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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변론 증거 41. 41장. 말일의 동방 역사, 타작기, 변론 권세, 북에서 한 사람.(사41:1~29)
# 새 힘을 받은 종의 변론 역사, 새 타작기를 삼음, 북방에서 한 사람 #
본장은 40장과 연결을 지어서 가르친 말씀이니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는 여호와를 앙망하다가 새 힘을 받고 민족을 새롭게 되는 변론 권세로 열왕을 굴복케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새 시대를 이룰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사명자는 동방 땅 끝인 한국에서 일어나는데 새 힘 받은 종이 변론 권세로 다림줄의 진리를 크게 세계적인 변론을 하는데 심판의 권세로 열왕이 굴복하는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통일의 변론권세 역사입니다. 야곱의 알곡 모으는 타작기 역사입니다. 에덴동산의 회복입니다.
* 요절: 25절.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 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 같이 밟을 것이니
* 강해) 이 역사는 먼저 북방에서 한 사람을 오게 한 다음에 동방역사가 일어나되 세상 권세를 짓밟아 버리는 승리의 역사가 있게 되므로 이날까지 숨겨 있던 비밀의 말씀이 세상에 다 알려지는 동시에 모든 인간들이 하던 일은 허무하고 허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증인 권세 받은 종의 자유로운 권세로 재앙으로 땅을 치며 공산 정권하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역사입니다. 한 사람인 동시에 말세 사명자를 뜻했습니다.
* 사41:1~2. 섬들아 내 앞에 잠잠 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같게 하매
* 강해) 백전백승의 용사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 힘을 받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자가 나타날 때에 섬들이 잠잠하고 민족들이 힘을 새롭게 하는 큰 변론을 가지고 동방에서 나타나서 그 새 힘을 받고 변론하는 이 역사 앞에 모든 세상의 세력이 다 굴복을 당하고 다스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세계적으로 전할 새 힘 받은 종이 나오게 되는데 심판의 다림줄을 받은 종으로 심판의 권세를 갖고 나오니 열방정권이 굴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구적인 종은 열왕 중의 왕으로 세움을 입어 그 종을 통하여 모든 것을 이루는데 숨겨놨던 종을 들어 쓰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하기 위하여 유대 광야에서부터 외치고, 세계 인류를 다 통일시켜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동방에서 일으키되 세계 통치권을 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방에서 일어나는 심판 변론의 역사로써 세계를 심판하고 구원하기 때문에 인간 죄악의 정권이 다 그 앞에서 굴복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날까지는 세계 열 왕을 다 기다리고 참으시면서 용납했지만, 심판의 변론이 동방에서 나올 때부터는 세상의 죄악의 정권을 다 없애 버리는 때이므로 자동적으로 동방 사람 앞에 굴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24:14이나 다 동일한 뜻입니다. 이 동방이라는 것은, 서아시아를 뜻한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를 뜻한 것입니다. 셈의 하나님이십니다.(창9:25)
왜냐하면 서아시아에서 동방이라고 가르치되 사59:19에는 해 돋는 편이라고 했고 41:25에는 해 돋는 곳이라고 했고 단11:44에는 동북이라고 했고, 사24:16에는 땅 끝에서부터 노래한다고 했고 사41:8에는 땅 끝에서부터 종을 붙든다고 했고 42:10에는 땅 끝에서부터 노래한다고 했고 사43:6에는 내 딸들을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라고 했고 사60장에는 열방의 재물이 동방으로 들어올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을 보면 동방 땅 끝이 즉 대한민국이 됩니다. 왜냐하면 극동 아시아에 교회가 남아서 발전하는 것은 남한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1)
@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사3:13)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1:18~20)
@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9:26~27)
* 사41:3~5.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 강해) 이 역사는 심판의 변론을 들고 나오는 역사이니 만큼 하나님께서 그 변론대로 역사하니 누구든지 당할 자가 없는 역사이므로 모든 사람이 떨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데나 가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난다는 것입니다. 공산당도 벌벌 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창22:17에 대적의 문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날까지 기독교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라고 하였지만, 인간 종말에 기독교의 역사는 열 왕을 굴복시키는 역사가 있으므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말세 비밀의 진리는 계10:7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마지막 증거가 됩니다. 지금 유물론 사상이 모든 정치인들에게 미혹을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유물주의적 정책을 해야 된다는 것이 오늘의 지도자들의 사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동방에서 일어나므로 그 사상은 하루아침에 굴복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유물주의적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시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미혹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켜 세계 열 왕을 권세로 지도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날까지는 천국 복음 운동을 하는 때이니만큼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셨지만, 지상에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여호와 친히 일어나셔서 동방에서부터 역사하게 되므로 신정적인 통치 시대가 오는 것을 새 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22:17).
