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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인간시장(人間市場) ..4
그리고 밤, 항주(杭州)의 전당강(錢塘江)을 낀 쾌활림 갑구(閘口).....! 역대로
부터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이런곳이 있었지만, 칙칙한 시궁창같은 전
당강의 한 지류를 끼고 여기에는 싸구려 지분냄새를 풍기며 남자들에게 술과 웃
음을 파는 여인들이 밀집한 소위 사창가(私娼街)가 자리잡고 있었다.
낮에는 추루하기 짝이없는 습한 거리이나, 밤만되면 화려한 불빛으로 감쪽같
이 변신을 하고마는 그런.....!
해질녁부터는 눈(雪)이 내렸다.
술취한 남자들과 호객을 하는 여자들로 거리는 몹시 분주했다. 그리고 그런
비좁은 길을, 언제부터인가 손운(孫雲)은 천천히 걷고 있었다.
바로 항주제일내교방의 문전에다 오줌을 내갈겼었던 그 사내.....!
하지만 지금의 그의 얼굴에는 그때의 웃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표정은
극도로 비통했으며 사뭇 초라하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결국 또 오고 말았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벌써 수 백 번도 더 다짐했었던 이곳..... 두 번 다시
는..... 기억에서 조차 지워버려야 겠다고 생각했던 이곳에.....!'
휘황한 불빛을 강물처럼 어깨뒤로 넘기고 걸으며..... 그는 침통히 생각하고
있었다.
'축축히 습진 공기..... 인간의 혼을..... 생명을 사냥하는 사망(死亡)과 음부
(陰部)로 이어진 거리.....!
나는 대체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쾡하니 들어간 눈..... 모습은 몇일 전에 비해 몰라볼 정도로 초췌했다.
'오늘 만큼은 기필코 끝을 내야겠다..... 어차피 구제받지 못할 영혼이라면
차라리 죽어 버리는게 났다.....!'
이때, 문득 스치듯 지나던 그를 지분단장한 한 여자가 가로막았다.
"호호호..... 손님, 즐기시려고 오셨나요? 하다면 소녀는 어떠신가요?"
하지만 손운은 여전히 극도로 침울히 얼굴을 떨군채 말했다.
"이러지 말게나. 나는 가는 곳이 따로 있다네.....!"
그러나 여자는 물러서지 않고 더욱 자신을 밀착시켜 오며 오히려 답싹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잉, 거기나 여기나.....! 하자는데로 해드릴께. 응응.....?"
떼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글쎄 이러지 말래도.....!"
"앗.....!"
이에 손운은 자신도 모르게 여자를 밀어내는 손에 힘을 줬는데, 그게 다소 과
했던지 여자는 그만 털썩 눈이 녹아내리는 질척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
다.
순간 여자의 눈에 매섭게 독이 올랐다.
"야이 개새끼야! 싫으면 곱게 싫다고 할것이지 네가 뭔데 사람을.....!"
그 즉시 소매를 걷어부치며 발딱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 오늘 임자 잘못 만났어! 그러고도 멀쩡할줄 알아?"
필경 무슨 일이 생겨도 생길 찰나인 터, 한데 이때 그런 그들을 본듯 다른 분
단장을 한 여자 하나가 나서며 말렸다.
"얘, 그만해둬. 그것으로 됐어....."
그러자 넘어졌던 여자는 이번에는 그녀에게 소리쳤다.
"뭐예요 언니! 저 자식이 날 밀쳤어요! 그런데도 참으란 말이예요!?"
말리던 여자는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그건 나도봤어.....! 하지만 저 사람이 바로 손운이야.....!"
"엣.....?"
그러자 넘어졌던 여자의 눈이 놀란듯 잠시 휘둥그레 뜨여졌다.
".........."
이어 그녀는 그런 눈으로 한 동안 침울히 고개를 떨군채 선 손운을 보더니 화
난 얼굴로, 곧 다시 그를 외면했다.
"체! 설마 그 병신같은 얼간이가 바로.....! 그럼 특별히 한 번 봐주지 뭐, 솔직
히 갈굴 위인도 못되니까!"
필시 그를 알고 있었던 듯 했다.
"미안하네. 본의 아니게 옷까지 버리게 해서....."
