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택지 추첨 확률 높이려 낙찰용 페이퍼컴퍼니 만든 건설사들
기소돼야 계약해제·토지환수 절차…1사1필지 등 예방대책 주목
아파트 건설현장(자료사진) 2023.3.1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위반 의심 업체를 땅끝까지 쫓아가 공정한 질서를 세우겠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얼마 전 벌떼입찰 의심 업체들을 공공택지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며 한 말입니다. 국토부와 지자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부터 현장점검을 통해 벌떼입찰 위법 의심 정황이 확인된 업체들을 2차에 걸쳐 수사의뢰하며 근절 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벌떼입찰이 대체 뭐길래, 무엇이 문제길래 국토부 장관까지 나서서 맥을 끊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요?
집을 지을 땅을 택지라고 하는데요. 공공기관이 사유지를 사들이거나 국공유지를 통해 택지를 조성하면 공공택지라고 합니다. 보통 ○○택지지구, ○○보금자리지구 같은 이름이 붙으면 공공택지라고 보시면 되죠. LH는 이렇게 조성한 공공택지를 입찰에 부쳐 건설사들에 판매합니다.
공공택지는 대부분 추첨제를 통해 낙찰자를 가려왔습니다. 한 회사당 하나의 필지에 하나의 입찰권만 행사하는 것이 원칙이고요. 건설사들은 확률을 높이기 위해 꾀를 냈습니다. 계열사를 여러 개 만들어 우르르 추첨에 동원하기로 한거죠. '벌떼 입찰'은 그렇게 생겼습니다.
계열사들이 능력을 갖춘 건실한 회사였다면 괜찮았겠지만, 많은 사례가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라서 문제가 됐습니다. 한 회사에 직원 한 명을 두고, 수십 개의 계열사를 만들었던 중견 건설사도 여럿 있었죠. 사실상 계열사는 낙찰만 받고, 업무는 모기업이 수행한 겁니다.
결국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호반·대방·중흥·우미·제일 등 5개 건설사가 2017~2021년 전체 공급 필지의 37%를 가져갔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습니다. 국토부는 한 달 뒤 근절대책을 내놓고 현장 점검에 착수했고요. 그 결과 지난해 10개 사, 올해 13개 업체에 대해 지자체에 행정처분을 요청하고 수사의뢰했습니다.
국토부는 법령 위반 업체에 대해서는 계약을 해제하고 택지를 환수할 계획이라고 했는데요. 6개월이 지난 현재 중흥건설 계열사 1곳, 우미건설 계열사 2곳에 대한 5개월 영업정지 처분만 나왔습니다. 대부분 경찰 수사 중인데, 기소까지는 완료돼야 계약해제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합니다.
대방건설은 파주운정 신도시 일대 택지를 벌떼입찰용 페이퍼컴퍼니로 낙찰받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아직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곳에 지어진 아파트는 이번 주 청약 접수가 끝났죠. 분양이 끝난 뒤에는 가액으로 환수할 수 있다곤 하지만, 혹여나 수분양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국토부는 앞서 발생한 건에 대해서는 피해 사례가 없도록 세심하게 대책을 마련하고, 향후 벌떼입찰을 근절할 수 있도록 예방책을 만들겠다는 입장입니다.
정부는 앞서 종합대책을 통해 1사 1필지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택지 관련 업무는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원칙도 정했고요. 위반한 경우에는 행정처분을 내려 3년간 1순위 청약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합니다.
주택건설사업자 등록증 대여에 따른 제재 대상도 대여 공모나 알선까지 확장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도 곧 이뤄집니다. 추첨제 비율도 낮춰 내년에는 67%까지 경쟁 입찰 방식을 도입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계약 전 지자체가 당첨업체의 페이퍼컴퍼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진행 중이고요.
벌떼입찰이 줄면 택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중소 규모 신생 회사들에 주택 사업 참여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장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건설사들이 사업을 자제하는 분위기라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요. 앞으로 벌떼입찰 근절 대책이 잘 실현되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