@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 장을 꺾고(사45:2).
@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11:5~6)
* 사41:6~7.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 하라 하고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 군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
* 강해) 이러한 역사가 일어 날 적에 아무리 대적의 세력이 단결하고 물질적인 기술적 방법으로 대항한다 해도 이 역사를 감당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조물주 하나님의 새 힘을 받은 사람 앞에 우상의 세력이 단결해도 못 견디고 세상 과학적 세력이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마지막의 변론을 할 사람을 동방에서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니 묵시를 보여 줄 적에도 셈의 장막에 보여 주었고 그 묵시의 말씀을 완전히 세계적인 심판의 변론으로 말해서 열 왕이 굴복케 하는 것도 셈의 장막에서 나오되 동방 땅 끝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 사41:8~9.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 강해) 이러한 역사는 동방에서 일어나되 땅 끝에서부터 그 종을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 부르고 절대 싫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종님에게는 땅 끝이 부산 영도에서 1957년에 붙들리고 땅 모퉁이 계룡산에서 1964년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미약한 종은 1990년 7월 땅 끝 울산 방어진에서 말세 복음을 받았고 땅 모퉁이는 삼각산에서 기도하다가 서울 김포공항 인근 개화산에서 2003년 10월부터 밤낮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일부 교단에서는 1972년도에 돌아가신 대종님이 살아온다고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소치입니다. 마치 바리새인 교권이 오늘날까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역사할 종은 사49:2에 하나님의 손 그늘에 감추어 놓은 종이며 슥3장과 6장이 응하는 순의 종이며 슥4장의 순금등대 제단을 일으킬 촛대교회 사명자이며 두 감람나무 가지인 것이며 또한 계11:4 권세 받은 두 증인이며 감람나무 촛대교회의 사명자인 것입니다. 그가 또한 사66:7 구로하여 낳은 남자이며 계12:5에 촛대교회의 해산의 수고로 낳은 철장 든 아이로 철장 권세를 받는 종이며 요15장과 사11장에 열매를 맺은 가지된 인격의 종이 틀림없습니다. 말씀은 응하는 자 밖에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 붙들었다는 뜻은 죄인을 불렀다는 뜻과는 다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버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사65:1-5). 그러나 붙들었다는 것은 시련 가운데서 인정하고 완전히 쓰려고 붙들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 될 자로서 특별히 뽑아 낸 자입니다. 죄인을 부르는 은혜 시기가 아니고 동방 땅 끝의 종을 붙들어 쓸 때는 진노의 날에 원수를 갚는 역사를 하기 위하여 붙들었기 때문에 다시는 버림을 당하지 않는 완전 역사를 하게 된 것을 뜻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중생 받은 자가 즉시에 전하는 것이요, 기독교 종말에 승리의 역사라는 것은 은혜 시대의 종중에서 붙들어 완전한 무장을 주어 쓰는 것을 뜻했습니다. 아무리 원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이 종을 해칠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동방 땅 끝에 붙든 종은 사40:9과, 27절과에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가장 원통하고도 딱한 사정을 만난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붙들어 쓰는 종입니다.
우리는 어떤 자가 나를 붙들어 주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 큰 문제일 것입니다. 사람이란 고립적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누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생활은 보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붙들어 주는 사람이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니 이것은 한번 하나님께서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에 붙들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복된 생활입니다. 어떤 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을 벌여 놓았는데 아니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다는 처지라면 이것은 그 일에 붙들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이 되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붙든 다음에는 당신의 영광을 받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 사41:10~11.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 강해) 하나님은 그 종을 들어서 쓸 때에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해도 참으로 도와주고 붙들어 주므로 그를 대적하는 자는 멸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종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새 힘주어 굳세게 하고 일곱 영을 주어 품어주시고 심판의 영감이 와서 권세 역사를 하게 되는 종입니다.
