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 중에는 자신이 부른 노래와 흡사한 삶은 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산장의 여인을 불렀던 권혜경은 노래가사와 똑 같이 적막한 산장에서 죽음을 맞았고...
그 외에도 많다.
오늘은 가수 송춘희를 보자.
그녀의 집안은 서울에 교회를 세울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물론 송춘희 자신도 그러했다.
그러다가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송춘희의 삶도 180도 바뀌어 버렸다.
한창 잘 나가던 때는 방송에서 하루 20회,
극장공연 5회, 밤업소 8군데를 다닐 정도였다.
어느 공연 때였다.
청중 하나가 물었다.
'수덕사에 가보긴 했나요?'
그 말에 감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절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한 그녀였다.
마침 수덕사에는 그 유명한 비구니 '일엽스님'이 계시던 곳이었다.
일엽스님에 대해서는 이름 정도만 들어 봤지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러나 '수덕사의 여승'은 바로 일엽스님을 연상케하는 내용이었다.
일엽을 만나면서 송춘희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
여기서 잠깐 일엽 스님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일엽/김원주의 아버지는 기독교 목사였다.
일엽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가수 겸 배우 윤심덕이 고향 친구였다.
어릴적부터 천재적인 문학도 기질이있어 12살에 '동생의 죽음'이란 詩를 썼다.
친동생의 죽음을 슬퍼한 시였다.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詩이다.
학교에서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최초의 신체시라고 배웠으나
이는 수정되어야 할 대목이다.
그리고 잇따라 부모가 모두 죽고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외할머니 덕에 이화여전을 다닐 수 있었다.
일엽은 학교를 졸업하고 곧 미국 유학을 다녀와 연희전문 교수로 있던 40대 홀애비와 결혼했다.
외할머니 마저 죽고 나자 누군가 자기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신체 장애자에다 나이 차가 너무 많아 이혼을 하고 일본 유학을 떠났다.
일본 유학에서 은행가의 아들과 연애를 하여 임신을 하고 남자 아이를 낳았다.
물론 결혼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귀국하여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지 '신여자'를 창간한 것도 이때였다.
일엽이란 필명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 본 이광수가 지어준 것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이광수와도 사랑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가슴 속은 늘 텅 빈 폐허였다.
그녀가 폐허 동인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삶의 고뇌에 빠져 허우적거릴 즈음에 불교에 귀의하여 수덕사의 여승이 되었던 것이다.
이 때 쓴 작품들이 '청춘을 불사르고',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 등이었다.
청춘을 불사르고는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재아재 바라아재'는 바로 일엽의 일생을 다룬 영화였다.
임권택 감독은 출가하기전 일엽의 사랑을 리얼하게 다루기 위해
정사장면을 넣었다가 불교계로부터 아주 혼줄이 나서 모두 지워버렸다.
여기서 일엽 스님의 유일한 핏줄을 보자.
일본에서 낳은 사생아는 14살이 되자 한국으로 건너와 어머니 일엽을 찾았다.
아들은 본 일엽은 단호히 말했다.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라!'
그리고는 돌려 세웠다.
일본으로 돌아가 동경대 미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유명한 화가가 되었으나
어머니의 나라를 잊지 못해 다시 한국으로 와서
어머니의 길을 따라 스님이 되었다.
김천 직지사에 머물고 있는 일당 스님이 그다.
그가 쓴 책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는
어머니라고 한 번 부르지 못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여기에 다시 신여성 나혜석이 등장하게 된다.
나혜석은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아자 문인이자 여성해방론자였다.
일엽과는 일본유학 동기였으며 폐허 동인으로도 함께 활동했다.
나혜석은 신여성 답게 3남매의 엄마이면서도 최린과 사랑에 빠지면서
남편과 이혼을 하고 사랑을 택했지만
최린으로부터도 버림받으면서 폐인이 되어 갔다.
나혜석은 일엽 스님이 사미계를 받은 수덕사를 찾았다.
나혜석은 수덕사 앞 수덕여관에 머물면서
아침저녁으로 만공스님을 찾아 출가를 하겠다고 애원했지만 만공은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출가를 포기한 그는 행려병자처럼 세상을 떠돌다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나혜석이 수덕 여관에 머물 때 이응로 화백이 대선배인 나혜석을 자주 찾아 왔다가
나중에는 그 여관을 매입해서 작업실로 쓰다가 프랑스로 떠났다.
