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삼성전자, 40나노 32기가 플래시 첫 개발;상식 뒤집은 '반도체 혁명'
황창규(黃昌圭)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9월1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40나노(1억분의 4m) 공정의 32기가비트(Gb) 플래시 메모리를 세계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는 머리카락 3000분의 1 두께인 트랜지스터 328억개를 엄지손톱 정도의 면적에다 촘촘하게 집어넣은 반도체를 개발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특히 이번 32Gb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하면서 절연체(전기나 열이 통하지 않는 물질)를 반도체 개발에 사용하는 ‘차지 트랩 플래시(CTF)’라는 기술을 도입했다. CTF는 전자제품 개발에 절연체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기술적 혁명이라는 평가다. /조선
2000년대 삼성전자 반도체 개발 연혁
2006-09-11 - 삼성전자, 40나노 32기가 플래시 첫 개발
2005-09-12 - 삼성, 50나노 16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
2004-09-09 - 삼성전자, 세계최초 90나노미터 D램 양산
2004-08-19 - 삼성전자, 64M P램 세계 첫 개발
2001-02-07 - 세계최초 4기가 디램 반도체 제품기술 개발
2000-09-29 - 세계최고속 그래픽 메모리 출시
2000-05-27 - IMT-2000채용 16M S램 첫 개발
2000-01-04 - 288M D램 첫 개발
[2006년] 41년 통치 통가 타우파아하우 투푸 4세 국왕 별세
지난 41년간 남태평양의 섬나라 통가왕국을 통치해온 타우파아하우 투푸 4세 국왕이 뉴질랜드 병원에서 88세로 별세했다고 현지언론들이 9월11일 보도했다. 세계 최장수 국왕 가운데 한 사람인 투푸 국왕은 최근 수개월간 알려지지 않은 병으로 뉴질랜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 인문학과 법학사 학위를 딴 그는 통가인 최초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었다. 그런 배경에서 투푸 국왕은 교육문제에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가졌다. 지난 1845년 폴리네시아 군도의 170여개 섬이 통합해 이룩된 통가왕국은 그동안 준봉건적으로 나라를 통치해온 투푸 국왕이 타계함에 따라 민주화가 추진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조선
[2004년] 김기덕 감독, ‘빈 집’으로 베를린 이어 베니스 감독상 수상 ← 아시아 영화인상 시상식 (2004-10-11)
‘충무로의 이단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 집’이 2004년 9월 11일 막을 내린 제6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빈 집에 갇혀 있는 여자(이승연)와, 빈 집만 골라 돌아다니며 살다가 그 여자의 마음을 채워주게 되는 남자(재희)의 이야기를 담았다.
같은 해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기덕 감독은 한 해에 세계 3대 영화제 중 두 곳에서 서로 다른 영화로 감독상을 차지하는 유례 없는 성과를 거뒀다. 같은 해 5월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데 이어 김 감독이 거푸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은 같은 해에 열린 세계 3대 영화제의 주요 부문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김 감독은 1996년 ‘악어’로 데뷔한 뒤 파격적인 영화 스타일과 초저예산·단기간 영화 제작 방식 등으로 ‘충무로의 이단아’라는 이름을 얻었다. 충무로의 스타시스템과 상업적 제작 형태를 비판해온 김 감독은 이번 수상작인 ‘빈 집’도 1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 단 13일 만에 찍었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공교육(公敎育) 이력의 전부인 그는 데뷔 후 8년 동안 모두 11편의 영화를 만들어 11편 모두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는 진기록을 세웠고, 이번 수상까지 모두 5편이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베니스영화제(‘섬’ ‘수취인불명’ 등)와 베를린영화제(‘나쁜 남자’)에는 단골 진출해왔다. ‘섬’ ‘수취인불명’ ‘나쁜 남자’ 등 그의 작품은 선명한 회화적 이미지와 독특한 전개로 국내외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여성 비하와 잔혹 취미 등으로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조선
[2001년] 미국, 9.11 테러 발생
2001년 9월 11일 오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가 항공기와 폭탄을 동원한 동시다발적인 테러공격으로 무역센터 건물 2동이 붕괴되고 펜타곤이 화염에 휩싸이는 등 대참사가 발생, 미 전역을 공황상태에 빠뜨렸다.
