.
"후훗..... 사실은 백루의 사건 이후 난 줄곳 자네를 뒤쫓고 있는 입장이
었네. 따라서 이곳으로 온것도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지."
"우연이 아니었다면.....?"
"후후..... 바로 자네의 행적을 보고 파악하게 된것이야. 즉 백루의 사건
이후 자넨 진강의 쾌활림에서 또 한 번의 대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나? 그
때 나는 생각했네. 만약 그게 우연이 아닐 것 같으면 자넨 신주삼패를 노리
고 있을 것이라고."
"있을 법 하군."
왕우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대체 어떻게 이런 순간에 나타날 수 있
었던가 하는 것일세. 이건 마치 내가 이 길로 지나가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눈치이거던?"
영호충은 차분히 미소지었다.
"후후..... 그것도 사실이야. 실은 그 역시 자네의 지난 행적을 보고 판단
해낸 것인데, 말했듯 자넨 신주삼패 중 마문기를 먼저 치지 않았었나? 한데
문제는 마문기가 있었던 진강이 지금 자네가 가려 하는 항주(杭州)라던가
소주(蘇州)보다 훨씬 먼 위치에 있다는 것이었어. 즉, 원래원칙 대로라면 자
넨 그곳에서 우선 가까운 소주의 천금월(天金月) 마고신(馬高信) 부터 처치
했어야 당연한 것이었지만 뜻밖에도 무창에서 가장 멀리에 위치한 마문기
부터 손을 대었던거야."
영호충은 잠시 숨을 돌린후 다시 이었다.
"해서 일단 그것은 마문기가 가장 상대하기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라고
가정지었으나, 또 그러고 나니 어쩐지 자네가 진강 다음으로 가까운 소주
로 갈리가 없다고 여겨지더군. 실로 그곳에는 동생의 죽음에 눈이 뒤집힌
천금월이 온갖 매복을 다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전문가인 자네가
그런 위험을 자초할리 없을 것 같아서 말일세."
왕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머리로군.....! 그래서 다음은 중은월을 노리리라 믿고.....!"
영호충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맞았어. 그러고 나니 또한 범죄자들이 진강에서 항주로 갈만한 길이 어
딘가를 생각해보게 되었고, 결과 이곳을 택해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
세. 하여튼 내딴에는 꽤나고심을 한 셈이지만."
실로 기막힌 추리.....!
얼핏 보기에는 싱거울만치 우습게 부딪친 두 사람의 조우였지만, 하다면
그 뒤에는 역시 결코 단순하다고 볼 수 없는 그의 노고(勞苦)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첫 대면, 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상대의 두뇌.....!
"훌륭해. 아주.....!"
이에 왕우진 역시 감탄을 금치 못한 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호충이 그의 첫 인상에서 사람의 냄새를 맡았다면 그는 그에게서 흡
사 철인(鐵人)같은 어떤 단단함을 느낀 것이었다.
흡사 철병이란 별호 그대로!
"세상의 관포들이 다 자네와 같으면 범죄자들은 아마 발붙일 곳이 없겠
군."
"뭘, 약소한 편이지. 그러면서도 자네가 정말 이 길로 와줄줄은 기대하
지 않았었지만.....!"
영호충은 한 번 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어쨌건 막상 이렇게 진짜로 부딪히고 보니 몹시 의외라는 생각이 드네.
사실 지금껏 난 자네를 삼두육비(三頭六備) 쯤의 괴물로 생각했었는데 뜻
밖에도 이렇게 멋진 미남자가 아닌가? 더욱이 보자말자 척하니 내 신분을
알아내는가 하면, 그러면서도 또한 전혀 당황하거나 겁을 먹지도 않아. 자
네만한 살인자가 되면 다 이런 것인가?"
"일단 그 말은 비웃는 것이라 봐야겠군."
왕우진은 싸늘히 냉소를 머금었다.
