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이던 채식이던 결과로서 주어지는 음식을 가지고 시비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의 탐진치를 다스릴 수 있을까에 대해 논의하고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육식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지난 번 글(855번)에서 인용한 율장의 가르침을 적어봅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이런 연유에서 법을 설하시면서 수행승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자기 자신을 위해 죽여진 고기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고기를) 먹는 이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자기를 위해 일부러 죽였다는) 의심이 없는,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한 물고기와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나는 허락한다. " 빨리 율장 대품 (Vin I, 238: 4-9)
위의 가르침은 자이나교들이 자신들의 신자였던 시하 장군이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고기를 포함해서 성대한 식사접대를 받은 것을 보고, 특히 고기를 접대한 것을 가지고 시비한 내용이 배경에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빨리 중부(中部) 55경인 지와카 경에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명의(名醫)였던 지와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는 부처님께 찾아와 질문을 합니다.
"사문 고타마를 지정해서 그들은 동물을 죽였다. 사문 고타마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지정해서 준비된, 자신을 위해 마련된 고기를 먹고 있다. " 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sama.na.m gotama.m uddissa paa.na.m aarabhanti, ta.m sama.no gotamo jaana.m uddissaka.ta.m ma.msa.m paribhu.jjati pa.ticcakamman ti ye te bhante eva.m aaha.msu.
pa.ticcakamman이란 자기 자신 때문에 준비된(행해진, 살해된)이란 뜻이다. 또는 pa.ticcakamman란 유사행위(nimittakamma)의 동의어이다. 그것 때문에 여기 행위(살생)가 있다라는 의미에서 고기가 유사행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기를 먹는 사람도 그 행위(살생)의 상속자이며, 살해자와 같이 (고기를 먹은) 그 사람도 생명을 죽인 행위가 있다라는 것이 그들<자이나교도>의 주장이다.
여기서 자이나교도들은 고기 자체에 고기를 죽인 행위가 이미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고기를 먹은 사람은 고기를 죽인 사람과 같이 살생을 했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교도인 자이나교도의 주장이지요.
이후에 부처님은 세 가지 청정한 고기 (자신을 위해 죽인 것을 보지 않은 것, 듣지 않은 것, 이 두 가지에 대해 의심이 없는 것)는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걸식을 해서 생활하는 수행승들이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수행승은 음식을 받으면서 자신을 위해 최상의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거나, 앞으로도 자신을 위해 최상의 음식으로 대접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그들은 걸식한 음식에 대해 (갈망에 의해) 속박되지 않고, (갈망의 어리석음에 의해) 헤매지 않으며, (음식에 속박된 탐욕에서) 벗어나 있는 지혜를 지니고 음식을 먹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때 수행승은 자신에게 해을 끼치려고도 남에게 해를 끼치려고도 자신과 남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는 마음이 없이 허물(잘못)이 없는 음식(anavajja.m aahaara.m)을 먹을 뿐이라고 하십니다.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하며, 음식에 대한 탐욕이 없이 먹는 고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 불교의 입장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교윤리는 기본적으로 동기를 중요시합니다. 자이나교는 결과를 중요시하지요. 동기란 의도를 말합니다. 의도는 업(karma, kamma)입니다. 결과 중시의 윤리관은 동기와는 관계없이 결과만을 보고 선악을 판단합니다. 살생을 해서 얻어진 고기라고 하는 결과물에는 살생행위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논리가 결과주의입니다. 이는 불교의 입장이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고타마 붓다께서 가르치신 가르침은 아닙니다.
업이 되지 않는 행동이 있으며, 세 가지 깨끗한 고기를 먹는 것도 업이 되지 않기에 청정하다고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육식에 대해서도 불교와 자이나교는 동기주의와 결과주의에서 판단을 내립니다.