@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사60:12)
* 사41:12~13.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 강해) 왜냐하면 심판의 변론을 가지고 나오는 때이니 만큼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그 종에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고 도와주는 종을 대적하면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분명하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인격의 소유자자 되는 종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이 붙들어 쓰는 종은 대적을 멸망케 하기 위한 목적에서 들어 쓰는 것이니 모세를 들어 애굽을 치듯이, 엘리야를 들어서 바알 선지를 치듯이, 기드온을 들어서 미디안을 치듯이, 하나님께서 기독교 종말에 완전 승리의 역사를 하기 위하여 들어 쓰는 종이니, 그 종을 대적하는 자는 전부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날까지는 수많은 순교자가 피를 흘려서 쓰러지는 자리에도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뿐이었으나, 동방 땅 끝의 종으로 붙들어 쓸 때는 용서 없이 멸망시킬 마지막 심판의 변론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과거 은혜 시대의 종들을 쓰실 때와는 다른 방법을 취하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진노하는 때 쓰는 종은, 그 종을 대적하는 자를 반드시 멸망시킨다는 것이 하나님의 종에게 맡긴 특권입니다. 종들의 억울한 피 값을 갚는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싸워 주는 것입니다.(25).
* 하나님께서 동방 땅 끝에 종을 붙드는 때는 부활성도의 역사가 아니고 변화성도의 역사라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부활성도는 은혜 시대 역사라면 변화성도는 진노의 날에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변화성도는 대적을 짓밟고 나가는 역사를 하다가 재림의 주를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노의 날에 주님을 맞이할 남은 종이기 때문입니다.
* 사41:14~15.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 강해) 아무리 인간이 볼 때에 지렁이 같이 무시를 당하고 약하게 보이나 하나님은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산 같이 교만하고 강한 세력도 그 앞에는 겨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렁이 같이 멸시 받는 종이며 땅속에 숨겨진 미약하고 훌륭하지 못한 종에게 응답이 온다는 것입니다. 짓밟혀도 대항치 않고 남을 해치지도 않고 이유 없이 짓밟히는 것은 연단 받게 하는 하나님의 모략입니다. 그러니 권세 받기 전에는 아무도 몰라보는 것입니다. 쇠를 연단시키듯이 지렁이 같이 무시 천대 멸시 짓밟혀도 하나님만 바라보면 새 타작기를 삼으신다는 것인데 알곡을 모으는 추수군의 사명자입니다. 타작 기계는 낫(계14:14~20)입니다. 산 같은 세력이 다 날아갑니다. 교만의 세력 공산당도 날아가게 됩니다.
이 날까지는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시키는 역사이므로 아무리 사랑하는 종이라도, 그 몸이 원수의 피해를 당하기도 하고 질병의 피해를 당하기도 했지만, 완전 승리의 역사라는 것은 아무리 지렁이같이 약하고 무시를 당하는 야곱이라도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때에 어떠한 원수의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데도 이기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조물주의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도와주는 사람을 피조물 된 어떤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기가 피해를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작기 역사라는 것은 알곡만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 역사를 가르친 것입니다. 계14:14이하 타작기 이한 낫의 곡식과 포도의 추수 역사입니다.
@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계14:14~20)
@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시113:6~8).
& 타작기에 대하여 (사41:15)
동방 역사의 타작기라는 진리는 다음과 같은 3대 요소가 있습니다.
1) 타작기라는 것은 마지막에 끝을 맺는 역사를 뜻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1년간 계획이 타작기에서 끝을 맺는 것이니 농촌의 농사와 같은 의의를 뜻한 것입니다. 이날까지 기독교에 이천년간을 내려오는 모든 역사가 동방 역사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 내포된 것입니다.
2) 타작기는 용서 없는 심판권의 역사의 의의를 가졌습니다. 사정이 없는 날카로운 쇠와 같이 강한 역사가 알곡만을 모으기 위한 강한 바람의 힘의 역사를 뜻한 것입니다. 이 타작기의 힘 앞에는 아무리 태산 같은 세력도 쭉정이가 될 망할 자들은 다 부스러져서 없어지는 뜻입니다.
