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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21장 3-4절 은혜와 진리의 가치 18-천국에 들어감 1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갈망한다고 하면서도 이 세상에 더 집착합니다. 종교마다 내세를 이야기하고 있는 종교는 이 땅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내세를 바라는 사람은 드문 것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을 떠나기 싫어서 벼라별 일들을 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있을 때 다음에 일어날 일을 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세를 이야기하면서도 현세를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임으로 말미암아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이용하여 나라를 치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습니다.. 종교를 이용하면 정치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중국여행을 갔다가 황제의 무덤 속에 들어가보았는데 황제가 부활해서 영원히 살 날을 대비해서 무덤 내부를 마치 대궐처럼 넓게 꾸며놓았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살아서 황제면 죽어서도 황제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같습니다. 이상한 사상을 가진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충성은 죽은 후에 까지도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치가들이 백성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감히 넘어설 수 없는 절대권력이 죽은 이후에까지 계속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거짓선지자들이나 이단교주들은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맹목적인 믿음에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를 조금만 삽입하면 맹목적으로 충성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이들을 사용하여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갔고 앞으로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거기다가 마귀는 이단 교주들에게 특이한 기적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앞일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되는 것을 본 추종자들은 앞뒤 잴 것없이 무조건 믿고 충성하다가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특정 종교를 넘어서 천국신앙은 현세에서 죽음을 이기는 신념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가면서 천국을 이용해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이슬람의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폭탄테러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짓된 천국신앙을 강조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순교자에게 그들의 신인 알라가 주는 영광은 천국에서 70인의 여인을 아내로 두는 복을 받는다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 입장에서 보면 여자들의 가치는 그 한 남자를 위해 70인의 여자가 수종들만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게 만듭니다. 여자가 천국에 간다면 그것은 자기와 같은 여인 70명이 어떤 한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영원히 섬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자를 남자의 도구로 여기는 참으로 어이없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남자들은 천국에 가고 싶어 할지라도 어떤 여자가 천국에 가고 싶어 하겠습니까? 이것은 철저히 남성 중심의 종교일 뿐으로 천국을 악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권력자들은 종교를 이용하여 자기들이 누리고자 하는 것을 다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종교를 이용해서 자기들은 신이 주신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함부로 그 영역을 넘어서면 저주를 받게 된다고 떠들어서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자기들에게 함부로 대들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천황을 신으로 만들었고 중국은 황제를 신의 자식이라고 해서 천자라 불렀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세계 곳곳에 나라를 구할 구원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백성들이 따르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너무나 멀리있는 왕이나 황제의 영역을 엄청난 규모로 크게 지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압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왕들과 왕을 옹위하고 있는 신하들의 책략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는 왕궁 안에서 끊임없이 속이고, 죽이는 권력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왕궁 안에서의 왕들이나 왕들의 가족들, 그리고 신하들은 왕이나 황제를 결코 신으로 보거나 신의 아들로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통치를 위해 백성들의 마음을 이용했고, 그것은 신의 이름과 그 신들이 보장한 내세를 내세우면서 이끌어 나갔습니다. 충성스러운 백성들은 그것을 절대 신앙으로 믿었기에 그런 통치는 매우 쉬웠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약성경을 보면 등장하는 애굽이나 블레셋, 앗수르, 바벨론, 메대와 바사의 통치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앞세우는 신들이 있고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의 신이 강한 것이고, 패배한 나라의 신들이 약한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인류는 신의 존재의 실체를 알지도 못하면서 승자 중심의 신화를 쓰고, 사람들은 그 신화를 가르치고 배우면서 절대적인 믿음을 형성해 나갔고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신화적일까요? 아니면 사실적일까요? 많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신화로 해석해서 그것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부분들을 재해석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은 역사가 아니라 의미며, 또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라고 정의하고는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많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반항적인 사람들이 이들이 주장에 열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만일 성경의 강력한 증거가 없었다면 세계 역사는 지금보다 더 타락했고 사람들이 “신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또 다른 사람들은 성경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찾아낸 증거들이 하나 둘 여기 저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고고학은 성경의 역사적 사실을 찾아내 증명함으로써 성경이 이야기나 신화가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성경의 다양한 저자들입니다. 그들은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계시 속에서 앞으로 나타나게될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최초에 만드신 사람인 아담과 하와때부터 약속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각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증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예수님처럼 천국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영은 천국에서 살다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천국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성령이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면서 천국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안에 이루어진 이 천국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도 없고, 그 찬란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볼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신 성령의 강력한 증거로 인하여 여러분들은 천국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떤 천국입니까? 자신의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내신 하나님의 의가 확실하게 증거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것으로 말미암지 않고 영원에 잇대어 있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천국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신앙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현장에서 그렇게 기뻐하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써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을 어떻게 설명하셨습니까? 우선 천국은 영원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생의 나라입니다. 거기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죽을 일도 없습니다. 천국에 사는 모든 존재들이 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삽니다. 