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전에 보시라이(薄熙来) 충칭시 서기가 해임되었다. <‘보시라이’를 통해 본 중국 정치 삼국지>를 쓴 것이 바로 6개월 전의 일이었거늘, 역시 정치판이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중국 정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예측가능성’인데, 이번 보시라이 낙마 사건은 중국 정치에도 물밑 역동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드러내보여준 사례가 되었다고나 할까.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사건이 될 것이다.
보시라이의 후임으로는 장더장(张德江) 국무원 부총리가 임명되었다고 한다. 장더장의 별명은 장더장(江德张)이다. 무슨 말인지 의아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국어로는 똑같이 ‘장’으로 들리지만 중국에서 张은 zhang으로, 江은 jiang으로 약간 다르게 발음된다. 江은 장쩌민(江泽民) 전 국가주석의 성이다. 장더장이 얼마나 장쩌민에게 충성하였으면, 사람들이 “그는 张씨가 아니라 江씨”라고 쓴웃음을 짓는 것이다.
언젠가 “한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차기 상무위를 구성할 중국 정치인 가운데 가장 눈여겨 봐야할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물론 시진핑(习近平)과 리커창(李克强)이지만 장더장도 한반도 문제에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대답해준 바 있다. 중국 최고지도부에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할 인물이 장더장이다. 북한에 유학했고,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지린(吉林)성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어 한국 정재계 인사들과도 관계의 폭이 넓다. 물론 장더장의 현재 핵심분야가 교통과 에너지이긴 하지만, 한반도 문제가 부각되었을 때 ‘한국어로 직통할 수 있는 인물’의 존재는 우리에게 상당히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게다가 장더장은 별명에서도 볼 수 있듯 굳건한 ‘상하이방’이다. 중국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최강 계파의 후원을 받고 있다. 실무능력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보신주의적이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 자신이 교통담당 부총리이면서 원저우(温州) 고속철 참사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 정치적인 생명력에 있어서는 어쨌든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향후 그의 역할이 주목된다.
◆ 중국에서는 보수파가 좌파
이참에 중국 정치를 ‘계파’로써 구분하는 국내외 언론의 보도태도에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정치인들은 상하이방, 태자당, 공청단파, 칭화방 등으로 나뉘어 불린다. 요즘에는 중국 정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고 깝죽대는 사람들은 “누구는 무슨 파”라는 식으로 외워대며 유식함을 자랑한다. 그런데,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막상 당사자인 중국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무슨 파’라고 자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실제로 그랬다간 큰 일 날 것이다. 공산당은 하나의 공산당일 뿐, ‘무슨 파’라 자임하는 사람은 종파주의자로 징계를 받을 것이다. 사회주의 정당에서 가장 무서운 비판의 말이 ‘종파주의자’이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출당(黜黨)조치를 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모두가 외부에서 그렇게 ‘불러주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그런 계파가 존재하는지, 그들이 무슨 회합이라도 갖는 것인지, 그런 건 아무도 모른다. 그저, 누구는 누구 아들이니까 태자당, 누구는 공청단 출신이니까 공청단파, 누구는 어디 출신이고 누구랑 친하니까 상하이방…… 이런 식이다. 그리고 태자당들은 상하이방과 친하고, 공청단은 그들과 대립관계에 있고, 군부는 태자당과 가깝고…… 이런 공식을 외워댄다.
중국 정치를 재미있게 접근하기 위해 이런 계파를 설정하여 들여다보는 것이 딱히 나쁘지만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이론적 도그마에 빠져버리면 안된다.
최근에는 개혁파와 보수파, 좌파와 우파 등으로 중국 정치를 양분하여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어느 사회든 개혁과 보수,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기준점’이라는 것이 각이하여 문제가 된다. 중국 정치에서도 똑같은 인물을 외부의 어떤 매체에서는 좌파로, 다른 매체에서는 보수파로 지칭하는 등 혼동(?)이 있는 것 같다.
특히 한국에서는 자본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는 정치인은 대체로 보수파, 사회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는 정치인은 개혁파라고 부르는 반면, 중국에서는 사회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는 정치인을 보수파, 자본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는 정치인은 개혁파라고 부르고 있어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한국에서는 ‘보수파=우파, 개혁파=좌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반대다. 보수파가 좌파인 것이다. 나아가, 정치적으로는 민주개혁을 주장하면서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마치 과거 회귀로 보이는) 평등주의적 보수정책을 이야기하는 중국의 정치인을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성향을 표현하자면 도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도 애매하다.
이번 보시라이 낙마 사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보수파(혹은 좌파)가 타격을 입었다’고 말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후임으로 장더장이 달려간 것은 여러 가지 정치적 메타포를 안고 있을 것이다. 보수파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일 수도 있고, ‘우리가 지른 불은 우리가 끄겠다’는 타협의 산물일 수도 있다. 어떻게 바라보든 자기 마음이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식으로 섣부른 해석이나 격식화는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튼 이래저래, 한국이나 중국이나 정치판이 재미있게 굴러가고 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