테러범들이 납치한 여객기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의 남쪽 동에 처음 충돌한 것은 오전 8시46분이었다. 이어 9시3분 경에는 피랍된 또 다른 여객기가 북쪽 동을 들이받아, 두 빌딩에서는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두 건물은 충돌 후 1시간30분이 지나, 강력한 폭발과 함께 붕괴됐다. 9시43분 경에는 미국 안보의 심장부인 펜타곤에도 납치 여객기가 충돌, 건물 일부가 붕괴되고 화염에 휩싸였다. 곧이어 여객기 한 대가 테러범들에게 납치돼 펜실베니아 상공에서 추락하자 미국인들의 테러공포는 극에 달했다.
이 여파로 뉴욕 증시도 대공황기였던 1933년 이후 68년 만에 4일간 폐장했다. 사망자와 실종자는 2002년 8월 당시 2,801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신원이 확인된 숫자는 전체의 절반도 안 되는 1379명. 나머지는 시신을 찾지 못해 대부분 유족들이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 경제적 피해상황도 엄청나 뉴욕시는 테러로 인해 市경제가 2년에 걸쳐 약 1,000억달러의 직·간접 피해를 입었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범인으로 지목, 그를 보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빈 라덴의 인도를 요청했으나 탈레반 정권의 모하메드 오마르가 빈 라덴의 구체적인 증거를 적시(摘示)하라며 인도를 거부하자 미국은 마침내 테러발생 26일 만인 10월 7일,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했다. /조선
[1998년] 신문삽화 선구자 이우경(李友慶, 1922.4.28~1998.9.11) 화백 별세
간단하면서도 감각적인 선으로 대중적인 신문삽화를 그린 한국의 삽화가. 정감 있고 운치 있는 해학이 담긴 그림으로 소설가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어린이책 일러스트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1997년 일러스트부문 한국어린이도서상을 받았다.
1922년 서울 종로구 홍지동에서 태어났다. 간단하면서도 감각적인 선(線)을 구사한 대중적인 신문삽화로 삽화 1세대를 대표하는 선구자이다. 일제강점기 때 제2고보(현 경복고등학교) 재학중 일본·만주까지 포함한 전국학생전람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1941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3회 연속 입선하였다. 1950년대 초부터 신문삽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동아일보·서울신문·경향신문 등에 신문삽화만 100여 차례 그렸다.
그림에 정감이 있고 운치있는 해학이 담겨 있어 소설가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그가 그린 신문소설 삽화로는 《인간교실》(손창섭), 《길》(손창섭), 《인생대리점》(이호철), 《곡예사의 혁명》(홍성원), 《허상과 장미》(이병주), 《밤의 무지개》(강신재), 《배회》(신상웅), 《달려라 백마야》(유호) 등이 있다.
어린이책 일러스트분야에서도 활동하여 1955년부터 위인전·전래동화·창작집 등 수많은 동화책의 삽화를 그렸다. 담백하고 익살스런 인물과 동식물 그림은 한국 고유의 웃음과 해학에 바탕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 이우경 선생의 생활관
선생은 주위의 어린 사람들에게 그림하는 것을 반대하셨다고 한다. 극소수만이 성공한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 그리고 순수회화라 해도 걸맞는 대우를 받아내지 못한다며 말리셨단다. 하물며 일러스트레이션이야…. 선생의 형은 어릴 적에 공부를 무척 잘했다고 한다. 무엇하러 집에 와서까지 공부하냐는 형의 말을 들으며 고보시절을 보낸 선생은 미술대학으로 진학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한쪽 귀가 안들린다는 이유로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그 뒤 잠깐 동안의 서울신문사 기자 생활을 거치고 손창섭의 소설에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출판 미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선생의 학구열은 대단하여서 항시 영어사전을 끼고 다니셨다고 한다. 3,40년은 너끈히 넘긴 낡은 사전을 들고 다니며 단어와 숙어를 외웠다고 하는데 전립선 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단어와 숙어를 놓지 않으셨다 한다. 선생에게는 오래 된 지구본이 하나 있었다. 그 지구본에는 펜으로 표시된 점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선생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곳들이다. 영어를 즐겨 습득하던 당신이 맨 마지막으로 갔던 나라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이었다.습관에 있어서도 평생 규칙적인 것을 좋아하셨다 한다. 지극히 이성적으로 살고 싶었으나 주변의 여건으로 인해 그렇지 못했던 듯하지만. 그림에 대한 낮은 대우, 그러고도 그림을 계속 해야만 하는 현실….
