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4년 가해 6월4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수원]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기획 담당 전삼용 요셉 신부
† 제1독서 ; 사도 20,28-38
† 복음 요한 ; 17,11ㄷ-19
★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 대한 작별 인사에서 자신이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또한 약한 이들을 거두어
준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주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라고 당부한다(제1독서).
★ 하느님 아버지께 가실 때가 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신다. 제자들은 당신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세상의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들을 악에서 지켜 주시고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미사에서는 ‘대사제의 기도’라고도 불리는 요한
복음 17장의 말씀이 봉독됩니다. 그리고 18장부터는 주님의 수난기가 바로
시작됩니다. 당신의 때가 온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지신 만찬
석상의 긴 이별 담화(요한 13―16장)는 이처럼 장엄하고 간곡한 기도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를 교회가 주님 승천 대축일을 보내고 성령 강림
대축일을 기다리는 주간에 들려주는 이유는, 이 기도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의 사건을 통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간적으로는 아직 이 세상에 계시며 기도를 올리시지만,
‘이제’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시기에 그분의 기도는 이미 세상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요한 17,13 참조).
예수님의 이 기도를 들으며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고 세상의 악에서 지켜 주실 것이라는 위로와
확신을 얻습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교회가 성령의
열매라고 가르치는 ‘두려움’(경외심)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힐라리오 성인은 자신의 『시편 주해』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흠 없는 생활을 함으로써, 그리고
진리를 알게 됨으로써 그것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전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참되게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을 진리에 비추어 보고 거룩함의
길로 나섭니다. 그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의
악에 자신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치신 기도의 참뜻입니다. 그
기도는 이제 성령 강림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세상에 발을 붙이고|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6월4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요한17,11-19)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 17,11ㄷ-19
세상에 발을 붙이고
지방 선거일입니다. 참 일꾼을 뽑아야 하겠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뽑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여쭈어 본 다음 투표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안에 갇혀서 세상의 논리를 따르지 말고 하늘의 뜻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어떤 분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데 천국을
살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게 말하는 것같이 쉬운지 아십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신부님은 자꾸 하늘을 보라고 하시는데 하늘을 보니 제가
땅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땅에 있으니 땅의 처지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지 어찌합니까! 그래도 하느님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그래도 하늘의 그물은 빠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양보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진리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곧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면 세상이
그를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요한1,5). 그러므로 두려워 마십시오. 지금 당장 힘에
겹더라도 반드시 빛의 진가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요한3,21).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1티모2,4) 그리고 육화를 통하여 인간이 되신 진리인(요한14,6)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정받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꾼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2티모2,15) 사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1요한2,3-4)
우리가 비록 땅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진리를 거슬러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험해지면 험해질수록,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믿는 이들이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은 남의 탓이 아니라 내가
빛나는 삶을 살지 못한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주님의 뒤를 이어 세상에 있으면서도 이미 천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어둠을 탓합니다. 믿는 이들이 제대로 살지 못한다고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모순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나만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못 마땅한 것이 보이면
보일수록 더 많이 사랑하고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살지 못했음을
탓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의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와 깊은 일치를 이루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온전히 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거룩함으로
인해 제자들이 거룩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거룩함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혹 죄에 떨어졌다면 주님의 거룩함에
온전히 맡겨드려 다시 거룩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복음의 기도는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악에서 지켜 주소서.’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로
요약 됩니다. 그 기도가 내 안에서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희망합니다.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 ***** ***** ***** ***** *****
@@뉴욕 코넬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가 개구리를 가지고 실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45가 되는 뜨거운 물에 넣었더니 그 개구리는
순간적으로 뛰어 올라 밖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마리는
찬물이 들어 있는 시험관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였더니 큰 저항 없이 놀다가
결국에는 뜨거운 물속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습관은 내가 만들고 결국에는
습관에 끌려 다니고 죽음에 이릅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진정한 가치는
2014년 가해 6월4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 17,11ㄷ-19
남루한 차림을 하고 있는 형제님이 연필로 낙서한 것 같은 작은 그림을
들고서 팔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보여서 그림을
사주려고 하지요. 그런데 그 그림 가격으로 한두 푼 부르는 것이 아닌
자그마치 백만 원을 부르는 것입니다. 과연 이 형제님께서 부르는 가격에
맞춰서 이 그림을 사주었을까요? 당연히 단 한 명도 그 그림을 사주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손가락질을 했겠지요.
