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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와 平等
[황장엽 강좌 듣기] ;
http://www.freenk.net/top/broadpop.php?addr=bbs_hwang&id=45
2주에 걸쳐서 민주주의 기본 개념에 대해 해설해드리고자 합니다.
8.15 해방 60돌을 맞이하면서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민주주의를 고수해야겠는데 민주주의 외에 다른 길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2의 길이요.. 제3의 길이요.. 하면서
애매한 소리를 하는데 민주주의 길밖에는 없고
민주주의를 어떻게 더 개선 완성해나가는가,
그것을 어떻게 철저하게 지키는가 하는데 관심을 돌려야지
민주주의 이외에 딴 길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지금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이해를 옳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라고 하게 되면 자유와 평등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자유와 평등이 필요한가?
이것부터똑바로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정상적인 삶인가?’
이 정상적인 생존방식을 밝혔다는데
민주주의 발생에 위대한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게 옳은 생활인가?
그것은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운명의 주인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운명에 대해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운명이라는 게 뭡니까?
사람이 죽게 되면 운명을 다했다고 그러는데
문자 그대로 하면 ‘생명의 운수, 길흉(吉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귀중한 게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생명을 실현하는 것이 생존입니다. 제일 나쁜 것이 무엇인가? 죽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제일 좋은 것은
생명력이 계속 보전되고 더 잘 보전되어 생명력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운명이라고 할 때에는 생명과 관련시켜서 이해해야 됩니다.
생명의 생존과 발전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하는 문제가 운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생존과 발전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하는 것을 결정해나가는 결정권을
인간 자신이 가져야 되겠다,
이것이 주인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주인의 지위는 공짜로 얻어지는가?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해야 하며 공짜로는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인의 지위를 지키고 주인으로서의 욕망을 실현해 나가자면
반드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역할 문제입니다. 역할을 안 하게 되면 대우를 안 해 줍니다.
그러면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는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그것은 내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서 살아야 되겠다,
어떤 욕망을 실현하게 나가겠다는 것을 자유롭게 결정하고
또 그것이 자유롭게 실현 되어야 합니다.
실현 안 되는 욕망은 가치가 없습니다.
또 자기 욕망에 맞지 않는 욕망 이것도 가치가 없구요.
(욕망을) 자유롭게 결정하고 자유롭게 실현해 나갈 수 있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 자체가 목적인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욕망or 삶의 목표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유는 사람이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는 데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 문제가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생존과 발전을 위해 목표를 세운 것,
말하자면 이것이 목적인데 역할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목적이 있으면 그것을 자유롭게 실현하는 것이 생명이지만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은 평가가 되어야 합니다.
목적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욕망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 생존에 도움이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를 평가 받아야 됩니다.
수단에서는 평가가 생명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개인으로서의 고립된 행동을 하거나
역할을 한다 하게 되면 평가는 간단합니다.
당사자의 욕망에 맞는가 맞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그 당사자가 직접 평가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닌 사회적인 존재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상품을 생산한다 할 때
그것이 자기가 쓰기 위해서 생산되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 즉 사회를 위해서 노동을 해야 하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 활동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자기 욕망을 가지고서 만들었다고 해도,
잘 못 만든 제품을 스스로는 잘 만들었다고 평가 할 수 있지만
사회가 평가해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역할에 대하여서는 반드시 개인적인 요구가 아니라
사회적인 요구에 맞게 행동을 했는가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가의 주인이 개인이 아니라 이때는 사회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평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사회적으로 행동을 역할을 평가해 주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평등입니다.
평등은 사회적인 요구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된 것만큼 이바지 한 것만큼
평가를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기준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봉건사회에서는 재간이 있는 사람이 사회발전을 위해서
사회 요구에 맞게 큰일을 했어도
그 사람이 신분이 낮을 때에는 평가를 안 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신분 때문에 대우를 못 받게 되는 것입니다.
대우를 못 받는다는 것은 역할을 했지만은 평가를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평가를 해주지 않는 것은 결국은 목적을 실현하는 권리 지위는
그 역할의 평가에 의해서 지위가 보존되는데
이것을 보존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자기의 생명력을 바치는 것입니다.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서 용감하게 투쟁했다 영웅적으로 투쟁하였다,
그렇다면 영웅적으로 투쟁한 것만큼 대가를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영웅적으로 투쟁을 하여도 신분이 낮기 때문에
평가할 수 없다 하게 되면 개죽음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누가 자기의 생명력을 공짜로 바치려고 하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평가에 있어서는 평등해야 됩니다.