3) 완전한 결합체를 이루어 놓는 최종적인 완전 교회를 이루어 놓는 역사입니다. 이날까지 교회라는 것은 완전한 알곡으로서 결합을 이루는 교회가 아니요, 씨를 뿌려 가꾸는 농장에 불과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동방의 타작기 역사는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서 이루어진 교회이니 그 교회는 하나도 누락됨이 전체적으로 남은 교회로서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여 안식을 이루는 역사입니다.
* 사41: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 강해) 이 역사는 알곡을 모으는 추수기의 역사이니(요4:35~38) 이 역사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자랑하게 되는 동시에 큰 승리를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종이 여호와를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지렁이 같이 짓밟혀도 여호와만 자랑하고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움 받는 체험 있는 종이 알곡 모으는 타작기가 됩니다. 환란을 통하여 알곡을 모으게 됩니다. 타작기라는 것은 알곡을 모으는 사명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날까지는 씨를 뿌리는 역사라면 동방에서 역사하는 종말의 역사는 쭉정이와 알곡을 갈라놓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릴 때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난 일이 없지만 알곡을 모으는 추수 심판기의 역사는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종을 강하게 들어 쓸 때는 극도로 미약해지고 멸시를 당하고 인간이 볼 때는 아무런 소망 없는 사람이 되게 하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부르짖는 종에게 강한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영광을 받기 위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쓸 때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인격이 극도로 무가치하게 되는 환경에 떨어뜨리는 것은 사람으로 하나님만 자랑하게 하는 방법이요,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만족함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완전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필요가 없게 될 것이요, 그 능력도 하등의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에 신과 같은 인격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지렁이 같이 무능한 인생으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를 받음으로만이 승리하게 하는 것이 사랑의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원수의 세력은 강하게 하고 인간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그 원수를 당할 수 없게 하신 후에 홀연히 나타나서 당신의 종으로 그 원수를 이기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약한 종을 쓰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므로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겸손과 진실입니다.
이 날까지는 마귀의 강한 세력을 들어서 택한 자를 괴롭히는 일이 있었지만, 추수기에 알곡을 모으는 때에는 아무리 산같이 강하게 높아진 자라도 다 없이하는 역사입니다. 죄인을 부르는 동안에는 하나님은 잠잠히 참고 계셨지만, 알곡을 모으는 때에는 알곡 된 참된 하나님의 백성만 남게 하고, 그밖에 모든 세력은 이 땅에서 다 없이하는 것입니다.
* 사41:17~20.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바 인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 강해) 이 역사는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 주는 역사이니 아무리 가련하고 빈핍하고 딱한 사정을 만나도 하나님은 응답의 역사로 그들에게 새 땅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응답내리는 것이 새 시대의 축복입니다. 우리나라가 새 시대의 본부이며 선지 국가가 될 때에 역사는 새 시대의 비밀인데 우리나라를 통하여 세계통일의 새 시대가 이루어집니다.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는 여호와만 자랑할 일이 온다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를 지배할 인격은 여호와만을 자랑하게 되는 자일 것입니다. 황금만능을 자랑하는 것이나 모든 인간의 자랑이 다 없어지는 날에 여호와만 자랑할 수 있는 일은 동방 땅 끝에 있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셈의 장막에서 과거에도 미래에도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지금 동방 아시아에 하나님의 제단이 다 황폐된 금일에 극도로 민생고가 심한 것은 동방이며, 종교 위기가 온 것도 동방이요, 인심이 악화된 곳도 동방입니다. 무엇으로 보든지 동방의 극동은 불행스러운 정부, 불행스러운 국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은 동방 땅 끝에서 여호와를 자랑하리라고 말씀한 이것은 하나님은 끝날 에도 셈의 장막에서 역사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응답이라는 것은 은혜 시대의 응답과 재앙의 날의 응답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은혜 시대의 응답이라는 것은 죄인들이 회개할 때에 속죄의 은총이 응답으로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종말에 추수기의 역사는 아무리 가련하고 빈핍한 자라도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응답을 내리므로 그들이 승리하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남의 나라보다도 가련과 빈핍이 닥쳐왔지만, 종말에 세계 통일의 역사는 동방 땅 끝의 남은 땅이 되는 우리나라에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산당이 아시아 땅의 모든 교회를 다 짓밟게 하고 동방 땅 끝 이 나라에만 교회를 남기고, 남의 나라보다도 부르짖는 기도를 많이 하게 하신 것은 벌써 이 나라에 응답이 오는 증거입니다. 벌써 빈민의 자녀들에게 이런 기도의 힘이 임한 것은 가련하고 빈핍한 자에게 축복이 올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축복은 무조건 주었으므로 그것을 길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에 대하여 시험을 해 본 것이 마귀의 시험입니다. 둘째 아담 예수를 통하여 중생 받은 이스라엘이 새 시대를 축복으로 받는 것은 미리 시련을 통과시키고 시험을 해 본 다음에 주는 축복이니 완전한 왕국이 됩니다. 만일 지금도 시험을 해보지 않고 준다면 또다시 부패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해보고 응답 받는 자로써 이루어지는 새 땅은 에덴동산보다도 더 완전한 왕국이 됩니다.