잠시 뒤, 이 형제님께서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시내의 멋진
미술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작은 그림을 미술관의
감정사에게 보여주면서 가격을 의뢰했지요. 감정사는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지요.
“이 그림을 팔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천오백만 원에 사겠습니다.”
사실 이 그림은 아주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그림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림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가 없었지요. 더군다나 그림을 팔고자 하는 사람의 겉모습만을
보고서 판단하다보니 그 그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가치는 겉모습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잘 아느냐에 따라서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각자의 가치는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유명한 화가까지도
직접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나’를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가치를
형편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세상의 유명한 화가가 만든
작품보다도 더 훌륭하고 값진 작품이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려고만 할까요? 왜 스스로를 볼 품 없고
형편없다면서 하느님을 힘없고 작은 분으로 만드는 것일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요한 17,11)라고 기도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가 됨으로 인해서 얻는 가치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하나 되어
기쁨이 충만하게 되며, 악에서 스스로를 지켜질 수 있으며, 거룩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큰 가치를 얻게 됩니까?
문제는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점점
더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낮게 평가함으로
인해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가치가 더욱 더 높아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사랑에 제대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보다는 믿고 따르는 우리가 될 때, 나의 가치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높게 빛날 것입니다.
참, 오늘은 제6회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지요? 무관심으로 소중한 한 표를
그냥 버리지 말고, 빠짐없이 참여해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국민을 무시하지 않고, 올바른 행정을 할 것입니다.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면 그중 더 어려운 길을 택하라(티벳 승려의 말).
나의 능력과 재주
야간 운전을 할 때, 만약 자동차 전조등이 켜지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내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맞은편 차량은 앞 차가 오는 지 알 수
없기에 크게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조등이 무조건 밝아야
안전할까요? 이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운전할 때 상향등을 켜면
전방이 밝으니 운전하기는 쉽지만, 맞은편 차는 내 차의 불빛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전조등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주 밝을 필요는 없습니다.
약 50~100미터 전방만 비출 수 있다면 어떤 곳이든 안전하게 운전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렇게 계속해서 전방 100미터 앞을 비추어
나간다면 안전하게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과 재주가 부족하다고 불평불만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재주가 이 순간 딱 적당하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지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원하는 목적지에 무사히 잘
도달할 수 있도록, 딱 맞는 능력과 재주를 주고 계신 하느님이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할 수 있고, 지금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2014년 가해 6월4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복음 : 요한 17,11ㄷ-19
<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
SBS 교양프로인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문제아이들 심리치료
프로젝트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밥을 먹기를 거부하고, 폭력적이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과 사귀지도 못하고, 언어발달도 지체되는 등의 많은 문제가
있는 다양한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신기하게도 빠른 시간 내에 정상적인 아이들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의 문제는 대부분 자신에게 지독하게 집착하여 분노하고 폭력적이
된다던지 어떤 물건이나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계에 너무도 몰두하여
대인관계나 사회성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가진 많은 아이들이 등장하는 것에 비해서
그런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먼저
변화되면 그만입니다. 엄마가 조금 더 아이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고,
아빠가 조금 더 참으며 친근하게 아이와 놀아주면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전부 보통 아이들처럼 변해갔습니다. 결국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두려움으로 자신 안으로 숨거나 세상
것에 집착하며 자신들의 불안함을 떨쳐내려 했던 것입니다.
