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생물학 논쟁
사회생물학 논쟁이라는 것이 있다. 하바드 대학 교수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이 1975년에 출간한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이라는 책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요한 논쟁이다. 윌슨은 그 저서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사회적 행동은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오랜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행동은 보통 문화적인 학습과 전승의 산물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윌슨은 그것 역시 유전적 요인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윌슨은 심지어 사회학이나 인류학이 소멸될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까지 내놓았다. 그는 사회학이나 인류학이 다루어 온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분자생물학에 바탕을 둔 유전학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학자들은, 사회, 문화적 존재인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의 꼭두각시가 아니며, 유전적 요인보다는 환경적, 문화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들은 윌슨의 주장이 지닌 잠재적인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유전적으로 열등한 사람과 우월한 사람 사이의 차별이 부각될 위험 같은 것이다. 때문에 윌슨의 주장을 가리켜 생물학을 인종적 우월주의에 이용했던 나치의 망령이 부활했다고 우려하는 사람마저 있었다. 여하튼 사회생물학 논쟁의 쟁점은 결국 다음과 같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 및 문화적 요인 가운데 어떤 것이 인간의 본질을 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2. '이기적 유전자'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출간된 이듬해인 1976년에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를 출간한 옥스퍼드 대학 교수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윌슨의 주장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선언하면서, 인간은 유전자에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먹고 살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가리켜서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장, 즉 유전자 결정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기계의 목적은 자신을 창조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를 보존하는 것이다.
Richard Dawkins |
따라서 번식하는 것도 유전자를 계속해서 남기기 위한 행동이며, 결국 생명체는 유전자를 보존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유전자는 자신의 보존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친척과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각별하게 배려하는 것이 보통이다. 도킨스의 주장에 따른다면 이러한 가족 사랑도 결국은 비슷한 유전자를 조금이라도 많이 지닌 생명체를 도움으로서,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행동, 즉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비롯된 행동에 불과하다. 심지어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돕는 이타적인 행동도 실제로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유전자가 생존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에 불과하다고 한다. 도킨스는 이렇게 말한다. |
배우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같은 자식에 대해 서로 똑같이 50%의 유전자를 투자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들의 자식에게 투자한 50%의 유전자의 복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결국 서로 협력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양자 모두에게 어느 정도 유리한 셈이다. ('제9장 암수의 다툼' 중에서.)
3. 밈(Meme)
TV에 등장하는 인기 연예인의 머리 모양을 흉내 내거나, 연예인이 착용하는 것과 같은 모양의 장신구가 유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의 것을 모방하여 본뜨는 행동인 셈이다. 도킨스는 이러한 모방 심리를 밈(Meme)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설명하고자 한다. 밈은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mimeme이 유전자를 뜻하는 진(Gene)과 발음상으로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도킨스 자신이 만든 말이기도 하다. 유전적인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 곧 '진'이라면, 문화적 진화의 단위가 밈이 되는 셈이다. 유전자는 정자나 난자를 통해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복제된다. 이에 비해서 밈은 모방을 통해 한 사람의 두뇌에서 다른 사람의 두뇌로 복제된다. 결국 밈은 유전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모방을 통해 전해지는 문화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가 유전자 복제를 통해 자신의 형질을 후손에게 전하듯, 밈도 스스로를 복제하고 널리 전파되면서 진화한다. 유행이나 문화의 전승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결국 생물의 유전자와 닮은 점이 적지 않은 셈이다. 물론 유전자와 다른 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유전자는 반드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물려 주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 유전자를 전해 받는 후손의 개체수도 제한된다. 그러나 밈의 복제는 모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록 복제의 정확성은 유전자에 비해 떨어지지만, 무척 빠른 시간 안에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다른 개체들에게 전파, 확산시킬 수 있다.
이러한 도킨스의 주장은 강경한 유전자 결정론에서 한 발 물러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문화적인 요소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도킨스는 생물학적인 유전자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문화적 요소조차도, 유전자 복제의 논리를 통해 설명하려고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밈(meme)은 은유적으로서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내 마음에 풍부한 밈을 실었다면 문자 그대로 여러분은 내 머리에 기생한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유전적 메커니즘으로 기생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밈이 전파되는데, 이때 뇌는 중간 매개물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단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사후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에 관한 밈은 실제로 수많은 시간이 지남 후에, 세계 곳곳의 개인들의 신경계 속에 어떤 물리적인 구조로서 현실화된다. ('제11장 밈' 중에서.)
4.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
앞서 언급했듯이, 윌슨과 도킨스의 도발적인 문제제기로 인해 촉발된 사회생물학 논쟁은 결국 인간의 본질에 대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과 문화적인 학습과 전승을 통해 형성되는 인간, 이러한 두 측면을 둘러 싼 논쟁인 셈이다. 도킨스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생물학자들 대부분은 비록 어느 한쪽 입장을 지지하더라도,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다. 기본적으로는 유전자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문화적, 환경적 요인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도킨스의 주장은 최근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생명공학과 관련해서도 무척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생명체 복제 기술의 발전은 물론, 얼마 전에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작성됨으로써, 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 차별 문제 같은 것이 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유전 형질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여러 형태의 차별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지원자들의 유전자 정보를 입사 원서에 첨부하게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몸이 건강하고 지적인 능력도 우수한 사람을 채용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적 형질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우대 받는다면, 문화적, 환경적인 요인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도킨스의 주장에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 그의 '이기적 유전자'는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들을 깊이 생각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