우리나라 예술사에 길이 남을 3대 천재가 이곳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
다시 송춘희 이야기,
송춘희는 수덕사를 찾아 일엽을 만났지만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그 무언의 대화는 장편을 읽는 것보다 더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고개를 드니 부처님이 빙그레 웃고 계시더란다.
그리고 나서 광덕스님/서울 봉덕사 주지의 인도로 불가에 귀의하였다.
이제는 찬불가 가수로 부처님을 찬양하면서 교도소와 소년원을 가장 많이 찾는 불자가 되었다.
*
나혜석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일당 스님에 대해서는 별로 얼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다 아는 유명한 화가스님이시다.
서경
첫댓글 서경님의 덕분에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알아가게 되네요. 일엽스님의 일생을 읽어 내러 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릅니다.
에고...비도 오는데 제가 공연히 골목대장님을 울린 건 아닌지요...따뜻한 차 한잔으로 힘을 내자구요...아자!!!
사랑에는 실패도 성공도 없는것 이라는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는 전혜린여사와 함께
길들여지지 않는 여인들입니다.
창밖에는 장마비가 하염없이 내리는데, 서경님의 글을 읽으면
인간의 참 행복과 불행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봅니다.
오늘 산엘 갔으면 이슬이 한 잔 나눌텐데, 아쉽습니다..,좋은 시간으로~~~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요즘 산에도 잘 안 보이더군요? 잘 계시지요?
노래방가서도 밝은노래 신나는노래만 불러야 겟네요~ .~ㅎ
애수가깃든 노래가 좋기는 한데요..ㅎ
시대에 굴복하지않앗던,,신여성의 선두,닮고싶엇고 흉내라도내보고싶엇던 불꽃같은 삶을 살아간 인물들이지요~
팔자대로 가는 거여, ㅎㅎ~
마당발 서경님의 다음얘기가 궁금해 지네요
일엽스님 아들이 스님이 되었다는 얘긴 지나가는 바람결에 들은것 같기도하고...
우리곁에서 멀어진 유행가 가수 송춘희의 새로운 이야기.
잘보고갑니다
일엽스님,윤심덕, 나혜석 이광수...
젊은 시절에 그리워했던 사람들.
비오는 날 이런저런 생각이~ㅎ~~
서경님의 글 잘 읽고 감니다.
다음은 "전혜린"편 부탁해도 될까요?
고마워요...전혜린 이야기는 옛날 이곳에도 썼고...또~전혜린이나 그의 남편 김철수 교수를 너무 잘 아는지라...
서경님
지금 밖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네요..
이럴땐 동네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책 제목들이나 일별하다 와야겠네요.
혹시 압니까?
제가 오랫만에 이쁜짓 했다고 (청소할 수 있도록 방콕을 피해줬다고)
마눌이 정구치 부친게 부쳐놓고 막걸리 한잔 딸아줄지 모른다고 은근히 기대하는 못난이랍니다.
아...동네 도사관에가시면 제 책들 찾아봐 주셔요. '이영직'으로 검색하면 뜰거요. 구청 도서관에는거의 다 갖추고 있더군요...
몰랐던 사실도 알게되고 ...
흥미로운 이야기에 머물다 갑니다
비오는 날에 주절거려 본 것입니다,. ㅎ~ 좋은 시간 만들어가셔요!
서경님을 통해 이런 저런 많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잘 모르고 있을 뿐이지 시대마다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사람들은
구석구석에 많이 있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갑장이시네요...가끔 뵈어요~~~
서경님의 끊임없는 잡학시리즈 만땅 기대합니다.
오프에서 일배 넙죽 올리겠나이다....ㅎㅎ
요즘 좀 쉬는 기간이라 자주 올립니다... 고마워요~~~
새까만 후배들이...
선배님들의 과거사를 보고 들으면...마음이 찡합니다.
그렇지요...그런 아픔 하나쯤 있어야 뭔가 이룩하는가 봅니다...