천국에서는 영생을 살지 않는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전부가 다 시한부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신 것은 영원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주신 천국의 생명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오랜 시간동안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부활로써 사망을 폐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부활과 복음으로써 확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부활과 복음으로 확증된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천사들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신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셔서 그 나라의 충만한 복을 주시면서 행하시는 일이 요한계시록 21장 3-4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땅에서는 계속해서 슬퍼해야 하고. 울어야 하고, 통곡하고, 아파야 하고, 괴로워야 하고, 고통을 당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고, 근심하고 걱정해야 하고, 밤낮 잠도 못자고 고민해야 하고, 때가 되면 죽어야 하고, 또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슬퍼하거나 슬픔을 주기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는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부활하시면서 자신에게 오는 모든 자들을 다 살리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을 보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마지막 날에 이들은 다시 살리십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살리시는 일은 아들이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들에게 살려야 할 사람들을 계속해서 이끌어 오십니다. 아들에게 와야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에게 오지 않는 자들은 아무리 자기 나름대로의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대상에게 헌신했을 지라도 구원은 받을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천국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이 살리신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그들 가운데 장막을 치고 임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임하는 영원한 복입니다.
다음으로 천국은 기쁨의 나라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절을 보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라고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음을 크게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부르는 찬송입니다.
천국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생을 살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또한 천국에서는 교회가 예수님께 순종함으로 얻게 된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합니다. 천국은 참으로 놀라운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큰 기쁨과 즐거움이 천국에서는 일상이 됩니다.
마치 가난한 집 아들은 도저히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다이아몬드가 엄청나게 큰 부잣집 아들은 언제나 늘 쳐다보는 일상인 것과 같습니다. 큰 부잣집에는 집 안 여기저기를 금과 은과 보석으로 꾸몄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놀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아들이 볼 때 그의 집에는 금과 은과 다이아몬드가 없습니다. 나무와 종이와 철을 본다면 볼 뿐입니다.
이처럼 천국의 기쁨과 즐거움도 천국에 들어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것이 늘 보는 일상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천국의 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여러분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분이 여러분들을 구원하셨고 언제나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최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내일도 똑같이 누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모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이 아무리 극진하다 할지라도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온 세계를 다 살만큼 큰 돈을 가지고 있는 부자가 있어서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누리면서 산다할지라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하지는 못합니다. 그 모든 즐거움과 기쁨은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심한 질병이나 큰 재난이나 죽음에 직면했을 때 끝이 납니다. 하지만 천국의 기쁨은 그것을 빼앗아갈 물리적인 힘도 없고 영적인 세력도 없습니다. 그 나라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의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나라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근심도 질병도 재난도 죽음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질병과 재난과 죽음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왔습니다. 인간은 마귀의 꾀임에 빠져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어 보겠다고 생각하고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따먹었습니다. 그로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는 죽음과 저주를 몰고 인간 셰계에 들어왔습니다. 이 세상의 지옥의 문을 인간 스스로가 연 것입니다. 그로인해 질병과 재난과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하려고 시도하고 도전했지만 질병과 재난과 죽음의 앞에서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것을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로써의 권세를 보이셨습니다. 질병을 고치셨고, 폭풍을 잠잠케 하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을 그런 것들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의 약속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기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 기쁨이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빼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을 보면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하셨고, 또 요한복음 17장 13절을 보면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활하셔서 영원히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이 약속은 영원 불변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2절을 보면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 기쁨이 어디서 온 것이기에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고 하실까요? 그에 대하여 요한복음 15장 11절을 보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쁨은 예수님의 소유인 그 기쁨이 여러분 안에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기쁨을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들은 영원히 누리게될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얼마나 귀하고 갚진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쁨은 이 세상에 속한 기쁨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느끼는 기쁨은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을 만큼 안전합니다, 이 기쁨을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주셨고 그것을 이 땅에서도 누리지만 천국에서는 완전하고 완벽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누가 누립니까?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된 모든 사람들이 누리게 됩니다. 바로 은혜와 진리의 가치가 여기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는 모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허락해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시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천국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을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말 성경의 해석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셔서 그분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과 아들이 구원하신 모든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이 말씀은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도 역시 강조하고 계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 안에서 솟아나는 이 사랑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나라까지 계속됩니다.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여러분들에게 임하고 계시며, 아들이신 예수님의 사랑 역시 여러분들에게 변함없이 임하고 있습니다. 성령님 역시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끝없이 여러분들을 보호하시며 지키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이 사랑이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을 증거하십니다.