[1996년] 국경없는 의사회, 제3회 서울평화상 수상 ←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이 제3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수상자로는 ‘국경없는 의사회’가 선정됐다.
국제의료단체 ‘국경없는 의사회’가 제3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지난 1968년 국제적십자사 요청으로 나이지리아 내전에 파견됐던 프랑스 의사들이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귀국한 후 조직적인 구호활동의 필요성을 호소하면서 태동하기 시작, 1971년 12월에 설립된 세계최대 규모의 민간 구호단체다.
중립 공평 자원의 3대원칙에 따라 정치, 종교, 경제적 권력으로부터 구속받지 않은 채 전쟁, 자연재해, 질병, 기아 등으로부터 고통받는 지구촌 가족에게 차별없는 구호를 실시, 국제사회서 적십자사와 더불어 인도주의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전세계 13개국에 대표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시아지역에는 일본과 홍콩에 사무국이 설치돼 있다.
세계 45개국에서 모인 2천9백여명의 자원 봉사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전세계 2백60만명에 달하는 독지가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독자적인 재정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1995년 10월부터 12월까지 비정부체제로서는 유일하게 북한 수해현장에 직접 투입돼 전염병 예방활동을 벌이고 의약품과 의료장비를 지원하기도 했으며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걸프전, 보스니아내전, 르완다내전 등에 빠짐없이 구호의 손길을 뻗쳤다. /조선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 노태우
1989년 9월 11일 노태우 대통령은 국회 연설을 통해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했다.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982년 발표된 '민족화합민족민주통일방안'을 보강한 것으로, 자주·평화·민주 등을 3대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 방안은 과도체제인 남북연합을 실현시키기 위한 민족공동체헌장을 채택하고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통일민주공화국 실현 단계로 나아간다는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단계로 민족공동체 헌장을 마련해 통일헌법에 의해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때까지 남북관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규칙을 세우고, 두번째 단계로 민족공동체헌장에 기초한 남북정상회의와 실행기구인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등의 과도기구를 설치하며, 마지막 단계로 남북평의회에서 마련한 통일헌법을 바탕으로 총선거를 실시해 통일국회와 통일정부를 구성함으로써 실질적인 통일에 이른다는 구상이다. 이 통일방안은 7·7선언에서 천명한 남북동반자 관계를 구체화했다는 점과 역대 정권의 통일방안 가운데 북한측이 주장하는 고려연방제통일안에 가장 근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문화적 교류와 협력이 정치적·군사적 통합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남북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미흡한 방안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1980년] 경주 안압지와 임해전 복원공사 준공
안압지(雁鴨池)는 경주 월성(月城)의 북동쪽에 인접하였다. 《삼국사기》 674년(문무왕 14) 조(條)를 보면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花草)를 기르고 진금이수(珍禽異獸)를 양육하였다고 하였는데, 안압지는 바로 그때 판 못이며 임해전(臨海殿)에 딸린 것으로 추정된다. 1974년 이래의 준설공사와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여 주목할 만한 유구(遺構)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동서 200m, 남북 180m의 구형(鉤形)으로 조성되었는데,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배치되었다.
