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타란토3 - 타란토 대성당을 보고는 해안도로에 아라곤 성채에 가다!
5월 18일 아침에 이탈리아 발끝 레조 디 칼라브리아 에서 기차를 타고는
라메치아 테르메와 카탄자로를 거쳐 시바리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에서 발바닥 용천에 해당하는 타란토 에 도착한다.
걸어서 양쪽에 항구시설이 있는 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구시가지 좁고 오래된 골목길 Vicolo San Maretno 을 걸어 광장에 대성당 을 발견한다.
타란토 는 일찌기 마그나 그라키아 시절에 타란툼으로 인구 30만을 자랑했다는 대도시였다
지만 여기 대성당은 의외로 조촐하고 검소한 편이라 마음 편하게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 밖으로 나오니 그기에 남녀 2명의 어린이 화동 이
앞장을 서고 뒤로는 신랑의 팔을 끼고 면사포에 부케를 든 신부 가 들어오네?
그러니까 오늘 바로 여기 대성당에서 결혼식 을 하는 모양인 데.....
양가 친척들이 입장을 하면서 서로 만나는 친지끼리 양뺨을 부딪는 라틴식 인사 를 한다.
그런데 결혼식은 바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좀 있어야 할 모양이라
기다리면서 찬찬히 성당을 둘러 보노라니.....
벽에 왕관 모양 아래 무슨 추기경 차림의 성인(聖人) 의 동상 이 보인다.
아이들과 성인 동상을 번갈아 보노라니 문득 "로마의 휴일" 과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 출연한 지금은 고인이 된 여배우 오드리 헵번 이 생각나는 데....
그녀는 바쁜 배우이면서 1988년 유니세프 친선대사 가 된 후 수단, 에디오피아, 방글라데시
그리고 엘살바도르 등 50여 곳을 방문해 굴주리는 어린이 구호활동을 펼쳤다.
1992년 9월 오드리 헵번은 소말리아 를 방문했는 데, 굶주리고 병으로 죽은...
어린이 시체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으며 마음 깊이 함께 고통을 느낀다.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 입니다.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그러니 오드리 헵번이야 말로 진정한 성인(聖人) 이 아닐런지???
타란토 는 BC 8세기에 그리스의 라코니아(스파르타) 인이 이주하여
타렌툼 ( Tarentum ) 이라고 불렀는 데.....
마그나 그라키아의 중심이었으나 BC 272년 전투 끝에 로마인이 정복 하였다.
5∼10세기에는 동고트· 비잔틴· 랑고바르드· 사라센 등의 지배를 받았으며
1063년 이후에는 프랑스에 거주하던 노르만인들이 세운
나폴리 왕국령이 되었으며 군항 으로서 아프리카 진출의 기지 가 되었다.
항구로서의 입지조건이 좋은데다가 1960년대에 최대 규모의 이리 제철공장이 건설되는등
풀리아주 상공업 중심지로 올리브유와 포도주의 생산으로 유명하며 인구는 20만이다.
만 안의 섬에 있는 구시가지에는 1,480년에 재건된 아라곤의 성 과
11세기에 건축된 아이보리색의
이슬람풍 고딕 대성당 등이 있으며 좁은 길을 끼고 가옥들이 밀집해 있다.
인근에 "독거미 타란툴라" 로 인해 비롯된 춤 "타란툴라" 가 유명하며
2차대전시에 벌어진 타란토 전투 는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발진 전투로 알려져 있다.
BC 280년에 해상 무역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타란토 항에 로마 군선 10척이 태풍을 피해
들어오자 이에 타란토는 해적 이라 판단하고는 공격하여 5척을 침몰시킨다.
로마는 배상 요구가 거부되자 원로원에서 전쟁을 결의하니 놀란 타란토는 BC 279년
그리스 북부 에페이로스 왕 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35만 보병과 2만 기병의 지원을 약속한다.
에페이로스 왕 피로스는 로마군에 연전연승을 거두었으나
타란토가 병력 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다가 로마군이 증강되자 지구전 으로 가는
상황에서 시칠리섬의 시라쿠사 로 부터 도움을 요청받는다.
당시 카르타고 가 시칠리아를 침입하자 위기에 처한 시라쿠사등
그리스계 도시들이 구원을 요청한 것인데
피로스 왕 은 멀티 플레이어 라도 되는양 시칠리아에 상륙하여 카르타고군을 몰아낸다.
