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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장암
지장암은 범어사 입구에서 매표소까지 2.5KM구간의 산책로 중간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1980년대 창건된 부속암자로 범어사 고승들의 다비식을 거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2. 계명암
금정산 범어사의 암자로 약사여래불을 모신 약사전으로 보덕굴이라고도 한다.
청룡과 백호가 완전히 감싸는 곳에 위치한 계명암은 주룡으로부터 내려온 강한 중심바위가 암자를 받쳐주고
입맥하고 있으며, 청룡 바위가 후부하게 혈을 감싸고 있는 좌선국으로 혈이 결지되어 기도의 효험이 좋은 자리이다
[출처] 범어사 계명암/부산 (순흥안씨문숙공파) |작성자 안치원
-계명암의 전설-
금정산 동북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에서 납자들이 수행정진을 했다.
그런데 납자들이 새벽 예불을 드릴때가 되면 하늘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정확하게 그 시간을 알려 주었다.
또한 의상대사가 계명봉 서쪽 고개에서 절터를 찾던 중 한밤 중에 난데없이 닭이 울었으므로
그곳에 절을 지은 것에서 유래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효의사(曉義寺)라 불린 그 절은 사라지고 없지만,"계명봉"이란 이름이 생겨난 전설이 되고 있다.
3 청련암 불무도
기묘한 선무도의 가람, 범어사 청련암 - 불교 무술의 대가, 양익스님의 흔적을 찾아...
범어사 청련암 푸를 청에 연꽃 연자. 푸른 연꽃이란 사찰의 이름부터가 어딘가 심상찮은 이곳.
먼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암자라고 하기엔 너무 큰 규모에 한 번 놀랄 것이다.
그리고 절 곳곳에 스며 있는 기묘한 선무도의 분위기 때문에 두 번 놀랄 것이다.
청련암은 우선 입구부터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법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두 쌍의 도깨비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이방인들을 위압한다. 그리고 주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목에는 거대한 용 두 마리가 꼬리를 맞붙은 채로 여의주를 물고
자신의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신비로운 분위기를 주는 것은 계단 왼편에 세워진 건물의 벽에 새겨진
각종 선무도 그림이다. 마치 중국의 소림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스님들의 심오한 무도 모습이 건물 벽에
연속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청련암에 들어가면 기존의 사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4. 내원암
범어사 내원암의'제일선원' 이곳은 역대 고승들의 참선 수행처로 유명한 곳이다.
성철 큰스님 께서도 이곳에서 수행하신 적이 있으시다고 한다.
범어사 내원암의 '대자비전'1985년 재건된 대자비전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내원암은 1982년 동지 즈음 법당과 요사 후원의 전각 전체가 누전으로 인하여
소실된 이후 회주 능가스님이 중창불사 했다고 한다.
가산리마애여래입상 [ 架山里磨崖如來立像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산 3·2번지,
범어사(梵魚寺) 북쪽 금정산(金井山)의 화강암 절벽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선각 마애불입상(磨崖佛立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높이 12m. 불상은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하여 세부표현 뿐만 아니라 윤곽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둥글고 봉긋한 육계(肉?)가 표현되었으나 희미하다. 눈썹은 깊이 새겨 뚜렷하게 남아있으나 눈은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코는 큰 편이며 입은 작다. 삼도가 표현되었으며 어깨는 약간 각지게 나타내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의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오른쪽 옆구리에서 왼쪽 어깨로 가로지르는 한 단의 옷섶이 비교적 둥근 사선을 그리기 때문에 가슴이 많이 드러나 보인다.
무릎 아래쯤에는 두 줄의 완만한 V형을 그리는 법의 끝단이 남아있으나 불상을 표현한 각선(刻線)이 매우 얕고 가는데다
마모가 심하고 바위 여러 곳에 균열까지 있어 천의(天衣)의 형태나 세부 주름 표현을 자세히 알아 볼 수 없다.
