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봉 愚賢峰 !
알려진바에 의하면 우禹씨의 본本은 단양丹陽 .강주. 예안. 영주 등 네가지 본本으로 그중 단양우씨가 단연 많은걸로 알고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중에는 우禹씨가 아닌 우愚씨가있다 어리석을 우愚자이다
원래 이름은 맹공달 孟孔達인것을 내가 그를 우현봉愚賢峰으로 부르는데 그는 아주 마음이 든다며 좋아하여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가 우현봉으로 아는데 별로 불편이 없다고 한다
아버자가 유명한 작명가인데 외아들에게 공달이란 이름을 지어주며 공자 맹자와 같은 현자가 되라는 뜻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지음 신세대중에서 공맹孔孟을 어디가서 그리 쉽게 찾기는 힘들것 같가
맹달이는 이름처럼 인간 됨됨이가 좋은사람이며 지성적이면서도 침착하고 사리가 밝다
얼핏 어리석은듯 하면서도 현명하다는 뜻에서 우현봉으로 이름하고 나혼자 만이 현봉이라 부른다
그후부터 맹달이는 호號를 현봉賢峰으로 즐겨 쓰고있다
내가 현봉이를 알고 지내기는 10여년이 훨씬 넘은 종로 인사동 어느 서예 전시장에서 였다
내가 서예를 하게된것은 햇수로는 이미 30여년이 되지만 징검다리식으로 대충하다보니 말만 서예가이지 누구에게
그럴듯한 선물 하나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아마추어 수준에서 머므르고 있다
그러나 인사동을 지날때나 아님 개인전을 하는 전시장에는 곧잘 찾아 다닌다
누군가의 글이나 그림은 상상외로 배울게 많고 나머지 대부분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것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땀을 흘리였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잘 잘못 된것을 떠나 나혼자 만의 감상을 즐긴다
사람은 누구나 배운다
좋은 작품에서 묘미를 배우고 조금 부족한 작품에서 무엇이 부족한가를 배운다
뿐만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서 향기를 더듬고 나쁜사람에게서 고처야할 부족한점을 살핀다
어려서 서당에서 천자문 계몽편 명심보감 소학 맹자 첫권에 이르기까지 공부한것이 서예를 하게된 기초가 되였다
게다가 한문급수 시험도 최고 등급에 올려 놓으면서 한문이라면 그런대로 누구 못지 않는다고 건방진 자부심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앞서 누군가가 작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와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공손히 다가와 글자를 묻는다
靝(하늘천)자를 나에게 묻는다 그것으로 그와 나는 인연이 되였고 마침 오는 방향이 우연히도 같아서 같이 나오면서 이야기 하다가 같이 점심을 하게 되였다 나와는 머지않은 곳에 살았고 또 나보다는 두살이 아래였다
그가 곧 맹공달孟孔達이자 우현봉愚賢峰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여 시간이나는대로 인사동에사 자주만나 반주에다 밥도 같이 자주했다
반주를 즐겨하는 그는 겉으로 보기에 아주 훤칠한 키에 인상마저 좋아 호감이 가는 좋은 사람같았다
현봉이가 처음으로 붓을 들었다
억지춘향으로 나의 권고에 의해 종로 어느서실에 나갔다가 한두사람씩 알게되면서 방콕의 삼식이 신세를 면하게 되였다며 오히려 기뻐한다 또 재력이 튼튼해서 서실에서도 여러사람들과 술과 식사도 자주 사지만 그는 잘난척도 아는체도 않고 말도 잘하지 않으며 잘 나서지도 않는다 게다가 자기 신분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지 않는다
잘웃지 않으며 나서지 않으며 신분을 잘 밝히지 않으니 자연히 옆사람들도 그를 어렵게 보는이가 많다
고사종신화사굴高士終身還似掘 이요 지인처세반여우智人處世返如愚라
고상한 선비는 이따금 못난체도 하고 지식있는 이는 때로는 바보 인척도 한다는 말이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고사高士나 지인智人은 일부러 못난체도 어리석은 체도 한것같다
내가 오래전에 젊어서 남의집 전세를 산 적이 있다
주인인 성영감은 어려운 일이나 애매한 일을 만나면 곧잘 빠저나가는 재주가 있었다
전세를 터무니 없이 많이 올려달라고 해서 형편상 조금 깎아 달라면 눈을 지그시 감고 말을한다
- 글쎄요 이런땐 내가 무슨 말을 해야죠 - 마주보면 불편한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과는 더 이상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 결국은 다른집을 찾아 이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항상 깔끔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현봉을 보느라면 옛날 주인집 성영감이 떠오른다
