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4 - 이인(里仁) - ⑱ |
1 | 子曰 事父母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서 부모가 과실이 있으면 부드럽게 간하는 것이니, 부모의 뜻이 자기의 말에 따르지 않음을 보아도 또한 공경하여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아야 하며, 괴롭더라도 원망하지는 말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此章與內則之言相表裏. 幾, 微也. 微諫, 所謂“父母有過, 下氣怡色柔聲以諫”也. 이 장은 내칙의 말과 서로 표리를 이룬다. 幾는 은미한 것이다. 미간이란 이른바 부모에게 허물이 있으면, 기운을 죽이고 즐거운 기색과 부드러운 소리로써 간한다는 것이다. 朱子全引內則之文以解此章 주자는 온전히 예기 내칙의 글을 인용하여 이 장을 풀이하였다.
坊記曰 微諫不倦 예기 방기편에 이르길, 은미하게 간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所謂以下皆內則文 下倣此 소위 이하는 모두 예기 내칙의 글이다. 아래도 이것을 본떴다.
朱子曰 幾諫只是漸漸細密諫 不要峻暴硬要闌截 주자가 말하길, “幾諫이란 그저 점점 세밀하게 간한다는 것이니, 준엄하고 포악하거나, 강경하게 요구하거나, 가로막고 잘라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였다.
問幾諫是見微而諫否 曰 人做事亦自有驀地做出來 那裏去討其微處 누군가 묻기를, “幾諫은 은미한 것을 보고서 간하는 것인가요?”라고 하였다. 말하길, “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서 또한 갑자기 하게 되는 경우도 당연히 있는데, 어디를 가서 그 은미한 곳을 성토하겠는가?”라고 하였다.
胡氏曰 子之事親主於愛 雖父母有過不容不諫 然必由愛心以發乃可 故下氣怡色柔聲皆心愛之形見者也 所以謂幾微而諫 不敢顯然直遂其己意也 호씨가 말하길, “자식이 부모를 섬김에 있어 사랑에 주안점을 두기에, 비록 부모에게 잘못이 있으면 간하지 않는 것이 용납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반드시 사랑하는 마음을 말미암아서 발언해야만 마침내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기운을 죽이고 기쁜 안색을 하며 음성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모두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모습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미하게 간하라고 말한 것이니, 감히 드러내놓고 곧장 자신의 뜻을 완수할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見志不從, 又敬不違, 所謂“諫若不入, 起敬起孝, 悅則復諫”也. 見志不從, 又敬不違라는 것은 이른바 “간언이 만약 들어가지 않으면, 더욱(起: 다시, 더욱) 공경하고 더 효도하여 부모가 기뻐하면 다시 간언한다.”는 말이다. 朱子曰 又敬不違 敬已是順了 又須委曲作道理以諫 上不違微諫之意 恐唐突以觸父母之怒 下不違欲諫之心 務欲致父母於無過之地 見父母之不從 恐觸其怒 遂止而不諫者 非也 務欲必諫遂至觸其怒者 亦非也 주자가 말하길, “또다시 공경하면서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공경하여 이미 순종하게 되었음에도, 또다시 반드시 자세하게 이치를 만들어 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로는 은미하게 간언한다는 뜻을 어기지 않으니, 당돌하게 함으로써 부모의 노여움을 촉발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간하고자 하는 마음을 어기지 않으니, 부모로 하여금 잘못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하고자 힘쓰는 것이다. 부모가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도, 노여움을 촉발할까 두려워서 마침내 그쳐서 간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반드시 간하고자 힘써서 마침내 그 노여움을 촉발함에 이르는 것도 역시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勞而不怨, 所謂“與其得罪於鄕ㆍ黨ㆍ州ㆍ閭, 寧孰諫. 父母怒不悅, 而撻之流血, 不敢疾怨, 起敬起孝”也. 애쓰되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부모가) 향, 당, 주, 여에 죄를 짓는 것보다 차라리 熟諫(孰=熟, 무르익은 간언)을 하는 것이 낫다. 부모가 노하여 기뻐하지 않고 때려서 피가 나더라도 감히 원망하지 못하고 더욱 공경하며 더욱 효도를 한다.”는 말이다.
