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인종, 정체성, 그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서 사회적 합의인가? 사회적 강요인가?
우리 사회가 젠더, 인종,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도발적 질문
인종 평등, 소수자 권리, 여성권 등은 자유주의가 낳은 최고의 산물이지만, 가장 불안정한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이 체제의 산물들은 자신을 낳은 체제의 안정을 재생산할 수 없다. 게다가 그 밖에 다른 이유 때문에 각각의 문제는 그 자체로 대단히 불안정하다. 우리는 각각에 대해 합의를 이루고 해결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각각의 내부에서 끝없는 모순과 조작과 환상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것들을 확인하려고 하면 뜯어말리고 말 그대로 단속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믿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합의하라고 요구받는다.
동성애자, 그중에서도 특히 게이에게는 언제나 무언가 이상하고 잠재적으로 위협적인 것이 있다. 동성애는 개인의 정체성의 기반이 되기에는 불안정한 요소이고 어떤 형태의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기에는 끔찍하게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는 언제나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집단에 내재되어 있는 고유한 어떤 것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양성 문제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무엇보다도 제정신이 아닌 사고다. 이런 사고에 동조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없는 정신적 비약을 몇 번이고 해야 하며, 그다음에도 믿기 어려운 개인적, 사회적 고통을 야기해야만 시도할 수 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섹스(또는 젠더)와 염색체는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하드웨어 문제로 인식되었다. 우리가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는 것은 우리 삶에서 주요하고도 바꿀 수 없는 하드웨어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이 하드웨어를 받아들이고 나서 우리는 남성과 여성 모두, 우리 삶과 관련된 측면들의 작동법을 배울 수 있었다. 따라서 하드웨어 문제가 실은 소프트웨어 문제라는 주장이 자장이 제기되고 수십 년 뒤에 버젓하게 자리를 잡자, 갑자기 모든 사람이 섹스는 생물학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사회적 수행>에 불과하다고 믿어야 했다.
오랜 시기 동안 인종은 하드웨어 문제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전쟁의 참화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이유로 합의가 반대로 뒤집혀졌다. 인종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다른 모든 것과 같은 사회적 구성물이 되었다.
오늘날 인종에 관한 언어가 다시 한 차원 고조되고, 인종 간 차이에 관한 주장이 점점 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사람이 인종 간 차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어떤 이들은 분노의 정신으로, 다른 이들은 기쁨에 겨워 조용히 째깍거리는 땅 위에서 폴짝폴짝 뛰는 중이다.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게이, 레즈비언, 바이가 뚜렷하지 않다면, 트랜스는 여전히 수수께끼에 가깝고 그러면서도 가장 극단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때 동등한 권리를 위한 요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선입견과 가정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사람이 새로운 성별 대명사를 사용하는 데 동의하고 반대 성의 사람들과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요구는 광범위한 요구의 스팩트럼에서 비교적 하찮은 쪽에 속한다.
<군중의 광기>는 오늘날 극심한 혼란을 야기하는 젠더, 인종,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고찰했다는 호평을 받아 <선데이 타이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은 민감한 문제들을 분별력 있게 바라보려는 시도를 배척하고 무조건적인 수용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군중은 결국 광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지배적인 견해에 맞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심층적으로 다루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