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6:1~17)
(나를 은근히 포함하지 않는 알량함이 있지만)
그동안 세상의 부조리와 억울함이
일거에 제거되거나 해결되지 않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세상이 왜 이러냐?'
'하나님, 저런 악함을 두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와 같은
생각이 솟구쳤었다.
아무리 하나님의 징계의 때가 연기된다 해도
최소한 오늘 본문에서 언급한대로
심판의 날에는 끝까지 악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따르지 않은 일을
적나라하게 다루고 보응하실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내 답답함은 해결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다행히 보응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해도
그 보응의 실제에 놀라서
떨거나 너무 안타까와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지금의 답답함을 앞세우기보다
한 영혼이라도 복음의 사랑을 인생의 목표로
변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히 할 일이다.
오늘 본문에서 묘사하는 것을 단순한게 요약하면
'눈물, 후회, 도주 본능, 탄원...'뿐이다.
악함을 따르는 이들의 영악함도,
술수도, 힘도, 효과도.... 어느 것도 흔적조차 없다.
약하면서도 약함을 망각하거나 부인하며
경고망동이나 타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지막을
그렇게 명료하게 알려주신다.
그러니 '오늘의 기도'에서와 같이
"심판이 가까움을 볼수록, 구원의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더 굳건히 서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 평안한 토요일, 휴일 아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평안할 때 타자를 더욱 생각하게 하소서.
제가 곤궁에 처해서는 타자의 도움을 받게 될터인데
평안할 때는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이들, 그들의 간구를 들어주소서.
제가 길을 걸을 때나 일을 할 때나 생각날 때나
어떤 때든지 영혼들을 위해서 한 명, 한 명 기도하게 해 주소서.
내일은 주일입니다.
제게 복으로 주신 목장식구들,
귀하게 여기고 서로 격려하며
서툴지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게 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