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린도전서 9:22]
바울은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나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을 나타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약삭빠른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인기와 명예를 누리는 자 중에는 마음이 관대해서 모든 세속적인 문화와 종교를 다 수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온유함과 인내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누가 보아도 흠 잡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바울의 동기는 사람들에게 비칠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동기는 오직 단 한 가지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그의 삶은 한 번도 십자가의 복음을 양보하거나 타협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모습이 세상에 어떻게 비치던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자세는 '영혼을 향한 참된 열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최근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위 '영혼을 향한 열정'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명예와 권력과 부귀와 조직을 위한 열정일 때가 더 많습니다. 성경에 이러한 부패한 정욕의 예가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3:15]. 교인 한 사람을 더 얻기 위한 열정은 바울이 가졌던 '영혼을 향한 열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인 한 사람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열정'은 오히려 마귀의 인이 찍힌 열정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열정은 교인 하나를 모아 무리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사도행전 13:44-45].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 의해 주의 마음을 따라 바른 열정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의 선물, 8월 18일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