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산 3월18일
해안 절벽 따라 능선 따라 한 바퀴 도는 7km 섬 트레킹
수우도의 명물 해골바위. 바위와
바람, 파도가 만들어 낸 억겁의 예술작품이다.
상단부까지 어렵지 않게 걸어서 오를 수 있으며,
위쪽에는 테라스 공간이 있다.
인어공주가 아닌 인어장군 전설이 전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특한 전설이 깃든 섬인 것. 옛날 수우도에 나이가 들도록 자식이 없는 부부가 있었는데, 부인의 치성으로 12개월 만에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아이는 자라면서 몸에 비늘이 돋고 겨드랑이에 아가미가 생겨나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헤엄 치며 바다를 누볐다.
당시 왜구들의 노략질이 끊이지 않았고, 조정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청년이 된 반인반어半人半魚는 왜구를 물리쳐 노략질한 식량을 돌려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설운 장군’이라 부르게 되었고, 왜구는 궁여지책으로 ‘남해안에 반인반어 괴물이 나타나 백성을 괴롭힌다’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조정에서는 욕지도 판관에게 괴물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설운은 어부들을 모아 관군에 맞섰다. 오히려 욕지도 관아를 역습해 판관의 부인을 납치한 후 통영에서 가장 먼 섬인 국섬國島에 숨겨두고 아내로 삼았다.
고래바위를 오른다. 수우도는 10여 년 전 산악인 정승권씨가 해벽등반으로 섬 해안선을
한 바퀴 도는 등반을 했던, 암벽등반 명소이기도 하다.
판관 부인이 1년 후 설운의 아이까지 낳게 되자, 그는 마음을 놓게 되었다. 설운이 한 번 잠이 들면 며칠을 잔다는 것을 알게 된 부인은 그가 잠들자 몰래 산정에 올라 봉화를 올려 관군을 불러들였다. 관군이 설운을 생포했으나 잠에서 깬 그는 포승줄을 힘으로 뚝 끊어냈다. 놀란 관군이 칼로 설운의 목을 내려쳤으나 떨어진 목이 도로 붙는 게 아닌가. 이에 판관 부인이 다시 칼로 내려치게 한 후 메밀가루를 목에 뿌리자 그대로 죽었다.
설운 장군의 죽음 이후 왜구의 침략이 다시 빈번해졌고, 섬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피해를 막고 풍어를 기원하고자 그의 사당을 짓고 위패를 모셨다. 설운 장군이 죽은 날인 음력 10월 보름에 매년 제사를 지냈으며, 지금은 3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내고 있다. 수우도에서 가장 큰 건물인 복합휴양센터(마을 공동운영 민박) 뒤에 설운 장군 사당이 있다.
능선길을 걷는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김민선씨.
어둠 짙은 삼천포항, 색다른 여정
운이 좋았다. 어둠 짙은 삼천포항에는 수우도행 티켓을 파는 매표소가 없었다. 지나가는 어르신께 “수우도행 배 타는 곳 아시나요?”하고 묻자 걸걸한 목소리로 “따라오라”고 했다. 컴컴한 골목을 지날 땐, ‘우리를 새우잡이 배에 팔아넘기려는 건 아니겠지’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이윽고 ‘일신호’가 있는 곳에 다다랐고 어르신은 배 운전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장이었던 것.
기묘한 형태의 배였다. 시골집 안방처럼 미닫이로 된 문을 열자, 기름을 때는 난로와 구들장, 이불과 베개가 있었다. 반은 구들장, 반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50~60대 사내 몇이 난롯가에 둘러앉아 있다가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다. 평일에 관광객이 탈 줄은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다. 사무장 격의 선원에게 그 자리에서 뱃삯을 치렀다.
고래바위에서 일출을 맞으며 돌탑에 소망을 비는 인천대산악부 김성원씨.
아직 컴컴한 삼천포항을 배는 익숙하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이든 선장은 노련했고, 새벽 바다는 쓸쓸했다. 낯선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난롯가에 둘러앉은 사내들은 손을 쬐거나 외투의 모자를 깊이 눌러쓰곤 했다. 누군가 기침을 하면, 때가 때인 만큼 조용히 마스크를 올려 쓰며 긴장했다. 허나 오래 앓은 기침 소리였다. 어두운 바다는 외롭고 외로워, 섬 사내는 병에 정 들고 만 느낌이었다.
잠에서 깬 하늘이 밝아오자 바다가 새로워졌다. 설운 장군이 우리의 입도를 허락했는지 물결은 잔잔했고, 먼 섬은 미묘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날 때부터 외로웠던 섬들은 우리가 일으키는 물결을 망연히 보고 있었다. 밤에서 낮으로 변한 바다는 낯설고 선량했다. 조금은 무서웠던 사내가 한없이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침 7시의 선착장엔 찬바람이 마중 나와 있었다.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김민선씨와 인천대산악부 김성원씨가 섬에 발을 딛는다. 황급히 배는 떠나고 덩그러니 남은 우리는 시계 방향으로 섬을 돌기로 했다. 작은 섬답게 마을은 하나뿐이고 찻길도 선착장 앞 몇 백m가 전부라 섬을 둘러보려면 누구든 산길로 들어서야 했다.