동시에 손운은 침통히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날리는 눈발이 숙인 그의
뒷모습을 더욱 어둡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 각 쯤 후,
이윽고 손운이 도착한 곳은 근 오 리(五里)에 이르는 사창가의 중간쯤에 위치한
춘화(春和)라는 비교적 규모가 큰 한 창기(娼妓)의 집이었는데.....
깔린 어둠과 눈발, 그리고 휘황한 홍등이 본래의 추루함을 감춰주고 있긴 했
었으나 다시 보면 금시라도 냄새가 코를 찌를 듯한 흉칙한 몰골의 이 층 목옥
(木屋)이었다.
"호호..... 어서오세요, 나으리! 묵고 가실 생각이신가요?"
그러자 속에서 즉시 한 요란하게 분단장을 한 한 여자가 호들갑스런 웃음과
함께 뛰어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멋! 당신은.....!"
뛰어나온 여자는 손운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깜짝, 크게 놀라는 기색으로 주춤
거렸다. 그라는 존재를 역시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허허..... 또 왔네.....!"
하지만 손운은 개의치 않고 한 줄기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난향(蘭香)은 있는가? 거리에는 요즘나오지 않더군.....!"
"아..... 글쎄..... 있긴 하지만.....!"
"좀 불러 주게나."
그러나 처음 볼때 부터 놀란 기색을 보였던 여자는 잔뜩 당황하기만 할 뿐 한
참동안 대답을 못했다. 필시 무슨 말못할 사유가 있는 듯. 하지만 이윽고,
"안되겠나.....?"
"아..... 알겠어요. 그럼 우선 안으로.....!"
머뭇거리던 여자는 손운이 두 번째 청을 하자 급기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본래의 추루함을 어둠과 휘황한 홍등으로 악마같이 변신시킨 창옥(娼屋)내로 끌
어들였다.
하지만 일단 손운을 칙칙하고 비좁은한 방속에다 밀어넣은 그녀가 다시 당황
스레 찾아간 곳은 그가 요구했던 여자를 부르러 간것이 아니라, 뒤꼍의 한 후미
지고 칙칙한 골방.
"저어, 나..... 나으리!"
문을 열자, 서너 평 남짓한 골방속에는 몇몇의 화복차림을 한 사내들이 한창
노름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 골패짝을 주무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내들의 주위에는 빨래판처럼 칼자욱이 가로 세로로 난 섬찍한 모습의 건달들
이 서 있었다.
그 중 골패짝을 쪼이던 육 척 가량의 비둔한 체격을 지닌 한 오십 대 화복사내
가 호들갑스레 나타난 여자를 향해 무직하게 입을 열었다.
"웬 일이냐 바쁜 시각에? 무슨 사고라도 생겼느냐?"
여자는 잔뜩 겁을 먹고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런게 아니오라..... 실은 그 사람이 또 찾아왔기에.....! 그 손운이란
문사말이어요.....!"
"뭐가 어쨌어.....?"
순간 화복사내의 피둥피둥 살찐 얼굴의 안색이 싹 돌변하는가 싶더니, 탁! 들
고 있던 골패짝을 내려놓으며 섬칫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흐흐..... 정말 별 꼴같지도 놈이 자꾸 속을 썩이려 드는군. 대체 미쳐도 곱
게 미쳐야지 어디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것이.....!"
눈빛이 더더욱 흉흉해졌다.
"안되겠군! 이러다간 아무래도.....! 불가분 더 늦기전에 한 번 손을 봐주는 수
밖에.....!"
여자는 흠칫 몸을 떨었다.
"또 난향을 찾고 있사온데.....?"
화복사내는 일순 가벼운 냉소를 머금었다.
"흐흐..... 좋아. 아무렴! 어쨌거나 손님이니까 일단 불러주도록 해! 아무런 내
색도 하지말고!"
"아..... 알겠사와요. 그럼 분부대로.....!"
그러자 여자는 한 번 더 몸을 떨며 허리를 조아렸는데..... 상황을 보면 바로
저 화복사내가 포주(抱主),
입가에 어느새 진득한 살기같은게 떠오르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다시 일 각,
난향(蘭香)이라고 했었던가? 이런 화복사내의 일은 전혀 알바없이 손운은 급
기야 자신이 원하던 여인과 비좁고 칙칙한 한 방안에서 마주 앉을 수 있었다.
