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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족구100인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김종환
축구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가장 오래된 스포츠이고 배구나 야구의 기원도 최소한 150-250 여년에 달하는 반면, 우리가 즐겨하는 족구는 극히 최근에야 고안된 운동이다.
족구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해외 체류 중이나 여행 중에 족구와 같은 행태의 구기 스포츠가 있는 나라가 혹시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현지인들에게 물어도 봤지만 필자가 여행해본 세계 26 개 국가 중에는 없었다.
익히 아시는 바와 같이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 세팍타크로라는 족구와 유사한 운동이 있지만, 공의 종류나 재질, COURT 의 크기 등 많은 부분에서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 족구라고는 볼 수 없다.
우리와 많은 면에서 유사한 이웃나라 일본에서 조차도, 족구는 극히 생소한 이름으로 이 종목을 아는 사람도 없고 당연히 하지도 않는다.
추측컨데 족구야 말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고안된 토종 구기 종목이 아닌가 싶다.
필자도 성장하면서 20대 초반까지는 족구란 운동을 국내 어디에서도 보거나 들어본 바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족구의 발원지는 대한민국 국군 부대가 아닌가 싶다.
무료한 병영생활에서 여가 활용의 일환으로 병영 스포츠로 태동하게 된 것이다.
1960년도 후반의 한반도는 금방 터질 것 같은 전화(戰禍)의 그림자가 거의 매일, 매월, 매년 스쳐지나가는 시기였고 군사적 긴장으로 각종 도발이 다반사였던 시절이었다.
우리 여객기의 납북 사건을 필두로 1. 21 김신조 일당 침투 사건, 울진/삼척 무장 공비 사건, 북한 해안포에 의한 해군 경비정 56 함 격침사건,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 미 정찰기 격추 사건 등으로 군대는 초비상 사태로 병사들의 외출은 고사하고, 심지어 전역일자가 지났음에도 전역이 불가하여 무려 7개월 이상을 추가 복무를 해야했던 암울한 시기였다.
이러한 긴장은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1973년도에는 실미도 사건, 그 이듬해에는 문세광에 의한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그리고 휴전선에서의 도발이나 해상으로의 간첩 침투사건은 왜 그리 다반사로 발생하는지 하여간 병사들에게는 실로 고달프고 긴장의 연속인 시절이었다.
영문 밖으로 나가볼 수 없는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병영 생활에서 병사들에게 유일한 낙은, 공을 갖고 노는 공 놀이가 고작이었다.
축구나 배구는 넓은 운동장이나 많은 인원이 요하고 족구처럼 아기자기한 맛도 어쩌면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1973년 가을 어느 날, 경기도 수원 비행장에 복무하던 필자는 비행장 활주로 야전 정비대대 창고 옆에서 몇몇 병사들이 네트 봉 대용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평지에서 양 옆에 브로크를 몇 장씩 쌓아놓고 그 위에 DRAG SUITS(낙하산의 일종) 줄을 묶어서 간이 네트를 만들어서 발로써 공을 넘기는 경기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전투복을 입은 병사들이 족구화가 아닌 묵직한 군용 워커를 신고 축구공으로 공방을 펼치는 경기가 이채롭기 그지 없게 보였다.
시간만 나면 몇 명의 병사들이 모여서 1 대 1 로나 2 대 2, 혹은 3 대 3, 많으면 팀당 4 명씩 펼치는 그 경기는 그 간편성이나 흥미, 팀 워크를 다지는 운동으로 삽시간에 전 부대 안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사병 중심으로 유행하던 이 종목의 이름은 물론 애초부터 발로 하는 경기라는 의미에서 발족(足), 공구(球) 라는 글자를 차용하여 자연스럽게 ' 족구 ' 라고 불리게 되었다.
모든 비행장에는 골프장이 있기 때문에 조종사를 위시한 장교들은 주로 골프를 쳤고, 테니스의 열풍이 막 몰아치는 시기였는데 점차 개인이나 소규모 내무반(실) 단위로 이뤄지던 족구가 다른 중대나 대대, 아니면 타 부서와의 대항전으로 확산되게 됨에 따라 하사관(부사관)이나 장교들도 비로소 가세하게 되었고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상당수 공군 부대에서 족구가 정착하게 되었으며 부대 창설 기념일에는 대대 대항전이 열리는 데 까지 이르렀다.
육해공 3군은 서로 타군에 연락 장교단을 파견하는 데 1970년대 중반까지 육군이나 해군. 해병대에서는 족구가 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이 시절 타군에 파견나간 공군 요원들이나 3개 군이 합동 근무를 하는 국방부나 합참의 공군 요원들을 통하여 족구가 타군에도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지만 3 군중에서 함정 병과를 주축으로 해상 근무를 주로 하는 해군이 가장 보급이 늦어서 해군은 1978년 이후에야 비로소 진해, 포항, 목포를 중심으로 한 군항 도시 육상 주둔지에서부터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필자가 아는 대한민국 족구의 발원이 아닌가 싶지만 물론 정확한 기원이라고 장담은 못한다.
