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발소도 미장원도 최고의 시설이 아니면
손님 잡기가 그리 쉽지 않지만
옛날엔 시골엔 이발소 가기가 쉽지 않았다
시골 면 단위에 한 두개 정도 이발소가 있었고
그것도 현찰을 내고 이발 하는 것이 아니요
일년에 두 번 그러니까
보리때 보리 한말 가을에 쌀 한말씩 주고 하는 모곡제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나마 모곡을 주고 이발을 하는 사람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나 어릴때 우리 집에 두손으로 하는 이발 기계가 있었다
우리 큰 형님이 미군부대 근무하면서 구해놓은 것인데
동네 사람들이 서로 자기 머리좀 깍아 달라고 우리집에 몰려 들었다
우리 형님이 이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기계 하나 가지고 있는 것 뿐이었는데....
그 기계마져 잘 깍이지않아 머리가 지 씹히면 따가워 눈물을 징징짜면서
이발비 아끼려 머리 대밀고 있는 사람들 .....
그럴 때며는 형님은 기계에 석유기름을 칠하곤 하는 것을 보았다
불과 5~60십년전 이야기인데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로 들린다.
첫댓글 모곡제~~~
보리고개 때 같이 유행하던 모곡제~~~
이 공간이 5060이다보니 정서가 비슷하고
빨리 이해 되는 옛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 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옛날엔 시골은 돈이 귀하였기에 모곡이란 제도가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우리 시골엔 강을 건너 다니는 나룻배가 있었는데 그것도 모곡제였습니다 ㅎㅎㅎ
그래서 살면서 . 여행 하면서 걷기하면서 우리를 잘사게 하여 주신 분들께 감사 한답니다.
그 고생을 하였기에 요즘 이많큼 살게 된거 아닐가요
연리목님 어쩌면 그렇게 옛날일들을 소상히..
기억하고 계시나요. 잊고 살았는데 웃음이 나오네요.
누구나 어린 추억은 다 비슷 한 거 아닐가요
모곡제가 뭔지 통 모르지만 이발기계로 깍는 모습은 보았지요..
지금 그러라면 모두 도망가겠지요
모곡제란 일정 기간내 이발은 자기 마음대로 와서하고
정한 물량 즉 보리때는 보리 한 말 쌀 때는 쌀 한 말만 주면 되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