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는 흘러도 물은 흐르지 않는다
'다리는 흘러도 물은 흐르지 않는다'는 말은 부대사(傳大士)의
시구에서 비롯된 말로서 <오등회원>과 <전등록> 등에 나온다.
빈손으로 호미 자루를 잡고 空手把鋤頭
걸으면서 물소 등에 올라탄다 步行騎水牛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는데 人從橋上過
다리는 흘러도 물은 흐르지 않누나 橋流水不流
빈손인 채로 호미 자루를 잡고 걸어가는 상태에서 소 등에 올라
타는 것은 인간의 기예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고정되어 흐르
지 않는 다리가 흘러가고, 반대로 흘러야 할 물이 흐르지 않는다
는 것은 보통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모순된 것이
다.
선의 입장은 스승과 제자간의 문답으로도 알 수 있듯이 상식의
세계를 초월해 있으며, 망상이나 분별심에 의한 상대적 인식을
벗어나 절대적 인식을 향하고 있다. 때문에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하고 모순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상례이다.
상식의 세계에서는 절대적 인식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깨달음
의 절대적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같은 대립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무아·무심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선은 일반적인 지식이
나 논리를 부정하고 초월하여 순수한 참지혜를 얻으려 하기 때문
에 비논리적 논리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다 절대적 진리에 투철
하기 위해서는 비논리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초논리적인 자세로 임
해야 하는 것이다.
부대사의 게송은 모순인 듯 하지만, 선의 진리성과 입장을 잘 표
현하고 있어서 모순도 없고 불합리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볼
때 비로소 부대사의 게송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다.
부대사처럼 모순된 표현법을 쓰고 있는 궤변론자로서는 중국 고
대의 유명한 혜시(惠施)와 공손룡(公孫龍)이 있다.
혜시는 "오늘 월나라에 가서 어제 도착한다.", "날으는 화살은
가지 않는다", "닭은 다리가 세 개다."라고 말했으며, 공손룡은
"흰말은 말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그 밖의 사람들 중에는 "알
에는 털이 있다.", "흰 개는 검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혜시의 '날으는 화살은 가지 않는다'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 제
논의 '날으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와 비슷하다. '닭은 다리가
세 개다'는 형태로서의 다리 두 개와 정신(또는 마음)으로서의
다리를 합하여 세 개라는 것이며, '흰 말은 말이 아니다'는 '희
다(색깔)'와 '말(형태)'이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흰 말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알에는 털이 있다.'는 알이 새가 되기 때문에 이미 알 속에
깃털이 들어 있다는 것이며, '흰 개는 검다'는 보는 눈이 검으
면 흰 개도 또한 검게 보인다는 논리이다.
<五燈會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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