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다음날 서울 걸음을 앞두고 있었다. 큰 녀석은 전방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남은 학업을 마무리하고 있으며 작은 녀석은 해야 할 공부가 아직 멀게 남았다. 기숙사 머물던 두 녀석이 큰 녀석은 지난 봄, 작은 녀석은 올 가을 학기 앞두고 원룸을 얻어 나오고 있다. 대학이 달라 한 곳 합쳐 있기도 어려워 우리 형편에 주거비가 만만찮게 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창원 지역에도 KTX가 개통되었으나 시간을 단축시킨 편리만큼 요금은 더 부담된다. 최근 잦은 고장으로 이용자가 불안을 느끼고 있음은 떨칠 수 없다. 그래서 집사람과 함께 이번 올라갈 서울 걸음은 아침 이른 시각 우등고속으로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오전에 강남에서 큰 녀석을 보고 오후에 강북의 작은 녀석 일을 보려니 도착지 기준으로는 철도보다 버스 이용이 더 수월하지 싶었다.
버스승차권 예매 상황을 인터넷 검색으로 실시간 알 수 있었다. 내가 타려는 첫차는 연휴 다음날 새벽이라 절반 넘게 예매되어 있었다. 인터넷으로 손쉽게 승차권을 예매할 수 있음에도 내 능력은 미치지 못했다. 나는 은행업무도 대기표 받아 순번을 기다려 창구에서 일을 보아야 한다. 남들은 믿으려하려 할지 모르겠다만 나는 우둔하게도 휴대폰 문자를 보내지 못하는 현대판 문맹세대다.
나는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창원종합버스터미널로 갔다. 내일 아침 서울행 첫차 승차권을 두 장 예매해 두었다. 우등고속을 이용하면 KTX보다 시간은 좀 더 걸릴지라도 편도요금 기준으로 만 원 이상 절약할 수 있었다. 나는 승차권을 예매해 놓고 잠시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했다. 용강고개 너머 주남저수지로 나가봄직했다. 더 멀리 일동 근처 낙동강 강둑으로 나가도 됨직했다.
내가 집을 나설 때 도시락과 우산은 챙겨 나왔다만 비가 내리거나 햇볕이 나도 들판이나 강둑보다 숲속이 더 좋지 싶었다. 산에 들면 숲 그늘이 있고 계곡물이 시원하게 흘러 좋다. 나는 버스터미널 건너편 정류소로 갔다. 대방동을 종점으로 마산에서 오는 106번 버스가 바로 왔다. 웬만한 번호는 거의 다 알고 있는데 106번은 낯설었다. 내가 사는 동네와 전혀 다른 코스로 다니는 버스였다.
대원동 늘 푸른 전당을 지나더니만 다시 창원대로로 빠져나와 창원병원을 거쳐 상남동으로 갔다. 은아아파트 후문을 지나 대방동 종점까지 갔다. 덕분에 시내 지형지물을 잘 익혔다. 대방동 종점에서 성주도서관 방향으로 올랐다. 도서관 곁엔 삼정자 전통놀이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고누놀이, 비석치기 등 추억의 놀이 31가지를 선정하여 놀이방법과 유래를 소개하고 직접 체험해보도록 했다.
나는 공원을 한 바퀴 걷고 나서 삼정자초등학교를 돌아 성주아파트 단지 끝으로 갔다. 최근 설치를 끝낸 목책계단 따라 올라 마애불상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 불상이나 석굴암 불상과는 다른 노천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부처상을 조각해두었다. 정교하지 못하고 투박해서 좀 촌티가 나는 마애불이다. 그래도 내 마음속 부처라고 나는 삼정자동 마애불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마애불을 지나 용제봉 오르는 등산로로 들었다. 올봄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약수터를 한 곳 개발해 놓았다. 음용 부적합 판정이 난 알림판이 있어도 나는 한 바가지 떠먹었다. 약수터에서 조금 더 가면 농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인 농바위가 나왔다. 그 바위에 ‘불모산성추계원선산좌록각록’이라는 한자 암각이 새겨져 있다. 오래 전 불모산동 원주민들이 산소의 위치와 지명을 병기해 놓았다.
중간에 상점고개를 지나 불모산 가는 갈림길과 대암산으로 오르는 길도 나왔다. 나는 용제봉으로 오르다 희미한 길로 빠져들었다. 샛길이 아니라 산짐승이 다닌 길 정도지 싶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울창한 숲을 거닐었다. 알맞게 땀이 흐르는 즈음이었다. 하얗게 포말이 쏟아지는 폭포수 곁에서 가져간 도시락을 비웠다. 나는 도시락을 비우고 나서 할 일 남아 있었다. 청정계류에서 할 일이. 1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