천국에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영원한 사랑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랑을 이 세상에서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사랑을 찾아 떠도는 방랑자들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사랑을 찾지 못해 실망합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자기가 완전한 사랑을 만난 것처럼 좋아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그 완전해 보였던 사랑이 점점 균열이 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실망을 합니다.
어떤 사람의 말처럼 그 꿈같은 사랑이 일 년을 못가서 꿈이 깨집니다. 서서히 눈꺼풀이 벗겨지면서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완전하고 완벽한 사랑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이렇게 허물많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가 없고, 이렇게 상냥하고 더할 나위없이 천사같던 여지가 고집스러운 마귀할멈처럼 보이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랑은 어디가고 빈 껍데기와 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어 결혼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집니다.
그래도 이 땅에서 사랑다운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이렇든, 저렇든 어려서부터 다 봐왔기 때문에 장점이건 단점이건 간에 다 품어줍니다. 그리고 자녀에 대한 기대감을 멈추지 않습니다. 물론 친구간의 사랑도 대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의 사랑은 부모 사랑을 능가할 사랑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의 사랑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주신 사랑은 부모 사랑을 능가하는 사랑입니다. 부모도 이 세상에서 잘못하거나 자기에게 잘못하는 자녀도 오래 참고 그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면 부모에게 그런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더 오래 참고 용납하실까요? 오죽하면 아들까지 보내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을까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들은 안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만 사랑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부활과 승천을 통해 증명하셨고 또한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아들에게 온 천하 만물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에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존귀한 이름이 없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다시 살리셔서 하늘 보좌의 모든 영광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자신이 사랑하여서 자신의 몸을 내주셨던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토록 함께 사십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써 성령은 천국이 영원한 사랑의 나라라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
다음으로 천국은 예배와 찬송의 나라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국의 예배 속에 드리는 찬송소리가 하늘 보좌에 충만함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9-11절입니다.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예배가 이 땅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시작된 것으로써 이 땅에서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제는 다시 영원한 나라로 들림을 받은 모든 교회들이 천국에서 영원토록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송하는 때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너무나 놀라운 영광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 크신 하나님께서 자신들 한 사람을 찾아오셨다는 사실과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너무나 크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는 비록 육신의 한계로 인해 예배를 잘 드리지도 못하고, 때로는 온전하지 못한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천국에서는 언제나 완전하고 하나님을 경외함과 사랑이 넘쳐나서 하나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토록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을 받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영원한 예배입니다. 이 날을 위해 땅과 바다가 자기들 속에 있는 모든 시신들을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이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죽었던 모든 사람들을 일으키시고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날에 변화된 모든 사람들이 큰 기쁨과 사랑 가운데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올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영원한 나라를 예수님 안에서 상속받으셨습니다. 그 나라는 슬픔도, 아픔도, 죽음도, 고통도 없는 영생의 나라요, 영원한 기쁨과 평화의 나라요, 영원한 사랑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송하며 또한 천국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과 소유들이 서로 사랑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그런 나라에 들아가서 영원토록 살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들어가게 될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한 밤중에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여러분들을 위해 비추는 작은 빛과 같습니다. 이 작은 빛이 비취는 방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갔을 때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처럼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말씀하시고 조금 보여주시고 알게 하신 것 밖에는 다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명확하게 볼 것이고 그 안에서 넘치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면서 한 가족으로서의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그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면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흔들리지 않은 나라를 받은 자들로써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