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227) - F1경주장과 월출산 기슭을 돌아서
사색과 감성이 교차하는 가을기운이 온누리에 충만하다. 설악산은 단풍이 절경이고 남녘의 들판은 황금물결인데 이곳저곳에서 각종 축제가 한창이다. 가을이 짙어가는 지난주에 어머니가 계시는 경기도 산본과 국제자동차경주대회가 열리고 있는 영암을 다녀왔다. 주말에는 아들과 손자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하늘 푸르고 만물 영그는 좋은 때에 3대가 분주하게 움직인 셈이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작년 가을부터 장염 증세로 여러 차례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하며 기력이 쇠하셨는데 올가을 들어 전보다 좋아지셔서 다행이다. 엊그제 신문에서 출산을 많이 한 여성의 치매비율이 높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머니에겐 자식이 모르는 초능력이 있는 게 틀림없다. 혹시 어머니 머리엔 자식의 분신(分身)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과학자들이 그 증거를 찾았다. 어머니가 품은 자식의 세포는 어떤 역할을 할까. 임신을 하면 여리기만 하던 여성의 몸이 자식을 보호하는 전사(戰士)의 몸으로 바뀐다. 이번 연구에서 어머니에게 들어간 자식의 세포가 그 과정에서 한몫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연구진이 분석한 여성 59명 중 33명은 생전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다. 앞선 연구에서는 임신을 많이 한 여성일수록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조선일보 2012. 10. 11 '어머니의 뇌에는 아들과 딸이 산다'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때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식 탓인 듯 죄송하다. 곁에서 하루를 보내며 화투놀이의 패를 식별하고 셈도 정확한 것에 위안을 얻는다.
지난 수요일, 서울 행 기차를 타러 광주역에 들어서니 작은 안내문이 눈에 띈다. 주말에 두 번 광주역에서 출발하여 국제자동차경주가 열리는 F1경기장을 거쳐 지역의 명소들을 돌아보는 영암군의 버스투어 행사내용이다. 즉석에서 주최 측에 전화를 걸어 참가신청을 하였다. 토요일(10월 13일) 오전 9시 반, 지인과 함께 광주역에서 출발하는 투어버스에 올랐다. 놀랍게도 참가인원은 5명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홍보가 안 된 모양이다. 여러 해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전문가가 친절하게 일행을 안내한다.
광주에서 무안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서해안 고속도로, 목포대교를 지나 목포-광양 간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가을풍경이 운치 있고 영산호를 가로지르는 호반경관이 아름답다. 한 시간 반가량 걸려 영암군 삼호읍에 있는 F1경기장에 이르니 오전에는 연습, 오후에는 예선 경기를 보러 오는 관중들이 몰려들고 있다. 경기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승용차 주차장이 있다. 우리 버스는 이곳에서 대기중인 관람객을 태우고 경기장 입구로 향하였다. 경기장 주변 주차장에는 관람객을 싣고 온 버스가 가득하고 가족단위의 입장객들도 꽤 많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내리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월출산주변의 관광명소로 떠난다. 화면으로만 보던 세계적인 자동차경주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였으니 다음날 열리는 결승장면을 TV로 보면 생동감이 더 하리라.
영암군 삼호읍의 F1경기장 주변과 월출산 자락에 있는 왕인공원의 모습
우리가 둘러본 영암의 명소들은 영험한 바위들로 가득한 월출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60대의 문화해설사는 영암은 월출산에서 내뿜는 기가 왕성하여 역사상 특출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처음 찾은 곳은 구림마을, 5세기에 백제문화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수한 왕인 박사를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선승 도선 국사, 고려의 개국공신 최지몽 등을 배출하였다는 마을의 지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 도기박물관(구림은 한국최초의 유약도기생산 도요지로 지정되었다.)과 하미술관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왕인공원과 도선이 창건하였다는 도갑사가 있다. 왕인공원에는 천 사람의 글씨를 모아 새긴 천자문 비석이 특이하고 도갑사는 새로 지은 광제루의 현판식과 주지스님의 취임식이 거행되는 행사로 북적댄다. 식장에 즐비하게 들어선 주지 취임축하 화분이 너무 세속적인듯, 약간 낯설게 여겨진다.
하미술관은 재일동포실업가 하정웅이 기증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광주시립미술관에도 그가 기증한 미술품이 많아서 이름이 낯익은데 아버지의 고향이 영암이라서 이곳에 2007년, 하미술관이 들어섰다. 마지막코스에 들른 기찬 공원에는 영암아리랑을 부른 이곳출신 가수 하춘화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어서 하씨들의 고향사랑이 돋보인다.
인근 나주에서는 국제농업박람회가 열리고 광주동구에서는 전국주민자치박람회와 충장축제가 막을 내렸다. 자주 들리는 천혜경로원에서는 충장축제의 희망복지박람회에 참여하여 직원들과 봉사자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과 경로원 소식을 엮은 책자 등을 판매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리기도 하였다. 버스 안에서 월출산의 빼어난 풍광과 F1자동차경주장면을 비디오로 비춰주는 등 입체적인 영암탐방이 된 것을 감사한다. '고난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잠언 15장 15절)는 성경구절을 읽으며 여러 곳에서 벌리는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시민들의 가슴을 적시는 즐거운 가을잔치로 승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추신,
지역 언론에서 다룬 F1 자동차경주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3일간의 꿈의 레이스' F1 폐막…"연착륙 기틀 마련"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 코리아 그랑프리가 14일 결승전을 끝으로 사흘간의 열전을 마무리했다. 이번 대회는 흥행과 교통대책 등 운영 측면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시설과 교통, 숙박, 관객 서비스 등에 만전을 기한 결과, 재정적인 측면을 제외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쳐 F1 대중화는 물론 지속 개최 가능성을 보였다.
2012 'F1 월드 챔피언십'의 20개 라운드 중 16번째 대회로 열린 올해 코리아 그랑프리는 12개 팀 24명의 F1 드라이버가 출전한 가운데 12일 연습주행과 13일 예선전에 이어 이날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모든 레이스를 마쳤다. 제바스티안 페텔(독일·레드불)이 국제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 원(F1)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결승전에서 최종 경기 종료를 알리는 '체크플래그'는 '강남스타일'로 월드스타가 된 싸이가 맡았다.
올해 대회는 연 인원 16만 명(외국인 1만2천명 포함)이라는 구름 관중이 몰리며 단일 스포츠 사상 국내 최다 인파라는 역대 기록을 갈아치우는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F1 조직위는 이날 결승전 8만6천여 명을 포함해 3일 동안 16만4천152명이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KIC)를 찾았다고 밝혔다.
교통과 숙박도 별 다른 문제를 노출하지 않아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대회에서 큰 불만을 샀던 교통 문제는 목포대교와 목포∼광양 간 고속도로 개통 등 주변 SOC가 확충되면서 극심한 체증은 발생하지 않았다. 또 무료 셔틀버스(9개 노선 863대)를 연계한 환승주차장 3개소와 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되고, KIC 내부순환버스 75대가 운행돼 교통흐름도 한층 원활했다. 교통난이 발생하지 않은 데는 관람객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큰 역할을 했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히는 F1대회를 3년 연속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대회 기간 국내외 인사들이 대거 방문함에 따라 영암과 목포는 물론 전남 지역경제 활성화에 청신호가 되고 있다. 전남도는 대형 국제스포츠 이벤트를 잇달아 성공 개최함에 따라 국제적 인지도와 브랜드 가치가 상승해 '국제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확고히 마련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향후 F1대회의 성공 개최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관심, F1 한국인 선수 육성, 적자폭 최소화 대책 마련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무등일보 2012.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