필자가 군대에서 족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1980 년대 후반 용산에 있는 한/미 연합군 사령부에 근무할 당시 공군 연락 장교단 일원으로 공/해 합동 대간첩 작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이순신 함에 파견나갈 기회가 있었다.
망망 대해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선 몇 척, 갈매기 떼 뿐으로 실로 무료하기 그지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공군 장교단은 함장에게 파도가 잔잔하니 공군, 해군 족구 시합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헬기 착륙장 넓은 공간에서 하게 됐는데 공이 바다로 떨어진다고 망을 씌운 축구공을 갑판위 고리에 늘어나는 긴 고무줄로 고정하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물 망에 든 축구 공으로, 더우기 고무줄에 묶인 상태로 무슨 족구가 되겠는가?
한 세트도 진행하지 못하고 우리는 줄에 묶지 말고 그냥 하자고 제안했다.
함장의 명령에 따라 단정(端艇) 두 척을 모함 양 옆 바다에 내려서 공이 바다에 떨어질 때마다 주어 올리도록 한 후에, 바다에 공이 떨어지는 것 자체를 방지하기 위하여 임무에 투입되지 않은 수병들이 족구 코트 외곽을 둘러싼 채 경기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 황당한 현상에 직면하게 된 우리 공군 선수단은 기가 막혀서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공격수가 상대편 코트로 강공을 퍼붓자 해군 수비수가 그 공을 받는 데 발로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상군처럼 머리로 받는 것도 아니고 가슴으로 받는 것이 아닌가 !
소위 말하는 배치기였던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공군 족구는 오로지 발로만 하는 족구였다. 발을 제외하고는 HEADING 과 같은 머리도 허용되지 않는 발 족구였는데 육군에 가보니 그들은 지상군 답게 머리까지 허용되었다.
머리까지는 몰라도 아니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들이나 하는 배치기라는 해괴한 족구가 있단 말인가? (해군 출신 신창지 고문에게는 미안)
해군 족구에서 배까지 허용하게된 내력을 나중에 알고보니 충분이 수긍이 되었다.
선상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공이 바다에 떨어지려고 하면 온 몸을 던져 막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각설하고 그 날 시합은 족구 경력이 많은 공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족구에 진 함장은 선수 전원을 바다에 뛰어들게 하고는 바다에 빠진 장병들을 뒤로 한 채 군함을 출발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한참 후에야 단정에 기어오른 병사들을 다시 모함에 타도록 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군인에게 패배는 용납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일부 공군 부대에서는 오로지 발만 허용하는 족구를 하지만, 얼마 전에 후배들에게 들은 바로는 공군에서도 대한족구연맹이 정한 통일된 족구 규칙에 따라 머리까지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고 하며, 해군은 함정에서는 여전히 가슴으로 받는 것도 허용되지만 해군의 육상부대나 해병대 또한 발과 머리로만 하는 족구로 통일되었다고 들었다.
필자가 헤딩이 다른 동호회원들보다 서툴고 웬만 해서는 머리가 잘 나가지 않는 이유도, 애초에 족구를 배울 때 머리를 써서는 실점한다는 강박관념이 아직까지도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족구에 얽힌 또 다른 일화는, 우리 해군 함정(비전투함)이 서해에서 북한 경비정에 끌려가는 사고가 발생한 직후에 불처럼 화가 치민 故 박정희 대통령께서 해군은 그렇다치고 공군에서는 왜 NLL 상에서 제지를 못했는지 진상을 규명하기 위하여 서해 북방한계선 공역을 담당하는 10 전투비행단을 직접 방문하신 날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 모든 부대원들은 무기와 탄약을 병기고에 반납하고 부대 밖 외곽 제 1 방어선에는 경기도경 소속 무장 경찰들이, 제 2 방어선에는 수경사(현 수방사) 병력이, 부대내 3 방어선에는 경호실 요원들이 겹겹이 포위하고 대통령 주변은 박종규 경호실장과 수행경호원들이 밀착 경호 상태에서 CODE # 1 일행은, 활주로를 가로 질러 전투 조종사 5분 대기실인 ALERT ROOM에서 전투기 긴급 발진(SCRAMBLE) 상황을 점검한 후에 비행단장(육군의 사단장) 실로 향하고 있었다.