BAC인증지점인 은박산 정상. 표지석과 돌탑이 있으며, 시원하게 경치가 트인다.
동네 개가 거칠게 짖어 주민들 아침잠을 깨울까봐 걸음을 서둘렀다. 이불 속에서 이제 막 나온 듯한 할머니가 눈을 비비며, “몇 명이 왔냐”고 물었다. 겨울엔 아침과 오후에 한 번씩만 들어오는 배가 있어, 외지인이 오늘 몇이나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식당이나 매점은 없지만 라면을 끓여서 팔고 있는데, 김치 맛이 좋다는 얘길 많이 들었단다. 섬을 둘러보고 와서 라면을 먹겠다고 약속한 뒤 산길로 들었다.
데크계단을 올라서자 곧장 산이다. 비범한 실루엣의 이웃 섬은 사량도. 화려하게 솟은 사량도 능선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추위를 잊으려 가파른 능선을 거칠게 치고 올랐다. 얼마 안 가 증기기관차마냥 연기를 뿜어내며 한 꺼풀씩 일행들이 옷을 벗었다.
해발 0m에서 빠르게 50m, 100m까지 쭉쭉 고도를 높였다. 숨 돌리기 좋은 쉼터도 여럿 있었지만 빠르게 지나쳤다. 조망 명소인 고래바위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선 속도가 필요했다. 이윽고 시야가 뻥 트인 벼랑이 나타났다. 고래마냥 둥근 바위 벼랑 너머로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있었다. ‘희망’이란 단어를 풍경으로 표현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었다.
고래바위는 슬랩 꼭대기였으나 튀어나온 돌기가 많아 쉽게 오를 수 있었다. 고래등 위에 서자 남해 바다가 내 것 같았다. 정점에 섰을 때 따스한 햇살이 바다 냄새와 함께 와락 껴안아 오는데, 이 느낌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맑은 바다와 화창한 하늘, 선명한 경치의 파노라마에 낯선 섬을 찾은 여행객들의 긴장이 풀렸다. 선착장에서 처음 산길을 오를 때와 달리 일행은 한결 목소리 톤이 밝아졌고 가벼운 농담과 웃음이 일렁이고 있었다.
유일한 해수욕장인 몽돌해변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여행의 낭만을 즐긴다.
기암 중의 기암, 해골바위
수우도엔 논란의 명소가 있다. 섬의 하이라이트인 해골바위. 바위 표면이 해골마냥 구멍이 숭숭 뚫린, 기암 중의 기암이다. 다만 접근하는 산길이 가팔라 간혹 사고가 있어 통영시에서 출입 통제 팻말을 세웠다. 수우도를 찾은 여행객 중 상당수는 해골바위를 보러 오는 이들이라 ‘출입 통제’가 유명무실한 실정이며, 튼튼한 고정로프도 설치되어 있다. ‘안전사고 발생 시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음을 알려드린다’는 문구로 볼 때, 법적 책임은 지지 않지만 무시하고 가려면 주의해서 가라는 정도로 이해해야 할 듯싶다.
난간 너머 산악회 표지기가 여럿 달려 있다. 백두봉 가는 길이다. 난간을 넘어 소나무숲을 빠져나오자 시원한 바위능선이 선물처럼 풍경을 내어준다. 바윗길을 이어가면 달 표면 같은 백두봉 정상이지만, 중간 안부로 내려서는 길이 험해 일단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한다.
해골바위를 타고 올라서면 마치 예술작품 속에
들어온양 현란한 모양의 바위를 가깝게 볼 수
있다. 해골바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경치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난간으로 돌아와 다시 능선을 따른다. 금강산이란 이름처럼 화끈하게 고도를 높여, 해발 200m에서 정점을 맞는다. 작은 돌탑이 전부지만 망망대해의 비늘이 햇살에 살아 펄떡인다. 해골바위는 여기서 바다 쪽으로 내려선다. 해발 200m를 그대로 버리고, 수면까지 급경사로를 내려서야 하는 것.
발 디딤 좋은 바위 사면을 지나고, 흑염소 차단막, 동백 숲을 차례로 지난 뒤 바위 벼랑에서 급비탈 숲으로 든다. 발가락에 힘을 주며 얼마나 내려왔을까. 파도를 만나는 곳에서 만난 해벽. 작품이다.
