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 몇 번 한 걸 가지고 깜짝놀라 병원을 찾아갔어요. 왼쪽 흉부에 통증이
있다고 죽는 소리를 쳤더니 닥터가 X-RAY와 심전도 검사를 지시했습니다.
혹시 협심증이 아닌가 했는데 괜찮다며 감기약 하고 혈압약만 처방해왔어요.
고지가 저긴데 예서 죽을 순 없질 않은가. 어제 한 달 만에 처음으로 트래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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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어요. 왕숙천 물이 가을 하늘 만큼이나 맑고 차가워졌더이다. 왕숙천이란
이름이 강 하류인 구리까지 연결 돼 쓰이고 있고 이 강을 중심으로 구리와
진접이 빠르게 통합될 것으로 보입니다. 약을 먹었으니 2시간은 쉬어야 하는데
어쩌나. 카카오 T블루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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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 사회입니다. 사방에 지치거나 고단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환호와
경탄은 사라지고 우울과 냉소가 가득합니다. 엘리야는 3년 기근 속에서 도피
생활, 갈멜 전투, 이세벨의 살해 위협까지 이어지니 생을 마감하고 싶을 만큼
지쳤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그를 호렙으로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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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는 자신을 죽이려는 이세벨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습니다. 브엘세바는 유다의 최남단이며, 더 내려가면 시내광야로 들어서는데
가데스 바네아로 가는 길의 삼분의 일쯤에 있는 로뎀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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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엘리야도 도망 길에 홀로 죽기를 구한 것을 보니 대 선지자도 지치는
모양입니다. 물론 누구나 첫사랑은 있고 전성기도 있겠지요. 갈멜 산의 영웅이
그 심장에 비수를 꼽고 말겠다는 표독한 왕비의 말에 그만 정신 줄을 놓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그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남 왕국 유다로
단숨에 도망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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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부족해 몸종을 남겨놓고는 네게브 사막으로 더 들어갔습니다. 안전
지대로 들어서자 그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이스라엘의 하나밖에 없는 선지자가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했던 장본인이 말입니다. 어제는 그렇게 영광스런
몸이었는데 오늘은 그렇게 창피스러운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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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을 달린 자가 원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일 테지요.
로뎀 나무라고 해 봐야 사막에 그늘이 가려지는 나무가 아닙니다. 거기서 그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야고보
기자의 말에 동감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사자를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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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물을 먹이고 길을 갈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선지자는 아니지만
오랜 야인생활에 지치지 않을 장사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지독한 외로움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꾸중하거나 책임을 묻기 전에 자빠져
있는 엘리야에게 ‘거룩한 안마’와 음식으로 기운을 차리게 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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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하나님의 계시와 언약의 장소인 호렙으로 장장 40일을 걸어서 오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두 번째로 엘리야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거기서 영적인
각성과 갱신,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소명 지인 이스라엘을 떠나 호렙에 와 있는
이유를 물음으로써 그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사명을 다시 붙잡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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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통상적인 계시 방식인 바람과 지진과 불이 아니라 세미한 음성으로 계시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기대와 상식과 전통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역사 됨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하시엘을 아람의 왕으로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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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너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산 같은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돈이 없습니다. 인간관계가 꼬여 있습니다.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은 왜 그렇게
멀리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외롭습니다. 그래서 이적과 기적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 와 한 순간에 모든 문제를 싹 다 해결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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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적과 기적을 단순이
우리 문제를 처리하려고 이용하려는 심보가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을 이용
해서라도 우리의 유익을 도모하려는 마음이지요. 오늘도 말씀을 읽습니다. 이 말씀은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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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으로 고난을 이겨내길 원합니다. 산 같은 문제를 뛰어 넘기를 원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잠시 동안의 고난은 우리의 터를 견고케 한다고 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신앙이
성장되고 단단한 믿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탈진한 사역자를 어떻게 일으키시는가?
2023.10.21.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