살인자와 추적자, 어쨌건 피차 입장이 다른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하지만 실상 알고보면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우선 첫 째,
나는 자네가 들어서기 전에 벌써 직감적으로 대단한 인물이 다가오고 있음
을 알고 있었지. 즉, 그것은 바로 자네가 지닌 막강한 기(氣)의 파동을 읽었
기 때문이었는데, 그때 벌써 나는 자네를 적이라고 간주를 해버렸었네. 막
강한 무력을 가진 적! 따라서 더 놀라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 그저 자네
가 관포였다는 것이 다소 뜻밖이긴 했었지만."
"벌써 느끼고 있었다.....?"
왕우진은 계속 차갑게 냉소지었다.
"하지만 역시 별로 상관없는 일이야. 관포였던 뭐였던 어차피 난 자네에
게 죽지도 잡혀가지 않을테니 말일세."
기이한 말!
영호충은 일순 기묘한 빛을 떠올렸다.
"잡혀가지도 죽지도 않아.....?"
"물론이야. 자넨 현재 나를 잡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영호충은 똑바로 왕우진을 직시했다.
"그야 당연하지. 사실 자넨 그물 속의 물고기나 다름없는 몸, 나야 그저
들고 가기만 하면 될테니 말일세."
왕우진은 싸늘히 이삼랑 등 죽은 사내들을 ㅎ었다.
"하지만 억지에 지나지 않을 뿐이야! 기실 저들이 죽을 때 뭐라고 했었
나? 분명 지금 이 숲속에는 많은 동료들이 매복하고 있어 살아서는 산(山)
을 내려갈 수 없다고 했었지? 뿐만아니라 현재 흑막, 청사 등, 천하 각 방
면의 살수(殺手)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고도 했었는데, 이건 결코 괜
한 소리가 아닐세! 실제로 저들이 이런함정을 파고 기다렸을 때 사방에는
보다 더 많은 매복이 도사리고 있을게 분명한 사실이고, 또한 배신자는 죽
인다는 율법에 따라 천하각파의 자객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도 사실! 한
데 이런 상태에서 자네가 무슨 힘으로 나를 끌고 내려갈 수 있단 소린가?
혼자도 버거운 판에 혹까지 달고! 까마귀밥이나 되기 일쑤이지!"
일순 영호충은 크게 눈빛이 흔들렸다.
사실이라면 확실히 예사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무리 할 수도 있지! 실로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자네를 포기 할
수는 더욱 없으니까!"
왕우진은 한 번 더 냉소를 머금었다.
"그렇다면 해보게! 아마 틀림없이 자살행위가 될테니까."
싸늘히 계속 말을 이었다.
"뿐만아니라 문제는 그 밖에도 또 있어! 자넨 혹시, 설령 그것들이 아
니라도 자신이 지금 당장 최악이라고 할만한 위험에 봉착해 있음을 알고
있나?"
최악의 위험!
순간 영호충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흠칫 했다.
"무슨.....! 그것들이 아니라도 위험이 또 있어.....?"
왕우진은 다시 차갑게 웃었다.
"분명히 그래! 자, 그럼 이만! 사실은 이 역시 모두 말장난에 지나지 않
는 것이니 어디 이번에는 자네의 속을 한 번 타진해 보세. 이미 말했듯 현
재의 자넨 분명 나를 죽이거나 끌고 갈 수 없어. 그랬다가는 장담코 자넨
죽게 될터인데,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인가?"
"장담코.....?"
영호충은 일순 심신이 긴장되어 가기 시작했다.
어쩐지 허언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글쎄..... 사실이 그렇다면야.....!"
이에 그는 급기야 어떤 일말의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심각히 왕우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아무리 정의감도 좋고 공명심도 좋지만 난 그렇게 쉽사리 목숨
을 내던질 사람이 못되거던? 어쨌건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조우한 내가
자넬 죽이지도 잡아가지도 못할뿐더러 또한 그만한 위험에 봉착해 있다고
하면, 자네에겐 뭔가 이 위기를 모면할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있어!"