저는 능가경의 육식금지(대정장16, pp.561cff, 563bff)를 읽으면서 자이나교의 결과주의에 입각한 가르침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육식을 하면 자비심이 끊어진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을 포함해 당시의 수 많은 아라한, 그리고 출가 재가의 제자들은 세 가지 깨끗한 고기를 단지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음식으로 먹었으며, 한량없는 자비심(四無量心)을 몸소 실천하던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아함경의 가르침과 율장의 가르침을 부처님의 가르침(법)이라고 믿고 의지하고 귀의처로 삼고 있습니다. 내 자신을 의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법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열반경에서 부처님은 의지해야할 법으로 사념처(四念處)를 말씀하셨습니다. 직접적인 실천 수행법으로서의 사념처를 의지해서 수행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아래에 올려놓은 칼라마경(858번)에서도 자비희사의 탐진치을 버릴 것과 사무량심을 재가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참고로 능가경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겠습니다. 능가경은 여래장(如來藏) 유식사상을 설하는 대승불교 경전입니다. 또한 이 경전은 실천 수행(yoga)를 중시하는 경전입니다. 인도의 보리달마가 중국에 와서 가르친 불교가 바로 이 능가경을 바탕으로 해서 가르쳤다고 해서 초기의 선종을 능가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도의 여래장 유식사상은 적어도 4-5세기 이후에 등장합니다. 인도 본토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설일체유부라는 부파불교에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던 출가와 재가의 불자들이 대승운동을 일으킨 시점을 대략 서기 전후의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대승불교가 일어나게 된 동기인 대승보살 사상을 제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만, 그 가르침을 이해하기에는 제 그릇이 너무 작아서 저는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확인하며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살생과 육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초기불교, 부파불교(소승불교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대승불교라는 불교사의 근본문제까지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적어도 세 가지 청정한 고기를 먹는 것과 자비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채식을 하면서도 성내는 마음을 다스리지 않았을 때, 제 마음에서 자비심은 찾아볼 수 없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육식을 하면서도 수행을 제대로 할 때는 한 없는 자비심이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탁발해서 주어지는 음식은 선택할 수 없었으니까 부처님 당시에는 수행승들이 육식을 했다고 하면, 재가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자신들은 먹지 않는 고기를 일부러 구해서 탁발하는 수행자에게 공양하지는 않았습니다. 세 가지 청정한 고기에 대한 가르침은 그대로 재가자에게도 적용되는 가르침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를 잘 판단하고 육식을 할 때는 세 가지 점을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제 생각을 간추립니다.
결과로서 주어지는 음식을 가지고 시비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의 탐진치를 다스릴 수 있을까에 대해 논의하고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원인인 마음을 다스리라고 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올린 855번 글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한 고기(三種淨肉)>와 852번 글의 비린내나는 일과 육식에 대한 숫타니파타의 가르침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55)- A discourse to Jiivaka the foster son of the Prince.
I heard thus. At one time the Blessed One lived in Raajagaha, in the mango orchard of Jiivaka, the foster son of the prince. Jiivaka the foster son of the prince approached the Blessed One, worshipped, sat on a side and said: ‘I have heard this, venerable sir, that living things are killed on account of the recluse Gotama, and he partakes that knowing, it was killed on account of him. Venerable sir, those who say, that living things are killed on account of the recluse Gotama, and he partakes that, knowing, it was killed on account of him, are they saying the rightful words of the Blessed One and not blaming the Teaching?’
‘Jiivaka, those who say, that living things are killed on account of the recluse Gotama, and he partakes that knowing, because it was killed on account of him. They are not my words, and they blame me falsely. Jiivaka, I say that on three instances meat should not be partaken, when seen, heard or when there is a doubt. I say, that on these three instances meat should not be partaken. I say, that meat could be partaken on three instances, when not seen, not heard and when there is no doubt about it.
