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넷째주 메시지 보라 네가 나았으니
요한복음 오장 강해 3부 보라 네가 나았으니
요한복음 5장 10-15
요절 14절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오늘 말씀은 38년된 병이 나은 사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38년된 병 나은 사람에게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38년된 병보다 더 심한 것은 영혼에 귀신이 들어오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병이 나은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에 나를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의 은혜 신앙으로 더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병이 나은 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계속 더 큰 은혜를 누리다가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됩니다. 우리가 병 나은 후에 계속 은혜로 헌신하여 은혜가 더욱 넘치다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율법주의자는 다른 사람을 정죄한다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안식일 날 38년된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38년된 병자는 병이 나은 후에 말씀에 순종하여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셨죠? 과거를 청산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의존심의 자리, 원망의 자리, 절망의 자리, 탄식의 자리, 세상 소망의 자리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하셨습니다. 이제는 자립하고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 소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삶을 살기 원하셨습니다. 병자는 병이 나은 후에 38년 동안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문제는 안식일 날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는데서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 안식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 법을 지키기 위해서 구체적인 유전을 만들었습니다. 안식일 날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식일 날 들고 갈 수 있는 무게를 정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병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 날 들고 갈 수 없는 무게를 들고 가서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책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로 바라새인입니다. 이들은 2세기 헬라화 운동에 반발하여 일어났지만 그 뿌리는 에스라의 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에서 가나안 땅에 돌아왔습니다. 에스라는 아주 멋진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준행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 39권을 집대성하였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구별되었다고 하여 바라새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자기의가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자신들은 세리와 다른 것을 자랑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금식하고 십일조하고 십계명을 지키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들은 은혜로 시작하였다가 행위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율법주의가 생긴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율법주의가 되었습니다. 율법주의는 복음이 아닙니다. 이단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할례를 해야 구원을 받고,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율법주의 신자들에게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주의의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이나 반복하여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주의 이단을 척결하기 위해서 쓴 서신입니다.
율법주의는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면 자기 의가 생깁니다. 자신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자신을 자학하고 괴로워합니다. 율법주의자는 마음보다는 행위를 봅니다. 그들은 행위는 깨끗해 보이는데 마음은 썩어 있습니다. 새벽기도는 나오면서 새벽 기도에 나오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남자가 머리에 물들이고 머리를 묶은 것을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판단합니다. 하지만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아도 믿음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머리에 물들이고 머리를 묶었는데 진실한 신앙인도 많이 있습니다. 머리 묶지 않고 예배 나오지 않는 사람보다 머리 묶고 예배 나오는 사람이 더 낫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런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단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이단을 척결하려고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다 바울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을 배웠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배웠습니다. 은혜 신앙을 배우고 나서 그는 달라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겸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자신보다 덜 수고한 사도들을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에게 주신 은혜대로 최선을 다한 것을 인정하여주었습니다.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로, 서로 하나님이 쓰는 은사가 다른 것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은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겸손합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최선을 다 합니다. 부족해도 자학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고 자존감을 잃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세워줍니다. 다른 사람이 못할 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은혜 안에서 율법을 지키도록 도와줍니다. 그들이 죄를 지을 때는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죄를 극복하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율법주의보다 은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 신앙을 가지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숨을 쉬는 것, 밥을 먹는 것, 걸을 수 있는 것, 말씀을 가르치는 것,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알 때 우리는 감사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율법주의자보다 더 잘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겸손할 수 있습니다.
(2) 보라 네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범최말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병 나은 사람은 38년된 병이 치료받고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 때문에 안식일 법을 어긴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병 나은 사람은 자신을 낫게 한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치료해주신 분에게 안식일 법을 어긴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그는 육신의 병은 나았지만 의존심의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원망 불평의 죄는 낫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사람이 많아서 예수님이 자리를 피하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낫게 한 사람이 예수님인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 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병 나은 사람을 만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보라 네가 나았다고 말씀하심으로 그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은혜를 감당하기 위해서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은혜를 배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말고 자신에게 은혜를 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병이 나았지만 그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의 은혜를 배신할 수 있음을 아시고 경고하셨습니다.
은혜는 받는 것보다 은혜를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에게 열 명의 문둥병자가 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9명은 그냥 갔습니다. 한 명만이 와서 예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한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병이 나은 후에 병을 치료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는 것 때문에 선민이 되었고 제사장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잘나서 구원을 받은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을 개와 돼지 같이 무시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잘나서 은혜를 받은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타락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자신이 잘나서 은혜 받은 줄로 생각하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께 버림 받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를 받고 은혜를 감당치 않으면 병보다 더 심한 것이 생긴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병보다 더 심한 것은 지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귀신이 나간 후에 그 마음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시지 않으면 일곱 귀신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지 않으면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38년 된 병을 가지고 천국에 가는 것이 38년된 병이 낫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
우리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감당하며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감당하면 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은혜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귀하게 쓰임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백향목 궁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지어드리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에게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더 큰 은혜를 베푸사 그의 후손에게서 그리스도가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여주셨습니다. 다윗은 내가 무엇이기에 양치는 자를 왕이 되게 하셨느냐고 감격합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자신에게 메시야가 나오게 하느냐고 감격합니다. 다윗은 이런 은혜를 알고 은혜로 살았기 때문에 평생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나의 은총은 평생이요 고난은 잠깐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실 그의 인생은 젊어서나 늙어서나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알고 나니 모든 것이 은혜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가 되어 부강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80년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추석이 많이 더웠지만 시골까지 다 에어컨을 틀고 시원하게 지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의 때 다윗처럼 주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결론) 은혜를 감당하면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은 후에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은혜를 잊고 이기적으로 살기 쉽습니다. 내가 잘 나서 은혜 받은 줄로 착각하고 더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자기 의가 생기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더 심한 것이 생기게 됩니다. 사울왕은 농사하던 자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어 자신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에게 일곱 귀신이 들어가고 그는 괴로워서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잊고 자신을 위해서 살면 일곱 귀신이 들어가고 악귀에 시달립니다. 죽어서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둘째는 은혜를 알고 더 감사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은혜를 알고 더 감사하면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게 하십니다. 살아갈수록 은혜가 더욱 크게 하실 것입니다. 죽어서는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사울이나 솔로몬처럼 은혜를 배신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다윗이나 바울처럼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은혜를 받은 후에 은혜 받기 전보다 더 주님을 위해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은혜 위에 은혜가 임하고 모두 천국에 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병이 낫고 지옥 가기보다는 병이 낫지 않아도 천국가는 것이 낫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병도 낫고 천국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병도 낫고 더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 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오장 강해 3부 보라 네가 나았으니
요한복음 5:10-15
요절 14절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요한복음 5장 강해 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