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여배우 김지미의 남자들
" 나이 많은 사람과 도, 어린 남자랑 도 살아 보았으나,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
이 글은 한국영화의 전성기에 많은 사람의 인기를 누리며
정상에 서 있던 여배우 김지미의 인터뷰중 숱한 스캔들과
연애사건 으로 세상을 뒤 흔들었던 남성편력 부분만 을
그대로 잘라 온 것임을 밝힌다.
어떤 이들에게 김지미(40년생.본명 김명자)는
남성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femme fatale)의 상징
이라했고 어떤 이들에겐 관습을 훌훌 벗어던진,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였다고 말했다.
1957년 덕성여고 2학년 재학 중, 명동에서
김기영 감독에게 '길거리 캐스팅' 되어 곧바로
영화 '황혼열차' 의 주연으로 데뷔 했다.
이듬해 '별아 내 가슴에' 로 스타 반열에 오르고,
영화를 연출했던 홍성기(12살차이 1928~2001) 감독과
결혼을 했다.
18세에 결혼이라….와~! 빠르다
"결혼 후, 국제극장에 속한 당대 최고 영화사 에
최무룡 이 전속배우 로 들어 왔다.
홍성기와 김지미 두 사람은 결혼 4년 만인,
1962년 9월 4일 이혼을 발표했다.
홍 감독은 "하룻벌이를 하는 지게꾼의 신세가 부럽다"
했고 김지미는 "어차피 맞을 소나기" 라고 했다.
당시 편당 30만원의 출연료를 받던 김지미 는 집 두채
(600만원)값을 홍성기 감독에게 주었다.
이혼할 무렵 영화배우 최무룡 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 했다.
최무룡(28년생)과 는 어떻게 간통사건으로 얽히게 됐나?
"당시 최무룡 과 거의 온종일 붙어 다니며 영화를 찍었다.
현장에 앉아 서로 자기 속상한 얘기 같은거 털어놓게
되고 그러다 정이 들었는데 이게 '빵'하고 터져버리더라.
수습해야 하니까 살지 않을수가 없게된 거다."
62년 9월 말 최무룡의 부인 영화배우 강효실 은
"개복 수술로 아이(영화배우 최민수)를 낳은지
열흘 만에 남편과 김지미의 간통 사실을 확인했다"고
폭로하고 다음달 두 사람을 간통죄로 고소 했다.
두 배우는 구속됐고 김지미 는 자신의 집을 팔아
위자료 230만원 채무변제 78만원 등 약 300만원을
강씨 측에 주기로 합의하고 11월 7일 석방됐다.
위자료를 왜 최무룡이 아닌 김지미가 물어줬나?.
"내 행동이 범법이라면 달게 감옥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가족들이 난리가 났다.
게다가 나를 캐스팅한 영화가 30편정도 였는데...
내가 안 나가면 영화계가 풍비박산 나게 생겼었다.
최무룡 은 돈이 없었다."
사건 당시 복혜숙 영화배우협회장은 검찰심문 에서
'검찰수사와는 별개로 협회측 에서 두사람의 영화출연을
정지할 방침'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협회가 1년 출연정지
를 결정했다. 기분이 어땠나?.
"처음 듣는 얘기다.
그때는 내가 영화출연 못하면 영화계가 안 돌아갔는데
난 아무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
아마 사회분위기가 엄했으니까 그렇게 얘기했을 거다."
간통사건 에도 불구,
여전히 최고 배우였고 70년에는 일일세관원 으로
휴대품을 검사하는 등' 국책 이벤트'에도 동원됐다.
그 시대 어떻게 가능했나?.
"사람들이 참 희한 한것 같다.
나를 욕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또 한 편에서는 '내가 못한거 실컷 해서 통쾌하다'
'당당하게 잘했다'는 얘기를 편지로 전화로 전해왔다."
두 사람의 7년 결혼 생활은 69년 6월 10일 끝났다.
사랑에 파탄이 나서가 아니라 지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혼한다' 는 최무룡 의 말이 화제가 됐다.
영화제작 으로 약 3000만원을 빚을 지고 부도를 냈다.
김지미 는 이후 76년부터 82년까지 7살 연하의 가수
나훈아 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대전에서 살았다.
나훈아 한테도 돈이 많이 들었나?.
"그렇지 않았다."
나훈아 와는 어떻게 만났나.
"나훈아가 노래를 잘해 우리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와서 노래를 몇번 해줬다.
남매지간 처럼 지내다 군대 다녀오고 일이 없어
더 친해졌다.
오빠가 내 자금으로 신탄진에서 운영하는 공장에
자주 내려갔는데, 그 사람이 여러 번 따라왔다.
남녀관계 니까 (육체적)문제가 좀 있긴 있었지...
그러다보니 아니라고 할수가 있나.
그래서 또 공개하게 됐다."
유명인 들은 발뺌 잘하지 않나?.
"난 거짓말 안 하려고 한다.
뭐 들통난게 사실인데 그걸 어떻게 아니라고 하나.
내가 이러니 내 스캔들은 세상이 다 안다.
더는 뭣도 없다."
년 전 나훈아 가 세간의 흉한 소문을 불식시키려
기자 회견을 열고 지퍼를 내리며
'바지를 내려 5분간 보여주겠다' 하며 흥분하는 걸
보니, 그 사람 성격도 매우 과격 하더라.
두 사람이 살면서도 굉장 했겠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격해질 일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 자기얘길 하지 왜 남의 얘길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91년 결혼한 이종구 박사랑은 좀 오래 사시지.
이종구 는 어머니 치료해준 의사 다.
어머니가 의사사위 얻으면 천년만년 사실줄 알았는지,
둘이 합치라고 그렇게그렇게 몸살을 내시더라.
외국생활 많이한 한국 남자는 한국식 도,
미국식 도 아니어서 맞추며 살기 어렵더라."
남편들한테 사업자금도 돈도 정말 많이 쏟아 부었다.
간통죄로 구속되며 험한 꼴도 당했다.
남자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가.
"그런 생각은 안 들지.
솔직히 말해서(그들이)나보다 잘난 게 없었으니까.
나는 과감하고, 대담하고, 용기 있고,
옳다 믿으면 양보를 절대 안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렇게 대단한 남자는 없더라
나이 많은 사람과도 어린 남자랑 도 살아보니,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고..."
<김지미 의 전 남편들>
김지미 (1940년생) 본명 김명자 현79세
홍성기 (1928년생) 2001년 73세 사망
최무룡 (1928년생) 1999년 71세 사망
나훈아 (1947년생) 본명 최홍기 현72세
이종구 (1932년생) 의사 현87세
김지미와 이혼후 27세 연하여인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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