백두봉으로 이어진 바윗길. 백두봉 정상 직전 안부로
내려서는 길이 위태로워 중간 전망바위까지만 진행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구멍이 송송 뚫린 해벽은 그 자체로 자연이 만든 예술 작품이다. 고정로프가 있고 디딜 곳이 적지 않아 내려서기는 어렵지 않다. 맞은편 해골바위로 다가간다. 멀리서 봤을 땐 접근이 위험하지 않나 싶었으나 워낙 구멍이 많아 쉽게 올라선다.
이토록 기이한 해벽은 본 적 없다. 억겁의 세월, 바위와 바람과 파도가 나눈 대화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꼭대기 층이라 할 만한 곳은 야영을 해도 좋을 정도로 아담한 공간이 있다. 자연의 긴 흔적이 빚은 솜씨의 구멍 속에 들어가 바다를 본다. 눈 감았다 뜨면 이번 생이 다 지나갈 것만 같은 착각, 해골바위에서 오묘한 시간을 즐긴다.
해발 200m를 올려 주능선으로 돌아간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지만 후회는 없다. 오후 배 시간을 맞추려 남은 능선을 빠르게 지난다. BAC 인증지점인 은박산 정상이 남았지만, 해골바위 접근로에 비하면 고속도로 수준이라 식은 죽 먹듯 남은 산길을 지난다.
돌탑이 있는 위성봉을 지나 어엿한 표지석이 있는 은박산 정상. 수준급 경치가 드러나지만 더 맛있는 비경을 맛보았기에 성에 차지 않는다.
수우마을의 아기자기한 벽화. 벽화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설운 장군 사당이 있다.
정상 인증 사진을 찍고 산길로 들자 곧장 고도를 바다까지 내린다. 과장을 보태면 천둥소리 같은 것이 나서 보니 멧돼지 가족이 줄행랑을 친다. 워낙 빠르게 도망가는 통에 놀랄 겨를도 없다.
유일한 해수욕장인 몽돌해변에는 폐허가 된 매점과 피서객의 흔적이 남았다. 한 굽이 해안선을 타고 돌자 찻길을 따라 수우마을이 다시 나온다.
예쁜 벽화가 있는 골목을 지나 안으로 들자 호위장군 같은 느티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사당을 지키고 있다. 작은 인어장군 사당 곁으로 오후의 햇살이 고양이 하품처럼 느긋하게 쏟아진다. 수우도 할머니 라면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수우도 가이드
선착장이 있는 마을이 수우도의 유일한 마을이다. 선착장에 800m 정도의 시멘트길이 있고 나머지는 산이다. 산길 따라 한 바퀴 도는 것이 유일한 트레킹 코스인 것. 다만 선택 사항은 백두봉과 해골바위다. 통영시에서 ‘안전사고 발생 시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음을 알려드린다’는 통제 팻말을 세운 곳으로 암릉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는 출입을 삼가야 한다.
백두봉은 중간 바위능선까지만 다녀오는 것이 안전하다. 해골바위 접근로는 급경사라 힘이 들 뿐, 산행이 익숙한 등산인이라면 어렵지 않다. 별도의 보조로프는 필요 없다. 본지 특별부록 수우도 지도를 참고하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BAC 인증지점이자 최고봉은 은박산 정상이며 표지석과 돌탑이 있다. 전체적으로 산길이 뚜렷해 길찾기는 쉽다. 백두봉과 해골바위를 거쳐서 한 바퀴 걷는 코스는 총 7km이며, 4~5시간 정도 걸린다. 수우도에는 식당이나 매점이 없으나 마을 입구의 동백섬민박(055-835-0771)과 마을회관에서 라면(현금 4,000원)을 끓여 준다. 민박은 4인 1실 방이 7만 원이다.
교통
경남 통영시에 속하지만 사천시 삼천포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계절에 따라 운행시간이 바뀌므로 미리 확인해야 한다. 2022년 2월 기준 삼천포항에서 수우도행 일신호가 오전 6시30분과 오후 2시30분 하루 2회 운항한다. 사람만 탑승 가능하며 1인 편도 5,000원(현금만 가능). 섬에서 나오는 배는 오전 8시20분과 오후 4시10분. 삼천포항에서 배 타는 곳 찾기가 모호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삼천포수협회센터 주차장에서 해안선 부두를 따라 동쪽으로 150m ‘ㄱ’자로 걸으면 일신호 선착장에 닿는다. 별도의 매표소는 없으며 배에 탑승하면 직원이 표를 끊는다. 배로 40분 걸린다.
첫댓글 멋진곳 소개해주셨네
섬산 인증 장소
ㅎㅎ 나도 가야하는데
언제 가나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섬의 아름다움을 간결하게 소개하여 주시고 라면 값이면 숙박이며 배값이며 섬을 오르는 곳의 자연을 아름답고 위험한곳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좋은 정보주심에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