수인(手印) 또한 명확히 알아볼 수 없는데 오른손은 가슴부근까지 들어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뜨린 표현으로
짐작된다. 광배(光背)는 알아볼 수 없으나 대좌는 단판의 꽃잎을 선각한 연화대좌로 추정된다.
표현이 분명하게 남아있는 부분이 거의 없을 만큼 마모가 심하여 분명히 알아볼 수는 없으나 상호의 표현이나
각진 어깨선 그리고 거구의 신체에 생략된 선들과 도식적으로 단순화된 표현들에서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산리마애여래입상 [架山里磨崖如來立像]
금정산에는 고모당(故母堂)으로 불리는 당집이 있는데 이 당집은 범어사에서 세운 것입니다.
이 고모당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에 밀양인 박씨가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하였답니다.
그녀는 범어사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여생을 보내면서 많은 공덕을 쌓는 불사를 펼쳐서 칭송이 대단 했다고 하고요.
어느날 이 보살은 큰스님께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한 뒤에 저 높은 고당봉에 고모영신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 고당제(高堂祭)를 지내주세요.
그러면 높은 곳에서 수호신으로 범어사를 돕고 지어주겠습니다"고
그런 유언을 남기고 죽자, 큰스님은 유언에 따라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1년에 두 차례(정월보름날과 단옷날)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자 범어사가 지금처럼 아주 번창한 사찰이 되었다고
하고요. 세월이 지난 뒤 범어사의 젊은 스님들이 고모당에서 당제를 올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답니다.
당집과 불교와는 관계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당집을 훼손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뒤로 범어사에서 잇따라 좋지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하고요. 그래서 다시 고모당을 고쳐지니까 그런 액운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사실여부는 알수 없으나, 고모당을 신성시하는 전설입니다.
* 자료 출처 : 부산시 홈페이지
5.미륵사
미륵사(彌勒寺)는 금정산 고당봉으로 오르는 높이가 약 50m 정도 되는 거대한 암봉 아래 위치한다.
통일신라 678년(문무왕 18)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한 해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다.
원효대사는 미륵암에 주석하면서 ‘미륵 삼부경’ 중의 『미륵상생경종요 彌勒上生經宗要』를 썼다.
또한 대사는 이곳에서 호리병 5개를 구하여 왜구의 배 5만 병선을 물리쳤다고 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내용은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왜구 10만 병선을 불력으로 물리쳤다는 설화와 비슷하다.
범어사와 미륵암의 창건 연대가 같은 만큼 두 대사가 같은 시기에 금정산을 찾아 각기 불력과 도력으로 왜적 대군을
격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왜적 첩자를 유인하기 위해 대사가 장군기를 꽂았다는 바위구멍이
지금도 미륵사 독성각 옆에 그대로 남아있다. 원효대사 당시에 미륵사 뒤 바위에서 쌀이 조금씩 나왔다는
설화도 전하는데, 상좌스님이 쌀이 계속 나오니까 욕심을 부려 많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나무를 넣어 집적하다보니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샘이 되어 물이 나오고 있다.
독성각의 ‘독성’은 원래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던 것인데, 나중에 부조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륵봉 암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자리한 미륵사는 산문(일주문)이 없다. 원효대사의 노덕가리 바위가 좌우에 위치하여
양식걱정은 없다는 말이 전해온다. 미륵사는 당우들의 명칭에서 다른 사찰과 다른 점이 드러난다.