연못 기슭과 섬에 실시된 호안공사(護岸工事)는 정교하고 도수로(導水路)와 배수로의 시설도 또한 교묘하다. 연못 바닥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와전류(瓦塼類)로서는 신라 특유의 우미(優美)한 무늬가 있는 것이 많은데, ‘儀鳳四年(679)’ 또는 ‘調露二年(680)’의 당나라 연호명(年號銘)이 있는 와전은 중요한 자료이다. 불교 예술품으로서 판상(板狀)의 금동여래삼존상(金銅如來三尊像)과 금동보살상(金銅菩薩像) 등의 우수한 작품이 있고, 유존(遺存)하는 예가 드문 목조의 배, 건축 부재, 목간(木簡) 등의 채취와 그 보존에 성공한 일은 귀중한 공적이다. /naver
[1978년] 한국,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2연패
1978년 개최된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1967년 처음으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청소년기능선수를 파견한 한국은 예상 밖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국제대회 개최를 권유받게 되었다. 1976년 연차 국제회의가 열리자 회원국들은 1978년의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확정하였다. 1978년 8월 31일부터 9월 14일까지 15일간 국립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31개의 기본직종과 4개의 시범직종에 걸쳐 실시되었으며, 14개 회원국, 선수 285명, 임원 676명 등 총 961명이 참가하였다. 한국은 31개 전 실시직종에 31명, 시범직종에 40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금메달 22개, 은메달 6개, 동메달 3개를 따내어 전년도에 이어 두 번째로 우승하였다. 이 대회는 한국의 경제력과 기술기능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yahoo
[1973년] 아옌데 칠레대통령 피살 ← 아옌데 칠레대통령
아옌데 칠레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에 의해 1973년 9월 11일 피살되고 쿠데타를 주도한 피노체트가 집권했다. 좌파인 아옌데를 축출하기 위해 피노체트 배후에 미 CIA가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2000년 9월에 공개된 문서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1908년 칠레의 발파라이소에서 출생한 아옌데 대통령은 칠레대학 의학부 재학시절부터 사회-정치운동에 참여해 1933년 칠레사회당 창당에 관여했고, 1942년에는 서기장이 됐다. 1937~45년 하원의원, 1939~42년 후생장관, 1945~70년 상원의원을 역임한 그는 1970년 대통령선거에서 좌익통일연합 후보로 입후보, 당선됐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에 오른 최초의 공산주의자인 그는 11월에 정식취임해 은행-광산 등 주요기업을 국유화하는 좌익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 제도를 정착시켜 나간다는 아옌데 노선은 좌우에서 협공을 받아 곧 난관에 봉착했다. 그런 와중에 칠레의 육-해-공 3군사령관은 정국혼란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라는 최후통첩을 아옌데 대통령에게 보냈고 아옌데가 퇴진을 거부하자 이날 칠레군부는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정권접수를 발표했다.
아옌데는 대통령궁을 포위한 군부대의 공격에 저항하다 피살됐다. 세계의 사회주의 운동에 새로운 길을 열 것으로 좌익지식인들 사이에 기대를 모았던 사회주의도 그의 죽음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조선
[1971년] 소련의 전 수상 흐루시초프(Khrushchyov, Nikita S.) 사망 ← 흐루시초프(1960)
1894. 4. 17(구력 4. 5) 러시아령 우크라이나 칼리노브카~1971. 9. 11 모스크바.
1953년부터 1964년까지 11년 동안 소련을 통치했던 흐루시초프!
1971년 오늘 7년 동안의 가택구금 끝에 77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장례식은 이틀 뒤인 9월 13일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체(Novodevichye)수도원 묘지에서 치러졌다.
흐루시초프는 1953년 3월 스탈린의 사망 후 소련공산당 제1서기로 선출됐다.
그는 말렌코프 총리를 물러나게 하는 등 주요 요직에서 반대파를 제거해 권력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 스탈린을 비판했다.
또 서방 세계와의 평화공존 정책으로 호평과 함께 수정주의라는 비판도 받으며 '중소논쟁', '헝가리사건'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흐루시초프는 쿠마 미사일 사태와 동서 공존 외교정책의 혼선으로 1964년 실각한 뒤 가택연금됐다. /YTN
[1970년] 한국-통가(Tonga, 프렌들리 군도) 국교 수립
정식 이름은 Kingdom of Tonga. 통가어로는 Pule'anga Fakatu'i'O Tonga. Friendly Islands라고도 함.
태평양 남서부에 있는 입헌 군주국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시 북동쪽으로 3,000km, 피지 섬 동쪽으로 약 640km 떨어져 있다. 16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이며, 이 섬들은 남북으로 2개의 평행한 열도를 이루며 805km 뻗어 있다. 169개 섬 중 36개의 섬에만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 통가는 북쪽의 바바우, 중앙 하파이, 남쪽 통가타푸 등의 3개 군도로 크게 나뉘며, 북쪽과 남쪽으로 몇몇 섬들이 고립되어 있다. 수도인 누쿠알로파는 가장 큰 제도인 통가타푸(면적 256㎢)에 있다. 면적 750㎢, 인구 103,000(2008 추계).