Jiivaka, the bhikkhu supported by a village or hamlet sits pervading one direction with thoughts of loving kindness, and also the second, third, fourth, above, below and across, in all circumstances, for all purposes, towards all. With that thought developed limitlessly and grown great without anger. Then a certain householder or the son of a householder approaches and invites him for the next day’s meal. If the bhikkhu desires he accepts and at the end of that night, putting on robes and taking bowl and robes, approaches the house of that householder or the son of the householder and sits on the prepared seat. That householder or his son serves him with the nourishing food with his own hands. It does not occur to him. This householder should offer me nourishing food in the future too. He partakes that morsel food, neither enslaved and swooned, nor guilty. Wisely reflecting the danger. Jiivaka, does this bhikkhu think to trouble himself, another or both at that moment?’. ‘No, venerable sir, he does not.’‘Jiivaka, isn’t this bhikkhu partaking this food without a blemish?’ ‘He is, venerable sir I have heard, that Brahma abides, in loving kindness. I witness it in the Blessed One. The Blessed One abides in loving kindness.’ ‘Jiivaka, the Thus Gone One has dispelled that greed, hate and delusion, pulled it out with the roots, made palm stumps and made them not to grow again. If you say it, on account of that, I allow it.’‘Venerable sir, I say it, on account of that.’ ‘Jiivaka, the bhikkhu abides supported on a certain village or hamlet. He abides pervading one direction with thoughts of compassion….With thoughts of intrinsic joy…With equanimity and also the second, third, fourth, above, below and across, in all circumstances, for all purposes, towards all, equanimity grown great and developed limitlessly without anger. Then a certain householder or the son of a householder approaches him and invites him for the next day’s meal. If the bhikkhu desires he accepts the invitation. At the end of that night, putting on robes and taking bowl and robes, he approaches the house of that householder or the son of the householder and sits on the prepared seat. That householder serves the bhikkhu with the nourishing food with his own hands. It doesn’t occur to him, this householder should offer me nourishing food in the future too. He partakes that morsel food, not enslaved, not swooned, and without a guilt, wisely reflecting the danger. Jiivaka, does this bhikkhu think to trouble himself, another, or trouble both at that moment?’. ‘No, venerable sir, he does not.’ ‘Jiivaka, doesn’t this bhikkhu partake this food without a blemish?’ ‘Venerable sir, he partakes food without a blemish. .I have heard, that Brahma abides in equanimity. I witness it, in the Blessed One. The Blessed One, abides in equanimity.’ ‘Jiivaka, the Thus Gone One is not troubled, is detached, and not averse to greed, hate and delusion*1), pulled it out with the roots, made palm stumps and made not to grow again. If it is said on account of that, I allow it.’ ‘Venerable sir, I say it, on account of that.’
‘Jiivaka, who ever destroys living things on account of the Thus Gone One or the disciples of the Thus Gone One, accumulate much demerit on five instances: If he said, go bring that living thing of such name. In this first instance he accumulates much demerit. If that living thing is pulled along, tied, with pain at the throat, feeling displeased and unpleasant*2). In this second instance he accumulates much demerit. If it was said, go kill that animal. In this third instance he accumulates much demerit..When killing if that animal feels displeased and unpleasant*2), in this fourth instance he accumulates, much demerit. When the Thus Gone One or a disciple of the Thus Gone tastes that unsuitabale food*2). In this fifth instance he accumulates much demerit. Jiivaka, if anyone destroys the life of a living thing on account of the Thus Gone One or a disciple of the Thus Gone One, he accumulates much demerit on these five instances.’ When this was said Jiivaka the foster son of the prince said; ‘Wonderful venerable sir, the bhikkhus partake suitable faultless food. Now I understand venerable sir. It is as though something overturned was reinstated. Something covered was made manifest. As though the path was told to someone who had lost his way. As though an oil lamp was lighted, for those who have sight to see forms. In various ways the Teaching is explained. Now I take refuge in the Blessed One, in the Teaching and the Community of bhikkhus. May I be remembered as one who has taken refuge from today until life lasts.
----
Notes.
----
1 The Thus Gone One is not troubled, is detached, and not averse to greed hate and delusion.’yena kho Jiivaka raagena yena dosena yena mohena vihesavaa assa,arativaa assa pa.tighavaa assa so raago so doso so moho tathaagatassa pahino ucchinnamuulo taalavatthukato anabhaavakato aayati.m anuppaadadhammo‘ When equanimity is developed, that person’s nature is such, that he is not troubled, is detached and not averse to greed, hate and delusion.
2. The Blessed One shows five instances when it is demerit to offer meat to the bhikkhu. Those are when it is seen, heard, or known, that such and such an animal is killed. When it is ordered, kill this animal. When seen it, being pulled along to be killed. When seen it going along sad and unpleasant, and when the Thus Gone One or a disciple of the Thus Gone One tastes the unsuitable food. If we understand this correctly, it is feelings which matter.The Blessed One’s Teaching is completely based on feelings. Unpleasantness-‘dukkha’ is a feeling, and it is for its cessation that the Teaching is proclai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