왕우진은 냉혹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자네도 알다싶이 지금 바깥에서 매복을 파고 기
다리는 것은 천하 각파의 살인자들일세! 다시말해 모조리 죽어 마땅한 쓰
레기들에 불과한 것이지. 반면 자넨 그저 나를 잡아가는게 목적일 뿐, 구
태여 목숨까지 감수해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아닌가?"
"계속해 보게."
"따라서 이런 입장에서 우리가 둘 다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나
를 풀어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네. 그리되면 나는 밖의 놈들과 싸우며 활
로(活路)를 ㄸ을 것이고, 또한 자넨 구태여 싸울 필요도 없이 나를 뒤쫓다
가 지쳤을 때 다시 잡으면 될테니 득이 되는 것이지! 뿐만아니라 밖의 놈
들이나 나나, 어차피 우린 세상에서 모조리 없어져야만 득이 되는 인간들
이니 그러다가 같이 죽으면 더욱 좋고!"
툭, 영호충의 입가에 한 줄기 실소가 떠올랐다.
"궤변이군! 하지만 그러다가 위기를 모면키는 커녕 자네까지 놓치면 어
쩌고? 더우기 자넨 밖의 모두를 합친것보다 더 무서운 살인자인데, 우선 나
부터 공격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는가?"
왕우진은 싸늘히 냉소지었다.
"그점이라면 믿어도 좋네. 비록 살인자라 일지언정 난 지금껏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는 않았으니까!"
차분히 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쨌건 선택은 자네 마음이지만 역시 지금은 내말에 따를것을 권하네!
아니면 자넨 어쩔수없이 크다란 위험에 봉착하게 될터인즉, 이게 마지막 충
고일세."
- 마지막 충고!
어딘지 꺼림칙한 여운이 남는 어휘!
순간 영호충은 다시 크게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어째 자꾸 기분나쁜 소릴.....! 그러나 멀쩡한 목숨 끊을 수 없는 이상
사실이라면 역시 따를 수 밖에 없겠네만, 그럼 일단 그 위험이라는 것에 대
해서 들어볼까?"
왕우진은 차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약속을 하게! 분명 무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지?"
"확실하다면야 하지! 살자면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는가?"
"다행이야. 뜻밖에 자네가 현명한 사람이 되어서.....!"
이에 왕우진은 대면후 처음으로 입가에 한 줄기 부드러운 웃음을 떠올
렸다.
"좋아. 그렇다면 밖의 놈들을 제외한, 자네에게 도사리고 있다한 그 위
험이란게 뭔가를 보여주지."
이어 그는 자신을 가둔 그물을 가볍게 두 손으로 움켜잡은 후, 흡사 그
것을 찢어내기라도 하듯 양쪽으로 벌리며 천천히 힘을 가하기 시작했는
데.....!
찰나 지금껏 그의 말속에 숨겨져 있었던 애매모호했었던 뜻!
'아앗! 설마.....?'
영호충은 순간적으로 번뜩! 뭔가 짚히는 점이 있어 흡사 뒷골에 전뢰(電
雷)가 쑤셔박히듯한 지독한 충격을 받았다.
파아아앗.....!
그와함께 주위에는 갑자기 희뿌연 연기같은 것이 치솟으며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바로 왕우진의 손에서 갑자기 내막을 알 수 없는 어떤 새파란 불꽃이
튀며 칼로서도 흠집하나 생기지 않았던 만년천잠사의 그물이 천천히 연기
와 함께 찢어져 나가기 시작했던 것!
"맙소사! 저건 설마 말로만 듣던 기화(氣火).....!"
순간 영호충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자신도 모르게 그만 비명같은 짧
막한 외침을토하고 말았다.
실로 당연히 그럴수밖에도 없는게 인간의 손에서 불! 어찌 그가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불어 일컫자면 기화(氣火)!
본시 이것은 세인들이 흔히 삼매진화(三梅眞火)라고도 일컫는 것으로,
대개 심오한 단전(丹田)의 호흡법과 필생의 정신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내
공(內功)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옛 사기(史記)에 간혹씩 기재된 바, '극도로 수련을 쌓은 장수(將
帥)들이 손으로 나무를 칠 때 그곳에는 시커멓게 그을린 자국이 남는다!'