이상한건
책장을 넘기며 책을 읽으려면 눈이 아프고 머리가 띵해 오는데
이곳에 올려진 글을 읽으면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일까요? ~~~
어떤 답이 달려질까 그것도 궁금하네요. ㅎ~~
이미텡션과 오리지날 픽션과 넉픽션 카피와 복사
퍼온글과 창작 모방과 예술차이요 대글은 창작 예술 시기때문에 그러하오
눈으 피료는 초록색이나 푸른 바다를 바라보세요
아마도 그건 방장님께서 아날로그가 아닌 IT세대인 소녀 이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ㅎㅎㅎ
이그~~~ 그냥 '서경'이 좋아서 이 방의 글만 보면 눈이 번쩍뜨인다...그렇게 쓰셔도 되는데, 벌써 이방 님들이 다 알았잖우~~~ㅎㅎ~ 8월 5일에 존 소식을 기대하면서...
에~~헤~!!
그건 바로!~삶의 이야기 방장님이시니..당연지사!``왜? 글 올리신 분들이 넘 이쁘니깐...맟쵸??
인적없는 수덕사에
밤은 기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온님 잊을길 없어
법당에초불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의 쇠북이은다
가사가 속세에 두고온 님을 그리는
애처러은 여승의 외롭고 보고싶은 마음을 법당의 분위기와
풍경을 리얼하게 잘 표현한 섹소폰의 흐느끼는 소리에 담아 연주하면 뿅가지요
가사만 읽어 내려가도 감정이입되어,
저도 뿅가려합니다.
예술, 예능하곤 워낙에 담을 쌓고 사는 인간인 관계로 뭐라 할 말이 없구요~
딱 한가지 공감 가는 대목 있어
감히.....
노래~
슬픈 음악만 딥따 좋아하는 사람과
유쾌, 발랄한 음악만 좋아하는 사람
가만히 보면 일상의 행태조차 음악의 성향과 비슷한 면이 있더군요.
전...
혼재되어 있지만요~하하하
감사드립니다. 글 읽게 해 주심에.
늘 건안하시고오...
잠깐 동안.... 장편소설을 읽었어요...
늘~~~~~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다음 책 마무리하느라 산엘 몬갔더만...모델 바꿀까 부다...ㅎ~
헛 참....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한 40 여년 동안 불러온 나의 18번..."울고 넘는 박달재" 를 다른걸로 바꿔야 돼나...? 서경님 땜시 신경 쓰이네요.ㅎㅎㅎ
ㅋ~~선배님...이제 다 넘었지 않습니까... 그냥 그걸로 하셔요!
아~ 삶이란~ 참 슬프고요.
애절한 사랑은 이룰수없는 사랑인것 같습니다.ㅎ
우리동네 책방에는 서경님책이 이제 방금 들어와 진열도 안해 놨드라고요.제목을 얘기하니 오늘온 책이라며 찿아주네요.ㅎ
아 송춘희님이 불교에 귀의 하셨군요.... 수덕사의 여승이란 노래를 부른덕에...그리 되었군요. 그 노래가 워낙이 유명세를 탔으으니... 찬불가를 부르며 남은 여생을 보내는것도 보람이 있겠요~~^*^
세월이 노래를 따라가는것이 아니라 인생이 노래를 따라 갑니까?
그래서 요즘 계속 사랑 노래만 듣고 부르는데.......사랑이라는것이 너무아픈 사랑. 가슴찢어지는 사랑.
이룰수 없는 사랑.... 누가 말했나.... 사랑해서 미안해..... 이게 뭐야? 사랑타령.....
작은소망/곽성삼 듣고 또 듣고...... 사랑이 있어야 기쁨이 있어야 이세상 살겠지.............듣기만 하고
나는 가수가 아니니깐 인생 바뀔 염려도 없고....
지식인들은 왜 단순한 삶을 살지 못할까요?
매번 댓글 쓰진 못하지만 많은것을 알게 해주시는 서경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울 손녀가 '서경'입니다.ㅎ
며칠전 26일 친구들과 수덕사에 다녀왔어요 ,,나혜석님이 머문곳 이응로 화백님이 돌에 스케치한것 보고 왔어요
그 분들의 숨겨진 많은 이야기........
서경님....정말 감사드립니다.좋은글...계속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