미륵전, 미륵암, 미륵사가 따로따로 서 있는 것으로
미륵암에서 미륵사로 승격되면서, 이런 당우의 명칭이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좌선바위는 거대한 바위로 스님이 좌선하는 모양과 같으며, 현재 건물로는 염화전, 오백전, 도솔선원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륵사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원효대사 스토리뱅크)
<< 미륵불 >>
이미륵불은 우리나라에서 북방불기를 쓸때인 불기 2951년에 조성되었다고 적혀있으므로
현재의 통일된 불기로 환산하면 1924년(갑자년) 11월에 조성된것이다. 연화대좌에 가부좌하고 있고 육계는 둥글며
얼굴은 네모꼴로 코는 넓게 표현되고 입술은 얇고 두귀는 길게 늘어져있다. 통견의 어깨는 둥글고 완만하여
옷주름은 간단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얼굴, 가슴, 배부분이 밋밋하고 경직되어 있고 수인은 전법륜인(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서백의 사찰이야기에서 퍼옴)
6.원효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산내암자이다. 자세한 역사 및 창건연대 등은 전하지 않으나,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머물면서 왜병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이 암자 바로 뒤의 바위가 원효대(元曉臺)로서, 이곳에 올라서면 양산 천성산의 원효암이 보인다.
원효암 좌측에는 의상대(義湘臺)가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과 심검당(尋劒堂)·요사채
등이 있으며, 그 규모가 암자로서는 큰 편이다. 법당에 모셔진 보살상은 원래 도둑을 맞아 일본까지 건너갔다가
보살상의 현몽(現夢)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것으로, 영험이 뛰어나다고 한다. 또한,
1950년대에 이 암자의 우물에서 원효대사의 것이라고 전하는 옥돌의 도장이 발견되어 현재 범어사에 보관되어 있다.
이 밖에도 이 암자에는 삼층석탑 2기와 고승들의 사리부도, 방광탑(放光塔)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서편삼층석탑은 높이 2.33m로 신라 말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인 동편삼층석탑은 높이 1.9m로서 고려 때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7.금강암
금강암은 범어사왼쪽 금정산성 북문쪽으로 가는길에 바위로된 계곡-돌바다를 따라 올라가면
'북문쪽' 등산호의 마지막 암자이다.
8.대성암
비구니수행도량 일반인출입제한
9.안양암
안양암은 범어사 본당좌측의 첫암자로 1900년에 개설된 안양선사로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공간 이었으나, 지금은 조실스님이 계시는곳으로 일반사람들은 통제가 되고 있다.
범어사(梵魚寺)
범어사(梵魚寺)는 금정산에 있는 절이다.
678년 신라 문무왕 시절에 의상에 의해서 지어졌다.
후에 조계종으로 합쳐진 화엄종의 10대 사찰 안에 속했다.
고려 시대에 최전성기를 누렸으며,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다.
임진왜란으로 인해서 절이 탔으며, 1602년 복원되었으나 또 화재가 발생하였다.
대웅전과 일주문이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1. 위치
범어사는 부산의 북쪽에 있다. 범어사역에서 30분 간격의 90번 버스를 타거나 걸어갈 수 있으며, 택시를 탈 수도 있다
2. 국보
?국보 제250호 - 삼층석탑
?국보 제434호 - 대웅전
3. 암자
범어사에는 11개의 암자가 있다.
◎금정산 금정8경
부산은 어느 도시보다 산이 많다. 그 중 제일로 꼽는 산이 금정산이다.
경치가 수려하고 장대해 부산의 진산, 남쪽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금정산에서 보는 수려한 경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광으로만 모은 것이 금정8경이다.
금정 8경으로는 (1)남해를 바라보는 풍광, (2)범어사 입구의 울창한 소나무, (3)대성암의 물소리,(4) 청련암의 밤비소리,
(5)계명암에서 보는 가을달, (6)내원암 종소리, (7)금강암 주위의 단풍, (8)고당봉의 구름들을 꼽는다.
10.만성암
만성암은 범어사 남쪽 상마마을 금정산 제3등산로 들머리에 있는 암자로 비구니 수행도량이다.
어느 회장님 저택같은 만성암 대문
11.사자암
사자암은 범어사 순환도로를 따라 범어사 입구를 지나 남쪽 상마마을에 있는
범어사 만큼 오래된 암자이다.
첫댓글 범어사에도 암자가많네요..
정말로 상세한설명 감사드립니다
자료 감사히 쓰겠습니다.
받아 갑니다.
꼭 가보고 싶은 암자 였습니다.
공유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