한 쪽에 때묻은 이부자리가 널부러져 있는.....!
한데 등촉이 흔들리는 이 추루한 방안, 속에는 실로 기이하기 그지없는 일이
몇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주앉은 여인 난향의 미모로 인한 것이었는데.....!우선 그녀는
아름다웠다.
옥같은 피부에 서글서글한 눈매하며.....
한 마디로 가히 천하절색(天下絶色)이라고나 할까?
도무지 이런 추루하고 더러운 이부자리가 깔린 사창가에 저토록 아름다운 여
인이 있다는게 믿어지지 조차 않을 정도로!
다만 한 가지 차마 가슴아픈 것은, 이런 아름다움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녀의 양 쪽 뺨에는 흡사 지렁이가 기어가듯한 두 개의 길고도 흉칙한 칼자욱이
나 있다는 것이었다.
절대의 아름다움과 절대의 흉칙함!
때문에 그녀의 가히 천하절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름다움도 지금은 거
의 반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만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었기 망정이지 만약 일반의 여자
가 양쪽 얼굴에 이런 흉칙한 칼자욱이 나 있었더라면 아마 흉신악살(凶神惡殺)과
같은 꼴을 면치 못했으리라.
실내의 기이한 점이란 바로 이 일련의 몇몇 상반된 부조화였다.
".........."
그러한 가운데 손운과 난향, 이 두 남녀는 침울히 마주앉아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앗! 살살.....!"
"헉헉.....!"
벽이 얇아서인지 옆 방에서는 연신 어떤 남녀의 거친 숨소리와 농탕질을 치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오고 있었다.
이때, 고개를 옆으로 돌린채 계속 손운을 외면하고 있던 난향 그녀가 이윽고
극도로 침울한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당신..... 왜 또 오셨나요? 그토록 구박과 천대를 하고 다시는 오지말라고 했
었는데도.....!"
"허허..... 실은 나역시 오지 않으려 했었지.....!"
손운도 침울히 고개를 떨군채 대답했다.
"하지만 오지 않을수가 없었소. 나도 모르게 발길이 저절로 옮겨졌으니
까.....!"
순간 난향은 흠칫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곧 다시 눈에 얼음알같이 싸늘한 빛을
떠올리며 비로소 정면으로 손운의 떨군 얼굴을 직시했다.
"그 발길이 미쳤군요! 소녀같으면 도끼로 잘라버리고 말겠어요!"
끔찍한 소리..... 음성은 처음의 침울함과 달리 서릿발같이 냉랭해져 있었다.
"차라리 나도 그래 버렸으면 속이 편하겠소.....!"
하지만 손운의 침울함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단..... 그래서 당신이 잊어질 수만 있다면.....!"
순간 난향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홋홋홋호..... 손운, 도대체가 당신이란 사람! 난 정말 알수가 없군요.....!"
그러나 웃음은 입으로만, 정작 웃는 얼굴에는 순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세상에 아무리 미쳐도 유분수지! 당신, 대체 나같은 쓰레기 같은 계집을 좋아
해서 뭘 어쩌자는 말이에요? 오늘은 이 남자, 내일은 저 남자! 한갖 수많은 사
내들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 한갖 창녀를.....!"
손운은 찰나 컥하니 목이 메였다.
"제발 말조심.....! 비록 몸을 팔고 있을지언정 당신은 결코 쓰레기가 아니야.
실로 난 당신을 이곳에서 빼내지못해 한스럽거늘 어떻게 그런 말을.....!"
그러나 난향은 계속 웃었다.
"호호호..... 빼내려 하다니? 그래서 그 다음은요? 혹시 나같은 계집과 백년해
로를 해서 함께 살아주기라도 할거란 말인가요?"
"승락하기만 하면..... 그것은 내 소망이지."
손운은 계속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게 안될시에는 구해 주기만이라도.....!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당
신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으니.....!"
"호호호..... 도대체가 말같지도 않는 소리를! 그러다가 혹시 발각이라도 나면
또 어쩔셈이죠?"
