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타닉 가든/김영미
암탉의 배를 가르니
달걀이 크기 순서대로 정렬해 있다
알들은 줄을 서 자라나던 중이었다
껍질이 단단해지는 순서였다
내장을 들어내고 벽을 훑어내고
뱃속은 다른 곡식과 열매와 뿌리로 채워졌다
밑은 이쑤시개로 막혔다 엎드린 등에 버터가 발렸다 그리고
껍질이 바삭해지는 중이었다
접시는 정원의 잎사귀로 가득했다 무화과와 한련과 저녁의 단풍
언제나 부드러운 들꽃들의 몸
포크가 두 개씩 시옷자로 놓여 있다
닭들이 머리를 맞대고 물을 마시던 각도다
더는 못 먹겠어, ‘달걀처럼 배가 꼭 찼어’
사람들은 배를 두드렸다 두드릴 때마다 배에 금이 번졌다
금은 금마다 구근을 달고
빈 접시는 여전히 부드러운 들꽃들의 몸
식탁이 부풀어 오르고 오븐이 식어가는 사이였다
정원에 뼈다귀를 묻고
아이들은 병아리가 피어나기를 기다렸다
* 보타닉 가든 : 도자기 회사의 식기 컬렉션 이름
- 월간 <시인동네> 2020년 5월호
■ 김영미 시인
- 1975년 양수 출생
- 2012년 <현대문학> 등단
- 시집 <맑고 높은 나의 이마>
카페 게시글
좋은 시 소개
보타닉 가든/김영미
시냇물
추천 0
조회 17
23.05.14 11:15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