비행장내 주요 건물 옥상에는 경호실 소속 SNIPER들이 엎드린 자세로 저격소총을 겨누고 사방 팔방을 주시하고 기지 내에 모든 건물들의 커튼은 전부 닫힌 상태에서 대통령 일행, 국방 장관, 합참의장, 공군 참모총장, 작전 사령관(육군의 1군. 혹은 3군 사령관에 해당) 차량이 지나가는 데 마침 점심 시간대라 귀빈의 방문에 아랑곳 없이 여늬 날처럼 병사들은 격납고 옆 공간에서 족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도 엄호 차량(ESCORT VEHICLE)은 활주로를 벗어나 비행단장실이 있는 단 본부로 향하는데 선도 차량의 유도를 아랑 곳 하지 않고 이탈한 고급 캐딜락 한 대가 족구하는 병사들 쪽으로 서서히 접근해 오는 것이 아닌가?
족구를 하던 병사들은 점심 휴식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것이니 잘못도 없는 데도 분명 고위층 차량이 접근해 오니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점점 다가오는 차량의 번호판을 보니 번호판이 없다. 대신에 푸른 바탕에 누런 금색의 봉황새 한마리가 번호판 자리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
직감적으로 국군 통수권자이자인 새까만 SUN GLASS 의 주인공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아니신가 !
족구를 하던 병사들은 누구의 지시도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온 몸이 냉동 동태처럼 뻣뻣해지고 할 말을 잊고 굴러 도망가는 공을 잡을 생각도 잊고 부동자세로 대통령 일행을 향하여 서서 주시하고 있었다.
비행 단장의 난감한 표정이 오버랩되는 순간, 그래도 호랑이 중에도 대빵 호랑이 주둥이 앞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교훈을 터득했는지 족구를 하는 일행 중 영내 사병 선임자인 하사관 실장이란 자가,
" 부대 동작 그만 ! "
하고 구령을 외치더니 대통령 각하에게 20 여도 정도 방향 전환을 하더니,
" 충성 ! 운동 중 " 하고 거수 경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 수원 지구 보안부대장(중령)이
" 아니 지금이 어느 땐 데 한가하게 운동하고 있어 ! "
하고 야단을 쳐서 과잉 충성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 운동을 하던 병사들은 물론 부대장의 운명은 모름지기 장님 안경으로 안면을 살짝 커버한 대통령 말 한 마디에 달렸다.
승용차에서 내린 대통령은, 병사들 앞으로 다가오더니,
" 이거 처음 보는 종목인데 재미있겠구만. 계속 운동을 해봐. "
이 한마디가 지옥에 떨어지다 손에 잡힌 천사가 내린 동아줄과 같았다.
한 3-4 분 동안 경기를 관전하던 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 청와대 직원들도 체력 단련에 좋겠다면서 청와대에서도 해보면 어때하고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로부터 한 달 후에 수원 비행장에 근무하던 전 장병들은 운동화 한켤레씩과 추리닝 한벌씩을 받았다.
비닐 포장에는 대통령 각하 하사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병사들이 전투복장에다가 전투화를 신고 족구를 하는 것이 안스러워서 청와대에 돌아와서 사서 보내주라고 하명하였다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었다.
2년 전에 동호회원들과 떨어져서 미국에 체류하는 3 개월 동안 주말만 되면 족구하던 생각이 떠올라서 현지 미국인들중 이웃 몇몇을 모아서 족구를 한 적이 있다.
미국인들은 족구를 잘 할까?
잘 하는 사람은 잘 하고 못하는 사람은 아주 못한다가 정답이다.
신장이 커서 선천적으로 족구(특히 공격)에 유리한 체형을 갖춘 미국인들 중 40 대가 넘어서면 배가 나오고 과체중으로 운동 신경이 둔해져서 잘 못하는 반면, 공을 차본 경험이 있는 젊은 아이들은 상당수가 공을 다루는 세기(細技)는 부족하지만 공격 하나만은 잘 한다.
다리만 들면 별 노력 없이 네트에서 40-50 CM 이상 발이 올라가니 그냥 주저 없이 디립따 까버리는 데 공격 파괴력이 대단하다.
족구란 단어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토종 한국어이기 때문 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한영 사전에도 나와있지 않다.
대한 족구 연맹이나 각종 족구대회 안내판이나 현수막에 적혀있는 KICK BALL 은 전형적인 콩그리쉬로 네티브 스피커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족구를 SOCCER VOLLEYBALL 이라고 한다.
바꾸어 얘기하면 발로 하는 배구란 의미임을 참고로 소개하며 필자가 적은 대한민국 족구의 기원은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일 뿐 또 다른 기원이 있을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으며 졸필을 마칠까 한다.
족구 만세 ! 방화그린 족구단 만세 ! 동호회원 여러분 만세 ! (서울강서방화그린족구단 고형주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