완전이라는 것은 응답으로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응답은 시련을 통과한 자에게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어 중생을 받은 이스라엘이 됨으로가 완전이 아니요, 이스라엘이 된 백성으로 시련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기도함으로써 응답의 열매가 즉 새로운 시대를 성도의 나라로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창조를 받은 사람만이 아니요, 인정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루어지는 새 시대니 하늘과 땅과 산천초목이 다 같이 기뻐할 일입니다.
* 여호와를 자랑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극도로 애타는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응답을 해주는 것이므로 끝을 맺는 종말의 역사이니 이 역사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17-20). 셈의 장막인 서쪽에서 일어난 예루살렘 다락방 교회의 일은 세계만방의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열매를 맺었고, 동방 땅 끝에서 일어나는 역사는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씨 뿌리는 시대는 교회가 은밀한 가운데서 각자 각자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이었으나 새 시대가 오는 종말기의 역사는 만민 앞에 여호와를 높이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일이 다 세상이 알도록 끝을 맺기 때문입니다.
* 사41:21~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과연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 강해)이때에 우상을 섬기던 모든 인간들이 놀라게 되며 허망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새 시대가 이루어질 때는 우상세력은 다 허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예언의 성취가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 사41:25~29.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 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 같이 밟을 것이니 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우리에게 고하여 알게 하였느뇨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고하여 이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뇨 능히 고하는 자도 없고 보이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 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 한 말도 능히 대답할 모사가 없도다.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이니라.
* 강해) 이 역사는 먼저 북방에서 한 사람을 오게 한 다음에 동방역사가 일어나되 세상 권세를 짓밟아 버리는 승리의 역사가 있게 되므로 이날까지 숨겨 있던 비밀의 말씀이 세상에 다 알려지는 동시에 모든 인간들이 하던 일은 허무하고 허탄한 것이 될 것입니다. 25절이 응한 것은 대표적인 종이 1949.4.22. 새벽에 북에서 강권으로 남하하는 일이 있었으며, 27절에 기쁜 소식을 전할 자는 사명의 계대자입니다.(사59:21) 다시 예언의 사명자로 아름다운 소식을 다림줄로 전하는 자입니다.(나1:25)
물론 말세 사명자는 십사만 사천 명이지만 먼저 대표적인 종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방을 들어서 종말에 환난이 오게 하기 위하여 북방의 넓은 땅을 악의 세력에게 맡기므로 북에서는 도저히 일할 수가 없는 압박이 있게 되어 북방에서 하나님의 종이 남방으로 나아오게 될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스스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으켜 내보낸다고 한 것은 어떤 인간의 생각을 따라 북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북방에서 나오도록 강권 역사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해 돋는 편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되 원수를 짓밟는 역사가 인 맞은 십사만 사천 명의 말세 사명자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어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진리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숨은 비밀인데, 이 진리를 분명히 알게 되는 일이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역사하시는 것이니, 율법 시대가 지나고 은혜 시대가 올 때에 바리새인들이 갈릴리에서 일어난 역사로 말미암아 이방의 빛이 되어 민족적 국경의 차별 없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일어나서 기독교를 박해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동방 해 돋는 편에서 역사가 일어나되 세계 통일의 완전 역사가 일어남으로써 북방에서 오는 원수 세력을 이기고 남은 자로서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비밀을 이 날까지 하나님께서 숨겨 놓았다가 그 진리를 알도록 끔 하시는 것은 심판기가 온 증거입니다.