성영감은 집에서도 항시 편안한 정장을 하고 보일듯 말듯 한잔술로 얼굴이 환한 모습이였으나 인자스러워 보이는 태도와는 달리 대화를 하게되면 언제나 원칙적이고 한번 한말은 그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였다
언제나 좋은말만 찾아서 덕담을 나누면서도 자신은 낮추고 살던 사람이였다
어쩌면 자식과도 같은 나에게 언제나 존칭을 쓰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집에서 삼년을 살면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살았다
귀이 천위본貴以賤爲本이요 고이하위기高以下爲基라고 한다
귀하고저 하면 비천함을 근본으로 삼고 높임을 받고저 한다면 낮음을 기초로 하란 말이다
입이 무겁고 고개를 숙이면 범접하기가 어렵고 겸손하고 무릎을 꿇으면 사람들이 다가서기가 힘들다
현봉을 알고 지난지 10여년이 지난 어느날 그로 부터 점심을 같이하자기에 처음으로 만났던 인사동 어느음식점에서 만났다 꽤나 고급스럽고 아늑한 곳에서 반주와 곁들여 식사를 했다
- 석봉선생 우리 그동안 많이 배우고 즐거웠는데 이제는 서로 만나기가 힘들것 같으네요 -
- 무슨 말씀을 내가 오히려 부족한점을 많이 채웠슴니다 그런데 갑자기 ? -
그는 본시 고향이 제주도라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조그만 땅이 있어 고향을 지키기 위해 하향하겠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고향이라 ? 십여년을 같이 지냈으면서도 전혀 사투리도 쓰지 않을 뿐아니라 한번도 고향이야기를 꺼낸적이 없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였다
나는 누구인가 ?
나는 그와 식사나 술은 물론 같이 서예를 하면서 나의 신상을 너무나 쉽게 노출시키였다
고향이야기도 지나온 이야기도 마음속까지도 아주쉽게 말하지 않았는가
- 그래요 ? -
한참을 지난이야기를 하다가 오늘은 자기가 계산하겠다며 카운터로 가는순간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다 명함 한장이 떨어져 모르는척 하고 슬며시 주어 속호주머니에 넣고 음식점을 나왔다
거리는 어느새 전등불이 켜지고 두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악수를 하고 헤어지면서 뒤돌아 보니 그도 같이 뒤돌아 보며 손을흔든다
C 신문사 편집국장 양정국!
제주도라 ! 고高부夫양梁씨가 아니든가 ?
나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양정국의 신상을 알아보았다
- 아 ! 양국장님 말씀입니까 그 선배님은 제가 오래 모시고 있던 세상에 둘도 없는 멋쟁이 인테리이셨죠 -
맹공달과 양정국이 동일 인물이였음을 정확히 확인되였다
일부러 명함을 모르는척 하고 떨어뜨리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밝히자는 것이 아니였을가 싶다
신기루같은 맹공달에게 멋있게 한방 얻어 맞은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어째서 양정국이가 공맹달로 변신했으며 우현봉을 즐겨 썼고 호를 현봉으로 이용했을가
왠지 모르게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과 더부러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멋쟁이 우현봉이였어 ! 손익에서 보면 그도 나도 서로가 조금도 밑진게 전혀 없잖아 !
입술이 푸르딩딩하거니 말을 소곤소곤 하는 사람은 삼가라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활달했다
요지음 세상 속에서는 친구를 아주쉽게 배반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등치고 사기치는 친구도 있는데 !
십년지기보다는 밥한끼 한잔술에 속을 털어놓는 사람이 많은 시대가아닌가
익자삼우益者三友요 손자삼우損者三友라
잠시 만나드라도 배려하고 위로 해주고 같이 즐기고 같이 아파해주는 친구가 절실한 때가 아닌가 싶다
과연 나에게 절실한 친구가 과연 있는가 뒤돌아본다
수첩속에 빽빽한 많은 지인들이 있다지만 마음이 울적하거나 괴로울때 막걸리한잔 하자고 전화 한통할수 있는 친구는 과연 얼마나 있을가 오늘도 하 쓸쓸하다보니 신기루같은 맹달이 아닌 정국이가 생각난다
정국이는 전화한통만 하면 열일 제껴놓고 달려오든 사람이였다
양정국 !아 ! 십년이 지났지만 처음 불러보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