한 예를 들어봅니다. ‘폭력보이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언어발달
미숙으로 공격성이 매우 컸던 민석이라는 아이가 변화되는 장면은 코끝이
찡할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민석이와 대화해 주지 않아
언어발달이 늦어졌고, 결국 아무와도 소통이 되지 않아 폭력으로 아이들과
선생님, 부모님께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결국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은 부모의 잘못이었습니다. 처음 어머니는
아이를 떼어놓고 일을 하기 위해 자꾸 귀찮게 하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었고, 아버지 역시 일에 지쳐 피곤하여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던져주고는 자신은 TV만 보았습니다. 아이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이제
부모보다는 스마트폰이었습니다. 실험으로 어머니와 함께 길을 가고 있는
민석이에게 낯선 사람이 스마트폰만 보여주었더니 어머니를 떠나 그 낯선
아저씨를 따라갔습니다.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이렇게 쉽게 세상의 다른 것들에 지나친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나마 부모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의 불안을 잠시
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심리치료사는 아이의 치료를 위해 우선 부모가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먼저 자신 곁에서 스마트폰을 치워버리고 많은 칭찬과 애정을
민석이에게 보여주었고, 아버지는 무뚝뚝한 표정을 버리고 우스운 가발을
쓰고 민석이와 놀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핸드폰을 찾지도 않고
폭력성도 싹 사라졌고 다른 아이들과도 사이좋은 민석이가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유일하게 필요했던 것은 부모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부모가
사랑으로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믿음이 생기면 더 이상
불안해하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아 대인관계도 잘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기들도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것이
‘사랑’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부모에게 치근대기도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에 사랑이 들어오면,
아이는 저절로 변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다른 사람들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때가 있습니다. 남편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세상 사람들 때문에, 아니면
가난이나 사회 부조리 때문에.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이 다 해결된 사람들도
밤에 일어나서 왠지 모를 공허함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혹은
우리가 세상에서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전혀 없음에도 참으로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나 마더 데레사,
가장 근본적으로는 예수님과 성모님, 모든 분들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분들이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사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하느님을
가지셨던 분들입니다. 하느님을 갖지 않으면 세상 모든 것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 배고픔과 목마름은 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라고 하십니다. 거룩하게 하는 방법은 내 안에 하느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하느님만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하느님을 함께 받아들여 거룩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들은 저 사람들이 변해야 내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권을 바꾸면 우리나라가 변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제는 더 근본적인 것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속의 문제들이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먼저 변하면 세상도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먼저
거룩해지면 세상도 거룩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이나 돈에 대한 집착,
이기주의나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먼저 변해야합니다. 투표를 하면서도 남들이 나 대신 세상을
바꾸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투표하고 있는 나의 마음자세가 바뀌면 훌륭한
정치인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기획 담당 전삼용 요셉신부 -
◈ [수도회] 진리에 순종하십시오.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6월4일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사도20,28-38 요한17,11ㄷ-19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 17,11ㄷ-19
진리에 순종하십시오.
오늘 말씀 묵상 중 떠오른 강론 주제는 '진리에 순종하십시오.'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기도가 이루어지기위한 우리의 응답은 진리에 순종하는
길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진리에 순종할 때 따르는 참 좋은 열매들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진리에 순종할 때 일치의 삶입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성경의 주님 말씀이 진리입니다.
모두가 실천하라 있는 진리 말씀입니다.
말씀의 순종은 말씀의 실천입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참으로 간절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하십시오.“(요한17,11).
이런 하나의 공동체는 모두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할 때 가능합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분열로 어려움을 겪는 일은 얼마나 많은지요.
외적분열은 내적분열의 표현입니다.
나는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내적으로 하나되어 있을 때 외적으로도 하나의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내외적 일치를 위한 유일한 답은 진리 말씀에 순종하는 길뿐입니다.
베드로의 권고가 참 적절하고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져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1베드1,22-23).
진리에 순종할 때 새로운 탄생이요, 깨끗한 영혼에 일치의 형제애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이제 우리 모두 진리의 말씀으로 새로 태어나,
진리의 사람이 되어 일치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진리에 순종할 때 충만한 기쁨의 삶입니다.
참 기쁨은 진리에 순종할 때 선물처럼 주어집니다.
진정 기쁨에 목마른 사람들입니다.
욕망 충족으로 인한 쾌락은 기쁨이 아닙니다.
쾌락을 기쁨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쾌락을 추구해도 여전히 목마른 것은 참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떠날 때는 기쁨도 사라집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의 잡초만 무성히 자라납니다.
기쁨은 순전히 진리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이런 기쁨보다 영혼의 건강에 좋은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이런 기쁨을 누리길 간청합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17,13).
성령 충만, 기쁨 충만의 삶을 사셨던 주님이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선언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런 진리
자체이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 역시 성령 충만, 기쁨 충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앞 둔 복된 연중피정기간에
특히 이런 성령 충만, 기쁨 충만의 은총을 청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진리에 순종할 때 참 자유인의 삶입니다.
누구나 갈망하는바 자유입니다.
쾌락과 기쁨을 착각하듯이 많은 이들이 자유와 방종을 착각합니다.
자기 하고 싶은대로의 방종은 자유가 아닙니다.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는 참 자유도 없습니다.
다음 예수님의 말씀이 명쾌한 답을 줍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8,31-3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넷째, 진리에 순종할 때 거룩한 삶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1베드1.15-16).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도 여기에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7,17.19).
