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趙英來, 1947년 3월 26일 ~ 1990년 12월 12일, 대구 출생)는 대한민국의 인권 변호사이다.
부인 이옥경과 2남을 두었다. 경기고 재학 시절 6.3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주동해 학교에서 정학처분을 받기도 했다.
1965년 서울대학교 전체수석으로 법과대학에 입학[1]하였으며, 재학 중 김근태,손학규와 함께 한일회담 반대, 3선 개헌 반대 등 학생운동을 이끌어 나갔다.[2] 1969년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였으며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연수원에 들어갔다. 사법연수원 재직 중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며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973년 4월 만기출소 후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로 수배되어 6년간 쫓기는 생활을 했으며, 수배기간 동안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삶을 기록한 전태일 평전을 썼는데, 이는 1983년 저자를 익명으로 하여 출간되었다(제목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1980년 수배를 끝내고 사법연수원에 복귀한 후 1982년 이를 수료하였다. 1983년 봄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설립한 이후 1984년 망원동 수해 주민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하였고,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 권인숙 씨를 변호하고 가해자 문귀동 경장에 대한 유죄판결을 이끌어내는 등의 활동으로 인권 변호사로서 큰 활약을 했다. 특히, 1986년 대한변협 인권보고서 발간의 산파역을 하였고, 같은 해 인권변호사들의 상설조직인 정법회의 창립 및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탄생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90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박원순 변호사부터,이분을 존경하시는 분이 굉장히 많은거 같은데..
첫댓글 훌륭한 분이셨네요...조영래변호사님 존경합니다^^
장난 아니게.훌륭한 분인데 전두환도 못뺏은 그분의 생을 담배가.뺏어같어요 ㅜ..ㅜ
80년대에 제가 대학생이었을때 재야의 스타이셨죠.
전 조영래 변호사 하면 가장 먼저 전태일 평전이 생각납니다.
'창비어린이'에서 나온 위인전 보세요~ 쉽게 잘 나와있습니다. 제목이 '인권변호사 조영래'일 겁니다.