통가에는 적어도 3,000년 전에 오스트로네시아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살았다. 이들은 피지 섬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정교하게 장식된 라피타 도기를 만들었다. 통가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통치자를 중심으로 한 계급사회 구조로 발전했는데, 13세기에는 멀리 하와이까지 통치했다. 네덜란드 항해가인 야코프 레 마이레는 1616년에 타파히(옛 이름은 보스카웬)를 발견했으며 1643년 아벨 타스만에 의해 더욱 많은 탐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실제적인 접촉은 1773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이 제도에 도착해서 이곳을 프렌들리 제도라 명명하면서부터였다. 1826년 감리교 선교단이 들어와 전통적인 종교를 파괴했고, 타우파하우 추장을 개종시켰다. 그뒤 이 추장은 조지 투포우 1세 왕이 되어 통가의 모든 섬들을 통치했는데, 조지는 적어도 10세기부터 통치해왔던 왕들의 가문인 투이 통가의 자손으로서 1862년 법전, 1875년 헌법에 기초해서 제한된 군주제를 설립했다. 통가의 독립을 인정하는 조약이 독일(1876)·영국(1879)·미국(1888) 등과 각각 체결되었다.
1893년 조지 투포우 1세가 죽자 재정이 어려운 시절에 그의 손자가 왕위를 계승하여 조지 투포우 2세가 되었다. 1900년 영국과의 우호조약으로 외교관계에서 영국 영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1905년 영국의 영사가 통가의 외교문제 결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조약이 개정되면서 통가는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 1918년 조지 투포우 2세가 죽자 그의 딸이 왕이 되었고, 그녀는 1918∼65년 통가를 통치하면서 국민과 영국으로부터 신망을 얻었다(→ 대영제국). 그녀의 아들인 퉁기 왕자가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가 되었다. 1970년 6월 4일 통가는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완전 독립했다.
통가는 1970년 9월 11일 한국과 단독으로 수교를 맺었다. 1980년 12월 4일 외무장관 겸 국방장관인 투푸토아 왕세자의 방한으로 우호를 다졌다. 1981년부터 어업연수생을 초청하여 연수시키고 있다. 양국간 교역은 아직 미미하여 1992년 11월 대한수출액이 4,000달러에 불과하다./브리태니커
[1962년] 한국-코스타리카, 국교 수립
중앙 아메리카에 있는 나라.
공식 이름은 코스타리카 공화국(Republic of Costa Rica/Republica de Costa Rica).
수도는 산호세이며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는 니카라과와 경계를 이루며, 300km의 북동 해안선이 카리브 해에 맞닿아 있다. 남동쪽으로 파나마에 접해 있고, 1,015km에 이르는 남서 해안선이 태평양에 면해 있다. 면적 51,100㎢, 인구 4,389,000(2008 추계).
코스타리카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 1502년 지금의 리몬(푸에르토리몬)에 상륙했다. 당시 이곳에는 보루카·카리브·초로테가·코로비시·나우아 등 소규모의 독립적인 인디언 부족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곳 원주민들은 쉽게 점령되지 않았으며, 스페인인들이 영구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거의 60년이나 걸렸다. 코스타리카는 매우 천천히 발전했다. 원주민 노동력이 부족하여 격리된 농장들이 소규모로 만들어졌다.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귀족제도는 발달하지 못했다. 가난하고 광물자원이 빈약했기 때문에 스페인 왕은 코스타리카를 소홀히 다루었다. 18세기말 스페인이 다른 중앙 아메리카 식민지를 인텐덴시아(intendencias)로 승격시켰을 때 코스타리카는 니카라과에 복속되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코스타리카는 중앙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과 함께 단명한 멕시코 제국에 합병되었다. 1823년에는 중앙 아메리카 연방의 창설을 도왔으나 다른 네 나라 사이의 불화로 1838년 관계를 단절했다. 이즈음 코스타리카의 고립주의가 이미 형성되고 있었다. 19세기 코스타리카의 경제는 커피 수출에 많은 힘을 입었다. 19세기말 카르타고와 리몬을 잇는 철도가 건설되면서 그때까지 바나나 재배에만 사용되었던 토지들이 개발되었다. 1886년 의무교육이 시작되었으며 1871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1890년 호세 호아킨 로드리게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 선거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자유롭고 깨끗하게 치러진 선거로서, 민주주의 전통의 출발점이 되었다. 코스타리카는 이 선거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유명해졌다.