라는 기록처럼 사람들은 이것을 바로 장력(掌力)이라고 일컫고도 있으며,
또한 세간(世間)에서 흔히 '내공(內功)이 극치에 이르면 손에서 폭풍과
같은 바람(掌風)이 뿜어진다' 라는 등의 말도 않되는 허언을 나오게 한 그
강기(剛氣)라는 것의 진정한 실체(實體)가 바로 이것인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 인간의 손에서 그러한 바람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나마 천하를 다 뒤져도 이렇게 기화(氣火)를 뿜어낼
정도의 내공을 이룬 사람조차 찾아보기란 거의 힘든 것!
한데 지금 영호충의 눈앞에서 바로 그 믿기지 않는 기화(氣火)가 전개
되고 있었던 것이니.....!
따라서 영호충이 놀랄수 밖에 없었던 것도 당연한 이치이고, 뒤따라 그
가 마침내 그물을 태우고 나오자 영호충은 그만 자신도 모르게 주춤, 두어
걸음을 물러서고 말았다.
"도저히 믿을수가.....! 설마하니 자네가 그 정도의 내공력을 지니고 있었
다니, 분명 속임수 같은 것은 아니었지?"
그러자 왕우진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맞아! 또한 이것이 바로 도사리고 있었다고 말한 위험의 본체이지. 다
시 말해, 사실 나는 처음부터 그물속에서 빠져나올 정도의 힘이 있었다네!
본시 천잠사는 칼에도 잘라지지 않을만큼 질기지만 불에는 약한 것이거던."
순간 영호충은 등골에 흥건히 식은 땀이 고였다.
"과연 위험했군! 설마 그게 이 정도의 것이었으리라고는.....! 한데 만약
그 순간 만약 자네를 베었으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 것 같은가?"
"그야 당연히 자넨 최악의 실수를 하게 된 것이지! 쳐봐야 천잠사 속의
내가 다칠리 없고, 나는 곧 그물을 뚫고 나와 자네와 부딛쳤을 테니까. 덧
붙이자면 자네손에 죽은 이삼랑이라는 계집은 아까 그물속의 나를 칼로 치
려고 했었는데 한 마디로 웃기는 짓을 했었던거야! 버젓이 칼로 찢어지
지 않는 그물임을 알고서 이를 이용해 나를 잡아놓고서도 칼로 베려는 짓
따위를 했으니.....!"
"맙소사.....!"
순간 영호충은 다시 등골에 으시시한 한기가 스며들었다.
기실 이쯤되면 누구라도 공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게, 본시 철창속
의 호랑이를 보고 겁내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눈에 보였던 철창은 허구일뿐, 그 호랑이가 실상 철창속에 갖힌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나면.....!
더우기 그나마도 이젠안전하리라 믿었던 그 철창이 허구였음을 깨달은
마당에다, 영호충은 급기야 그 호랑이와 마주서고 말았던 것이니.....!
또한 왕우진을 호랑이로 말할 것 같으면 벌써 이백여의 사람을 잡아먹
은 식인호랑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영호충은 순간적으로 모골이 송연한 기분으로, 꽈악 칼자루를 움켜
잡고 급히 다시 질문했다.
"조..... 좋아.....! 하다면 한 가지만 더.....! 자넨 처음부터 이렇게
빠져나올 힘이 있었는데도 왜 나를 붙잡고 그렇게 쓸모없는 말을 많이 했지?
구태여 그렇게 해야할 까닭이 없었는데!"
왕우진의 입가에 일순 보일듯 말듯한 웃음이 스쳤다.
"후후후..... 실은 자네와 싸우기가 싫어서였네! 사실 자네만한 실력에 머
리까지 두루 갖춘 관포란 흔하지 않거던? 더구나 적잖은 의협심까지 가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영호충은 다시 크게 흠칫했다.
"의협심?"
