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군사명저]
피터 싱어의 『하이테크 전쟁:로봇 혁명과 21세기 전투』
 
로봇전사는 이미 현실…전쟁 패러다임이 바뀐다
 
21세기 전투는 로봇들의 싸움…정치적 책임 줄고 경제·전술적 효과 커져
아이언맨·로보캅처럼 인간·로봇 결합한 ‘새 인류로 진화’ 가능성도 제기
우리 군도 무인시스템 핵심전력 개발·미래지향적 군사교리 등 대비해야
 
백남준. '로봇 K-456'. 1996. 185㎝.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로봇의 진화 예술적 퍼포먼스를 행했던 첫 번째 로봇은 1964년 백남준이 일본인 전자공학자 슈야 아베와 함께 만든 '로봇 K-456'(1964∼1982)이다. 인간 형상의 이 로봇은, 20개의 채널을 갖는 4개의 원격 조종기를 통해 명령을 받아 모자를 벗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등 20여 개의 동작을 수행했다. 입(스피커)으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재생하기도 하기도 하고, 대변(콩)을 배설하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던지면서 인간적 느낌을 강조했다. 특히나 1982년에는 차에 부딪혀 죽는 모습을 연출함('21세기 최초의 사고')으로써 기계의 인간화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던지면서 유명해졌다. 위 작품은 1996년에 다시 만든 동일한 이름의 로봇이다. 이 정도 수준이었던 로봇이 반세기 만에 전투에 사용할 정도로 발전했다. 저자인 싱어는 아주 가까운 미래에 인간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의 탄생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더 진화할지, 인간과 어떻게 결합해 나갈지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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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과 로봇이 전장을 지배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서 전투를 벌이는 시대가 올까? 많은 전문가가 그렇게 예측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 '터미네이터'(1984)나 '아이 로봇'(2004)의 이야기처럼 미래의 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먼 미래의 일로 생각했던 일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책의 저자 싱어는 21세기 전투는 로봇들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엄밀히 말해 이미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미국 네바다주 공군기지에서 원격조종하는 무인항공기(UAV) 프레데터(Predator)는 3000㎞ 밖의 자동차 번호판까지 읽을 수 있는 고해상도의 카메라를 달고 지상을 정찰한다, 텔레반이나 이라크 반군을 발견하면 지상군에 연락하거나 자신의 유도미사일로 직접 공격한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전투 양상이다.
지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작전에서 미군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반군이 설치한 급조폭발물(IED)들이었다. 매달 2000∼3000건씩 노상 폭발물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팩봇(PackBot)이나 탤론(Talon)과 같은 폭발물 탐지 및 제거 로봇이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무기 관찰, 정찰과 탐지에다 능동적 공격까지 가능한 로봇전사 소즈(SWORDS)까지 개발돼 실전 배치돼 있다. 조종에 다소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M16 소총과 대전차로켓까지 장착할 수 있는 전투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300m 떨어져 있는 사람의 명찰까지 확인할 수 있는 정교함에 일발필살의 기계적 정확도가 결합함으로써 이름 그대로 한칼에 적을 쓸어버리는 전술무기로 인정받고 있다. 해군도 예외가 아니다. 소형 무인잠수함과 무인헬기를 동원하는 교리를 개발 중이다.
Peter W. Singer. 2009. Wired on War: The Robotics Revolution and Conflict in the 21st Century. New York: Penguin Press. 권영근 옮김. 2011. 서울: 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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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 "무인시스템 우선시할 것"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2007년 미 의회에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염두에 둔 획득 프로그램의 경우 3군이 합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무인시스템을 우선시할 것과 유인시스템을 개발할 경우 무인시스템이 해당 프로그램을 충족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할 것"을 펜타곤에 요구할 정도였다. 미국이 무인시스템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미군 사상자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적 효용과 전술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미군 1명의 연간 유지비용은 100만 달러에 달하지만 팩봇 1대의 유지비용은 고작 15만 달러밖에 안 될 정도로 저렴하다. 게다가 감정이 없는 로봇이 전장에서 보여줄 용맹함을 고려한다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점이 오히려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도록 만들지 않을까 우려한다. 정치적 책임과 경제적 비용이 줄어드는 만큼 전쟁을 정책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군인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휘방식 또한 매우 달라질 것이다. 즉 전쟁하는 방식과 전쟁을 인식하는 방식이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로보캅이나 아이언맨처럼 인간과 로봇(인공지능)이 생체적으로 결합하면서 지금의 인류와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인류로 '진화'할 가능성이다. 새로운 인류로의 진화를 의미하는 특이점(Singularity)의 시기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나타날 거란 주장이다. 얼마 전 서점가를 휩쓸었던 『사피엔스』(2015)의 저자 유발 하라리(Y. Harari)가 50년 안에 죽음을 염려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방의 핵심전력으로 삼아야
그렇다면 우리 군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21세기 로봇혁명이 우리 국방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무인시스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국방의 핵심전력으로 개발,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사이보그가 일반화될 50년 이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전력화의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군은 초보단계이지만 '송골매'나 '리모아이'와 같은 무인 정찰기를 운용하고 있고, 최근 휴전선에 인공지능 기반의 경계시스템 'SGR-A1'을 배치한 것도 좋은 사례다. 그러나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IT 역량과 로봇기술(재난로봇대회 1등), 그리고 게임강국의 위상을 감안할 때 더 적극적으로 전력화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게다가 얼마나 경제적인가? 5세대 전투기인 F-35A 한 대 살 돈이면 프레데터를 25대나 구매할 수 있으니 말이다.
둘째는 무인전력을 기반으로 미래지향적 군사교리를 고민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군사교리가 미국 것을 추종·모방하는 경향이 심했고 한국의 전략적 이해와 전술환경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듯이, 올바른 교리 개발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무기체계가 도입된다고 해도 이를 전술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군사교리가 마련되지 않고 적절한 훈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력화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셋째 장기적으로는 무인시스템에 기반한 군사전략을 수립할 경우 병역체계의 변화 또한 기대할 수 있다. 무인시스템에서는 근육질의 젊은 남성이 훌륭한 군인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게임에 빠진 10대가 무인기 조종에 탁월할 수 있고, 여성의 섬세함과 장년의 지혜가 기여할 분야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병력 소요도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차원에서 병력동원체계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 국민의무병제의 헌법적 의미를 살리면서 정예군 양성이 가능한 병역체계의 근본적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600쪽이 넘는 꽤 묵직한 책이지만 술술 읽힌다. 역자의 탁월한 번역 덕분이겠지만 현장감 넘치는 인터뷰와 SF 영화로 엮은 스토리텔링의 매력이 강하다. 그렇다고 다루는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새로운 인류의 탄생과 같은 인류의 존재론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 책의 깊이를 더해준다. 시간이 없다면 차세대 전쟁 양상을 보여주는 5장과 6장, 그리고 올바른 군사교리의 중요성을 다룬 10장('위대한 세브로스키?')과 11장이라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설 연휴를 풍요롭게 만들 필독서로 추천한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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