이에 시라쿠사등 그리스계 도시들은 피로스 왕이 구원에 만족하지 않고
시칠리아를 차지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동맹을 이루니 피로스왕은 여기 타렌툼 으로 물러난다.
타렌툼(타란토) 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전투에는 이겨도 병력소모를 견딜수 없어
피로스 왕은 결국 그리스로 철수하니 BC 272년에 타란토는 로마군에 점령 된다.
피로스 왕 이 부하 장수에게 했다는 말이.....
“먼저 이 길로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시칠리아를 점령한 다음에 카르타고 마저
정복한다. 그런 뒤, 포도주나 마시면서 푹 쉬자."
그러자 그 부하 장수는 "그러기에 앞서서 그냥 포도주나 마시면서 지금 쉬면 안될까요?”
피로스 왕도 그러했지만 사람이 마음을 비우고 살기는 참 어려운 것이.....
전관예우 라고 검찰과 부장 판사들이 퇴직후 줄줄이 로펌으로 달려가는 모습에 익숙하다!
그런데 김능환 중앙선관 위원장은 퇴직후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 에서
일하는 모습에 신섬함을 주었는데...
그럼 그렇지? 결국은 생활비(?) 때문에 로펌 율촌에 들어간단다.
성인군자처럼 비친게 부담스러웠다면서 남긴 말이 無恒産 無恒心(무항산 무항심) 인데....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니.... 어쩌랴?
로마는 그리스인 주민들이 사는 땅을 다스림에 있어 타란토의 토지 30% 를
몰수한 후에는 소키(동맹국) 로 자치권을 주었으니
타란토는 로마에 해군기지를 제공하고 함대를 유지할 의무를 가진다.
나폴리에 이어 수여한 이러한 소키(동맹국) 제도는 후일 레기움과 메시나나 시라쿠사
그리고 팔레르모, 세제스타와 예리체 같은 그리스계 도시 국가들에도 적용이 된다.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으며 끝까지 저항하다가 항복한 도시들인 트라파니와 마르살라는
로마가 직접 다스리는 프로빈키아(속주) 로 삼았으니 프라이토르(법무관)를 파견하였다.
후일 이러한 프로빈키아가 확대되자 변방에 있어 적과 전투를 벌일
위험지역은 황제가 총독을 임명하고
후방의 안전한 속주는 원로원에서 집정관을 지낸 자를 파견하게 된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천막이 하나 세워져 있는 데.....
곤충등 사진이 여러장 걸려있는 것을 보자니 무슨 자연보호 캠페인일러나?
골목길을 걸어 남쪽으로 나와 섬을 일주하는 도로에 서니
바다에 떠 있는 흰색 삼각돛을 활짝 편 요트 가 눈이 부시다!
그러고는 아래를 내려다 보니 이 섬은 자연적인 토대가 아니라
그 위에 큰 바윗돌로 높이 15미터에 달하는
튼튼한 방벽 을 쌓은후에 주택을 건축한 것임을 알수 있네?
바다속을 내려다 보노라니 아래까지 환하게 비치는걸 보면 물이
아주 맑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그럼 대도시의 생활 하수 들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일러나?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일주 도로를 걷노라니 저만치 바다에서는
십수척의 요트 들이 떠 있는 모습이 참 부럽네.....
그러고는 섬 동쪽에 이르러 엄청 튼튼한 성채 아라곤 성
Castello Aragonese 이 보이는 데.....
원형 철제 난간을 걸어 내려가면 거기 바닷가에 우아한 레스토랑도 보인다!
역시나 바닷물은 푸르러고..... 한찬 바라보다가 성채 안으로 들어가니
푸른 정원도 보이고 꽃으로 장식된 건물 지나 교회도 보인다.
그런데 직원이 나타나더니 지금은 개장시간이 지났다고 나중에 밤이나 아니면....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고 말하기에 발걸음을 돌린다.
성의 외관만 몇장 사진을 찍고는 돌아 나오다가 바다를 바라보니 마침 해가 지는데....
그 황혼녁의 바다 풍경 이 너무나도 아름답네!!!
그러고는 오른쪽으로 성벽을 끼고 돌아 걸어가면서 보니 성채 안에 단체 관람객이 보이는데
성채는 일정한 시간에 성의 가이드가 단체로 인솔 하며 구경하는 시스템인 모양이다.
첫댓글 굉장해요
유서 깊은 고대 도시는 이제 한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