"후후...... 옳아. 사실 보통의 인물이라면 이야기는 커녕 나를 보자 바로
욕지꺼리부터 내뱉었겠지? 하나 자넨 끝까지 참을 성 있게 나와 대화를
해줬고, 이에 좋은 쪽으로 일을 풀어가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일세! 실제로
난 살인자라도 지금껏 무고한 사람을 해친적은 거의 없었을 뿐더러 관포는
더욱 그래."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은 살인자!
"한데 피할수 있는 싸움을 왜 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그랬다간 몰려
오는 것들에게 어부지리를 줄 뿐인데."
영호충의 얼굴에 가늘은 경련이 일어났다.
"어쩐지 듣고나니 꼭 신세를 진 느낌이 드는군! 하다면 그물에 갖혔을
때 바로 빠져나오지 않았던 것은!"
왕우진은 두어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그들의 정체를 알고자 했었던 것일세. 한데 그러다 보니 자네의
막강한 기가 느껴져 궁금한 김에 좀 더 참아보기로 했었던거지. 사실 그때
그물을 뚫고 나왔었더라면 이렇게 대화를 나눌 여가나 있었겠나?"
확실히 사실이었다.
기실 말 그대로, 만약 왕우진이 그때 서둘러 그물을 찢고 나왔었더라면
영호충은 확실히 그가 이삼랑 패거리와 싸우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공격했
기 쉽상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리되었으면 필경 지금쯤은 둘 중 누군가가 피를 뿌렸을 터이
고.....!
이에 영호충은 이마에 진땀이 맺혔다.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었군.....! 매복하고 있다는 것들은 둘 째 치고, 실
로 기화까지 일으킬 정도의 자네와 싸웠더라면 당하는 것은 확실히 나였을
테니까."
왕우진은 한 치의 경계심도 늦추지 않고 차갑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건 모르지. 본시 기화란 내공, 또한 내공의 실체란 단순한
힘에 불과한 것이니까. 반면 무공(武功)이란 각 방면의 기예가 집대성된 것
이라..... 실제로 기(氣)가 술(術)을 당할 수 없는 만큼 아마 우리 둘은 거
의 맞수가 될거야. 다만 싸울 때 보니 자네 무예는 너무 멋이 있었어. 그
뿐일세."
"멋.....?"
"싸움은 무박자(無拍子)일세! 물론 자신이 있어서 했겠지만, 아무튼 행
여라도 나와 부딛칠 때는 그러지 말게. 싸움은 장난이 아니니까."
침착히 등을 돌렸다.
"그럼 약속대로 나는 가겠네. 어쨌건 오늘은 무리하지 말게."
"아! 잠깐!"
그러자 순간 영호충은 한 번 더 크게 흠칫해 그를 불러세우려 했었는
데..... 번쩍! 하지만 왕우진의 모습은 이미 눈앞에 없었다.
돌아설 때는 천천히, 그러나 등이 보였다 싶은 순간 그의 몸은 흡사
표범의 그것처럼 순식간에 한 줄기 빛살로 화해 벌써 바깥으로 쏘아져 나
가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싶은 찰나, 장내에는 또 한
번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 발생했다.
"아아아악.....!"
"크아.....!"
돌연 그가 사라진 문밖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처절한 단말마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헛.....?"
더불어 이에 놀란 영호충이 급급히 주루밖으로 솟구쳐 나가자 그곳에는
또한 사뭇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광경이 벌어져 있었는데.....!
#439 권지영 (MORBID )
[자객십결] 11장 격돌(激突) ..3 (1부끝!) 08/03 21:44 150 line
더불어 이에 놀란 영호충이 급급히 주루밖으로 솟구쳐 나가자 그곳에는
또한 사뭇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광경이 벌어져 있었는데.....!
시체!
그러했다.
정작 있어야 할 왕우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체 어느틈에 다가와 있
었던지 여섯 구의 검은 복장을 한 사내들의 시체가 질퍽한 핏물속에 나뒹
굴고 있었던 것!