이런 거룩함을 살아야 할 자리는 지금 여기의 세상입니다.
세상을 떠나서는 거룩함도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세상에 살 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세상에 살 되 세상의 악에서 보호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단 하나, 진리로
거룩해 지는 삶뿐입니다.
하여 사도 바오로도 은총의 진리 말씀에 우리를 맡깁니다.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사도20,32).
바오로 사도, 과연 은총의 말씀, 진리의 말씀으로 자유로워진, 거룩해진
이들의 모범입니다.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도 없고, 자신과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자신의 두 손으로 장만했다는 사실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오늘 주님은 성령강림대축일을 앞 둔 주간에 참 좋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진리에 순종하십시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진리에 순종한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고,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고, 자유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서울] 하늘을 고향처럼 볼 것 같습니다.
2014년 가해 6월4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 17,11ㄷ-19
하늘을 고향처럼 볼 것 같습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는 말, 예수님 앞에서 인생자랑 같다고 봅니다.
시간에 용접되어 꼼짝 못하는 우리, 미래는 어림없고 과거만 기억합니다.
이런 머리 갖고서 하늘나라 얘기 영혼의 이야기는 능력 미달일 수밖에요.
예수님의 기도를 생각해보면 마치 고향 아버님과 통화하는 것 같아요.
영과 이야기 하는 데에 능력부족 무디고 무식한 우리는 가슴 쳐야지요.
신앙으로 머리 키우고 가슴 키워야 하늘을 고향처럼 볼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3)”
-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기타]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적어도 옳은 것을 선택하기 위한 자기 싸움이 필요합니다.'
2014년 가해 6월4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요한17,17)
---
요한 17장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무리 하시기 전,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기도문 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진리인 성부의 말씀을
받아들여 거룩한 사람들이 되게 해달라는 청원이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는 선거를 치릅니다. 안팎으로 시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올바른 선거를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 각자의 이기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 우리는 충분히 언제나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이유도 모르면서 반목할 수 있고, 서로를 증오할 수 있는
우리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이기적인 성향을 노리는 것이 악의 세력입니다.
악은 악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내가 악이다.”라는 이름표를
달고 접근해 오는 것은 악의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기심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파괴로 이끌 수밖에 없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이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눈앞의 이기심 때문에, 선이 아닌 악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꼭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시기 바랍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정치는 분명 믿을 것이 못됩니다.
사학자 고 함석헌 선생께서도 말씀하셨던 서글픈 명언이 떠오릅니다.
"정치란 선악을 판단하는 종교행사가 아닐세. 덜 나쁜 놈을 골라 뽑는
과정이라네. 그래야 '더 나쁜 놈들'이 점차 도태돼, 종국엔 '덜 나쁜 놈'이
좋은 사람으로 바뀌어 갈 것이 아닌가? 정치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모두
다 도둑놈들이다'라고 말해 버리면 기분이야 시원하겠지만, 결국 더 나쁜
놈, 더 도둑놈들을 두둔하는 꼴이 된다는 말일세." (‘작은 것이 아름답다’
중에서)
정치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과거와 현실이
보여주는 아픔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합니다.
꼭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곱씹고 곱씹어 생각하시고
선택의 한 표를 던져주시기 바랍니다.
진정 옳다는 소신으로 던진 한 표라면,
그 한 표는 비난 받을 수 없는 아름다운 한 표가 될 것입니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서울] 부활 제7주간수요일
2014년 가해 6월4일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 17,11ㄷ-19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즐겨 부르시던 노래 중에 ‘등대지기’가
있습니다. 등대지기는 외롭습니다. 등대지기는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합니다.
등대지기는 눈이 오는 겨울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답답한 등대 안에서
지내야 합니다. 그러나 등대지기가 있기 때문에 캄캄한 밤에도 배는
안전하게 항해 할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홀로 고독한 등대지기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충실하게 지켰습니다.
‘사제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합니다. 신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교회라는 든든한 울타리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사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제는 가난한 이들과 가까이 있어야 하고, 병든 이들을 찾아가야
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로 살아야 합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때로
가시밭길이고, 그 길을 가는 것은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동창 신부님 중에 장애인들과 함께 15년을 지내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서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고 15년 동안 그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동창 신부님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제들은,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진실한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신앙인은 세상을 비추는 ‘등대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투표'를 하는 것도 등대지기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 서울 대 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