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남도 함께 행복해지는 절복행의 실천”
연합회 간부 여러분, 그리고 신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2026년도 3분의 1이 지났습니다. 원단 근행 때 세우셨던 서원과 목표는 지금 어떻게 이어지고 계십니까? 혹시 마음처럼 되지 않아 주춤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우리 연합회는 올해 ‘절복’과 ‘법통 상속’을 중심에 두고, 회장님을 비롯한 간부 여러분이 앞장서 실천에 힘쓰고 계십니다. 신도 여러분 또한 그 뜻에 호응하여 마음을 모으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절복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마음은 앞서지만 행동이 따르지 못할 때, 우리는 어느새 의기소침해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요?
어법주 니치뇨 상인께서는 절복이 성취되지 않는 원인으로 다섯 가지를 지적하셨습니다.(대일련. 2011년 11월호) 첫째, 창제가 부족한 것. 둘째, 실천 행동이 부족한 것. 셋째, 어려움 앞에서 물러서는 마음. 넷째, 용기를 잃은 나약함. 다섯째, 작은 만족에 안주하는 타성입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를 하나하나 바로잡아 간다면, 절복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어지남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 열쇠는 바로 ‘함께하는 신심, 단결의 행동’에 있습니다. 사원에서 이루어지는 창제행에 적극 참여하여, 이체동심으로 제목을 올리고 서로를 격려할 때,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용기가 다시 살아나고, 절복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아쓰하라의 법화강중에게 「말로 격려할 것이며, 위협하지 말라.」(신편어서 p.1398)고 가르치셨습니다. 서로를 북돋우고, 함께 이겨내도록 손을 잡아주는 것, 이것이 바로 절복의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마음입니다.
아쓰하라의 신도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대성인과 닛코 상인의 따뜻한 교도, 그리고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동지의 결속이 있었기에, 그 어떤 대난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승속이 하나 되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각오로 신행에 임하는 자세, 곧 부자석신명(不自身命)의 실천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변함없는 규범입니다.
절복은 단순히 권유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밝히고,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는 가장 자비로운 실천입니다. “절복으로 한 사람을 구한다.” 그 한 사람의 행복이 곧 나의 공덕이 되고, 나의 인생을 빛나게 합니다.
이 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대어본존을 향한 절대 신심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하루하루는 광포를 향한 위대한 발걸음이 됩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심을 점검해 봅시다. 먼저 나 자신의 나약함과 타성을 ‘절복’하는 데서 출발합시다.
그리고 간부와 신도 모두가 하나 되어 이체동심의 창제 소리를 높이고, 서로를 격려하며 타인을 구하는 절복행에 힘차게 나아갑시다. 그 길 위에 나도, 남도,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광명의 세계가 반드시 펼쳐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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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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