결국, 행색을 보면 이들은 분명 이삼랑이 말한 일당 중의 하나임이 틀림
없었고, 왕우진은 쏘아나가는 즉시 그런 그들을 베어제낀 후 눈깜박할 사이
에 계속 모습을 감추어 버린 것임이 확실한 것이다.
실로 상상을 불허할만치 악날하고도 쾌속한 솜씨!
"정말 엄청나군.....!"
이에 영호충은 내심 어이가 다 없어졌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럼에도 그는 결코 이 무서운 살인자에 대한 적개
심이나 싫다는 감정이 생기지 않았는데.....!
아니, 실상 그런 따위는 애시당초 그를 뒤쫓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러했
다고 볼 수도 있었다.
역시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은 살인자라는 점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
을까?
더우기 첫 대면!
비록 일 각여의 짧은 조우였었지만 지금은 전혀 뜻밖에도 그로부터 좀
처럼 느끼지 못한 어떤 참다운 인간의 냄새까지 맡게 된 셈이었는데.....!
그것은 실로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일이었다.
기실 온통 살인으로 점철된 저 냉혹한 범죄자에게서 인간의 냄새가 나
다니.....!
"흠, 역시 이상해.....! 더우기 아무리 부득이한 상황에서 한 일이라 해도
법복(法服)을 입은 내가 저 가공할 살인자와 합의까지 보고, 이거 진짜 이
래도 되는 것인가?"
이에 영호충은 그만 자신도 모르게 한 줄기 실소를 머금었다.
"더더구나 했다는 이야기들 조차 잔뜩 쓸데없는 소리만, 잔뜩 겁을 먹고
정작 물었으야할 신궁가의 것은 꺼내지조차 못했으니.....!"
다소 허탈한 기분,
하나 분명히 소득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주삼패의 일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따라서 목표를
확인한만큼 이젠 그를 찾아내기가 결코 어렵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한 번 말문이 트인 이상, 다시 잡았을 때 여하한 경우가 아
닌 다음에는 신궁희연의 일에 관한 것을 알아내기도 어렵지 않을 것!
"흠, 스스로를 죽어 마땅한 살인자라고 인정하는 살인자라.....! 어쨌건
상대를 알았으니 다음번에는 좀 더 주의를 기우려야겠군.....!"
툭, 영호충은 한 번 더 쓴웃음을 지었다.
한데 바로 이때,
'응.....?'
그의 입가에서 웃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실로 기이한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만치 찬바람이 생쌩 부는 거친 산길을 따라 조그마한
청노새를 탄 한 백의청년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인데.....!
한데 기이한 일이란 바로 이 청년의 모습이었다.
비록 바람막이의 피풍에 남자의 옷을 입고 있긴 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모습하고, 언뜻 보기에도 그는 분명 여자가 아닌가?
더우기 챙없는 흰 방갓 아래의 그 얼굴이 결코 낯설지가 않다.
'맙소사! 그러고 보니 저 얼굴은 바로.....!?'
그러자 유심히 그 모습을 살피던 영호충은 그만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노운설(魯雲雪)!
바로 그러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분명 자신이 노목삼의 집을 찾았을 때 차(茶)를 가지
고 왔던 그의 딸 노운설이 아닌가?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냐! 저 처녀가 어떻게 여길.....!?'
이에 영호충이 당황하는 사이, 공교롭게도 저만치 앞을 지나려 하던
노운설이 그를 본듯 문득 질문해왔다.
"저어..... 실례지만 거기계신 무사님, 한 가지 여쭙겠는데 혹시 이 길로
검은 죽립을 쓴 흰옷의 다른 무사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지 못하셨나요?"
검은 죽립에 흰옷!
'흑보살.....!?'
순간 영호충은 한 번 더 가슴이 철렁 주저앉았다.
기실 이런 차림의 무사라면 분명 왕우진을 묻는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저 우연히 함께 도박을 했을 뿐, 그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했
던 노목삼의 딸이 어쩐 일로 그를.....!
갑자기 머리가 혼란해 지고 골이 지끈지끈해지기 시작했다.