1948년 혁명이 일어났으나 1917년에 일어났던 혁명과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못했다. 1949년 군대는 축출되고 민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코스타리카는 평화상태를 유지했으며, 1980, 1990년대에는 이웃하는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사이의 내전을 중재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런 노력으로 1987년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코스타리카는 1949년 8월 12일 한국을 승인했고 1962년 8월 15일 국교를 수립했다. 1978년 10월 2일 주한 상주대사관이 설치되었고 1974년 9월 4일 주코스타리카 상주대사관이 설치되었다. 북한과는 1974년 2월 10일 외교를 수립했으나 미얀마아웅산묘소폭파사건 이후 1983년 12월 7일 단교했다. 1981년 코스타리카 대통령 방한, 1983년 9월 부통령 방한, 1984년 12월 외상 내한, 1985년 5월 19∼23일 몽헤 대통령이 방한하여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국간에 문화협정(1966. 7)·무역협정(1974. 3)·과학기술협정(1979. 8)·항공협정(1985. 5) 등이 체결되었다. 한국은 철강제품·석유류를 수출하고, 코스타리카는 쇠고기·커피 등을 수출한다.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지점 및 기업지사가 진출해 있다. 1992년 11월 대한 수출액은 3억 6,652만 달러이고, 대한 수입액은 2,977만 달러이다. 1990년 6월 현재 교민 1,279명, 체류자 27명이 있다./브리태니커
[1945년] 경의선, 남북 분단으로 운행 중단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한국은 해방을 맞았으나 곧바로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남북한에서는 각각 미국과 소련에 의한 군정이 실시되었다. 당시 남한에서는 미육군 ‘워드멜 해밀턴’ 중령이 교통국장으로 취임하여 대한민국 정부수립 시까지 철도를 관장하였다. 1945년 9월 11일부터 남북간 운행이 중지됨으로써 한반도의 철도는 남북 종단 철도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였다. /google
[1905년] 최초의 부ㆍ관(釜ㆍ關)연락선 ‘일기환(壹岐丸)’취항 ← 최초의 부ㆍ관(釜ㆍ關)연락선으로 취항한 ‘일기환(壹岐丸)’의 모습
1905년 9월 11일, 현해탄에 연한 일본 본토의 남부 도시 시모노세키(下關),는 축제분위기였다. ‘나는 새도 건너기 힘들다’는 현해탄, 1680t급 일본 최초의 대형 연락선 ‘일기환(壹岐丸)’이 첫 취항하는 날이었다.
여객 정원 317명, 항해시간 11시간 30분. 일본의 산요선과 한국의 경부선 철도를 잇는 부관연락선 개통으로 동경-서울간을 60시간에 주파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등 선실(운임 12원)이 있는 맨 위층에는 담화실, 레스토랑 등이 있어 일류호텔을 방불케했다. 2등실은 그 밑층의 다다미 깔린 큰방이었다. 그러나 3등실(3원50전)은 맨 아래층, 돗자리 깔린 선반이 층층이 달려있는 형태여서 ‘누에 치는 곳’이라고 할 정도로 열악한 조건이었다.
관부연락선 취항은 그 직전에 있었던 경부선 개통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제국주의는 항상 식민통치의 전제조건으로써 이민과 자원 약탈, 노동력 공출을 원활히 하기 위한 교통망을 필요로 해왔다. 현해탄에 떠있는 섬(이키마루ㆍ壹岐) 이름을 빌었던 첫 호를 제외하고, 관부연락선 이름들은 경복환, 창경환, 금강환, 덕수환, 흥안환, 곤륜환 등 모두 한국이나 중국의 고궁-명산에서 차명, 일본인들에게 이국에의 선망을 부채질했다./조선
[1885년]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출생 ← Lawrence, age 21 (1906)
1885년 9월 11일 태어남 / 1930년 3월 2일 죽음
"창조적인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사악한 면이 있어야 한다. 내가 착하기만 하지 않은 데 대해 신께 감사드린다. " - D. H. 로렌스
