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첫 방문
박영자
여행은 잘 하고 돌아왔는데, 500자 이상 소감을 써서 내라는 숙제로 걱정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열심히 써보려 한다.
우선 우리는 이른 비행기에 타게 되었으니,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는 인솔자의 말씀에 맞추려고 김포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출발 전날 자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붕 떠서인지 꼬박 밤을 새고 말았다.
새벽에 일어나 공항까지 지하철을 이용하려다가 택시를 타기로 했다. 예정이 바뀌니 나는 또 도움이 되지 않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이 얼마나 약속을 잘 지키시는지 집에서 오는 분들은 벌써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 되기로 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다음 시간이 되면 여행지로 일본을 가보자고 약속했었는데, 이번에 그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일본행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날개가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지를 관찰하기 좋아하는 내게 바로 딱 맞는 좌석이 주어졌다! 또 기내식으로 나온 샌드위치조차 옛날의 바로 그 맛, 아주 기분 좋은 일본여행의 시작이었다.
이튿날 전국집회 일정표를 보고 걱정이 되었다.
‘내가 과연 이 시간 동안 잘 버틸 수 있을까?’
선생님들 말씀을 쳐다보며 동시통역 화면이 나오면 참 좋겠다는 과분한 생각을 잠깐 했었다. 직접 참가하는 분들이나 온라인으로 하는 참가하는 분 모두에게 똑같은 청강료를 받고 인원수를 제한한다는 배짱이 있는 집회라는 생각을 하면서 새 이마이관의 성서강당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강당을 이렇게 꽉 차도록 선생님들이 오셨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따스했다.
에머스트 칼리지에서 기독교를 배우신 우치무라 선생님이 제자들을 잘 키워 이렇게 좋은 분들이 일본에서 기독교를 펼쳐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다음날은 주일이어서 전철을 타고 교도 성서집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뒷자리에 앉으신 두 분께 여쭈었다. 오늘 우리와 같이 예배드리려고 넓은 장소를 일부러 빌렸다고 하였다. 장소가 바뀌어 몇 분이 못 오셨다고 한다.
한국에도 잠시 머무셨다는 구약학자 츠키모토 교수님이 창세기 얘기를 해주셔서 좀 알아들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내가 말을 붙였던 부인이 바로 이 교수님의 사모님이었다. 두 분이 아주 근사하고 맛있는 한국 음식을 사주셨다.
음식점이 위치한 곳은 들러서 보고싶은 게 많이 있는 번화가여서 싱싱한 채소를 사서 들고가는 잘 생긴 일본 청년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새삼 ‘여기가 일본이구나’ 했다.
오후에는 궁금했던 고려박물관을 방문했다. 마침 하라다 교코 선생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읽고 왔다. 책 속에 나오는 한복 옷장이 궁금했었는데, 직접 열어볼 수 있었다. 예쁜 한복이 가득 걸려 있었다.
그곳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 자손들이 이곳을 통해 자신의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구나.’
무엇보다 감사함이 컸다.
넷째 날, 우리는 다마공원묘지를 방문하여 우치무라 간조 선생, 후지이 다케시 선생, 야나이하라 다다오 선생 묘역에 갔다.
차에서 내려 싸리비와 물통, 솔, 걸레 등 여러 가지 청소 도구가 비치된 관리소에 갔다. 나는 싸리비가 마음에 들어 하나를 골라 들었다. 우리는 먼저 깨끗이 청소한 다음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했다. 우리와 같이 조상 섬기는 문화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였다.
작년 6월 13일자 조간신문에, ‘새 단장한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 일본의 서양미술 수용사를 말하다’라는 기사가 있었다. 나는 이 신문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마지막 일정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1년 전부터 기다린 참 좋은 기회였다.
비록 1시간 관람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었지만, 일생에 단 한 번이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드디어 로뎅의 ‘아담’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