"앗.....!"
하지만 미처 그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멀리서 잠깐 말(言)을 물었
던 노운설은 허둥지둥 청노새를 몰아 황급히 다시 항주쪽으로 내빼기 시작
했다.
죽어있는 자들을 본게 분명한 것,
'세상에 대체 이게.....?'
그러나 영호충은 미처 그녀를 불러세울 엄두조차 못내고 계속 얼떨떨한
기색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실로 어이조차 없는 일!
만약 짐작이 옳다면 저 아름다운 처녀는 역시 흑보살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유는 둘 째라치더라도 조금만 살피면 금시 여자라는게 드러
날 정도의 저 엉성한 남장차림에, 화적(火賊)들이 들끓는 이런 산길을 칼
한 자루 조차 없이 홀 몸으로 가고 있는 저 기막힌 꼬락서니하고.....!
실로 어이가 없어도 유만부득이다. 이쯤되면 이만치라도 무사히 올 수
있었다는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는데.....!
"핫핫..... 나 참 진짜 기가 차서.....!"
이에 어리둥절해 있던 영호충은 결국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저 여자 이대로 뒀다간 큰일나겠군! 뭐가 뭔지는 알 수 없지
만 대체 이 강호(江湖)라는데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도 모르는 것인가?"
뒤따라, 그는 곧 다시 서둘러 노운설이 사라진 방향으로 치달리기 시작
했다.
말마따나 큰일나기 쉽상이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는 몰라도 이제 곧 밤이 올 것, 화적은 둘 째
치더라도 닥치는 추위에 맹수에.....!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
* * *
하지만 이런 일들과는 하등 상관없이.....!
"네 이놈들---!"
"크아!"
"아아아아악.....!"
이 무렵 왕우진은 또 다시 살인을 하고 있었다.
이삼랑이 언급한바 상대는 역시 지난 백루의 일당들과 흑막(黑幕), 청
사(靑蛇)라는 같은 집단의 살인자들!
그들은 확실히 도처에 매복을 한채 왕우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왕우진이 주루를 뛰쳐나가자 그들은 곧 사방의 매복에서 튀어나
와 열 씩, 혹은 스물 씩 무리를 지워 그를 덮쳐들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크아아악.....!"
그때마다 왕우진의 악받친 눈이 불을 뿜고 처절을 극한 비명과 함께
선혈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왕우진의 몸놀림은 거의 신들린 사람처럼 거칠었다.
치는가 싶으면 찌르고 베고 휘젖고.....!
무박자(無拍子)!
그러했다.
앞서 영호충이 보여준 무예가 춤을 추는 듯 아름다운 것이었다면 전문
적으로 사람을 죽여온 자객의 칼인 그의 무예는 완전히 광란적인 것.....!
일거수 일투족--
한 번 씩 그의 장검이 허공을 헤집을 때마다 덮쳐드는 자들은 여지없이
한 둘씩 목이 떨어져 나갔다.
이에 그는 흑점을 나서기 부터 지금까지 어느새 또 다시 무려 사십여
인의 사람을 죽였다.
이쯤되면 그로서도 이미 제정신일 수 없다.
아수라(阿修羅)!
실로 상상만해도 무서운 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 나는 결코 무고한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미루어 봐 그는 단언코 악당이 아니었다.
또한, 비록 또 다시 이렇듯 미친 사람인양 칼바람을 일으키며 살인(殺
人)을 하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이 또한 결코 자의(自意)가 아니었다는 점
인데.....!
영호충은 그에게서 참 사람의 냄새를 맡았다 했던가?
살(殺)--!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
살(殺)--!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죽여야 한다!
살(殺)--!
어차피 잘못 끼워진 첫 단추! 인생(人生)에 한 번 잘못된 발을 내딛었으
므로.....!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었다.
[ * 자객십결 제 1 권 완(完) * ]
2 권에서 계속됩니다.
첫댓글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요...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해요.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ㄳ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입니다
죽여야 산다 자객10결~~~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보고 있습니다~~~
즐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