新安陳氏曰 不曰苦諫而曰孰諫 孰字有深味 純孰以諫 終欲諭父母於道而已 신안진씨가 말하길, “苦諫이라고 말하지 않고 孰諫이라고 말한 것이니, 孰자에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순수하고 무르익음으로써 간언하는 것은, 끝내 부모를 道에 깨우치게 하고자 할 따름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微諫者下氣怡色柔聲以諫也 見得孝子心愛其親 雖當諫過之時 亦不敢伸己之直 而辭色皆婉順也 見志不從 又敬不違 纔見父母心中不從所諫 便又起敬起孝 使父母歡悅 不待父母有難從之辭色而後 起敬起孝也 若或父母見不從所諫 甚至怒而撻之流血 可謂勞苦亦不敢疾怨 愈當起敬起孝 此聖人敎天下之爲人子者 不惟平時有愉色婉容 雖遇諫過之時 亦當如此 甚至勞而不怨 乃是心愛其親也 朱子曰 推得也好 누군가 묻기를, “微諫이라는 것은 기운을 죽이고 안색을 즐겁게 하며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간하는 것입니다. 효자가 마음으로 자기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비록 잘못을 간하는 때에 당해서라도, 역시 감히 자기의 곧음을 펴지 못하면서도, 말과 안색을 모두 예쁘고 온순하게 하는 것입니다. ‘見志不從 又敬不違’라 했으니, 조금이라도 부모님이 마음속으로 간한 바를 따르지 않음을 본다면, 곧바로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도함으로써 부모님으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는 것이지, 부모님이 따르기 어렵다는 말과 안색을 가지신 것을 기다린 연후에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혹여 부모님이 간한 바를 따르지 않는 것을 보이시거나, 심지어 노여워하여 피가 나도록 때린다고 할지라도, 고생스럽게 수고하면서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못하며, 더더욱 마땅히 더 공경하고 더 효도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인께서 천하의 사람의 자식이 된 자에게 가르치신 것이니, 단지 평소에 기쁜 안색과 예쁜 용모를 가져야 할 뿐 아니라, 비록 잘못을 간할 때를 당해서라도, 역시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하고, 심지어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아야만, 마침내 마음으로 제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미루어간 것이 또한 좋다.”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起者竦然興起之意 孰者反復純孰之謂 不諫是陷親於不義 使得罪於州閭等 而上之諸侯不諫 使親得罪於國人 天子不諫使親得罪於天下 是以寧孰諫也 怒撻之流血 猶不敢怨 況下於此乎 諫不入起敬起孝 諫而撻亦起敬起孝 孝敬之外 豈容有他念 亦豈容有一息忘乎 서산진씨가 말하길, “起라는 것은 놀랍도록 흥기한다는 뜻이다. 孰이라는 것은 반복하여 순수하고 무르익은 것을 일컫는 말이다. 간하지 않는 것은 부모를 불의에 빠뜨려서 州閭 등에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위의 제후가 간하지 않으면, 그 부모로 하여금 나라 사람들에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이고, 천자가 간하지 않으면, 그 부모로 하여금 천하에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차라리 孰諫을 하는 것이다. 노하여 때려서 피가 흐르더라도, 그래도 감히 원망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것보다 못한 것에 있어서랴! 간언이 들어가지 않으면,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도해야 하고, 간하였으나 때릴지라도 역시 더욱 공경하고 더욱 효도해야 하는 것이니, 효도와 공경 이외에 어찌 다른 생각이 있음을 용납하겠는가? 또한 어찌 한순간이라도 잊어버림이 있음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