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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발해고
유득공 저/송기호 편 홍익출판사 | 2000년 01월 |
유득공의 <발해고(渤海考)>하면 발해를 우리역사에 편입한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정도로 학창시절 공부해 왔다. 유득공은 <발해고> 서문에서 고려가 발해를 우리역사에 넣어 '남북국사'를 쓰지 않았던 점을 통렬히 비판한다. 그 결과 만주지역은 거란과 여진에 넘어가 버렸고 이제 발해 영토를 되찾으려고 해도 아무런 근거가 없게 되었음을 통탄한다. 그는 이런 비판에 그치지 않고 발해를 우리 역사 속에 넣을 것을 주장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 역사상 최초로 발해사를 체계화시켰다.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229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속되었다. 한 때 해동성국이라고 불릴 만큼 문화도 발달하였다. 하지만 유득공의 <발해고> 전문을 번역한 이 책을 보면 본문이 채 100쪽도 되지 않는다. 발해의 왕, 신하, 지리, 관직, 의식과 복장, 물산, 국어, 국서등에 관한 간단한 데이터들이 조각조각 모여져 있다. 그래서 유득공도 책 이름에 역사서의 체제인 세가(世家), 전(傳), 지(志) 말을 붙이지 못하고 간단한 살펴보기란 뜻의 고(考)란 이름을 붙였을 정도이다.
229년의 발해왕국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의 왕의 1년기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건 참으로 안타깝다. 발해 멸망 전후로 10여만 명이나 되는 유민이 고려로 흘러들어왔다는데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한마디로 고려로서는 발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유득공은 정조 시대 규장각 검서관으로서 일하면서 접했던 수많은 자료와 연행을 통해 수집한 자료들을 모두 돌아보며 이 책을 썼을 텐데 활용가능한 자료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놀라울 따름이다.
발해역사에 대한 스토리 구성이 불가능하였던 유득공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여기저기 역사서에 나타난 발해 관련 자료를 단순하게 모아 데이터를 구축한 것이다. 이런저런 왕과 신하와 지역과 관직이 있었다는 정도이고, 가끔 왕의 행적에 대해 조금 자세한 일화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 책은 잃어버린 영토 발해와 그 역사찾기의 시작이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세부적 내용보다 발해고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모습을 본 것에 일단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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