난향은 계속 철철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호호..... 그때는 당신이나 나나 우린 모두가 장살(杖殺)을 당하게 되요! 몽둥
이로 온 몸이 피범벅이 되고 뼈가 으스러져 살가죽을 뚫고 나오도록 때려 죽이
는 저 악독한 형벌을.....!"
그리고는 잠시 침묵이 왔다. 손운도 난향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난향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윽고, 마침내 눈물을 닦으며 난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돌아가세요 손운.....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세요. 이젠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마시고.....!"
".........."
이에 손운은 좀 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킨후 극도로 침통히..... 급기야 지그시
한 번 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야겠소.....! 실은..... 안그래도 오늘은 오늘은 그럴 요량으로 찾아온
것인데..... 끝장을 볼 작정으로......!"
끝장을 보겠다!
이어 그는 무겁게 한 손을 소매자락 속으로 집어넣었다.
"하나 그전에..... 난향! 잠시 나를 좀 봐주시겠소.....?"
"아니.....!?"
깜짝! 순간 난향의 눈이 경악으로 가득차 휘둥그레 뜨여졌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소매자락 속에서 다시 꺼내진 손운의 손! 거기
에는 놀랍게도 파랗게 날이 선 한 자루의 섬뜩한 비수(匕首)가 쥐어져 있지 않
은가?
슥! 그러나 손운은 아랑곳없이 계속 그것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갔다.
"앗.....!"
찰나 난향은 파랗게 얼굴이 질리며 더더욱 경악에 찬 외침을 토해냈다.
"대체 무슨 짓인가요 손운! 당신 미쳤나요.....!?"
"헛허..... 미치기는, 너무 정상이어서 탈이지......!"
손운의 입가에 더욱 비통하기 그지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차라리 죽겠어. 어차피 내 이렇게 산 채로 폐인이 되어갈 바에야.....!"
"바보같은.....! 대체 무슨 소리를!"
"허허..... 그러나 사실이오! 난향..... 이미 앞서도 말했지만 솔직히 나는 아
무리 생각해도 살아서는 도저히 당신을 잊기가 힘들것 같아. 또한 그렇다고 멀
쩡히 뜬 눈으로 이런 당신을 보며 폐인이 되어가기는 더욱 싫고.....! 그래서
이 마지막 방법을 선택한거요.....! 차라리 죽거나 당신을 이런곳에서 구하거
나.....!"
얼굴이 참혹하게 비틀렸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묻겠소. 심사숙고하여 하나를 택하시
오. 나를 따라가주겠소, 아니면 이대로 여기에서 내가 죽는 걸 보시겠소?"
극도로 침통한 음성..... 그러나 고뇌에 찬 눈속 깊숙히에는 굳은 결심이
깔려 있었다. 여차직하면 분명 스스로의 목을 찌르고 말 기세!
"손운.....!"
순간 난향의 눈에서 잠시 멎었다 싶었던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운랑!"
이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손운의 품속에 스스로를 내던지며 가슴
헐리우는 오열을 토하고 말았는데.....!
"으흐흐흐흐흐.....!"
손운도 그녀를 으스러지게 부둥켜 안았다.
"악ㅡㅡ!"
"야이, 개 새끼야! 아까부터..... 살살하라고 그랬잖아!"
옆 방의 농탕질 소리는 싸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 *
또 한편 같은 시각, 그로부터 불과 이십여 리가 떨어진 항주성 동문 외곽 쪽
의 한 시가.
여기에는 전혀 상상치도 못한, 차마 어처구니 없다고 해야할 또 하나의 실로
가증스러운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노운설ㅡ!
곧 왕우진을 뒤쫓아 집을 나선것으로 보이는 그녀로 부터 비롯된 것이었는데
, 지난 동령관에서 잠시 모습을 보였던 그녀는 이 무렵 벽금(碧錦)이란 주루를
겸한 한 객잔쪽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결국 그녀는 동령관을 거쳐 이곳까지 왕우
진을 찾아오고 만 것.....!
"헤헤헤..... 어서 어서오십시오 공자, 숙박을 하시려는 것인가요?"
그러자 객잔내에서 즉시 점원 하나가 뛰어나와 그녀를 맞았다.
노운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타고 온 청노새의 고삐를 그에게 맡겼다.