로렌스는 떠들썩한 외설시비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20세기 영국의 주요 작가이다. 1910년 처녀작 <흰 공작 The White Peacock>(1911)을 발표했으며, <아들과 연인 Sons and Lovers>(1913)으로 명성을 얻었다. 1913년 첫 시집 <연시 외(外) Love Poems and Others>와 1914년 첫 단편집 <프러시아의 사관 외(外) Prussian Officer and Other Stories>를 출판했다. 그는 유럽을 벗어나고자 했으며, 미국을 동경했다. 이러한 소망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더욱 커졌다. 마침내 1922년 여름 미국 뉴멕시코의 타오스를 여행했으며, 이듬해 멕시코로 가서 오랫동안 머물며 <날개 달린 뱀 The Plumed Serpent>(1926)을 집필했다. 1925년 유럽으로 돌아온 후 <세인트 모어 St. Mawr>(1925)를 발표했다. 말년에는 대표작 <채털리 부인의 사랑 Lady Chatterley's Lover>(1928)을 완성했다. 이 작품에는 사회에 대한 작가 자신의 신랄한 저주와, 새로운 성관계만이 현대 문명세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의 출간을 둘러싸고 여러 나라에서 외설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발매금지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그는 혼탁하고 혼돈된 세상이라고 규정지은 현대문명세계에서 작품을 통해 형식과 일관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1862년] 미국의 소설가 헨리(Henry, O., 1862~1910) 출생
본명은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고,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버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지방의 유명한 의사였고, 어머니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양친을 잃어 학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숙부의 약방을 거들고 있다가 1882년 텍사스주로 가서 카우보이·점원·직공 등의 일을 했다. 1887년 25세에 17세의 소녀와 결혼하였고, 1891년 오스틴은행에 근무하면서 아내의 내조를 얻어 주간지를 창간했으며, 지방신문에 유머러스한 일화를 기고하는 등 문필생활을 시작하였다. 1896년 2년 전 그만둔 은행에서의 공금횡령 혐의로 고소당하자 남미로 도망갔으나 아내의 중태로 돌아와 체포되었다. 3년간 감옥생활을 하는 사이에 얻은 풍부한 체험을 소재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결국 이 복역이 한 저널리스트가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석방 후 뉴욕으로 나와 본격적인 작가생활에 들어갔다.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을 다룬 처녀작 《캐비지와 왕 Cabbages and Kings》(1904)을 제외하고는 《서부의 마음 Heart of the West》(1907) 《4백만 The Four Million》(1906) 등 계속 단편집을 발표하여 인기작가로서 지위를 굳혀, 불과 10년 남짓한 작가활동 기간 동안 300편 가까운 단편소설을 썼다. 그는 순수한 단편작가로, 따뜻한 유머와 깊은 페이소스를 작품에 풍기게 하여 모파상이나 체호프에도 비교된다. 미국 남부나 뉴욕 뒷골목에 사는 가난한 서민과 빈민들의 애환을 다채로운 표현과 교묘한 화술로 그려 놓았다. 특히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줄거리의 결말은 기교적으로 뛰어나다.
문학사적으로 비중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대표적 단편 《경찰관과 찬송가》 《마지막 잎새》 등에서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탁월하게 묘사하였다. 이밖에도 대표적 단편 《현자의 선물》 《20년 후》, 단편집 《운명의 길 Roads of Destiny》(1909), 사망 후에 나온 《뒹구는 돌 Rolling Stones》(1913) 등의 작품이 있다. /naver
[1861년] 핀란드의 소설가 아호(Aho, Juhani, 1861~1921) 출생
본명 브로펠트(Johannes Brofeldt).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청년시절부터 뛰어난 산문작가로서 알려졌다. 헬싱키대학을 중퇴하고 40여 년간의 기자생활을 하였으며, 1906년에는 헬싱키대학 명예교수가 되었다. 국민문학의 건설자 A.키비를 계승하여 핀어(Finn語) 문학을 대성시켰고, 핀란드 문학을 서유럽 제국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아포 시폴라의 구혼여행 Sipolan Aapon kosiomatka》(1883) 《아버지가 램프를 샀을 때 Siihen aikaan kun isa lampun osti》(1883) 《철도 Rautatie》(1884) 등은 키비의 영향을 받아서 소박한 농민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여 핀란드 사실주의 문학의 제l인자가 되었다.
