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59. 추수(harvest)
반사막지대인 무스탕에도 물이 흐르는 곳에는 동네가 들어서고 푸른 논밭이 있다.
물이 흐르는 곳에는 생명이 살아갈 수가 있기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오늘날도 진리와 사랑의 샘물이 흐르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다만 영혼을 적시는 사랑의 샘물이 흐르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문제이다.
나에게서 샘물이 흐르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열매로 사람들이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마르에도 맑은 샘물이 계속해서 흐르기에 사람들은 비탈진 땅에 농사를 짓고 있다.
이제 가을이 찾아와 밀을 베어 추수를 하고 풀을 베어 건초를 모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기나긴 겨울을 버텨내고 봄을 맞이할 때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마르 들판에는 떼땅(Tetang)에서 일하러온 처녀들이 추수를 하고 있다.
러츠미는 스물세 살의 다 큰 아가씨이다.
키도 크고 얼굴도 갸름한 미인이다.
같이 일하는 총각들이 치근대면 호통을 치며 쫓아낸다.
그녀는 새침을 떨며 사진도 잘 찍지 않으려고 한다.
언주는 열여덟 살, 대담한 면이 있는 억척빼기 아가씨이다.
비스켓이 있으면 같이 나누어 먹자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소바는 열여섯 살, 맏며느리 감이다.
하루 종일 들녘에서 같이 일하고 왔어도 친구들에게 차를 따라주고 밥 하는 것도 도와준다.
앙모는 열다섯 살, 막내이다.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조금만 농담을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치링은 주인집 스물여덟 살, 여동생이다.
모든 뒤치다꺼리를 하며 추수가 진행될 수 있도록 감독도 하고 음식과 간식도 준비한다.
그들은 모두 구리 빛으로 그을린 얼굴에 강인한 몸매를 가졌다.
우리는 무스탕 오르는 길에 사마르에서 차를 마시고 양 순대를 나누어 먹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여주인은 이들에게 양 한 마리를 잡아서 고기와 양 순대도 대접을 한다.
이 양은 보통 양이 아니다.
3,000m 고지대에서 약초와 가시떨기 허브열매를 먹고 자란 보약 수준의 양이다.
양들은 달콤한 이 열매를 앞발을 나무에 걸치고 일어서서 열매만 쏙쏙 따먹고 다닌다.
덕분에 나도 양의 창자로 만든 피 순대도 한 번 먹어보게 된다.
양고기는 어떻게 질긴지 한참을 씹어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다만 꼭꼭 씹어 즙을 삼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무스탕을 탐사하고 내려오는 길에 나는 사마르 들판으로 추수하는 처녀들을 찾아간다.
그 넓은 들판에서 물어물어 러츠미 일행을 찾는다.
그들은 들판 맨 아래에서 일하고 있다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저녁 여섯시가 넘어 끝날 즈음이라 손을 바삐 놀려 일을 마쳐간다.
얼굴은 땀에 절어 있고 옷의 여기저기에는 흙이 묻어 있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응원하러온 우리들이 고마운지 웃음을 지으며 일을 한다.
저녁 어스름한 무렵이 되자 이제 일을 마무리하고 간식을 먹는다.
찌아 한 잔에 로띠를 적셔 먹는다.
나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옆에서 찌아를 한 잔 얻어 마신다.
그런 다음 그들은 모두 밀 한 다발씩 등에 지고 게스트하우스로 올라간다.
이제 하루가 마쳤다.
이렇게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일을 해서 하루에 200루삐,
우리 돈으로 2,000원을 벌려고 불타는 햇빛 속에서 땀 흘리며 맨손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일거리라도 있는 것이 감사하다.
이런 일도 추수철이 끝나버리면 할 수가 없다.
공정무역도 좋고 공정여행도 좋지만, 할 일조차 없어버리면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지금 한국에서는 할 일이 있어도 더럽고 험하고 위험스런 일이라고 하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그런 일을 맡아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은 데 일꾼이 적다고 탄식을 하셨다.
이제 점점 더 영혼을 구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도 할 사람이 없는 때가 도래하고 있다.
추수하는 처녀들처럼 앞장서서 기쁨으로 일할 일꾼이 필요하다.
오늘의 러츠미들이 절실하게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