"맞아요. 요기와 숙박을..... 말에게도 여물을 좀 먹도록 해주시고.....!"
"말(馬)이라굽쇼.....?"
그러자 점원의 눈이 일순 어리둥절하게 변했다.
기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게 남자의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청아한
그녀의 음성! 더우기이미 일렀듯, 비록 남장은 했으되 그녀의 차림은 너무도
어색하고 허술한 것이라 조금만 자세히 보면 누구라도 곧 그녀가 여자임을 알
만한 것이었다.
또한 얼핏 보기에는 청노새라 생각했었던 것이 말(馬)이라 한,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어딘가 좀 심상치가 않다.
비록 짧긴 했으나 노새라 보기에는 네(四) 다리가 너무도 곧고 완강하며, 온
통 근육으로 뭉쳐진 다부진 체형과 수려한 두상(頭相)하며.....!
"어이쿠, 그러고 보니 이건.....!?"
이에 다소 기이한 눈빛으로 청노새를 살피던 점원은 곧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크게 당황한 기색을 떠올렸다.
"맙소사! 그냥 노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혹시 이게 바로 서역
(西域)에서 으뜸간다는 말(馬) 청설총(靑雪駿)이 아닙니까?"
사실이라면 실로 놀랄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본시 천하에는 예로부터 하루에 천 리(千里)를 달린다는, 가히 그 가격을 매
길수 없는 세 종류의 명성이 자자한 천하명마(天下名馬)가 있었다.
첫 째 붉은 적갈색에 이마 한 가운데에 흰 점(白点)을 가진 적토마(赤兎馬),
또한 용(龍)과 같은 늘씬한 골격에 달리면 피같이 붉은 땀이 솟는다는 한혈마
(汗血馬), 그리고 끝으로 나귀나 노새처럼 비록 작은 체형을 했으나 그 힘이 지
치는바가 없다는 오추마(烏추馬)! 바로 이 세 종류의 말이었다. 그리고 만약 노
운설이 탄 이 말이 진짜 청설총이라면, 그것은 이 세 종류의 천리마 중 바로 오
추마의 마종에 속해 있는 것이었다.
얼핏 이름을 듣고 생각하기에는 까마귀처럼 검다고 여겨지기 쉬우나, 실제 오
추마는 그게 아니라 짙은 청색을 띄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물론 그 가격은 일반의 사람들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조차도 없다.
명마(名馬).....!
그러나 노운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말씀하신데로 오추마가 맞아요. 처음으로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군요."
"진..... 진짜란 말씀입니까.....?"
순간 점원은 더욱 크게 놀란 기색으로 눈에 기광을 떠올리며 말과 노운설을
번갈아 살폈다.
"이야..... 말로만 들었는데.....! 실상 들은게 있어 소인도 언뜻 그렇게 생각했
을 뿐이지, 이게 설마 진짜 그 희대의 천리마였었다니.....!"
이어,
"아무튼 중한 말임을 알았으니 구유에 잘 끌어다 놓겠읍니다요! 그러니 안심
하시고 어서.....!"
점원은 곧 허둥지둥 말을 안으로 끌어들였고, 노운설도 곧 그를 따라 객잔으로
들어갔다.
한데 그로부터 불과 십여 장이 떨어진 길 모퉁이에는.....
"어쩐지 노새치고는 지나치게 잘 달리는게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더니만 역시
그랬었군!"
또한 실로 뜻밖의 일이 하나 있었다.
철병 영호충!
그러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바로 영호충이 극히 지친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
동령관에서 그녀를 목격한 후 줄곳 여기까지 뒤따라온 눈치였다.
"말 타는게 서툴렀기에 망정이지, 참 나....!"
이어 노운설이 완전히 객잔속으로 사라지자, 그는 지친 얼굴에 피식 실소지으
며 비로소 다소 안심이 되는 눈치로 함께 딸려있는 주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덕분에 몸이 거의 풀죽이군.....! 나도 이젠 좀 쉬도록 해볼까.....?"
초저녁 부터 내리던 눈발이 점차 굵어지고 있었다.
* * *
한데 앞서 가증스럽다 이른 그 불측지변이 일어난것은 바로 그 직후 노운설의
오추마가 묶인 객잔의 말구유 앞!
