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따라 골목따라]남포동 '먹자골목'
아련한 추억의 주전부리 골목
우리네 골목에는 아련한 추억이 빗물처럼 고여 있다.
적지 않은 세월이 켜켜이 쌓이면서,그 속에 쟁여져 있던 우리네 삶의 애환과
그 시절 기억의 조각들이,사금파리에 앉은 햇빛처럼 반짝인다.
골목은 예로부터 사람과 사람,광장과 광장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함께 모이고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이 골목에서 삶의 놀이가 시작되고,말의 잔치가 벌어지며,같은 목적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남포동 먹자골목!
국제시장의 여러 골목 중 하나로,서민의 허기를 잠시 속이는 가벼운 먹거리를 파는 골목이다.
먹자골목은 부산에서도 대표적인 '아련한 추억의 골목'이다.
피란 시절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부산시민의 삶이 절절히 묻어있는 희노애락의 장소인 것이다.
어린 시절 영도에서 살았던 필자는 자주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입석버스를 타고 영도다리 건너 큰 장을 보러 다녔다.
주로 자갈치시장이나 국제시장이었는데,따라나설 때의 기분은 마치 소풍가는 날처럼 즐겁고 좋았다.
우선 형형색색의 신기한 물건들을 실컷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고,
시장과 붙어있는 시내구경을 덤으로 할 수 있어서 더더욱 좋았다.
그리고 나머지 재미는 먹자골목 나무의자에 퍼질러 앉아 이것 저것 주전부리를 얻어먹는 것이었다.
그 시절 먹자골목에서 사먹는 국수 한 그릇,김밥 한 줄이 필자에게는 얼마나 큰 호사였던지…
그리고 왜 그렇게 맛있고,다 먹고도 일어나기가 싫었던지…
남포동 먹자골목은 40여년전 몇몇 아주머니들이 집에서 만든 먹거리를
남포동 뒷골목에서 조금씩 판 것이 그 시초였다.
그 시절 서민들에게 근사한 외식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거나 장을 보고 난 후에는 싸고 맛좋은 먹자골목에서 너도나도 가볍게 끼니를 때웠던 것이다.
그 때는 시장 보고 난 잔돈으로 이 골목을 드나들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의 습관과 전통이 남아 영화를 본 연인끼리,장을 본 고부끼리,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이 곳에서 주전부리를 하고 간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 행사로 정착되면서
이 먹자골목도 일약 '부산투어의 빠트릴 수 없는 명소'로 소개돼 전국적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현재 4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다양한 먹거리의 좌판을 널어놓고 손님을 부르고 있는데,
주로 충무김밥,초밥,국수,비빔당면,잡채 등 끼니류가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 순대,떡볶이,만두 등 군것질류, 단술,콩국,수정과 등 음료류도 먹음직스럽다.
가격도 5백원에서 3천원 정도로 저렴하므로 부담 없이 앉아서 난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오랜만에 좌판에 앉는다.
'어머니와 국수 한 그릇'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국수 한 그릇을 시켜먹는다.
입 안이 따뜻해진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시절의 그리움에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 내린다.
오늘도 그 시절처럼 일어나기가 싫다.
국수 말아준 아주머니와 이 얘기 저 얘기하며 필자는 오랫동안 아련한 추억의 되새김질을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열 댓가지 음식 하나하나에도 그 시절의 가난과 애환이 묻어있는 남포동 먹자골목.
그래도 이 곳에서 늦은 끼니를 때우며,힘든 하루를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 분들에게 카네이션 대신 '아련한 먹자골목의 추억'을 가슴에 달아드린다.
최원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