구약 말기에 동방 고레스를 들어서 바벨론을 치고 황폐된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과 같이 인간 종말에도 동방 사람에게 역사가 임하므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 비밀을 가르쳤다고 보아야 합니다.
첫째 : 갈릴리 나사렛 목수 예수를 믿으므로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비밀입니다.
둘째 : 해 돋는 동방 땅 끝에서 여호와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하고 새 시대가 온다는 비밀입니다.
기독교에서 이 날까지 성경의 진리를 다 안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를 믿음으로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비밀을 전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원수의 세력을 완전히 승리하고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비밀을 아는 자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성경의 모든 숨은 비밀이 동방 땅 끝인 이 나라에 햇빛같이 나타난 것은 때가 온 증거입니다.
@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9:21)
@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시40:7~9)
&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됨.(27).
이 소식이라는 것은 천국 복음을 뜻한 것이 아니고, 환난과 재앙 가운데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역사를 가르친 것입니다. 가장 기쁜 소식은 성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날까지는 수많은 종들이 억울하게 쓰러졌지만, 그 종들의 억울한 피 값을 갚는 역사가 해 돋는 동방에서 일어나므로 완전한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이방 사람에게 전할 소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쁜 소식을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준다는 것은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가 아니요, 이방적인 세력을 다 없이하고 예루살렘적인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진리 운동을 가르친 것입니다. 천국 복음 운동은 죄인을 부르는 역사라면 예루살렘에 전하는 기쁜 소식은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역사입니다.
이미 1949.4.22에 한 종을 일으키는 역사로 하나님께서는 동방 역사를 시작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계시록의 해 돋는 곳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동방역사가 맞는 것인데 말씀이 응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니 선지서와 계시록의 비밀을 다른 나라에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통해서 천국이 이루어지고 둘째 아들 사도 요한 통해서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데 동방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도 요한의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 뢰자가 사명 계통이며 계시록의 비밀을 모르고는 안 되는 것이며 우리도 사도 요한의 뢰자 영감을 받는 것입니다.(계19:10 대언의 영, 계22:6 선지자들의 영). 역사는 27절에 응답 받는 종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할 자이며 다시 예언의 사명자입니다.(시40:7~9)
# 야곱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므로 승리하게 됨.
(사41:25~27).
우리가 이 날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는 성신을 받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원수를 승리하게 되는 역사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역사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됩니다. 이 날까지 우리가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누구든지 다 죄 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는다는 것이 영혼 구원의 역사이지만 이 땅에 원수를 완전히 없이하고,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여호와 일어나므로 원수를 승리하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되어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므로 승리하게 되는 역사에 대하여 우리는 이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므로 승리하게 되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이 날까지의 역사는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 회개 운동이라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역사는 악의 세력을 이 땅에서 완전히 없이하고, 성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역사를 가르친 것입니다.
# 야곱에게 새 타작기 역사를 주므로 승리하게 됨.
(사41:14~20).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종말에 완전 승리의 역사를 타작기 역사라고 하셨습니다. 타작기라는 것은 은혜 시대의 역사를 뜻한 것이 아니고, 추수기에 알곡을 모으는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가장 강한 역사는 지렁이 같은 야곱을 새 타작기 같이 쓰는 역사입니다. 사람이 볼 때는 가난한 자가 제일 약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나릴 때에 세계를 통일한 사람은 경제권을 쥔 자나 정권을 쥔 자나 교권을 쥔 자가 아니요, 궁핍 속에서라도 기도하던 사람에게 나리는 역사는 종말에 심판의 역사이므로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동방 역사를 일으킬 것은 새 시대를 이루는 종말의 심판기의 역사라는 것을 가르친 동시에 구약 말기에 예루살렘을 황폐케 하던 바벨론을 멸망시킨 고레스의 사실을 들어서 가르친 것입니다. 타작기의 이한 낫의 역사로 곡식과 포도의 심판으로 끝을 맺는 역사입니다.(계14:14~20)
* 궁금한 시기는 남북환란 통일은 2022년~2023년, 전 삼년 반은 2022년~2026년쯤, 휴거 및 3차 대전은 2026년쯤, 후 삼년 반은 2026년~2029년쯤, 아마겟돈 전쟁은 2029년쯤, 천년왕국은 2032년쯤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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