친한 사람이건 친하지 않은 사람이건 신분이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다 같은 기준을 가지고서 공정하게 평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존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운명의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주인의 역학을 평가하는 데서는
평등의 원칙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이 민주주의의 기본특징으로 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자유와 평등이 목적인가?
그것이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주인의 역할을 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해서,
그것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요구되었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자유 자체를 자꾸 요구하는 것이 자유방임주의인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정당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이 실현될 것을 요구하고, 그런 권한을 사람이 가져야 된다,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적합한 자유가 되어야 정당한 자유인 것이지
그것과는 관계없이 부화방탕하게 생활하겠다,
민족반역자로 생활해야 되겠다,
국적을 버리는 것으로 자유를 가져야 되겠다,
이런 것은 민주주의의 자유로 칠 수 없단 말입니다.
남의 재산을 빼앗는 것도 자유, 남의 자유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도
자유, 거짓말 한 것도 자유, 이런 것은 진정한 자유가 될 수 없습니다.
주인의 지위를 보장한데 의한 자유만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 자유입니다.
자유에 대한 문제도 민주주의 초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봉건적인 신분제도에서 벗어나니까 우선 자유롭게 벗어나서 활동하는 것이 좋다.
자유라는 것은 처음에는 자유가 부족했으니까
봉건적인 신분제도에서 벗어나게 되면 무조건 자유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자유주의라고 해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질이 풍부하게 많이 생산되어서
그것을 어떻게 자기 주인의 지위를 강화하는데 맞게 쓰겠는가,
이런 문제가 나서는 조건에서
그저 자유다, 자유는 다 좋다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역시
자기의 주인의 지위를 잘 높이는데 잘 보장하는데 이바지 하는 자유만이 옳은 자유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자주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주적인 입장을 강화하는데 이바지 하는 자유,
이것을 자주라고 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신자유주의라고 하기에 속으로 놀랐습니다.
하필 왜 자유주의를 좇아가는가?
자유가 이상이라는 인상을 주어서야 되겠는가,
자주적인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되는 자유 이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주가 중요하여 자주로 고치자고 했었는데
자꾸 자유주의로 가기 때문에 내가 반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
그렇게 하는 것에 더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평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등도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정당하게 평가해 주는데 이바지하는 평등이라야
옳은 평등이지 일 안한 사람에게도 ‘다 같이 평가해 준다,
일 잘못해도 같이 평가해 주는 것’ 이 같은 평균주의는 나쁜 것입니다.
차별 없이 다 같이 평균주의적으로 평가해야 된다, 이것은 평등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못하게끔 만들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놀던 사람이나 다 같이 평가해 주면
누가 햇빛이 쨍쨍 내리 쬐는 곳에서 힘들게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은 누구도 일 안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불평등입니다.
이러한 평균주의는 우리가 배격해야 합니다.
자유방임주의와 함께 우리는 평균주의도 경계해야 합니다.
일한 것만큼 사회에 이바지 한 것 만큼 평가해 주는 것이 진정한 평등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유와 평등에 관한 문제를
무엇과 결부시켜 늘 인식해야 하는가 하면
자주적인 지위를 높이고 창조적인 역할을 높이는데 이바지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평균주의를 하게 되면 창조적 역할을 높이는 것이 아니고 낮추는 것이 됩니다.
중국에서 한 때 다 같이 나눠먹자며 사회를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일하지 않았습니다.
일한 것만큼 평가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한 것만큼 평가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의의 원칙이고 정당한 일입니다.
평가를 떠나서 사람들이 활동하지 않습니다.
옳은 평가, 평등하게 평가해 주어야 사람들의 창조적 활동이
자꾸 활발하게 되어서 사회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유와 함께 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할 때
자유와 평등에 관한 이해를 똑바로 해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제게 들어 온 메일 중, 혼자 읽기 아까운 내용들을 정리하여 올립니다. 황장엽님 강좌 시리즈는 내용이 좀 길지만, 충분히 읽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