보수적인 중류계급을 취급한 《목사의 딸 Papin tytar》(1885)은 인도주의와 입센의 여성해방을 생각하게 한다. 한때 모파상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자연주의로 기울었다. 《홀로 Yksin》(1890) 《목사의 처 Papin rouva》(1893)가 그 무렵의 작품이다. 이 밖에 《불 Panu》(1897) 《봄과 겨울 날씨 Kevat ja takatalvi》(1906) 《유하 Juha》(1911) 《양심 Omatunto》(1914) 《기억하고 있느냐? Muistatko?》(1920) 《대패밥 Lastuja》(8권, 1891∼1921) 등이 있다. /naver
[1524년] 프랑스의 르네상스시대 시인 롱사르(Pierre de Ronsard, 1524~1585) 출생
루아르 지방 방도무아의 라 포소니에르 성관에서 출생. 프랑수아 1세의 황태자 오를레앙공(公)의 시종으로 입궁하여 스코틀랜드 ·독일 등에 체재하였다. 18세 때 병으로 청각에 이상이 생겨 사임하고 파리의 코크레 학원에 입학하여 J.바이프, J.뒤벨레와 함께 교장이며 그리스 학자인 J.D.도라의 지도로 고대문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들은 프랑스어를 더 없이 순결한 그리스어 ·라틴어의 위치까지 끌어올리려는 이상을 가지고 공동선언 《프랑스어의 옹호와 현양 Defens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 aise》(1549)을 발표하였으며, 롱사르 자신도 그 이상의 실현을 위하여 고대그리스의 시인 핀다로스풍(風)의 서정시 《오드집(集) Les Odes》(1550)을 발표하여 새로운 시의 유파인 플레야드파(派)의 대표자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풍(風) 소네트 《연애시집 Les Amours》(1552∼1556), 장엄한 장시 《찬가집 Les Hymnes》(1555∼1556)을 발표하여 당시 프랑스 시인의 일인자가 되었고, 12음절로 된 알렉산드란 시구(詩句)를 확립하여 고전극시의 길을 연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당대의 참상을 논하는 시 Discourse des Miseres de ce Temps》(1562)는 종교전쟁에서의 자기변호와 가톨리시즘에 대한 지지를 읊은 종교적 내용의 장시를 포함한 시집이며, 《프랑스 시학제요(詩學提要)》(1565)는 산문으로 쓴 유일한 시론으로 고전시인 ·신(新)라틴 시인의 모방을 권고하고, 고어 ·신조어(新造語) ·지방어의 채용 등을 주장하였다. 《엘렌의 소네트 Sonnets pour Helene》(1578)는 사랑과 더불어 노쇠와 죽음을 음영(陰影)으로 묘사한 롱사르 시의 최고봉이다. 생콤의 수도원에서 생애를 마친 롱사르는 16세기 프랑스 최대의 시인이며, 중세 서정시와 근대의 상징시를 잇는 계승자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특히 시형식의 개혁을 실천한 공적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 밖에
2005년 법장 조계종 총무원장 입적
2005년 9.11 일본 총선(중의원 선거) 자민당 과반 압승
2000년 북한 김용순 노동당 비서 서울 방문(~9.14)
1996년 한국-브라질 첫 정상회담. 상호투자 확대 관광-복수 사증 협정 체결
1994년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
1990년 김일성 북한 주석, 중국 방문(~9.13)
1986년 호남고속도로 4차선 개통
1982년 공주사대, 공산성서 길이21m, 너비15m, 깊이2.7m 크기의 백제시대 연못발굴
1980년 새마을지도자중앙협의회 창립
1967년 인도-중국 국경충돌
1965년 전국뇌염발생 누계 550명. 사망 158명
1964년 월남파송의 제1이동외과병원(130명)과 태권도교관단(10명) 부산 출발(22일 사이공 도착)
1964년 국회, 4년 만에 국정감사 실시
1953년 유엔군사령관에 헐 대장 임명
1951년 미국의 프로렌스 차드윅 여성최초로 영국해협 도영(渡泳)
1948년 한미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고협정 조인
1945년 미군정 장관에 아놀드소장 취임
1945년 미국-영국-프랑스-중국-소련 5개국 외상 런던회의 개막
1942년 아일랜드, 반(反)미-반(反)영 소요. 미군철수 요구
1937년 미국 최초의 우주왕복선을 조종한 크리픈 출생
1932년 이탈리아-소련 불가침조약 조인
1931년 정미시장 규칙 공포(1932.1.1-시행)
1919년 상해임시정부 헌법 제정, 대통령에 이승만
1917년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 출생
1915년 전신전화소 설치
1903년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 출생
1899년 한국-청국 통상조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