"..........!"
세 명의 사내가 눈에 한가득 탐욕의 빛을 번뜩이며 여물을 먹고 있는 청설총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그중 하나는 바로 노운설을 객잔을 안내해온 점원!
같은 복장을 한것을 보면 그 우측의 장한역시 필경 이곳의 같은 점원인게 분명
한 것 같았다.
단지 유독 좌측의 사내만큼은 흑색장삼을 입은 행색으로 욕심스레 살찐 중년인
이었는데, 아마도 이 벽금객잔의 주인인 듯한 눈치.....!
"흐흐흐..... 그래. 역시 오추마임이 틀림없다! 가히 금전으로 그 가격을 매기기
조차 힘든.....!"
문득 그가 탐욕에 찬 눈빛을 번들거리며 입을 열었다.
"정말 놀랍군.....! 말로만 들어왔던 이 천하의 명마를 설마 오늘 직접 보게
되다니.....!"
이어 장삼사내는 다시 노운설을 안내한 점원에게 질문했다.
"한데 이것을 타고 온 인물이 계집인것 같다고.....?"
점원역시 욕심스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그렇다니까요? 딴에는 모습을 감추려고 남장을 했던 모양인데 엉성
한 차림하고.....! 필시 많아야 스무두어 살 남짓한 계집임에 분명했었습니다
요.....!"
장삼사내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미심쩍은 점은.....? 혹시 무림인(武林人)인것 같지는 않더냐?"
점원은 눈에 기광을 떠올렸다.
"아니, 그랬다면 장검(長劍) 정도는 지니고 있었을 터이온데 그렇지도 않았을
뿐더러 행색이나 하는 행동거지를 보니 전혀.....!"
"스무두어 살 남짓한 집 나선 계집이라.....!"
장삼사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음침한 기색이 떠올랐다.
"흐흐흐..... 좋아! 하다면 해온데로 한다!"
이어 그는 다시 탐욕에 찬 눈으로 점원을 향했다.
"곧 몽혼향(夢魂香)을 준비해라! 그리고 이오(李吾), 너는 곧 섬(島)으로 가 좋
은 물건이 와 있다고 알리고!"
두둑한 주머니를 점원들에게 각자 하나씩 쥐어주었다.
"흐흐..... 어차피 보는 놈도 한몫이라고, 일이 잘 성사되면 한 번 더 따로 사
례를 할터이니.....!"
"그렇게 씩이나.....!"
순간 두 점원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흐흐..... 잘 알겠읍니다요. 그럼 소인들은 횅하니 섬으로 다녀옵죠!"
이어 두 점원은 서둘러 객잔밖으로 뛰어나갔다.
* * *
그리고 그로부터 한 시진 쯤 후인 축시(丑時) 무렵, 노운설이 묶고 있는 벽금
객잔의 이 층!
모두가 잠든 침침한 객잔의 회랑속을 대여섯 명의 사나운 몰골을 한 장한들이
입가에 음침한 웃음을 띄운채 천천히 소리죽여 걷고 있었다.
손에는 제각기 하나의 크다란 가죽부대와 향로(香爐), 그리고 부채같은 것들을
들고 있었다.
이어 그들은 한 객실의 문앞에 이르러 잠시 안의 기척을 살피는가 싶더니 곧
품속에서 시커먼 수건들을 꺼내 코와 입을 가리더니 향로에 불을 피우고 부채를
저어 연기를 객실안으로 흘려넣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일 각, 연기를 안으로 흘려넣던 사내들은 하던 행동을
멈추더니 곧 서슴없이 객실의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가죽부대에 뭔가 크다란 물건을 담
아 들쳐업고 있었는데.....!
몽혼향(夢魂香)!
만약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필경 사람..... 그것도 노운설임이 틀림없
다. 이어 그들은 계속 몽혼향로 잠재운, 의식을 잃은 노운설을 부대에 넣어 들쳐
업고 조용히 객잔밖으로 빠져나갔다.
뭔가..... 분명히 무서운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차마 말로 이루 형언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첫댓글 다음이 기다려져요.
감삿합니다
너무 재미 있군요
즐감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12-1부터12-4 중복이네요
즐독입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ㄳ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보고 있습니다~~~
즐독이랍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